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Monday, 29 June 2015

Queer Festival and MERS in Korea

MERS, or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has been around South Korea for couple of months.  Korean government totally failed to stop it when they could have because of their non-response.  And many people were blaming the government of not doing anything.  Korean church faced trouble because they were always pro-power and against people.  So, the Korean church just simply shut themselves up completely for this matter.

중동 호흡기 증후군이라고 하는 메르스가 몇달 동안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해서 막을 수 있었는데도 막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정부를 비판했다.  한국 교회는 난관에 처했다.  왜냐면 한국 교회는 늘 권력을 사랑하고 백성들에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이 문제데 대해 완전 입다물고 있었다.

And at the same time, some people were planning to have Queer Festival in Seoul.  The homophobic Korean church was extremely against this festival, and they did all they can do to stop it from threatening mayor of Seoul.

동시에, 몇몇 사람들이 서울에서 성소수자 축제를 계획하고 있었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한국 교회는 이 축제를 극단적으로 반대했고, 이 축제를 막기 위해 서울 시장을 협박하는 것부터 해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I am OK with the Korean church when they shut up.  I am OK with the Korea church when they are against something.  Then a genius, pious, and religious Christian had an enlightment – the enlightment which I am not OK with.  They were able to defend their beloved government and to stop the festival (hopefully) at the same time – it is truly catching two birds with one stone.

한국 교회가 입 다물고 있는 것도 괜찮다.  한국 교회가 어떤 것에 반대하는 것도 난 괜찮다.  그런데 어떤 천재적이고 경건하고 종교적인 기독교인이 깨닳음의 순간을 얻었다.  그런데 이런 깨닳음이 나는 안 괜찮다.  이제 한국 교회는 자기들이 사랑하는 정부를 옹호하면서 동시에 축제를 막을 수 있게 (막을 수 있기를) 되었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일석이조다.

They said, “God sent MERS to Korea to stop the Queer Festival.”

그들이 말하기를 “성소수자 축제를 멈추기 위해 하나님께서 메르스를 한국에 보내주셨다”고 한다.

But then, the festival was held actually yesterday.  Now, what they can say?  Will they say that their God fails, their God is powerless and unable?

그런데 실제로 축제가 어제 있었다.  이제 한국 교회는 뭐라고 할텐가?  자신들의 하나님은 실패하는 하나님이라고? 자신들의 하나님은 힘없고,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하나님이라고?

Korean church, please shut up forever!  Do never mess up with God.  Don’t say what you think is what God thinks.

한국 교회여 제발 좀 영원히 닥치고 있어라.  절대 하나님 갖고 장난질 치지 말아라!  지들이 원하는 걸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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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24 June 2015

[미국여행]열흘 동안의 플로리다 여행

이번 여름에 병원 원목 교육이 시작하기 전에 플로리다 여행을 갔는데, 마님, 마님 여동생, 그리고 장모님을 모시고 갔다.  원래 여행에 대한 글은 하루 단위로 써 올리는데, 지금은 병원 원목 교육으로 바빠서 그냥 하나로 퉁쳐서 올리련다.

여행 내내 운전은 혼자서 다 했는데, 딱 2시간만 처제가 운전을 했다.  22시간을 운전해 가서 드디어 첫 목적지인 시에스타 해변에 도착했다.  정말 길고 긴 운전이었지만 밤새 운전을 했기 때문에 길이 막히지는 않았다.

Welcome to Florida

시에스타 해변은 정말 모래가 곱고 하얬다.  꽤 재밌게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와서 떠나야 했다.  그 뒤에는 네이플스라는 곳에 갔고, 거기서 빨간 지붕이라는 여관에 묵었다.  네이플스는 꽤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도시다.  주일 아침에는 네이플스 제일 장로교회에 갔는데, 꽤 크고 완전 전형적인 미국 장로교회였다.  그러니까, 완전 백인뿐이고 다들  부자고 노인들만 있는 교회.  네이플스 해변도 꽤 좋았다.  네이플스 피어에서 일몰을 봤다.

Miami Jet Boat

몇일을 묵은 뒤에 마이애미로 향했다. 그 유명한 마이애미, 니네 애미도 아닌 마이! 애미.  제일 먼저 한 것은 제트 보트를 탄 것이었다.  꽤 재미와 스릴을 느꼈고, 특히 좋았던 것은 해변 근처의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누구 것인지 소개해 준 것이었다.  우리가 머문 곳은 실제로는 마이애미 해변이었는데, 주차 자리 찾느라 정말 개고생을 했다.  오션 리프 호텔이라는 곳에 머물렀는데, 호텔의 위치 하나는 끝내줬다.  어디든 걸어갈 수 있는 장소였다.  해변까지는 그냥 딱 한 블럭, 그리고 가장 유명한  쇼핑 몰인 링컨 몰까지는 약 네 블럭 정도뿐이다.

다음 날에는 차를 몰고 미국 최남단인 키웨스트에 갔다.  정원도 예쁘고 다 좋았는데, 바람이 너무 세서 해변을 아주 즐기지는 못했다.

Miami Beach-Danny

마이애미 해변에서는 참 재밌게 놀았다.  그리고 맥코믹 신학교 친구인 대니를 만났다.  대니는 이번 오월에 졸업했고, 원래 마이애미 출신으로 쿠바계 미국인이다.  대니가 정통 쿠바 음식을 소개시켜 줬고, 여러 모로 내게 좋은 영향을 준 친구다.  스페인어도 매우 잘한다. 🙂

MIami Starfish

몇일 뒤에는 마이애미 해변을 떠나 헐리우드 해변으로 갔고 거기서 4인승 자전거를 탔다.  그런데 가게 일하는 애가 싸가지가 없어서 앞으론 그 가게 안가련다.  위 사진은 사실 마이애미 비치 사진인데, 한 꼬마가 불가사리 잡는 걸 보고는 나도 잡아야 겠다 생각해서 잡았다.  그런데 우리 마님은 살짝 만져보는 것도 못한다.  내가 놔준 다음에 어떤 아줌마가 이 불가사리를 잡았는데, 한쪽 다리만 잡았다.  그랬더니 불가사리가 도망가려고 자기 다리를 끊었다.  그러자 아줌마는 다른 다리를 잡고… 그렇게 해서 결국 불가사리는 자기 다리를 네 개나 끊었다.

그 후에는 코코 해변에 갔고, 거기서 돌고래 및 해우와의 수영이라는 걸 했다.  해우는 영어로 매너티라고 하는데, 듀공과 비슷한 동물이다.  돌고래와 해우가 아주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고 꽤 봤고, 해우 한 마리는 내 다리를 만졌다.  그리고 코코 해변에서는 일출을 봤다.

금요일에는 처제가 돌아가야 해서 올랜도에 있는 공항까지 데려다 줬다.  그런데 올랜도 근처에는 톨게이트가 미친 듯이 많다.  하루 더 즐긴 다음에 토요일 아침에 떠났다.

Kentucky

여행을 출발할 때 한 것 같이 집으로 곧장 한번에 가기 보다는 이번에는 켄터키에서 쉬어 갔다.  주일 아침 예배는 하일랜드 장로교에 갔는데, 맥코믹 이전 총장이 목회를 하는 곳이다.  그런데 하필 휴가중이라고 해서 못 만났다.

그리고 내가 누님이라고 부르며 따르는 지은 누님을 만났다.  지은 누님은 작년 장로교 유색인종 컨퍼런스에서 뵈었는데, 정말 좋으신 분이다.  물론 누님의 남편되시는 분도 정말 좋으시다.  아마 내가 하는 한국인 커플 중에는 최고가 아닐까 싶다.

[US Trip]Florida Trip for 10 days

Before I began my CPE this summer, I went to Florida trip with my wife, her sister, and her mother. Usually I write travel blog day by day, but now I am so lazy with CPE, and I am going to summarise the entire ten day trip in one blog posting.

I drove the whole time except two hours which my sister-in-law drove.  After 22 hours’ driving, we went to Siesta Beach first.  It was really long drive.  But because I drove overnight, we did not have traffic.

Welcome to Florida

Siesta Beach has very fine and white sands.  We had quite good time but we had to left because of sudden shower.  Then we headed to Naples, and stayed at Red Roof Plus.  Naples is very neat and nice town.  On Sunday morning, we went to First Presbyterian Church of Naples.  This is quite huge church, and very typical Presbyterian church with all rich white senior citizens.  Naples also has very nice beach.  We watched sunset at Naples Pier.

Miami Jet Boat

After we stayed there couple days, we headed to Miami.  The first thing we did was Jet Boat.  It was quite of fun and thrill.  It was also nice that they showed and explained about the beautiful and e expensive mansions.  We actually stayed at Miami Beach, and we had big trouble finding parking.  We stayed Ocean Reef Hotel, and its location is awesome.  You can walk everywhere.  To the beach, it is just one block away.  To the most famous Lincoln Mall, it is just about four blocks.

The next day, we drove all the way down to the Key West.  The garden was beautiful, but we were not able to enjoy the beach a lot because of the strong wind.

Miami Beach-Danny

We enjoyed the Miami beach a lot.  And I met Danny Morales, my classmates from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  He just graduated last May.  He is from Miami with Cuban heritage.  He introduced us the legit cuban dish which I like a lot.  Danny gave me many positive influences, and he speaks Spanish beautifully. 🙂

MIami Starfish

Couple days later, he left Miami Beach and we went to Hollywood Beach where we enjoyed Surrey.  But the store manager was not nice.  The picture above is actually at Miami beach.  I saw a boy catching the starfish, and I tried.  Hannah was not able even to touch the starfish.  Later another lady picked it up again, but she took it by its leg, and the starfish cut its leg to flee.  She, then, picked another leg, and it cut its another leg as well.  So she had it cut its four legs.  My poor starfish.

Then we went to Cocoa beach.  We had some tour of swimming with dolphins and manatees.  There were not a lot of them, but we were able to see some of them.  And even a manatee touched my leg!  And we also watched a sunrise at the Cocoa Beach pier.

Friday, Hannah’s sister had to leave so we drove her to the Orlando airport.  And I realised that there are crazy many tolls around Orlando.  We enjoyed another night and we left there on Saturday morning.

Kentucky

Rather than going back home at once as I did on the way from home to Florida, we stopped at Kentucky.  For Sunday morning service, I went to Highland Presbyterian church where McCormick’s ex-president is senior pastor, but she was on her vacation.

We met Jieun, whom I call big sister.  I met her at PCUSA racial ethnic conference last year.  She is real nice lady, her husband is also very gentle.  They are one of the best Korean couple.

Interfaith or respect?

The hospital chaplaincy office has a Muslim chaplain and also a African Jewish resident.  And we always emphasise interfaith.  So we do not have a cross in the chapel but a mysterious giant hands.

병원 원목 부서에는 무슬림 원목과 흑인 유대인 레지던트가 있고, 원목 부서에서는 늘 상호신앙 존중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의 예배당에는 십자가도 없고 정체불명의 거대한 손이 둘 있다.

We have Wednesday noon chapel service which mostly chaplaincy office people only come.  During the summer, Interns are going to lead the service in turn.  And today was my turn which is first intern leading service.

수요일 정오에는 예배를 드리는데, 원목 부서에 있는 사람들만 거의 참석한다.  여름 동안에는 인턴들이 돌아가면서 예배를 인도하는데, 오늘은 내 차례였는데, 내가 첫번째 순서였다.

I was very careful to choose songs and message not to offend any other religions.  The first song was “Servant Song.”  The basic idea of the song is:  I will be your servant, and you be my servant.  Let us serve each other as Christ did.  Then suddenly the Jewish resident left the chapel with anger.

다른 종교를 자극하거나 불쾌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노래 선곡이나 메세지 등에 매우 신경을 썼는데, 첫 노래는 “종의 노래”였다.  이 노래 가사는 내가 너의 종이 되고 너는 나의 종이 되고 우리 서로 그리스도 처럼 섬기자는 거다.  그런데 갑자기 유대인 레지던트가 벌떡 일어나더니 화를 내면서 확 나가는 것이었다.

It was obvious that he left because of the word Christ.  But the song never proclaim that Jesus is Lord or Christ is Saviour.  It simply says let us serve each other as Christ.

그리스도라는 단어 때문에 나가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노래에서는 그리스도가 주라던가, 예수가 구세주라던가 하는 메세지는 전혀 없고 그냥 그리스도 처럼 서로 섬기자는게 다다.

After the service I had to talk to my supervisor about INTERFAITH.  The hospital claims that it is based on Christian faith, and most of us are Christian chaplains.  But we are not supposed to talk about or even spit out the words such as Jesus or Christ, Holy Spirit, etc.

예배 후에는 인턴 책임자에게 불려가서 상호 신앙 존중에 대해 엄청난 설교를 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 병원이 기독교 신앙에 기반한다고 자청하고, 우리 부서 대부분이 기독교 원목들인데, 그런데 예수 또는 그리스도 혹은 성령에 대해 이야기는 고사하고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한다.

In my understanding interfaith is embracing each other even though we are different.  Even though I do not believe in Alah or Mohamed the prophet, I admit the muslim brothers and accept them.  Interfaith does not mean removing what I have which are different from others in order not to offend them.

내 생각에 신앙 상호 존중이란 서로 다르지만 서로 받아주는 것이다.  내가 알라 혹은 예언자 모하메드를 믿지 않지만 무슬림 형제들일 용인하는 것 처럼 말이다.  상호 신앙 존중이란 남을 기분나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가 갖고 있는 남들과 다른 것들을 제거해 버리는 것은 아니다.

That Jewish guy definitely did not respect my faith.  That song was all about serving.  And the word Christ comes only once in the whole song.

그 유대인은 확실히 내 신앙은 존중하지 않는다.  그 노래는 섬김이 전부다.  그리고 그리스도란 단어는 노래 전체에서 딱 한번밖에 안나온다.

And I think the reason that he was able to do such rude thing is that I am an intern (while he is resident).  If I were staff chaplain or even his supervisor, I don’t think he would have done that.  To give an extreme example, if President Obama was leading the service, he would never have left the chapel like that because of the word Christ.

내 생각에 그 유대인이 이런 식으로 무례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는 레지던트인데) 내가 인턴 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막 말로 내가 자기보다 높은 정식 원목이거나 아니면 자기를 평가하는 사수였다면 이러지 못했을 것이다.  좀 극단적인 비유를 들자면 오바마 대통령이 예배를 인도했더라면 그리스도란 단어 때문에 그런 식으로 예배당을 박차고 나오진 못했을 것이다.

There are so many narrow minded people who cannot admit others and their differences.

왜 이리 이 세상엔 자기와 다른 남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이 좁은 인간들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Tuesday, 23 June 2015

It’s just a mental illness

Last Sunday, I did some portion of worship service in a huge white church.  The church members are mostly white and very rich.  One of the things I did was prayer, and I prayed a lot about the church shooting in Charleston, SC because it happened just last week.  For your information, any racial issues are not mentioned in that church.

지난 주에 큰 대형 백인 교회에서 예배에 참여해서 일부를 맡아 했다.  이 교회는 성도들이 거의 모두 백인이고 겁나 부자다.  내가 예배에서 했던 것 중 하나가 기도였는데, 지난 주에 발생했던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찰스톤 총기 사고에 대해 기도했다.  참고로 말하지만, 그 교회에서는 인종에 대한 문제와 사건에 대해서는 완전 함구를 한다는 것이다.

What I prayed for was asking God’s forgiveness because we, humans–not God, made racism, sustain the racially unfair system, and excercise hate.

내가 기도했던 것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인종차별을 만들고, 차별적이고 불공정한 제도를 지탱하고 미움을 실행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After the worship service, couple of people came to me and the prayer was good.  And then a gentleman came to me identifying he graduated Princeton seminary 50 years ago.  He told me with very firm voice, stressing each and every word, that IT IS NOT A HATE CRIME, IT IS NOT A RACISM ISSUE, BUT IT IS JUST A MENTAL ILLNESS.  And he also affirmed that OBAMA BROUGHT HATRED AND UNFAIRNESS INTO AMERICA.

예배 후에 몇몇 사람이 와서 기도가 좋았다고 말했고, 어떤 할아버지가 오더니 자기는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50년 전에 졸업했다고 하면서 한 마디 한 마디 완전 강조하면서 하는 말이 “이 건 증오 범죄가 아니야, 이건 인종차별 문제가 아니야, 이건 그냥 걔가 정신병인 거야.”  그리고 또 또박 또박 강조해서 하는 말이 “오바마가 미국에 미움과 불공정을 가져왔어”라고 했다.

I was like “what?” and lost my words.  He then left by saying “God bless your ministry.”

나는 완전 벙 쩠다.  할 말이 없어서 멍하니 있는데, “자네 사역에 축복이 있기를”이라면서 떠났다.

Please somebody teach me what to do in case like this.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발 누가 좀 알려줘.

If that is just a mental illness, then, let’s put all those people having mental illness (a.k.a. racists) into mental hospital and do not allow them to see the sunshine until their disease is cured completely.

만일 이게 정말 정신병일 뿐이라면 정신병을 가진 모든 사람들 (그러니까 인종차별 주의자)을 모조리 정신병원에 가두고 병이 완전히 다 치료될 때까지 절대 햇빛을 보지 못하게 하자.

Thursday, 11 June 2015

Chaplaincy became a fetter

From this Monday, I am doing a CPE, Clinical Pastoral Education, which is hospital chaplaincy intern and education.  The orientation is scheduled for two weeks, and I have been only here for four days.  I don’t really know anything about hospital chaplaincy.

이번주 월요일부터 CPE라는 걸 하는데, 병원 원목 인턴 교육 과정이다.  오리엔테이션만 2주로 잡혀 있는데, 이제 겨우 나흘 했기 때문에 사실상 병원 원목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Next to the hospital parking lot, there is Target and I went there after today’s education to get Shopkick point.  While I was trying to get the point on my cellphone, a lady next to me asked help of me for her iPhone.  She looked sick, and kept saying that she could not think right because of her excessive medication. That sounded like she was a patient of my hospital, and she also saw my badge and figured out that I am an chaplain there.

병원 주차장 옆에는 타겟이라는 대형 마트가 있는데, 샵킥의 점수를 받기 위해 오늘 교육이 끝난 후에 잠시 들렸다.  핸드폰 들고 점수를 받으려고 하는데, 옆에 어떤 아줌마가 아이폰 갖고 좀 도와달라고 했다.  아줌마가 좀 아파 보였고, 게다가 약이 과해서 정신이 핑 돌아서 제대로 생각할 수가 없다고 하는 걸 보면 아마 우리 병원 환자인 듯 하다.  그리고 그 아줌마가 내 배지를 보고 내가 병원 원목이라는 걸 알아 버렸다.

She was trying to backup her cellphone to iCloud and she couldn’t.  The error message was saying it needs Wi-Fi for iCloud backup, so I helped her connect to Target Wi-Fi, and the backup worked.  She began a conversation for a few minutes until she figured out that I used to live in Canada.  Then she asked me which country I prefer.  I was being polite and said, “There are many things that America is better than Canada, and there are a few things that Canada is better than America.”

아줌마가 하려던 건 핸드폰을 아이클라우드에 백업하는 것이었는데, 와이파이가 연결되어야 한다는 메세지가 나왔기에 매장 와이파이에 연결을 해 줬더니 제대로 작동했다.  아줌마랑 몇 분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캐나다에서 살았었다는 걸 말했다.  그랬더니 미국하고 캐나다 중에 어디가 더 좋냐고 묻길래 공손하기 위해서 본심을 숨기고 “미국은 캐나다보다 좋은 점이 훨씬 많아요.  그리고 캐나다고 미국보다 좋은 점이 몇기 있긴 하죠” 라고 말을 했다.

She was a bit curious about what can possibly Canada be better than America, and asked me.  I said what I always say – “Well, hospitals are free.”  And she said, “yes, but they die while waiting.”  I replied, “Well, according to my experiences in both countries, the waiting times are not that different.  But the service quality may be different.”

그랬더니 아줌마는 흥미롭다는 듯이 호기심을 보이면서 어떻게 캐나다가 미국보다 좋은 점이 있을 수가 있다는 것인지 내게 물어봤다.  그래서 내가 늘 하던 얘기를 했다. “뭐 일단 병원이 공짜죠.”  그랬더니 아줌마가 하는 얘기가, “공짜긴 한데 기다리다가 다들 죽어버린다면서”라고 하길래, 내가 “글쎄요, 두 나라에 모두 살아본 제 경험으로는 기다리는 시간 자체는 비슷한 거 같아요.  다만 미국이 의료의 질이 훨씬 좋겠죠”라고 대답을 해줬다.

Because she asked me, I said the second thing as well, “the guns are illegal in Canada.”  Then she looked extremely shocked and almost shouted, “What? Are you saying that is better?  YOU DON’T BELIEVE IN THE RIGHT TO CARRY GUNS?

아줌마가 또 뭐가 좋은지 묻길래 캐나다에서는 총이 불법이라고 말을 하자, 굉장히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거의 소리를 지르듯이 말을 했다. “뭐? 지금 그게 좋다고 말을 하는 거야? 넌 도대체 총기를 소유할 권리를 믿지도 않는다는 거냐?

Since then, I did not say anything for over twenty minutes, but she was quite angry and spitting (religious) political opinions.

그 이후로 난 20분이 넘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 아줌마는 꽤 흥분하고 화가 나서 (종교같은) 정치적 견해를 마구 쏟아냈다.

“This country,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is built upon the republican values NOT democratic values!  Republicans want big individuals and small government.  Democratics want big government and small individuals!  Democrats want to control the people.  Democrats hate blacks and Asians!  Democrats try to control them using food stamps and MediCaid….”

“이 나!라!는, 미!합!중!국!은 공화당의 가치 위에 세워졌지 민주당의 가치위에 세워진게 아니란 말이얏!  공화당은 힘쎈 개개인과 작은 정부를 원하고, 민주당은 큰 정부와 작은 개인을 원한다곳!  민자당 놈들은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햇!  민주당은 껌둥이랑 동양인을 증오한다곳!  민주당이 사람들을 통제하는 방식은 바로 푸드스탬프와 무상의료얏!….”

I was actually able to contradict every single word of hers, but I couldn’t.  First, because she already identified me as the chaplain in the hospital and I did not want to make any trouble.  Second, because she was quite angry.  To be polite, I was just nodding, and saying such as ah, oh, hmm…  I couldn’t even just walk away.  After listening to her preaching for over twenty minutes, finally I pretended that I got a phone text message, and apologised that my time was running out even though your words are very interesting.

그 아줌마 말을 하나 하나 조목 조목 반박할 수도 있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일단은 아줌마가 나를 병원 원목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었고, 나는 병원 시작하자 마자 뭔가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아줌마가 상당히 흥분해 있었기 떄문이다.  공손해 보이기 위해서 그냥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고, 아~ 오~ 흠.. 등과 같은 추임새만 넣었다.  그냥 나와버릴 수가 없었다.  그 아줌마 설교를 20분이 넘게 듣고 나서 핸드폰에 문자 온 것 처럼 속이고는 “아이쿠, 제가 좀 다른 데 늦었네요, 아줌마 말씀이 참 재밌는데 말이죠”라고 사과하고 나왔다.

I need to ask the staff chaplains what to do in those situations.

병원의 경험 많은 진짜 원목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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