Hannah and Je together

Thursday, 22 November 2018

씨발 교포들-자동차 정비

시카고에 살 때, 나도 한국 사람이니 기왕이면 한국 사람 도와주자는 심정으로 꽤 멀어도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정비소를 이용했었다.  몇년 전에 자동차 히터가 나오지 않게 되어서 늘 이용하던 한국인 정비소에 갔다.  그 곳에서는 히트코어를 교체해야 한다면서 인건비를 포함해서 700불이 든다고 했다.  당시 학생이어서 그만한 거금이 없던 나는 차를 고치지 못하도 몇년동안 시카고의 추운 겨울을 덜덜 떨면서 다녔다.  추위보다 더 괴로운 것은 차 앞유리에 낀 성애가 사라지지 않아서 정말 위험하게 운전을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러다 지난 달에 지금 내가 사는 미국 시골의 조그만 정비소에 갔다.  이제는 일단 돈을 벌고, 또 차를 새로 사는 것보다 700불 들여 수리하는 게 훨씬 싸니까 히터를 고치기로 큰 마음을 먹었다.  여기는 뭐 한국인이 전혀 없으니 당연히 백인이 하는 정비소다.  그곳에 가서 설명을 하고, 히트코어를 교체하는데 700불이 든다더라, 그래도 좀 고쳐달라고 부탁을 했다.  정비소 아저씨가 히트코어 교체는 그 정도 비용이 드는데, 그 전에 히트코어 플러쉬를 한 번 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히트코어 플러쉬를 했는데, 1시간도 안 결렸고, 비용도 100불도 안들었다.  이제는 따뜻하게 그리고 안전하게 겨울을 보낼 수가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너무 화가난다.  나는 그래도 같은 한국인 도와주자고 한국인 정비소를 이용했는데, 그 새끼들은 자기들 돈 더 벌자고 히트코어 교체만 얘기를 한 것인데… 내가 고속도로에서 성애낀 상태로 위태롭게 운전하다가 사고나서 죽을 수도 있었는데… 고객의 목숨보다 자기들 돈 더 버는 것에 훨씬 더 무게를 둔다는 것이잖아.  아, 씨발 한국인들, 씨발 교포들.  (만일 한국 업체가 플러쉬를 모른다면 그건 정비소 할 자격이 없는 병신인 거고)

미국과 캐나다에서 정말 개같은 한국인들을 많이 만났는데, 정말 궁금한게, 원래 개새끼들이 이민을 온 건지, 아니면 정상적인 사람들이 이민을 왔는데, 생활이 힘들어서 개새끼가 되는 건지 모르겠다.

앞으로 한식당은 몰라도 다른 것은, 특히 안전과 관련이 있는 것은 절대 한국인 업체를 이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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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25 February 2018

[영어산책] Until에 대해…

Filed under: Lang:한국어,Subj:Languages — Jemyoung Leigh @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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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오랫만에 블로그를 쓰는데, 게다가 영어산책은 더 오랫만인데, 최근에 알게 된 것이 있어서 적는다.

학교에서 배울 때, until을 -까지로 배우면서, 주의할 점으로 by와 until의 차이점에 대해서 배운다.  나도 잘 배워서 그 둘의 차이점은 잘 알고 있다.  그 둘을 잠시 정리하자면

I will be here until 3pm. 이라고 말을 하면 지금부터 오후 세시가 될 때까지 이 곳을 떠나지 않고 꿋꿋하게 현장을 지키고 있겠다는 의미가 된다.

I will be here by 3pm. 이라고 말을 하면 다른 곳에서 놀던 뭘 하든 어디엔가 가 있다가 오후 3시가 되면 이 곳에 오겠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까지’라는 의미에서 내가 놓쳤던 게 있다.  지난 주는 비가 매우 많이, 일주일 내내 왔다.  지난 주일 확인했을 때, 일기예보에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계속 비가 온다고 나왔다.  그러니까, 월-비, 화-비, 수-비, 목-비, 금-비, 토-비, 일-맑음 이었다는 얘기다, 일기예보가.

그래서 미국 사람과 얘기하면서 The weather forecast says that it will rain from Monday until Saturday.라고 말을 하니 내 생각과 다르게 알아듣는다.  신기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실험을 해 봤는데, 예외없이 모두 내 의도와 다르게 이해를 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비가 오고 토요일은 비가 오지 않는 것으로 이해를 했다.

영영사전을 찾아보니 until의 이미가 before로 되어 있다.  그러니, It will rain from Monday until Saturday 라고 하면 월요일부터 토요일이 되기 전까지 비가 온다는 뜻이다. 한국말로 자연스럽게 말하자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비가 온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럼, 한국어를 그대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비가 온다고 하더라를 영어로 옮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매우 쉽게 from … to … 구문을 사용하면 된다.

It will rain from Monday to Saturday.

만일, 토요일에 비가 온다는 것을 강조하고, 확실하게 얘기를 하고 싶다면 through를 쓰면 된다.

It will rain from Monday through Saturday.

앞으로는 until을 쓰는데,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외국어는 늘 매우 쉬워서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결정적인 오류가 나타나는 것 같다.

Wednesday, 20 September 2017

Miscarriage

Filed under: Lang:English — Jemyoung Leigh @ 17:05

A few weeks ago, my wife had a miscarriage.  She got pregnant in five years of trying and it was such a great joy.  I was like high all the time, higher than all the druggers in the world.  When we went to the hospital for regular check-up at 11th week, the ultrasound measurement says that the baby sack is the size of the 8th week.  We had more examinations and found that the pregnancy hormone level was going down.  She did D&C.

몇주 전에 아내가 유산을 했다.  오년동안 노력한 끝에 겨우 임신해서 엄청 기뻤다.  마약쟁이들이 마약한 거 보다 더 기쁘고 들떴다.  11주차에 병원에 정기 검진을 갔는데, 초음파 검사 결과 아기집이 8주차 크기라고 한다.  몇가지 검사를 더 하니, 임신 호르몬 수치가 내려가고 있었다.  D&C를 했다.

It is very painful.  It feels like somebody stabbed my chest with a kitchen knife, and stirs it and twists it.  Even now, I still feel like about ten needles are pricking my lungs.  I know it may not the real physical pain, but it almost feels like physical.  And even sometimes I wake up in the middle of night because of the pain.

굉장히 고통스럽다.  마치 누가 내 가슴을 부엌칼로 찔러서 막 휘젓는 느낌이다.  지금도 마치 바늘 열개가 허파를 찌르는 듯한 느끼이다.  물론 이게 진짜 실제는 아니겠지만, 너무 실제같이 고통이 느껴진다.  자다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자꾸 깬다.

I guess that my wife would have more pain than I because she was the one actually carrying the baby.  I hope not she feels guilty about it because it is not because what she did.  It just happened.  Shits always happen to people, and we call it the world.

하지만 아내는 더 아프고 더 힘들겠지.  본인은 직접 아기를 갖고 있던 당사자니까.  아내가 죄책감을 갖지 않았으면 한다.  본인이 잘못한 게 아니니까.  그냥 지랄 같은 일이 발생한 거다.  이 세상이 원래 지랄같으니까.

I hope I can weep with people having miscarriage because I know how suck this shit is.  I wish I can wipe their tears.  I want I can sit and be with them.  May God’s comfort be with all those people suffering from miscarriage.

나중에 유산한 사람들과 함께 울어줄 수 있기를.  나도 이제 유산한다는 게 얼마나 좃같은 기분인지 아니까.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기를.  그들과 함께 앉아 있을 수 있기를.  하나님의 위로가 유산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기를…

Thursday, 6 April 2017

Last Minute Panic for Ordination

So, my ordination is in two days.  And yesterday evening in the Bible Study with Rev. Eric Heinekamp, he asked me about the approval from the Commission on Ministry (COM) which I did not know at all.  I have not heard of it, but I just thought it is done when I get the approval from the Presbytery where I will go.

목사 안수가 앞으로 이틀 남았다.  어제 저녁 에릭 목사님의 성경공부에 갔을 때, 사역 위원회의 승인을 받았냐고 내게 물어봤는데, 처음 듣는 얘기였다.  어디서 승인을 받이야 한다는 건 들어본 적도 없고, 내가 사역하게 될 소속 노회의 승인을 받으면 끝나는 줄 알았다.

I was examined and approved by the Ohio Valley Presbytery Saturday, March 25th.  And I thought that was all I needed, and set the date by consulting my church in Naperville.  Last night I emailed to some people in Chicago Presbytery, and I found out that I have some conditions in the ordination party, and I have to submit the application at least a week before the COM meeting which is scheduled in April 18th, that is way after the ordination.  Those conditions are: at least five different congregations, at least one ecumenical (which is not PCUSA) presence.

지난 3월 25일 토요일에 오하이오 밸리 노회에서 심사를 받고 승인을 받았다.  그래서 이제 모든 게 다 끝났나보다 생각하고, 네이퍼빌에 있는 본교회와 상의해서 안수 날짜를 잡았다.  어제 밤에 몇몇 사람에게 전자우편을 보냈고, 목사 안수식에 조건이 있고, 신청서를 위원회 모임 일주일 전에 접수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다음 위원회 모임은 4월 18일로 내 안수식 한참 후다.  그 조건들은 최소한 다섯 교회에서 안수위원이 와야  하고, 초교파 위원, 즉 미국장로교가 아닌 위원이 한명은 있어야 한다.

I was almost panic.  Do I have to reschedule it?  Isn’t it too late to call it off?  But I tried to calm down and called several people, and interestingly none of them answered.  But eventually I talked some of the people in the Presbytery.  There is no one to blame but me.

거의 정신줄을 놓을 뻔 했다.  이거 날짜를 바꿔야 하나?  취소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나?  어째든 침착하려고 노력을 했고, 여러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다.  신기하게도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도 결국에는 노회의 몇몇 사람들과 연락이 되었다.  다 내 잘못이니 누굴 탓하겠나.

My ignorance about the proper process put me into trouble, but the flexibility of Chicago Presbytery saved me out of it.

이런 절차에 대한 나의 무지로 인해 곤경에 처했는데, 시카고 노회의 유연함이 날 살렸다.

I cannot thank enough today for the flexibility and much willingness to understand and help me:

아랫의 분들에게는 유연함과 이해심, 그리고 도우려는 의지등으로 인해 감사함을 감출 수 없다:

  • Rev. Eric Heinekamp
  • Rev. Jan Edmiston
  • Ms. Kitty Ridley
  • Ms. Debbie Rundlett
  • Mr. John Fyfe
  • Rev. Susan McGhee

Saturday, 4 February 2017

White Power?

Korea Town in Los Angeles couple days ago, bright day time.  An old Korean lady was walking on the street.  A young white woman shouted “White Power” and punched the old lady from behind.  The weak old lady fell on the ground and bled.

몇일 전 로스엔젤레스의 한인타운, 밝은 대낮.  한 한국인 할머니가 길을 걷고 있었다.  한 젊은 백인 여자가 “백인의 힘”이라고 외치면서 할머니를 뒤에서부터 공격하여 쳤다.  약한 할머니는 땅에 넘어지고 피를 흘렸다.

This action does not prove anything about White Power.  It just proves White Meanness and White Cowardliness.  If you need to show your power, fight with strong one instead of attacking weak old lady from behind.

이 행동은 백인의 힘을 전혀 증명하지 못한다.  단지 백인의 비열함과 백인의 비겁함을 증명할 뿐이다.  만일 자신의 힘을 보여주고 싶다면, 늙고 약한 할머니를 뒤에서 공격할 게 아니라 강한 사람과 싸워라.

Friday, 3 February 2017

Protest against immigration ban?

Due to recent executive order of immigration ban by the newbie president, the whole country is in uproar and many are protesting.  I admire those protesters and I agree with them.  But recent video that I saw on the internet made me comment on it.

신참 대통령의 이민/입국 금지 행정 명령때문에 온 나라가 들끓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저항하고 있다.  그런 저항하고 데모하는 분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나 또한 그에 동의하고 있기도 하고.  그런데 최근에 인터넷에서 본 비디오는 꼭 짚고 넘어가야 겠다.

A group of protesters were protesting in front of a library.  Then an Asian came and told them that it is library.  He went in to the library and someone yelled at him, “Go back to Beijing.”

도서관 앞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데모를 하고 있었는데, 한 동양인이 나와서 여긴 도서실이라고 얘기를 했다.  그리고 들어가는데, 그 뒤통수에 대고 누군가 “북경으로 꺼져”라고 소리를 질렀다.

I was like, “what?”  Do they know what they are protesting for?  If I were there, I would have hit the person.  They were acting against their protesting goal.

순간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저 사람들은 자기들이 뭣 때문에 데모하는지 알기나 하는 건가?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한대 쳤을 거 같다.  자기들이 저항하는 목적과 정 반대로 행동하고 있잖아.

Tuesday, 27 December 2016

Car Seat Warmer

The same day my church gave me the wonderful Lexus, I received a package from Amazon.  It was on my wife’s name (and I found my name on it later as well), so I did not open it.  She came home the next day (she slept over at her sister’s house).  When she came home, I asked her what she ordered from Amazon.  She said nothing.

교회에서 렉서스를 받은 바로 그 날, 아마존에서 택배가 왔다.  아내 이름으로 와서 (나중에 내 이름도 써 있는 걸 발견했다) 뜯지 않고 남겨뒀다.  아내가 다음날 와서 (여동생네 집에서 잤다) 아마존에서 뭘 또 샀냐고 물어보니 아무 것도 안샀다는 것이다.

We opened the huge box and there was two car seat cover cushions with electric warmer.  I did not order it, neither my wife.  And I found the gift message.  It was from the PNC (Pastor Nominating Committee) in Southern Indiana where I applied.

큰 상자를 뜯어보니 자동차 시트 덮개 쿠션이 두 개 있는데, 열선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걸 주문한 적이 없고, 아내도 없다고 한다.  상자에서 선물 메세지를 발견했다.  내가 지원했던 남부 인디애나 주에 있는 목사 청빙 위원회에서 보낸 것이었다.

The cost of the gift is little more then $30, but the price is not important.  I was so deeply moved, not because it is expensive but because of the fact that they think of me.  They knew that my car’s heater is not working.  We just met only once and I am not their pastor, but merely one of applicants.

선물 가격은 30불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가격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정말 감동을 받았는데, 비싼 선물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날 생각해 준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내 차 히터가 작동하지 않는 걸 알고 있어서 이걸 사준 것이다.  단지 한 번 만났을 뿐인데, 내가 목사도 아니고 단지 수많은 지원자 중 한명일 뿐이데 말이다.

I installed it on my old Neon where there is not heater.  This Christmas was literally the warmest one.  Praise be to God and thanks to Southern Indiana PNC.

이걸 히터가 없는 옛차인 네온에 설치했다.  이번 성탄절은 정말 말 그대로 가장 따뜻한 성탄절이 되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남부 인디애나의 목사 청빙 위원회에도 감사를 드린다.

Thursday, 22 December 2016

Lexus ES 350

It’s late night but I cannot get asleep.  I still cannot believe what happened today.  Pastor’s secretary asked me to come to church because the pastor wants to see me.  So I went to church.  We had a little chat, and he wanted to walk outside.  And there was red Lexus ES 350 with ribbons!

지금 꽤 밤이 늦었는데, 잠이 오질 않는다.  아직까지도 오늘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는다.  목사님 비서가 연락이 와서 목사님이 날 보고 싶어 한다고 해서 교회에 갔다.  잠시 몇가지 얘기를 나눈 뒤에 밖에좀 나가자고 해서 갔더니, 빨간색 렉서스 ES 350이 리본이 달려 있는 것이었다!

This is the best Christmas gift that I’ve ever had in my entire life!  I am so thankful and tearful!  Thanks to the Lord, and to my pastor as well as my church family.

내 평생 받아본 것 중에 가장 최고의 선물이다!  너무 감사하고 기뻐서 눈물이 난다.  주님께 감사하고, 목사님께 감사하고, 모든 교회 식구들에게 감사한다.

I’ve been driving my car for long time, and three years ago, the heater stopped working.  I wanted to fix it, but I was told that it would cost $800 at a garage.  I googled and did some research about it and found that it would cost $800 to $1,000 to fix it because the problem is the heat core which is on the innermost part of the car.

내 차를 꽤 오래 탔는데, 약 3년 전에 히터가 고장이 났다.  고치려고 했는데, 정비소에서 800불이 든다고 한다.  구글 검색하고 좀 찾아보니 인터넷에서도 800불에서 천불 사이로 수리비용이 나온다고 한다.  이는 문제가 히트 코어라고 하는 부분에서 발생했기 때문인데, 차에서 가장 안쪽에 들어있는 부품이다.

I badly wanted to fix it — I am in Chicago area.  But my car is old and rusty and thought it would not be wise to spend that much money on this car which I bought long time ago with just three grand.  Then I decided to buy my wife a good jacket because she cannot bear the cold even a bit.  So we bought a Canada Goose which costed almost the same.

난 정말 정말 고치고 싶었다.  시카고 지역에 살기 때문이다 (시카고 지역은 꽤 춥다).  하지만 낡고 녹슨 차에 그 많은 돈을 들이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내 차는 한참 전에 샀는데, 3천불 정도만 주고 산 것이다.  아내는 조그만 추위도 못 견디는데, 그래서 차라리 아내에게 좋은 코트를 사주자고 생각했고, 거의 같은 가격의 캐나다 구스를 사줬다.

Thankfully she was warm in the coat, but we were still freezing in the car for three winters in Chicago.  And recently some of the people in my church found that out, and they told the pastors (we have two senior co-pastors).  Then the pastors asked people if anyone would be willing to donate any car with heater.  And the result was Lexus ES 350!

감사하게도 아내는 그 코트를 입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지만, 우리는 시카고 지역에서 세 번의 겨울을 덜덜 떨며 얼어붙는 차 안에서 지내야 했다.  그런데 최근에 교인 몇몇이 그걸 알게 되었고, 이를 목사님에게 (우리 교회는 담임 목사님이 두분이다) 알렸다.  목사님이 수소문을 해서 혹시 히터가 나오는 아무 차라도 기증할 사람이 있는지 알아봤고, 교인이 렉서스 ES 350을 기증했다.

It has almost full option with luxury and shining things, and the mileage is quite low.  The overall condition is really good.

거의 완전 풀 옵션에다가 꽤 고급이고 반짝반짝 빛난다.  마일리지도 꽤 낮은 편이고, 전반적 상태가 완전 좋다.

Wow!  I don’t know what to say.  Lexus is very high end brand and I have never imagine myself buying or driving one, even for used one.  THIS IS THE BEST CHRISTMAS GIFT EVER!

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렉서스는 꽤 비싼 고급 브랜드로 단 한 번도 렉서스를 사거나 몰 생각을 해 보지도 못했다.  심지어 중고도 말이다.  역대 최고의 성탄절 선물임이 틀림없다!

 

Wednesday, 21 December 2016

Honked first time in 20 months

I honked today for the first time in 20 months.  It was almost two years again when I honked last time.  A lady cut in front of me and I honked at her.  Then she raised her shoulders that she had no idea why I honked.

오늘 20개월만에 처음으로 경적을 울렸다.  마지막으로 빵빵 했던 게 거의 2년 전이다.  한 여성분이 내 앞에서 껴들었고, 내가 빵빵 울렸다.  그러자 그 여성분이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Well she had one reason to cut in.  The truck before her was slower than she expected.

그 여성분은 껴들 이유가 하나 있었다.  앞에 있던 트럭이 생각보다 느리게 움직였던 것이다.

But she had couple reasons not to cut in.  First, it was a quite a curve, so she had to steer much more than usual which made her car movement very jerky.  Second, the line was solid which means no lane change.  Third, it was too close that I had to break so hard to avoid the collision.  And one more.  She didn’t give any signal!  She just suddenly cut in.

하지만 껴들면 안되는 이유는 몇가지 있었다.  먼저, 상당히 커브길이어서 차선을 바꾸기 위해 핸들을 평상시보다 훨씬 더 많이 꺽어야 했는데, 결국 차가 뒤뚱거렸다.  둘째, 차선이 끊어지지 않은 실선이었는데, 그 것은 차선을 변경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너무 가까웠다.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 급제동을 해야만 했다.  아 그리고 또 하나.  깜빡이 신호 전혀없이 갑자기 확 껴들었다.

Cutting in and lane change are OK.  Those are parts of normal and everyday driving.  But you must do that with safety.

껴드는 것이나 차선 변경 자체는 괜찮다.  날마다 하는 정상적인 운전의 일부니까.  하지만 좀 안전하게 해야지.

Thursday, 1 December 2016

First Nations

White supremacists or racists hate all kinds of ethnic groups beside Caucasians.  They say to African Americans to go back to Africa.  They say to Latinos to go back to Mexico blaming they are rapists (they do not care Latinos are not all Mexicans).  They want to build a wall on US-Mexico border.  They also say to Asian Americans to go back home.

백인 우월주의자 또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백인이 아닌 모든 종류의 인종을 다 싫어한다.  흑인들에게는 아프리카로 돌아가라고 하고, 남미 사람들에게는 강간범이라고 욕하면서 멕시코로 돌아가라고 한다 (남미 사람들이 다 멕시코 사람이 아닌 건 신경 안쓴다).  그리고 미국-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고 싶어한다.  또한 동양 사람들에게도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외친다.

So, among many ethnic groups, which one do you think they hate the most?  I think the answer is Native Americans.  Because they are the only group who are entitled to say to those White racists to go back.  So, if they do not exists, no one can tell them to go back home in Europe.

그런데, 그 많은 인종들 가운데, 백인들이 가장 싫어하고 증오하는 그룹은 뭘까?  내 생각엔 미국 원주민이다.  오직 원주민들만이 백인들에게 니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말할 자격이 있으니까.  얘네들만 없으면 그 누구도 백인들에게 유럽으로 돌아가라고 말할 수 있는 족속이 전혀 없다.

I think it is kind of true.  Native Americans are killed more than any other races in America by the police.  Even more than African Americans.  But the media does not say about it at all, literally AT ALL.  For Black people, we can at least hear it at the TV news and daily papers.  But I’ve never heard about Native Americans, ever.

내 생각엔 이게 사실인 듯하다.   원주민은 경찰에의해  미국에서 죽는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심지어는 흑인들 보다도 더 많이 살해당한다.  그런데 미디어에서 전혀, 말 그대로 전.혀. 다루질 않는다.  흑인들은 최소한 테레비 뉴스나 신문에서 보도라도 조금 되는데, 원주민은 그런거 전.혀.없.다.

Even now, many Native Americans are fighting/protesting for their sacred ancestral burial ground at Standing Rock Reservation (it is on North and South Dakotas).  The police are killing them, and water piping them in freezing November and December weather.  Many people are being hurt.  But the media does not say anything about it, not even one second.  I am not talking about conservative media but ANY media including so-called liberal ones.  Because they are all so white.  Liberals are also WHITE liberals.

심지어 지금도, 많은 원주민들이 스탠딩 롹 거주지에서 (노스와 사우스 다코타에 걸쳐있다) 신성한 조상들의 매장지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경찰들이 죽이기도 하고, 11월과 12월의 얼어붙는 기온에서 사람들에게 소방차로 물을 쏟아붓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다치고 해를 입고 있는데, 미디어에서는 단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  단 일초도 언급조차 한 적이 없다.  내가 말하는 미디어는 보수 미디어를말 하는게 아니라 모든 미디어를 다 말하는 것이다.  진보 언로도 포함해서 말이다.  왜냐하면, 보수던 진보던 어째든 다 백인들이니까.  진보도 결국은 그냥 백인을 위한 진보일 뿐이다.

The title of this post is First Nations, which is the Canadian term for same people.  I prefer First Nations over Native Americans.  (Useful link: http://thefreethoughtproject.com/police-killing-native-americans-higher-rate-race-talking/)

이 글의 제목은 First Nations라고 했는데, 이는 원주민을 뜻하는 캐나다 용어다.  원주민 (Native American)보다 나는 First Nations라는 용어를 더 선호한다.  (위 링크로 가서 영어로 읽던가, 구글 번역은 여기 링크를 클릭.)

Monday, 28 November 2016

Punishment and Blessing

During the seminary days, I took some classes like God, Suffering and Evil.  I wanted to take Book of Job but couldn’t.  Though, I’ve got the professor’s brief lecture.  Well, I learned that not all bad things are punishment of what you did, and not all good things are reward of what you did.  Even though I know that thing, I guess it is basic human nature to think that way.

신학교를 다닐 때, 하나님, 고통 그리고 악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욥기 수업을 듣고자 했지만 듣지 못했고, 교수님의 개요 강의만 들었다.  어째든, 모든 나쁜 일이 벌은 아니고 모든 좋은 일이 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고,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과 벌로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보다.

I remember that one of my friends in college one day came to me that his girlfriend was pregnant.  I just hit his head once and we worried together.  He said it was his first time having sex with his girlfriend.  And now, I am married for almost five years and all attempts to have a baby were not successful so far.

예전에 대학 다닐 때 친구 한 명이 여자친구가 임신했다고 찾아왔다.  한대 치고는 같이 걱정을 했었다.  친구 말로는 여자친구랑 처음 섹스해밨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나는, 결혼 거의 5년차 되어 가는데 임신을 하고자 했던 모든 시도가 현재까지는 실패했다.

The other day I found myself thinking of my friend, “What had he done so good that he was blessed so much, having a baby?”  And about myself, “What have I done so wrong that I am getting this punishment, not getting a baby?”

얼마전에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뭘 얼마나 잘했길래 원샷에 애가 생기는 축복을 받았을까?  그리고 나는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이렇게 애가 안생기는 벌을 받는 것일까?

Well, I cannot tell exactly what God has in mind.  But I just wish that this is not some kind of punishment.

내가 하나님의 심중을 정확히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알 수가 없지만, 다만 지금 내 처지가 하나님의 벌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A preacher refused to step down

Today a very interesting news came to my facebook feed.  Check it: New York Preacher Pregnant Out of Wedlock Says She Won’t Step Down From Pulpit.

오늘 내 페북 피드에 흥미로운 기사가 올라왔는데, 한번 확인해 보라: 뉴욕 목사가 혼외임신했는데 계속 목사일을하겠다고 함. (영어)

Some of my facebook friends say that the Mother Mary was also pregnant out of wedlock.  Some quote Jesus that whoever without sin stone her.

페북 친구들 중 몇은 성모 마리아도 혼외 임신을 했다고도 하고, 또 몇은 죄 없는 자가 이 여자를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기도 했다.

I cannot require her to do anything, but I guess I can express what I think as a person preparing to be a preacher.  I have three different issues on this.  But this is not about her, because I don’t want to be a back seat driver for her life.  I want to talk in general.

내가 그 목사에게 일해라 절해라 할 수는 없지만 목사 준비생으로 내 느낌을 얘기할 순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적 느낌이다.  세 가지 얘기를 하겠다.  다만 내 글은 해당 목사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나는 그분의 인생에 왈가왈부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다만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First, there are many male preachers having sex out of wedlock, and some even have a child(ren) but most of the media is quite silent about them.  It is not right that we talk about this only because the preacher is female.  We must treat both female and male preachers the same way–either issue them both or stay quiet for both.

첫번째, 혼외 정사를 하는 남자 목사들이 많고 심지어 아이(들)을 두기도 하는데, 미디어가 그들에 대해서는 조용하다.  이 목사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문제를 삼는 것은 옳지 않다.  남자와 여자 목사들을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  모두에게 문제를 삼던지 아니면 모두에게서 조용히 해야 한다.

Second, all and any preachers must maintain higher morality.  Many people say that the preachers are also human.  Well, I do not deny that.  I do all the things of basic human needs such as eating, drinking, sleeping, breathing and the likes.  But that does not mean preachers may do anything what others do.  Some people murder out of anger.  But preachers must not.  Some people exercise violence over their wife and children.  But preachers must not.  These two examples are some things that anyone must not commit besides preachers.  But there are some things that are allowed for other people but not for preachers, which I cannot think of right now.

둘째, 모든 목사는 더 엄격한 도덕성을 유지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도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다.  나 또한 모든 인간의 기본적 필요사항들을  수행한다.  나도 먹고 마시고 잠자도 숨쉬고 등등을 똑같이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사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분노 가운데 살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목사는 그러면 안된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아내와 아이들을 폭행한다.  하지만 목사는 그러면 안된다.  이 두가지 예는 목사만이 아니라 누구나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허용이 되어도 목사는 해서는 안되는 일도 있는데, 지금 딱히 좋은 예가 생각나질 않는다.

Let me give you some analogy.  When you drive a 18 wheelers on a sharp right turn, you are not allowed to step on the curb.  So if you let the front wheels just make the curb, what happens?  The rest of the wheels will step on the corner for sure.  Like the front wheels of the semi-truck, preachers are leaders of the society and community.  If preachers just make the moral standard, then many of the society and community may not keep even the bottom line of the morality.

비유를 하나 들자.  만일 당신이 바퀴 18개가 달린 대형 세미 트럭을 운전하고 있는데, 급격한 우회전을 하고 있다.  당신의 트럭은 커브를 올라타면 당연히 안된다.  그래서, 만일 당신이 맨 처음의 앞바퀴가 간신히 커브를 돌도록 하면 어떻게 될까?  뒤의 나머지 바퀴들은 모조리 커브에 올라타게 되어 있다.  이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세미 트럭의 앞바퀴와 같이, 목사들도 사회와 지역의 지도자다.  만일 목사가 도덕적 기준을 가까스로 유지한다면, 사회와 지역의 많은 사람들은 도덕성의 바닥을 유지하지도 못할 수도 있다.

Preachers must maintain by themselves far much higher morality than they are required.  Only when the leaders of society maintain much higher standard, that society might meet the lowest moral line.

목사들은 요구되는 것보다도 훨씬 높은 도덕성을 스스로 유지해야 한다.  사회와 지역의 지도자들이 훨 높은 기준을 지킬 때에만 그 사회가 도덕적 최하의 커트라인을 지킬 수 있을 수도 있다.

Third and last, I just envy her.  I am trying so hard to have a baby for five years of marriage but failed so far.  I just am envious about her that how she is blessed!

세번째,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냥 그 여자 목사가 부럽다.  나는 결혼 5년동안 애를 가지려고 엄청 노력을 하는데도 안생기는데… 그냥 부럽기만 하고 그분은 정말 복받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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