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Tuesday, 28 January 2014

이스라엘 여행 열두번째 날: 갈릴리 바다, 가버나움, 고라신

오늘은 신약, 특히 복음서의 날이었다.

Nazareth View from Saint Gabriel Hotel

성 가브리엘 호텔에서 본 나사렛 풍경

호텔에서 바라 본 나사렛 모습인데, 꽤 안개가 껴서 아래쪽이 보이질 않았다.

Cana

가나

버스타고 가는 동안, 현지 안내인이 예수님이 첫 기적을 행하신 가나의 위치를 알려줬다. 현지 안내인에 따르면 포도주는 굉장히 값진 선물이라는데, 이는 한해의 노동과 재산의 상당부분이 포도주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과 같은 잔치에서 포도주를 넉넉하게 제공하지 않으면 집안의 굉장한 수치로 여겨지며 가나와 같은 작은 마을에서는 동네에서 엄청 이야기 거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말 그대로 한 집안을 구원하신 셈. 또한 조지가 말하기를 예수님은 어머니와 함께 앉아있지 않았을 거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유대인 풍습으로는 남녀가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금도 회당에서는 여자와 남자가 함께 있지 못한다.

Church of Beatitudes

팔복교회

첫 목적지는 팔복교회로 마태복음에 예수님께서 ‘xxx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xxx함이라’는 팔복을 가르치신 산상보훈 설교를 하신 곳이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산 꼭대기에 계셨고, 예수님이 앉으시는 장면으로 설교가 시작한다. 유대인 풍습에 따르면, 랍비가 일반적으로는 서 있지만, 랍비가 앉으면, 이제 할 말은 심각한 얘기니까 조용히하고 잘 들으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앉으시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조용해졌을 것이다. 팔복교회는 예수님이 앉아서 설교하셨다고 생각되는 바위위에 지어졌다.

마태복음 5장 3절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Between the two Hieberts

히버트 교수님과 히버트 교수님 사이에서

맥코믹에서 구약 및 히브리어를 가르치시는 부부 교수님으로 참 잘 어울리신다.

With George, our local guide

현지 안내인 조지와 함께

그 후에는 갈릴리 바다에 가서 “예수님” 배를 타고 예배를 드렸다. 시편 150편을 영어, 한국어, 스페인어, 히브리어, 아랍어로 읽었다. 아랍어는 우리 현지 안내인 조지가 읽었는데, 최고의 안내인이다.

2000 Years old boat

2000년 된 배

이 배는 갈릴리 바다 진흙 속에서 발견되었는데, 과학자들이 측정한 결과 2000년이 조금 넘은 배라고 한다.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 바다에는 이런 배가 무지 많았을 텐데, 그 중 하나다. 예수님께서 이 배에 타셨을 가능성도 없지 않으며, 특이한 점은 이 배는 12개의 다른 종류의 나무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Migdal

믹달

여기는 고대 믹달의 고고학 발굴터인데, 막달라 센터 및 리조트를 만들기 위해 거대한 공사가 진행중이다. 유명한 막달라 마리아는 믹달이라는 동네에서 온 마리아란 뜻이다. 갈릴리 지역은 예수님 사역의 핵심 지역이다. 여기서 점심을 했다.

Herod's Massacre

헤롯의 학살

이 산의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현지 안내인에 따르면 헤롯 시대에 이 지역에서 반란이 있었고,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이 저 산으로 도망갔는데, 헤롯이 병사들에게 명령해서 반란에 포함된 모든 사람들을 저 산 절벽에서 내던지게 했으며, 갈릴리 사람들이 봤다고 한다.

Church of Peter's Primacy

베드로 으뜸 교회

그 후에 베드로 으뜸 교회를 갔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이 곳에 와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불과 식사를 준비하셨다. 요한이 주님을 먼저 발견하고 베드로에게 일렀다. 그 후에 이 곳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랑하냐고 세 번 물으셨다. 이 교회는 그러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

요한복음 21장 15절 말씀이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One of seven springs

일곱 샘물 중 하나

이 지역은 헵타페곤이라고 불리는데, 그리스어로 일곱 샘물이라는 뜻이다. 샘물을 찾으러 갈 시간은 없었지만, 혼자서 겁나 뛰어서 샘물 하나 발견했다.

Olive grinder

감람(올리브) 분쇄기

그 다음에는 고라신으로 갔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세 마을 가운데 하나다. 이는 작은 시골 마을로 동네 사람들은 아마도 더욱 보수적이고, 상대적으로 마음이 전통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닫혀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곳에 오셔서 사역을 하신게 아닐까 한다. 바로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려고. 위 사진은 고대의 감람유 (올리브 기름) 짜내는 기계다.

Peter or Peter's mother-in-law's house

베드로 또는 베드로 장모의 집

여기는 가버나움에 있는 베드로의 집이다. 상당히 많은 성지는 단순히 기념하기 위한 목적이고 살제 장소는 논쟁이 있지만, 이 곳은 100% 정확하다고 하며 논쟁도 전혀 없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실제로 이 곳에서 드시고, 주무시고, 쉬시고,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이야기 하셨다는 것이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마을 전체를 다니셨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의 실제 유대교 회당이 옆에 있다. 예수님께서 그 회당에 가셔서 말씀을 읽으시고, 가르치셨음에 틀림이 없다.

Stairway to the roof

지붕으로 가는 계단

이 집은 베드로의 집 옆인데, 지붕으로 가는 계단이 보인다. 복음서에 보면, 온 몸이 마비된 환자를 친구들이 지붕으로 옮겨서 내린 것이 나오는데, 바로 이런 계단을 통해 갔을 것이다. 지붕은 대체로 나무가지 및 잎사귀등으로 덮여 있으므로 쉽게 열 수 있었을 것이다.

Sunset in Capernaum

가버나움의 일몰

정말 아름다운 일몰이었는데, 사진기가 별로 좋지 않아서 그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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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27 January 2014

이스라엘 여행 열뻔째 날: 성탄교회와 난민 수용소

오늘은 강의로 점철된 날이었다.

Stars and Bucks

스타 앤 벅스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서 성탄교회로 걸어가다가 스타벅스를 발견했는데, 스타벅스가 아니었다.

Christmas Tree

크리스마스 트리

베들레헴 평화 센터 앞 또는 성탄 교회 사이에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서 있었다. 밤에는 불이 켜지는지 궁금했다. 전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을 다 볼 수 있었다. 내가 인식할 수 있는 언어만 해도 중국어, 한국어, 영어, 불어, 스페인어가 있었고, 인식하지 못하는 언어들도 많이 있었다. 예수님은 여기서 태어나신 것만으로 얼마나 많이 지역경제에 이바지하시는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Church of Nativity

성탄교회

여기가 성탄교회로 콘스탄틴 대제(개인적으로 대제라는 표현을 싫어함)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최초로 지은 교회다. 헬레나가 이 교회를 짓고 나서 한참 후에 페르시아 제국이 쳐들어 왔는데, 교회란 교회는 모조리 때려부쉈다고 한다. 그런데 페르시아 군대가 이 교회에 와서 때려 부수려고 할 때,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님께 예물을 바치는 그림을 봤는데, 동방박사의 옷차림이 완전 페르시아 복장이었기 때문에, “어라, 여기는 우리 조상과 연관이 있는 건물인가 보다’ 생각을 하고 이 교회 하나만 남겨뒀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화적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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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 셋을 비교해 보면, 원래는 거대한 문이 있는 걸 첫번째 사진에서 알 수 있는데, 그 다음인 중간 사진에서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마차가 다닐 정도의 크기며, 마지막 사진에서는 좁고 낮아져서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다닐 수 없게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아기 예수님 앞에서 겸손하라는 의미로 그렇게 했다고 한다.

Church of Nativity Catholic Sanctuary

성탄교회의 천주교쪽 예배당

원래 헬레나에 의해 지어진 교회는 십자군에 의해 수리되었고 현재는 그리스 정교회 소유로, 그 옆에는 천주교회가 붙어 있다.

Jerome translated here the Bible into Latin Vulgate with the help of Paula and her daughter

이 곳에서 제롬이 파울라와 그녀의 딸의 도움을 받아서 성경을 라틴 불가탄으로 번역했다

천주교회도 당연히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지만 목적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제롬이다. 천주교회에서 지하로 내려가면 제롬이 머물고 작업했던 곳을 볼 수 있다. 사진을 보면, 왼쪽의 둘이 파울라와 그녀의 딸로 제롬을 물심양면 도와줬다. 제롬은 천주교 교부중에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기 위해 히브리어를 직접 배운 유일한 사람이다. 그런 제롬을 돕기 위해 파울라와 딸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배웠는데, 결국에서 제롬보다 훨씬 유창해졌다고 한다.

Key to Home

집으로 가는 열쇠

여기는 난민 수용소 가운데 한 곳으로 꼭대기에 있는 열쇠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상징한다.

Graffiti on Separation Wall

분리 장벽에 있는 그라피티

장벽에는 많은 그라피티가 있었고, 거리는 쓰레기가 넘쳐서 더러웠다.

SANYO DIGITAL CAMERA SANYO DIGITAL CAMERA

장벽에는 다른 그라피티와 함께 요한복음 3장 16절이 한글로 그려져 있었는데, 나의 머리를 번개가 내리치듯 때렸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그처럼 사랑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여기서 고통받는 난민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이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는데….

Lajee Centre

라지 센터

난민에는 라지 센터라는 곳이 있었다. 정확히 라지 센터가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동 도서관이 있었고 (사진에 우리가 앉아있는 곳), 전산실을 비롯한 몇몇 시설이 있었다.

American History

미국사

놀랍게도, 도서관에는 미국사 전질이 있었다.

Blocking Entanglement

분리 철조망

수용소는 분리장벽으로 둘려쌓여 있었다. 분리장벽 밖에는 예전에 농지로 쓰였던 곳이 있고, 그들의 직장이었던 곳이 있었다. 난민의 대부분은 일자리를 빼앗겼다. 예루살렘까지 예전에는 10분에서 15분 가량 걸렸지만 이제는 이스라엘 검문소 덕분에 2시간 이상이 걸린다.

Bethlehem University

베들레헴 대학교

그 후에 베들레헴 대학교에 갔는데, 건물들이 아름다웠다.

Dr. Mazin Qumsiyeh

마진 쿰시예 박사

마진 쿰시예 박사는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말해줬다. 흥미롭게도 그는 생물학 박사며 교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제대로 움직여준다면 이스라엘의 불법 점거를 2주 안에 끝낼 수 있다고 한다.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왜냐면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에 하루에 2백만불씩 갖다 바치고 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점은 미국 정치인들은 유대인 로비스트가 주는 떡값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만일 오바마가 전화해서 이스라엘을 정지시키려 한다면 그 다음날, 그는 더이상 대통령이 아닐 수도 있다.

Lawyer Raffoul Rofa

라풀 로파 변호사

예전에 양치기 언덕에 갈때 식사를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 베들레헴 대학교로 돌아와서 라풀 로파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변호사는 천주교 인권 센터인 성 아이브에서 일하는데, 변호사 8명을 포함해서 총직원이 20명이라고 한다. 주로 이산가족 재결합과 주택 철거등을 비롯한 문제들을 법률적 차원에서 다룬다고 한다. 건물 철거에 대해서는 15년 동안 수천건을 법원에서 싸웠지만 단 한 건만 허가를 받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한 건도 그들이 잘 싸워서 받아낸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해외 보조를 받아서 지어진 학교 건물이었는데, 학교측에서 미국의 당국에게 연락을 했고 (당신들이 지어준 학교를 이스라엘이 부수려 한다고), 미국에서 이스라엘에 연락을 하자 곧바로 건축허가가 나왔다고 한다.

Rimon Kando Shop

리몬 칸도 기념품 가게

그 다음에는 기념품 가게에서 쇼핑을 할 시간이 있었는데, 매우 유명한 가게라고 한다.

Tuesday, 19 February 2013

Apostle’s Creed in Korean language

There are two things which everyone learns once they become a Christian no matter what denomination they are in – the Lord’s Prayer and Apostle’s Creed.

Since I became a Christian in Korea, I learned those two prayers in Korean language. They are such great prayers in our faith and in our daily lives. When I came to North America (precisely Canada), I attended Canadian Presbyterian Church and of course they do those prayers too, even in English. So I came to learn those two prayers in both languages – Korean first and English later.

But it put me in confusion when I found the versions of Apostle’s Creed are not the same in two languages while the Lord’s Prayer has identical wordings in both languages. So I asked a Korean pastor serving in Korean-American Church in Chicago Suburb who studied and earned two masters degrees – one from best seminary in Korea and the other from TEDS. So many Korean people praise him mostly because of his beautiful education backgrounds, and because he studied both in Korea and America, I thought he would be the best pastor to answer my question.

But to my disappointment, his answer was “WHAT!!!!!!!!!!!!!!!! ARE THEY DIFFERENT??????” So I asked many other pastors the same question, Korean pastors in Canada, Canadian pastors, American pastors. There was no answer but one from a Korean pastor in Canada, saying that the different part is not important so not to worry about.

I cannot agree to him. The Apostle’s Creed has almost same authority as Bible in Christian faith across the world and denomination, consequently it is not possible and/or should not happen to clip and drop some of it just because they think it is not important.

The different part is this: Korean version does not have “He descended into hell.”  I do not know how important or not important this part is in theological view because I am going to study.

Not having any good answer, I googled it by myself and found some history of Korean version of the Apostle’s Creed. Presbyterian and Methodist (and probably some other denominations from Reformed Church) translated the prayer together to make the common version across the denominations in Korea. And the Methodists did not like that part and they suggested to clip it out and Presbyterians agreed.

Koreans Methodists (pastors and scholars) said it is wrong. But I think what they did could not be right for both Korean Methodists and Presbyterians.

For Korean Methodists, if they thought it was really wrong, they should have raised their voice to the whole world so that they also correct their wrong prayer, not just clipping Korean version of it. Or they could have left it as is and explained what is not right to their congregations. For Korean Presbyterians, they should not have stepped back just not to argue especially when they did not agree theologically.

All Korean Christians confess  the Apostle’s Creed and they also confess that it has (almost) same authority as the Bible. If they truly confess and believe so, they should not have clipped and dropped any part of it even a dot. If they take the Bible seriously, then they dare cannot touch this prayer having almost same authority as Bible because they all know what the Bible says at Revelation 22:19 – “And if any man shall take away from the words of the book of this prophecy, God shall take away his part out of the book of life, and out of the holy city, and from the things which are written in this book” (KJV)

Just for your information, the Catholic Church in Korea who does not share the common translation of the Apostle’s Creed translated by themselves and their version has the part which saying “He descended into hell.”

Now I wish Korean pastors and scholars to translate the Apostle’s Creed again preserving it wholly. I long for the day that the all Christians confess the faith all the same and all together including our brothers and sisters speaking Korean language.

교단이나 교파에 상관없이 기독교인이 되면 누구나 배우는 것이 두 가지 있다. 바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이다.

나는 한국에서 기독교인이 되었기 때문에 두 가지 기도문을 한국어로 배웠다. 정말 우리의 삶과 신앙에 주옥과 같은 기도문이 아닐 수 없다. 캐나다에 가서는 캐나다인 장로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당연히 두 가지 기도문을 영어로 했고, 그래서 두 가지 기도문을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로 배우고 외우게 되었다.

주기도문은 두 언어에서 동일한데 비해 사도신경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미국의 한국인 교회에서 시무하시는 한국인 목사님에게 여쭈어 봤다. 그 분은 한국 최고의 신학교라 일컬어지는 사당동 총신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도 아주 뛰어난 트리니티 신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한미 양국에서 두 가지 언어로 신학을 공부하셨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해 여쭙기에는 최고의 목사님이셨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내 질문에 대한 구분의 대답은 “뭐!!!!!!!!!!!!!! 달라????????????????”였다. 그래서 다른 여러 목사님들께 여쭈어 보았다. 한국인 목사님, 캐나다 목사님, 미국 목사님 등. 단 한 분 빼고는 묵묵부답이었는데, 그 단 한분도 “다른 부분은 별로 중요한 거 아니니까 상관없어” 였다.

사실 그 대답은 수긍할 수가 없다. 사도신경은 교단을 불문하고 전세계의 모든 기독교인과 그 신앙에 있어서 거의 성경과 동급의 권위를 갖는 것이므로 중요한 것 같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일부분을 빼는 행위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다른 부분은 바로, 한국어에는 “음부에 내려가시고” 부분이 없다. 아직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신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또는 하찮은지 모르겠다.

답변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구글에서 검색을 좀 해서 한국어 사도신경 번역사를 좀 찾았다. 장로교와 감리교가 (그리고 다른 개신교 교단도) 함께 모여서 사도신경을 초교파적으로 함께 사용하기 위해 번역했다고 한다. 그런데 감리교쪽에서 해당 부분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서 잘라내 버리자고 제안을 하고 장로교에서 받아들였다고 한다.

한국의 감리교 목사님들과 신학자들은 이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내 생각엔 한국 감리교와 장로교 모두 잘못했다.

한국  감리교는 정말 사도신경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한국어 기도문에서만 잘라낼 게 아니라 전세계에 목소리를 높여서  다른 언어권도 기도문을 고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다. 아니면 기도문 자체는  그대로 남겨두고 교인들에게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설명했어야 했다. 한국 장로교는 특히 자신들이 신학적으로 동의할 수 없는 문제를 단지 논쟁을 피하기 위해 물러서면 안되었다.

모든 한국 기독교인들은 사도신경을 고백하며 또한 사도신경에 성경과 거의 동급의 권위를 갖는다고 고백을 한다. 만일 그들이 진실로 그렇게 고백하고 믿는다면 점 하나라도 잘라내 버리면 안되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성경을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성경과 거의 동급의 권위를 갖는 기도문을 감히 건드려서는 안된다. 왜냐면 요한계시록 22:19에서 성경이 어떻게 말하는지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참고로 한국 천주교에서는 개신교의 사도신경을 사용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번역해서 사용하는데, “음부에 내려가시고”라는 부분이 있다.

한국 목사님들과 신학자들이 사도신경을 다시 번역하길 소망한다. 사도신경을 온전히 보존하길 소망한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형제 자매를 포함해서 전세계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함께 한 목소리로 한 신앙을 고백하는 날이 오길 고대한다.

Monday, 11 February 2008

한글로 정확한 표기가 안되는 한국어의 소리들

Filed under: Lang:한국어,Subj:Arguement,Subj:Languages — Jemyoung Leigh @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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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 한글의 문제라기 보다는, 한국어 자체의 발음적인 특성인데, 한글로 정확한 표기가 안되는 발음들이 좀 있다.

예를 들어, ‘가증스럽다’의 와 ‘한가하다’의 는 다른 발음이다. 조용히 두 단어를 발음하면, 아니, 쉽게, ‘가가’를 발음해 보면, 앞의 가 뒤의 보다 상당히 거친 소리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어에서는 첫소리가 꽤 세게 나온다. 가가도 그렇고 다다도 그렇고 대체로 그렇다. 일본어나 영어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한국어의 부산을 Pusan으로 표기하고, 정씨를 Chung으로 쓰는 것이다. 김씨도 일본어로도 키무로 쓰고 영어로도 Kim으로 쓰지 않는가! 그 게 가장 가까운 발음이다. 실제로도!

이 걸 못 느낀다면, 음성학쪽에 소질이 없으니 언어학 공부는 포기하길… ᄏᄏᄏ

또, 전라도 사투리로, ‘그려’의 마지막 모음은 한글로 표기가 안된다. 는 확실히 아니고, 이으여도 좀 비슷하지만 다르고, 게다가 이렇게 길게 소리가 나지 않는다.

또, 숫자 1의 ‘일’과 작업을 의미하는 ‘일’에 있어서도 모두 표기가 동일하게 이지만, 숫자 1의 경우 세게 소리가 나고 작업의 에서는 부드럽게 소리가 난다.

뭐, 생각 난 김에 몇 가지 끄적여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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