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Thursday, 10 November 2016

낙태에 대해

최근에 폴란드와 한국에서 낙태가 큰 이슈가 되었고, 게다가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낙태하는 여자들을 처벌하겠다고 공약을 했기 때문에 낙태에 대한 내 생각을 좀 정리해야 겠다고 생각되었다.  이 것은 내가 나중에 참고하기 위한 것으로,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내 생각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을 분들은 끝까지 읽기 바랍니다.  다만 말이 좀 거칩니다.

나는 생명을 존중하는가(프로라이프)?

나는 프로라이프다 (프로라이프 pro-life는 낙태를 할 권리보다 태아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것이며, 그 반대는 프로초이스 pro-choice가 있다).  나는 할 수 있을 때는 늘 그리고 언제나 생명을 선택할 것이다.  내 생각에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므로 고결하다고 본다.  잉태되는 순간 비록 사람처럼 보이지 않지만 수정란이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생명은 특별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하기 때문에 낙태는 살인의 다른 표현에 다름 아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결혼 5년 동안 아이를 가지려 하는데 성공하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도 인정하는 바다.

낙태를 금지해야 하나?

아니, 그건 아닌 거 같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기 사정이 있는 법이어서 하나님처럼 전지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다른 이들을 판변할 수 었다고 본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가 캐나다 살 때 명예 살인이 있었는데, 이민온 이슬람 가족이었는데, 아버지가 고등학생 딸 아이를 죽였다.  그 딸이 강간을 당해 임신을 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 여학생이 낙태를 쉽게 받을 수 있었다면 (아버지 몰래) 지금도 살아있을테지.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낙태가 필요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십대 미혼모들이 날마다 얼마나 큰 고통과 차별을 받는지 모두 알 것이다.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그 모든 차별과 고통을 평생 감내하면서 살라고 강요할 수 있나?

낙태하는 여자를 처벌해야 하나?

무슨 개 좃같은 트럼프같은 소리를 하고 지랄이야.  여자들이 재밌어서, 좋아서 낙태 하는 줄 알아? 얼마나 낙심되고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면 낙태를 다 하려고 하겠어?  그런 여자들은 처벌이 필요한게 아니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온 사회가, 온 나라가, 아니 온 우주가 일어서서 그런 여자들을 도와줘도 모자를 판에.

만일 정 누군가를 처벌해야겠다면, 임신한 여자 뒤에 숨어있는 남자를 찾아서 처벌해라.  내가 알기로, 그리고 믿기로, 동정녀 마리아는 역사상 한 분 뿐이다.  그분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여자도 남자없이 임신하지 못한다. 반복하는데, 정 누군가를 처벌해야겠다면, 자지를 마구 놀리는 그 자식을 찾아서 처벌해라.

여자가 낙태를 생각한다면, 그녀는 바로 피해자다.  그게 강간이던, 연인사이의 일이던, 아니면 심지어는 결혼한 부부가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든 관계없다.  어떤 지랄같은 야만적인 사회가 피해자를 처벌하나?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여자가 낙태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뭘 해야 하나?

첫째, 우리는 우리 사회를 개선하고 우리들 스스로를 문명화해서 낙태가 필요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강간이 (부부사이의 강간도 포함) 사라지도록 남자들을 교육시키는 것을 포함하며 또한 미혼모들이 차별을 받지 않고 대신에 미혼모 되는 것이 개이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혜택과 돌봄과 따스한 시선을 줘서 여자들이 낙태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을 포함한다.

둘째, 우리 사회가 이상적인 유토피아가 되기 전까지는 낙태 서비스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낙태 서비스를 정말 받기 쉽도록 하고, 완전 극도로 비밀스럽게 유지해야 한다.  이런 비밀성은 특히 식구들 (남자 식구들에겐 더더욱)에게 확실하게 유지되어서 누가 낙태를 했는지, 누가 상담을 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서비스는 인터넷, 전화, 문자, 소셜 미디어, 본인방문, 우편 등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특수한 그룹을 만들어서 (국가에 한 그룹이나 지역별로 개별 그룹일 수도 있다) 낙태를 생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받은 여성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고심하고 고민해야 한다. 여성들이 백명이면 사연과 사정은 천 가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논의는 매우 진지하고 자세하고 깊이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이자 마지막으로, 우리 문화를 바꿔서 남자에겐 엄격하고 여자에겐 공정하게 대할 수 있어야한다.  우리 사회는 강간범들에겐 너무 관대하다.  미국의 브록 터너뿐만 아니라 한국의 수많은 개별 또는 집간 강간 (소위 돌림빵)을 한 사람들이 너무 말이 안되도록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  이는 강간해도 된다는 메세지를 던지는 것과 같다.  통계에 따르면 모든 범죄 중에 강간이 재발비율이 제일 높다고 한다.  심지어 강간은 마약 및 알콜 중도보다도 더 재발을 높게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법으로 처벌을 강하게 해서 강간범들은 모조리 자지를 잘라 버리도록 해야 한다.  자지가 없으면 강간도 못하겠지.  내 생각엔 이게 재발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런 성차별적이고 남성우월주의적인 나라에서 여자는 한낱 성적인 대상으로밖에 취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는 낙태에 대한 필요는 더욱 늘릴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와 일반적인 인식을 바꿔야만 한다. 우리가 강간 피해자들을 비난하는데 너무 익숙한데, 이건 너무 억울하다.  니가 씨발 야하게 입었잖아.  너가 취했잖아.  이 썅 누가 밤늦게 다니래 등등.  사람들은 이게 말도 안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여자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다녀도 안전해야 한다.  여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은 아무리 술에 취해 있어도 안전해야 한다.  여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은 어떤 시간이던지 안전해야 한다.

한번 당신이 테슬라를 새로 샀다고 생각해 보자.  그 섹시하고 엄청난 전기차인 테슬라 말이다.  그런데 다른 차가 있어서 일단 차고에 넣지 못하고 집앞에 주차를 시켰는데 차를 도둑맞았다.  그래서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이 한다는 소리가 “뭐요? 집앞에 뒀다고요? 뭐 씨발 그냥 훔쳐가 달라고 도둑한데 애원을 했네. 이건 전적으로 아저씨 잘못이에요. 아 일단 백프로 본인 과실이니까 저희 경찰들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네요.  이거 미친놈 아냐? 테슬라를 집앞에 둬? 븅신.”  이게 바로 강간 피해자를 비난 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다.  만일 어떤 여성이 강간을 당한다면, 그건 그 여성의 잘못이 아니다.  그건 일단 강간범의 잘못이고, 우리–이 사회의 개개인 구성원–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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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2 January 2016

성적 공평

몇일 전에 “미국의 성평등“이라는 포스팅에서 성적 공평과 성적 평등에 대해 언급을 했다.  이에 대해 차이점을 좀 더 명확히 하고 왜 내가 평등보다는 공평을 추구하는지 얘기하고 싶다.  시작하기 전에, 신학교의 한 친구가 내가 공평 fairness라는 말을 할 때마다 공정 equity라고 자꾸 정정을 해 주는데, 나도 equity라는 단어를 알지만 피하고 있다.  첫 이유로는 equality하고 철자 및 발음이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fairness가 모든 사람들에게 쉬운 단어라는 점이다.  고등교육의 가장 큰 목적 가운데 하나라면 아마도 똑같은 것을 더욱 어렵고 현학적인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혼동되고 괜히 멋있게 보이도록.  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말과 내가 쓰는 글이 심지어는 국민학교 졸업한 사람들조차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성적 평등은 내가 정의하기에는 남자와 여자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똑같은 일을 해서 남자가 100불을 받는다면, 어떤 여자도 같은 금액인 100불을 받아야 한다.  또 어떤 자선단체에서 물품을 노숙자들에게 나눠준다고 할 때, 남자들에게 나눠주는 것과 같은 양 및 가치를 여자 노숙자들도 공급받아야 한다.  이게 바로 성적 평등이다.  그리고 예전에도 썼지만, 제3세계는 말할 것도 없이 미국에서도 아직 성적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성적 공평이란 무엇인가?  아주 멋지고 현학적인 학자처럼 단문으로 정의하기 보다는 예시를 하나 들겠다 — 실제 있었던 일을.  한국에서 여행을 할 때, 한 번은 고속도로 휴게실에 들어갔는데, 작은 식당이 하나 있고, 남녀 화장실이 있었다.  그리고 전세버스가 둘 들어왔고 약 70명 쯤 되는 사람들이 용무가 급해서 마구 쏟아져 나왔다.  내가 기억하기에는 남녀의 비율이 거의 같았고, 화장실도 남녀모두 칸이 다섯개씩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그 휴게실에서는 성적 평등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상황은 좀 달랐다.  한 십 분 정도에 남자는 줄이 사라졌지만 여자들은 여전히 긴 줄을 서 있었고 뒤에 서 있는 많은 여자들이 용무가 너무 급해서 다리를 꼬거나 발을 구르고 있었다.  이 예에서 내가 생각하는 공평은 남녀의 대기시간이 같은 것이다.  만일 남자가 최대 10분을 기다린다면 여자도 딱 그만큼 기다려서 볼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상황에서는 성적 평등은 있으나 성적 공평은 없다고 하겠다.

위에서 쓴 바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성적 평등조차 존재하질 않는다.  성적 평등이 존재하는 곳에서도 상황이 이런데, 실제로는 얼마나 더 심할까?  우리의 문화, 관습, 그리고 전통 때문에 불평등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만일 남자 칸이 다섯, 여자 칸이 셋 뿐이었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등이 아니라 공평하기 위해서는 여자에게 불당하다고 생각될 만큼 더 큰 이득을 줘야만 한다.  그러면 성적 공평이 이뤄질 수도 있을지도.

위에 든 예는 한국이지만, 시카고에서도 많이 봤다.  어디를 가든 아무데를 가든, 심지어는 그 유명한 관광지인 네이비피어를 가도 마찬가지다.  성적 평등이 없기 때문에 현재는 성적 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그게 우리의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반드시 성적 공평이 되어야 한다.

노숙자에 대한 물품 배분에 대한 얘길 했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여성 노숙자가 더 많이 받아야 한다.  적어도 생리대를 포함한 여성용 청결제등은 더 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미혼모는 … 아 정말 내가 이런 부분까지 설명을 해야 하나?

기독교인들이여 시민들이여, 공평한 사회를 만듭시다!

Friday, 8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서른 다섯번째 날 – 학교로 걸어가기

여기서 팔레스타인 택시 운전수에게 나쁜 경험을 하고 나서는 최대한 택시를 피하고 있다. 머무는 집에서 베들레헴 대학교까지는 걸어서 50분 걸린다. 그리고 벳자훌에서 베들레헴은 오르막길이고 때때로 매우 가파르다. 날마다 두번씩 이 길을 걷고 있다.

Sheep? Goat? on the street

길거리의 양떼

학교에 갈때면 몇번씩 이런 양떼를 만난다.

Sidewalk in Beit Sahour

벳자훌의 인도

전반적인 걷기 경험은 별로 좋지가 않다. 일단, 인도가 너무 좁다. 심지어 수많은 차들이 여기 저기 인도에 주차를 해서 막아버린다. 인도도 중간 중간에 끊겨 있고, 어떤 곳에는 인도에 나무를 심어 놔서 사람이 전혀 인도에서 걸을 수가 없다. 팔레스타인의 거리는 아주 깨끗하지는 않지만, 이집트의 카이로에 비하면 매우 깨끗하다 할 수 있다.

Peaceful Protest

비폭력 저항

아직 벳자훌에서 걷고 있을 때, 마음에 쏙 드는 벽화를 발견했다. 평화로운 비폭력 저항이 승리하기를 믿고, 희망하고, 또한 기도한다.

Bethlehem Peace Centre in Manger Square

마굿간 광장의 베들레헴 평화 센터

여기는 마굿간 광장이라고 하는데 성탄교회가 바로 옆에 있는 곳이다. 맥코믹 여행 그룹은 아마 이 건물을 기억할 것이다. “스타&벅스” 커피숍이 근처에 있다.

Star of Bethlehem

베들레헴의 별

마굿간 광장에서 시장쪽으로 걸어가면 조그만 광장이 있는데 베들레헴의 별이 있다.

이제는 어느 순간에 우회전하고 나서 다음에 좌회전을 해야 베들레헴 대학교에 갈 수 있는데 첫날에는 좀 혼동이 되어서 길거리에 있던 관광 경찰에게 베들레헴 대학교가 어디 있냐고 물었더니, 그 대답이 “엥? 베들레헴에 대학교가 있어? 정말?”이다. 한 일분정도 더 걸었더니 조그만 표지판에 베들레헴 대학교와 화살표가 들어 있다.

View from classroom

강의실에서 본 풍경

위 사진은 강의실에서 본 베들레헴 풍경이다.

Korean-Palestinian Friendship Street

한-팔 우정의 길

집에 돌아 올 때에도 같은 길을 걸었다. 주인네 집이 있는 곳의 길 이름이 “한-팔 우정의 길”이다. 매우 마음에 드는 이름이다. 내가 듣기로는 한국 대사관이 이 길을 만들어 줬다고 한다.

Korean Cultural Centre

한국 문화 센터

길 아랫부분에는 한국 문화 센터가 건축중이었다. 이 건물은 이 길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는 중요한 건물과 부자들이 산 높은 곳에 살지만, 한국에서는 제일 가난한 사람들이 산 위에 산다.

Sunday, 20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열 일곱번째 날 – 메깃도에서의 첫날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레지라고 하는 흑인 미국사람을 만났다. 꽤 친절하고 좋은 사람으로 내게 필요한 것 여러가지를 가르쳐줬다.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미국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먼저 나는 미국에 총기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총이 불법인 나라가 많고 그런 나라들은 더욱 안전한 사회를 갖고 있다. 레지가 갑자기 아냐!라고 말을 했다. 걔 말로는 총은 보호하기 위한 거라고 한다.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는 수단. 조금 더 얘기를 했는데, 우리 생각의 차이를 좁히는 게 불가능해 보여서 더이상의 대화는 쓸모없다고 생각되었다.

또 다른 얘기는 의료보험과 병원 시스템이었다. 내가 캐나다와 일부 (북)유럽 국가들이 국가 의료보험을 갖고 있고, 미국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을 하자 레지는 국가 의료보험은 멍청한 생각이라고 했다. 차라리 돈을 더 내고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겠다고 말을 했다. 가난해서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내가 말을 하자 레지가 정말 충격적인 말을 했는데, 그 사람들은 게을러서 가난하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 받을 자격조차 없다는 것이다. 정말 충격을 받아서 “하지만 사람들도 인간이고, 시민인데, 정부가 돌봐줘야하지 않을까?”라고 내가 말을 했지만 레지의 생각은 아주 확고했고 그 놈들은 자기가 가난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해줘선 안된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내가 다큐멘터리 식코를 언급했는데, 갑자기 흥분하면서 마이클 무어 그 씹새끼는 빨갱이고, 그 영화 백프로 다 구라야!라고 성질을 부렸다. 대학 등록금에 대해서도 레지는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대출 받아서 학교 다니면 되고, 졸업하고 일해서 갚으면 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빚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 것들이 멍청하고 병신같고 게을러서라고 말을 했다.

레지가 꽤 흥분해 보였고 더이상 대화를 했다가는 위험할 듯 해서 주제를 바꿨다. 하지만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정말 처음 만나서 얘기해 봤다.

Tel Megiddo

메깃도 언덕

위 사진은 메깃도 언덕을 아래서 바라본 것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났는데, 라기스에서보다 30분 먼저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라기스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사람이 많아서 대형 버스를 두 대나 이용했다. 아마 대부분의 발굴 현장이 현 전쟁 상황때문에 문을 닫고 메깃도가 몇개 안 남은 열린 곳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들이 이 곳으로 오는 것 같다.

Area T, Tel Megiddo

메깃도 언덕의 T구역

여기가 오늘 내가 일한 T구역이다. 라기스와 메깃도는 다른 것이 여럿 있는데,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기가 라기스보다 훨씬 덜 덥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도 별로 안 마셨다. 흙이 마르는 속도도 차이가 꽤 난다. 라기스에서는 새로 퍼낸 흙이 마르는데 한 시간도 채 안걸렸는데, 여기서는 다음날 아침에 보잔다. 작업 속도도 라기스에 비해서 슬슬 하는데, 여기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발굴에 참여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일 중독에 걸린 듯한 한국 사람들하고 라기스에서 발굴을 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제로 한국 사람들이 아침도 거르고 점심도 거르고 발굴을 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일 중독이다.

Sling Stones

돌팔매

내가 작업하는 구역은 현재 앗시리아 시대라고 하는데, 꽤 좋았던 게, 라기스에서는 바벨론 시대까지 했는데, 여기서는 바로 이전 시대라는 것이다. 위 사진은 오늘 발견한 돌팔매 돌 세 개인데, 이 돌 세 개를 보고는 여기가 돌팔매 돌 만드는 공장이라고 결정해 버렸다.

여기 메깃도의 일정은 라기스와 많이 비슷하지만 휴식이 훨씬 적고, 물을 따로 주지 않고 각자 본인 물을 챙겨야 한다. 라기스에서는 개개인이 옮길 수 없을 만큼 물이 필요했기 때문에 승합차로 물을 실어다 줬다.

대략 일정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오후 1시까지 발굴하고, 점심 후 잠시 쉬고, 도자기와 뼈를 씼고난 뒤에는 강의가 두 개 있으며 역시 10시에 끝난다. 오늘의 강의 둘 가운데 하나는 유전자와 고고학이라는 꽤 흥미로운 주제였다. 정말 피곤하고 지치는 일정이다. 그런데 이 걸 두 주나 더 해야 한다.

Thursday, 30 January 2014

이스라엘 여행 열 네번째 날: 지포리, 마르 엘리아스 학교, 나사렛 민속촌

Filed under: Lang:한국어,Subj:Christianity,Subj:Travel — Jemyoung Leigh @ 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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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단 지포리 또는 세포리스라는 곳에 갔다. 이 지명이 성경에 나오는지 안나오는지는 모르겠다.

Water Reservoir

물 저장소

여기는 고대 도시에서 약간 떨어진 물 저장소로 꽤 깊고 크다. 백만 갤런 이상을 저장할 수 있다고 하니 우리식으로 하면 약 380만 리터다.

Roman Paved Road

지포리에 있는 로마식 포장 도로

위 사진은 로마식 포장 도로인데 꽤 잘 보존되어 있다. 로마의 기록에 따르면, 돌과 돌 사이에 바늘 꼽을 틈도 없었다고 한다. 포장도로는 늘 마차 두 대가 다닐 너비인데 이는 군대의 행군을 위해서 그렇게 되어 있으며 약간 아치 모양으로 굽어 있는데 이는 길 양옆으로 배수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로마의 건축가들은 돌은 그들의 친구고 물은 그들의 적이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도로만 훌륭한 것이 아니라, 도로에 따라 옆으로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있었다.

Nile House Floor Mosaic

나일 하우스의 바닥 모자이크

공공 건물 가운데 하나였던 나일 하우스라는 곳에 갔는데, 아름다운 바닥 모자이크가 많이 있었다.

Zippori Theatre

지포리 극장

위 사진은 극장인데, 고대에는 극장 입장 및 관람이 공짜였는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든 요금을 부과했는지 궁금하다.

Toilet in private Mansion

개인 저택의 변기

그 후에는 고대의 개인 저택에 들어갔다. 위 사진은 개인 변기고, 그 옆에는 헬라어로 “건강을 위해”라고 쓰여 있다. 탈무드에 있는 문답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자면, “저 사람이 부자인지 어떻게 판별할까?” “식사하는 곳 근처에 개인 변기가 있다면 부자지” 라는 것이 있다. 그러니까 이 저택의 소유자는 굉장한 부자였을 것이다. 거실 근처에 이른 물이 흐르는 수세식 변기는 아무나 마련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 거실에서는 갈릴리의 모나리자라고 부르는 모자이크가 있었다.

Zodiac in the Centre of Zippori Synagogue

지포리 회당의 정 가운데에 있는 점성술용 별자리

그 뒤에는 회당에 갔는데 굉장히 아름다웠다. 그런데 회장 정 중앙에 점성술용 별자리가 있는 것은 내게 충격이었다. 다른 모든 바닥의 장식과 모자이크는 율법 및 유대교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왜 하필 회당의 정 중앙에 이교도의 점성술을 고대 유대인들은 배치해 놓은 것일까?

고대 지포리는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는데, 지진에 의해 파괴된 후에는 재건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폼페이도 화산에 의해 파괴되었기 때문에 잘 보존되어 있고 쿰란도 마찬가지다. 쿰란에서는 전쟁의 위협 때문에 문서들을 항아리에 넣고는 동굴에 보관했다. 쿰란 공동체 자체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불행과 재앙이 (현재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축복이 되었다. 재앙 덕분에 많은 것이 보존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연구할 고 알 수가 있다.

Director and Teacher of the Mar Elias School

마르 엘리아스 학교의 감독과 선생님

그 후에는 마르 엘리아스 학교에 갔다. 이는 나사렛 인근의 이빌린이라는 조그만 마을에 있는 기독교 학교로 팔레스타인, 아랍등 차별하지 않고 모든 학생에게 교육을 제공한다. 예전에는 유대인 학생들도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없다. 그 건물 가운데 하나는 미국 전대통령인 빌 클린턴 혼자 기부한 것이라고 한다.

Kids in the class

교실에 있는 아이들

학교 감독과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들은 뒤에, 우리는 한 교실에 들어갔다. 유대인 선생님이 가르치는 히브리어 시간이었다. 내가 듣기로는 유대인 선생님과 아랍 (또는 팔레스타인) 선생님이 같이 일하고 같이 가르치는 유일한 학교라고 한다. 아이들은 그저 아이들이었다. 웃고 떠드는 행복한 아이들. 아이들이 심각하지 않고 아이들 같은 걸 보니 내가 더 행복해 졌다.

Girls who love Korea

한국을 사랑하는 소녀들

교실을 떠날 때, 두 소녀가 다가오더니 내가 한국에서 왔냐고 물었다. “미국 시카고에 살지만 원래는 한국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랐다”고 대답을 하자 너무 기뻐하면서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하길래 흔쾌히 승락했다. 그리고 그 소녀들이 한국의 드라마와 음악, 가수들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최신 것이어서 난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 그냥 한국 문화가 대단하구나 하고 느꼈다.

Church near the school

학교 근처에 있는 교회

그 후에는 학교 근처에 있는 교회에 갔다. 옆에서 보면 꼭 방주같이 생겼다.

Stairway to the church

교회로 올라가는 계단

계단에는 예수님이 마태복음 5장에서 가르치신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가 영어, 불어, 히브리어, 아랍어의 네 언어로 새겨져 있었다.

Church door

교회 문

위 사진은 교회 문으로 세계 각지의 아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다. 두 소년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이는데, 작은 아이는 유대인의 키파를 쓰고 있으며, 다른 아이는 팔레스타인 소년이다. 이 장면은 팔레스타인 소년이 유대인 소년을 예수님께로 (전도해서) 데려가는 모습이라고 한다.

Inside the church

교회 내부

교회 내부는 정말 아름다웠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재정적 또는 재능적 기부를 통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각 부분부분이 모든 직접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 교회는 거룩한 장소와 일반 장소를 분리하는 칸막이가 쳐져 있다. 그들의 전통이라고 한다.

Shepherd and Sheep in Nazareth Village

나사렛 민속촌의 양과 목자

그 후에는 민속촌과 같은 나사렛 마을에 갔는데, 일종의 체험 박물관이다. 양들이 우리에 있고 문이 닫혀 있었다. 나사렛 마을 안내인인 다니엘에 따르면 1세기에는 낮에 문이 열어 놓지만 양치기가 문에 서 있으면 양들이 못 나가고 다른 것들도 못 들어온다고 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 7절에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Tomb Gate

무덤 문

이 것은 전형적인 1세기 무덤의 복제품으로 부활절 아침에는 배우들이 와서 성경의 부활 관련된 장면을 연기한다고 한다. 만일 부활절 기간에 이 곳에 올 수 있다면 연극을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것은 작은 복제품으로, 실제 무덤과 입구의 돌은 훨씬 컸다고 한다.

Daniel on Wine Press

포도 와인 프레스 위에 서 있는 다니엘

위 사진은 와인 프레스의 상단 부분이다. 거기에 포도를 잔뜩 올려놓고 사람들이 맨발로 밟으면 포도즙이 홈을 따라 아래의 통으로 흘러간다. 1세기에는 반드시 맨발로 밟았는데, 이유는 포도씨가 깨지면 쓴 맛이 배어나오기 때문에 포도씨를 으깨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다니엘에 따르면 와인 프레스는 계단 농지의 아래에 있고, 타작마당은 꼭대기 위에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드온이 몰래 타작을 할 때 와인 프레스에 있었던 것이다. 사사기 6장 11절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Watch Tower

망루 또는 파수대

위 사진은 1세기의 전형적인 망루다. 파수꾼이 서 있다.

Olive Oil Press

감람유 (올리브 오일) 프레스

위 사진은 감람유 (올리브 오일) 프레스로 그 옆에는 거대한 올리브 멧돌이 있다. 올리브를 으깨기 위해서 거대한 멧돌을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는 당나귀가 멧돌을 움직이지만 오늘은 내가 자원해서 당나귀처럼 멍에를 메고 멧돌을 움직여 보았다. 이 멧돌은 올리브의 씨까지 부수는데, 씨에도 기름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 사진의 오일 프레스의 나무 봉에 돌을 메다는 곳이 세 군데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름은 세 번 짜는데, 처음에는 돌을 하나만 메달고 짠다. 이 때는 가장 깨끗하고 품질 좋은 기름이 나오며 통상 버진 오일이라고 부른다. 이는 가장 깨끗하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보냈다고 한다. 두 번째는 돌 두개를 메달고 짜며, 최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품질의 기름이 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러 목적으로 (요리 및 치료등) 사용한다. 마지막으로는 돌 셋을 메달고 짜는데, 찌꺼기 기름이 나오기 때문에 사람에게 쓸 수는 없고 오일 램프에 사용한다고 한다.

Carpenter and Sister

목수와 실짜는 아낙네

위 사람들은 1세기의 갈릴리 사람들 처럼 분장해 있다. 저 남자는 목수 역할을 했는데, 우리에게 1세기 목수의 기술 몇 가지를 보여줬다. 옆의 아줌마는 이름이 한나였는데, 양털을 갖고 어떻게 실을 만드는지 보여줬다.

First Century Synagogue in Nazareth Village

나사렛 민속촌에 있는 1세기의 회당

위 사진은 1세기의 유대인 회당이다. 여지껏 우리가 본 다른 회당과는 달리 여기에는 성서를 보관하는 자리도, 모세의 의자도 없었다. 다니엘은 회당 즉 시나고그는 헬라어로 모이는 장소라는 뜻이고 (한자 번역도 모일 회會하고 장소 당堂을 쓴다) 실제로도 원래는 그런 역할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이고, 기도하고, 공부하고, 이야기하는 마치 마을 회관과 같은 곳이었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파괴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종교적인 장소가 아니었다고 한다. 회당에서 맘에 드는 것 가운데 하나는 모퉁이에 있는 기둥들인데, 사진에 안보이는 기둥의 뒷면은 90도 각도로 되어 있어서 기둥의 모양인 하트같이 된다. 여기만이 아니라 실제 고고학 발굴지에서 본 회당들도 그런 기둥들이 있었다. 이 것은 4세기 이후가 아니라 1세기 회당을 복원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 그리고 바울을 비롯한 다른 제자들이 회당에 갔을 때에는 이런 것과 비슷한 곳이었을 것이다.

다니엘은 꽤 흥미로운 사람인데, 메시아파 유대인이라고 한다. 이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유대인이다. 우리의 현지 안내인 조지에 따르면 메시아파 유대교에도 여러 분파가 있는데, 대부분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으며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다.

Wednesday, 29 January 2014

이스라엘 여행 열세번째 날: 하솔, 단, 바냐스, 답가

오늘은 연사가 없는 순수한 현장학습의 날이었다.

Wall of Hazor

하솔의 벽

먼저 하솔에 갔다. 하솔은 왕국을 탄탄하게 하기 위해서 솔로몬이 요새화하고 강화한 곳이다. 다른 고대의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이 곳도 이전 도시 위에 세워졌고 20개의 다른 연대의 층이 있다고 한다. 이런 층 가운데 학자들이 완전 검게 탄 층을 발견했는데, 그냥 화재가 아니라 완전히 철저히 파괴되고 태워졌다고 한다. 또한 그 연대가 여호수아가 활약하던 때와 맞아 떨어진다고 한다.

Burnt and Broken Stones

타서 깨진 돌

위 사진은 불에 탄 돌들 남은 것 가운데 일부다. 굉장히 강한 돌인데, 불이 너무 세서 이렇게 부스러졌다고 한다.

Biggest Source of Jordan

요단강의 근원

그 후에는 단 지파가 정착해 살던 고대의 유적지에 갔는데, 요단강이 시작하는 근원을 발견했다. 물 소리가 너무 좋았는데, 에스겔 43장 2절에 하나님의 음성을 많은 물 소리 같다고 표현한 것을 알 듯 하다.

Dan Trail

단의 산책길

나무와 숲길을 따라 상쾌한 하이킹을 할 수 있었다.

Altar at Dan

단에 있는 제단

이 곳은 아합이 세운 제단과 예배 장소인데, 북왕국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쇠 막대기로 만들어 놓은 것은 실제 돌 제단의 크기가 어떠했는지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굉장히 거대한 제단이다. 제단 뒤로 하나로 교회 성도인 한국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 곳은 지구라트와 비슷하게 높게 올려진 곳으로 보통 제단과 함께 이런 곳이 있다고 한다.

Israeli Gate

이스라엘 문

그 뒤에는 이스라엘 문을 봤는데, 북왕국의 왕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Canaanite Gate

가나안 문

이스라엘 문을 돌아서 가면, 고고학자들이 발견하고 발굴한 가나안 문이 나온다. 이 문은 앞서 본 이스라엘 문보다 적어도 천년은 앞선 것으로 아마 아브라함이 저 문을 통해 이 곳에 들어섰을 것이다.

Mount Hermon

헐몬 산

위 사진은 헐몬 산이다. 시편 133편 3절에 나온 말씀이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많은 사람들이 믿기로는 이 곳이 예수님께서 변화하신 변화산이다.

Zeus Temple

제우스 신전

그 후에는 바냐스라는 곳에 갔다. 이 곳의 예수님 당시의 이름은 빌립보 가이사랴였으며, 골란 고원에 있는 (변화산이라고도 하는) 헐몬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 위 사진은 제우스 신전으로 이 곳에는 판, 신성한 염소를 비롯한 많은 신전이 있으며, 당연히 아우구스투스 신전도 있다. 이 도시도 헤롯에 의해 지어졌는데, 어디를 가든지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헤롯의 이름을 듣게 된다.

Cave in Banyas

바냐스의 동굴

위 사진은 바냐스에 있는 동굴(?) 가운데 하나인데, 아마 이 근처 어디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뭐라 하는지 물으셨을 것이다. 마태복음 16장 13절 말씀이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Roman Bridge

로마식 다리

사람들은 버스로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나는 덴젤로 그리고 아일린 아줌마와 함께 갈 수 있을 데까지 뛰어갔다. 헤롯이 지은 건축물 몇개 더 보고 로마식 다리를 봤다.

K-Bab, Original Taste of Galilee

갈릴리 원조 맛, 케이밥

고속도로 휴게소에 가서 “갈릴리 원조 맛”인 케이밥 식당에 들어갔다. 내가 먹어본 식당 중에서 최고였다.

Heptapegon Church

오병이어 교회

그 후에는 오병이어 교회에 갔는데,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를 축사하신 후에 남자만 오천명을 (여자와 아이는 별도로) 먹이신 곳이다. 이 교회는 바위 위에 지어졌는데, 테이블 아래로 바위가 보인다. 저 바위 위에 예수님께서 떡과 물고기를 올려 놓으시고 축사하셨다고 믿어지고 있다.

Floor Pattern

바닥 문양

이 곳은 더 오래된 교회 위에 세워진 고대의 교회로 4세기에 만들어진 바닥 문양이 정말 아름답다. 앞 정원은 평화를 즐기고 묵상하기에 최고의 장소인 듯 하다. 감람나무가 중앙에 심어져 있고 흐르는 물은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잉어가 많이 있었다. 잉어는 일본사람들이 매우 좋아하는데, 일본어로 코이라고 부르며 (영어로도 코이라고 함) 사랑이라는 일본어와 발음이 같다.

Papyrus

파피루스

정원에서 그 유명한 파피루스를 발견했다. 파피루스라는 말에서 종이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페이퍼가 나왔다. 스페인어로는 파펠.

SANYO DIGITAL CAMERA SANYO DIGITAL CAMERA

그리고 내가 무지 좋아하는 꽃들…

Saturday, 20 April 2013

Missionary, Servant of God?

Some days you just want to cry. Today is one of those days to me.

Last year I met a couple from Korea. They are very nice people, both are ministers’ kids. They looked like having very strong faith, telling me that their calling (and wish) is to be missionary to Tibet. The guy had a degree in theology from South Korea. I was very impressed about their vision and calling, but I asked them why they came to America not going to Tibet.

He said that he wanted to study more in America. So I gave him some information about seminary because I was also looking for a good seminary. Even we went to TEDS open house together.

The couple has been married for several years but they told me they avoided the pregnancy. After a while, the couple asked me to pray for them to have a baby because they had been trying to have one since they arrived to America but was not successful. I said yes, and asked why.

They said that they had problems in admission, and there is no way for them to get the green card. I don’t know it is true or not but they believe that if they have a baby, then they will automatically get green cards. This is their theory – Their baby will be born in America having US citizenship. The government has no other option but to allow the couple to stay in America by giving them green cards because the little US citizen must be raised by parents. I am not an immigration expert, so I don’t know if it is true or not. But this made me so disappointed.

I haven’t met them for several months, but recently I heard about them. The guy is not seeking seminary any more because he has a problem with his English score, but he is seeking any kind of school including ESL. They just want to stay in America. They want it desperately.

I am just confused and disappointed. Where is their calling from God? Was it just a lie? Did they ever actually wanted to be missionaries to Tibet or they always just wanted to stay in America from the first place? Is America that good, better than God’s calling or heaven? I just don’t know what they have deep inside their hearts.

I just want to cry today.

My other postings related:

True Missionary

Anyone is missionary

가끔은 그냥 울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이 내게는 그런 날이다.

작년에 한국에서 온 한 부부를 만났다. 참 좋은 사람들이고 둘 다 목사님 자녀로 강한  믿음을 갖고 있는 듯 보였고 티벳에 선교하러 가는 부르심을 받았고 그러길 원한다고 했다. 남자는 한국에서 이미 신학 학위를 받았다. 그들의 비전과 부르심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티벳에 안가고 왜 미국에 왔냐고 물었다.

미국에서 공부하기 원해서라고 대답을 들었다. 나도 신학교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정보를 좀 줬고, 심지어 TEDS 학교 입학설명회도 같이 갔다.

그 부부는 결혼한지 여러해 됐지만 피임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한참 후에, 그 부부가 아기 생기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미국에 오고나서 아이를 가지려 하는데 잘 안된다면서. 기도 하겠다고 하면서 왜냐고 물었다.

그들의 말은, 입학에 문제가 있고, 영주권을 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믿기로는 아이가 생기면 자동으로 영주권을 받는단다. 그들의 말로는, 아기는 미국에서 태어나 시민이 될 것이고, 정부는 부모에게 영주권을 줘서 미국에 머물 수 있도록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 미국 시민이 부모에 의해 길러져야 하기 때문에. 난 이민 전문가가 아니라서 진짜인지 아닌지 모른다. 하지만 너무 실망을 했다.

반년 이상 그들을 만나지 않았다가 최근에 그들에 대해 들었다. 남자는 영어 점수에 문제가 있어서 신학교를 알아보기 보다는 ESL을 비롯해서 아무 학교나 알아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미국에 체류하기를 원할 뿐이다. 그것도 아주 간절하게 원하고 있다.

난 그냥 혼란스럽고 실망스럽다. 하나님에게서 받은 그 부르심은 어디로 갔나? 그게 전부 거짓말이었나? 그들이 정말 티벳에 선교하러 가길 원한 적이 있긴 했을까 아니면 그냥 미국에 체류하길 처음부터 원했을까? 미국이 그렇게 좋은가? 하나님의 부르심이나 천국보다도 더? 그들 마음 깊은 곳에 뭐가 있는지 정말 모르겠다.

오늘은 그냥 울고 싶다.

관련글:

True Missionary

한국에서 파송하는 선교사가 많은 이유

Saturday, 2 June 2012

Memory of Chajang-myoun

There is a famous and popular Koreanised Chinese dish named Jajangmyeon which is thick noodle with black paste. I bet all Koreansknow it. When I was young, it was one of the very expensive food which we can afford only on special occasions.

Delicous as always. It had been far too long s...

Jajangmyeon. (Photo credit: Wikipedia)

My earliest memory goes back to my youngest sister’s graduation from elementary school. My father allowed my sister to eat it. So my sister and I went to a Chinese Restaurant on the way to school. It was 25 cents for one bowl, and 30 cents for bigger size bowl.

Not only to our family, but to any average families in Korea, this noodle was expensive and special food. So when you move, your friends and neighbours help. Then you have to treat them with good foods. So the movers bought and treated the helpers with Jajangmyeon. And now these days, it is not expensive food but still that custom is alive.

자장면 또는 짜장면이 예전에는 꽤 비싼 음식이어서 우리 집은 내가 어릴 때에 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자장면에 대한 가장 이른 기억은 막내 누나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에 아버지가 자장면을 사먹도록 허락해준 것이다. 누나와 함께 학교 가는 길 중간에 있던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먹었는데 그때 가격으로 250원이었고, 곱배기는 300원이었다.

우리 집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가정들에도 자장면은 비싸고 특별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만일 이사를 할때는, 친구들이 도와주는데, 도움 주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대접해야 하기 때문에 자장면을 사줘서 대접을 했었다. 요즘은 자장면이 비싼 음식이 아니지만 그러한 관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Thursday, 31 December 2009

Time difference

Filed under: Lang:English,Lang:한국어,Subj:Fun — Jemyoung Leigh @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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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are ONE YEAR’s difference between Seoul and Winnipeg.

Seoul is in 2010 already but I am in 2009 here in Winnipeg. 🙂

한국과 캐나다엔 시간 차가 1년이나 난다.

서울은 2010년이지만, 난 여기서 아직 2009년이다. ^^

Tuesday, 28 October 2008

Different style of washing dish

I found that how to  wash dish is different between Canada and Corea.

You know, in Canada, they fill the sink with water and put liquid soap. Then put all dishes in the water and wipe with a towel, then rinse in another sink without soapy water and finally wipe the dish with dry towel.

In Corea, they wash dish in running water, and put the liquid soap on the sponge and wipe the dishes with it. Rinse the dish in the running water again, and put the wet dish in the dish rack and let the time dry them.

한국과 캐나다에서 설겆이 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한국에서는 보통 흐르는 물에 씻고, 수세미에 퐁퐁을 묻혀서 그릇을 닦은 뒤에 역시 흐르는 물에 헹구고는 물 있는 채로 식기 건조대에 올려놓고 마르게 한다.

캐나다에서는 싱크대에 물을 받은 후에 퐁퐁을 풀어 놓고, 접시를 모조리 물에 집에 넣고는 헹주로 닦는다. 그리고 비눗물이 아닌 깨끗한 물에 (역시 싱크대에 받아놓고) 헹구고 나서는 마른 수건으로 닦는다.

Tuesday, 16 September 2008

Cute

In Corea, it would not please girls to say they are cute. But in Japan, the word ‘cute’ is best praise available to girls.

These days I asked some of the girls here (in Winnipeg, Canada) about it and they all said that the girls in Canada like to hear that  they are cute.

한국에선 귀엽다고 하면 여자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거 같다. 반면에 일본에서는 귀엽다가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다.

최근 몇일 간 여기 (캐나다 위니펙)의 (백인) 여자들에게 (모두 20대 초반) 이에 대해 물어본 결과 한결같이 캐나다의 여자들은 귀엽다는 소리 듣는 걸 좋아 한다고 한다.

혹시 필요하신 분들, 작업에 참고하시길.

韓国では女の子にかわいいと言ってもあまり喜んではない場合が多い。でも日本ではその言葉は女の子にできる最高の言葉だと思う。

この頃、ここの(カナダ、ウィニペグ)女の子たちに(20代初の白人)これについて聞いてみた結果はカナダの女の子はかわいいと言われるのが好き。

Tuesday, 12 August 2008

Guiding Korean Pavilion

Filed under: Lang:English,Lang:한국어,Subj:Canada,Subj:Life — Jemyoung Leigh @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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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year, I visited several pavilions of Folklorama.You can read and see my postings:

Now the second week of Folklorama is going on now. This evening I am going to go to the Korean Pavilion with a family in Church. I already heard two or three other families are going to go (I will not accompany them). It is quite big change that none went to Korean Pavilion last year.

Some Church members read books on Korea too. I am thankful that they are interested in Korea (probably because of me, I hope). And I want Korea to be a better country in every aspect.

지난 해 포클로라마 축제에서 여러 파빌리온에 갔었다. 작년의 글과 사진 및 동영상은 아래에서 볼 수 있다.

지금은 2008년 포클로라마 2주차가 진행중이다. 오늘 저녁에 교회의 한 식구와 함께 한국 파빌리온에 가이드로서 간다. 여기 말고도 한국 파빌리온에 간다는 교회 가정들을 둘 셋 더 들었다. 작년엔 아무도 안갔다는 걸 생각하면 큰 변화다.

또, 한국에 관한 책을 읽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다. 한국에 관심을 가져주니 (아마 나 때문에) 감사할 따름이다. 부디 한국이 모든 면에서 더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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