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Monday, 1 September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쉰 일곱번째 날 – 마지막 날

마지막 날엔 수업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늘 마지막 날인 목요일에 수업이 있다고 했는데 어제 언어센터 비서가 와서는 마지막 날엔 수업이 없다고 얘기했다. 대신에 조촐한 종료식이 있었다.

종료식이 11시여서 집을 10시반에 나섰다.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고 해서 타고 갔는데, 집에서 학교까지 20세겔이었다. 여기 베들레헴 온 첫날 택시에서 25세겔 안 준다고 고함지르고 길 한 복판에 떨궈줬던 그 택시를 기억하는가? 그 때는 베들레헴 대학교에서 시라지 센터까지 가는 거였고, 오늘은 집에서 베들레헴 대학교까지 가는 거였는데, 오늘 가는 거리가 그 전보다 4분의 3 더 멀다. 그런데도 20세겔만 받았다.

Classmates.  Lina from Germany, me, Cletos from Ghana, Mateo from Italy.  Anna from Switcherland is not here

우리 반 친구들. 독일에서 온 리나, 나, 가나에서 온 클리토스, 이탈리아에서 온 마테오. 스위스에서 온 안나는 오늘 없다

종료식은 간단했고, 수료증을 받았다. 스위스에서 온 안나는 항공사가 비행편을 마음대로 하루 앞당기는 바람에 공항에 가야 해서 오늘 못 나왔다. 그리고 아랍어 회화 초급과정 선생님도 안나왔다. 안나는 스위스 아가씨지만 독일에서 일하고 있으며, 매우 좋은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본인의 의식과 주장이 매우 강하고 주변 사람들이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 한 번은 이번 전쟁에 대해 다 같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안나가 가자의 사망자 수를 얘기하면서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악마로 묘사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은 부인하지 않지만 하마스도 공격을 했지만 단지 성공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안나가 양측의 사망자 수를 대며 어떻게 이 둘이 똑같냐며 흥분했다. 이스라엘이 좋은 방어 기술이 있고, 그 기술을 써서 자국민을 보호한 것이지 하마스가 선하고 착해서 공격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 내면은 둘이 모두 똑같이 서로를 죽이고자 했다고 말하자 굉장히 화를 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특히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은 좋고 이스라엘은 악마라고 생각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이런 얘기 하지 몇일 전에 우리 반에서 (나와 안나를 포함해서) 항공사와 비행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내가 스위스 항공을 탄다고 하자 안나는 매우 기뻐했는데, 그 후에 루프트한자가 조금 더 낫다고 하자 굉장히 언짢아 했다. 그리고 어제, 다시 다 같이 동일한 얘기를 하게 되었을 때, 내가 스위스 항공이 세계 최고의 항공사 중 하나라고 하자 안나가 약간은 화나고 흥분한 조금 큰 목소리로 “스위스 항공은 최고의 항공사 중 하나가 아니라, 세계 유.일.의. 최.고. 항.공.사.야! 내가 스위스 사람이라서 그러는게 아니고 그건 단지 사실일 뿐이야”라고 말을 했다. 증거를 대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OK라고 말하고는 대화를 피해버렸다.

Gemma from Spain

스페인 아가씨 헴마

종료식이 끝나고 일부 학생은 최후의 점심을 같이 먹으러 갔다. 오늘 공항에 가는 사람이 나까지 셋 있었는데, 영국에서 온 중년 아저씨인 에드워드 폭스는 나랑 같이 갈지 말지 망설였다. 일리노이주 시골에서 온 조이라는 아가씨는 나랑 같이 가길 원해서 나보고 버스 정류장에서 1시간 만 기다려 달라고 얘기를 했다. 이 아가씨는 굉장히 곱게 자라서 대학생인 지금도 아빠가 뭐든지 다 해줘서 혼자서는 비행기 표 끊는 방법도 모르고, 아무 것도 혼자서 할 줄 모른다. 어째든 나는 한시간이 아니라 두 시간을 기다렸다.

버스 정류장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 택시 기사들이 나한테 와서 택시 타라고 호객했는데, 친구를 기다리고 있고 버스 타고 갈 거라고 얘기를 했다. 내가 아랍어를 어설프게라도 하는 게 신기해서 사람들이 내 주변에 몰려들었다. 둘러쌓여서 두 시간을 얘기했다. 기독교인과 무슬림은 같은 아랍어라도 인삿말부터 다르다는 걸 알았다. 나랑 얘기한 사람들 중 일부는 아내가 여럿 있었다(최대 4명까지라고 한다). 나중에 사람들이 반 장난으로, 반 진심으로 내 주변에서 마치 대사관 앞에서 시위 하듯이 “좃같은 미국”을 외쳐댔다. 사람들이 그러길 자기들 (팔레스타인 사람들) 중에는 미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고 이스라엘보다 미국을 더 싫어한다고 했다. 후에 한 아저씨는 충고하듯이 미국에서 왔다고 하지 말고 그냥 한국 사람이라고만 말하라고 하면서, 여기서 미국인이라고 말하는 건 별로 현명한 건 아니라고 얘기해 줬다.

두 시간을 기다리자 드디어 조이가 버스 정류장에 나타났는데, 그 때 에드워드도 나타났다. 그래서 셋이서 같이 공항에 가게 되었다. 버스는 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인 베들레헴 대학교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검문소에서 사람들이 모두 내려서 허가증이나 여권을 검사 받았다. 늘 군인들이 버스에 타서 검사를 했지, 승객들이 모조리 버스에서 내리긴 처음이었다. 결국, 내 자리를 뺏겼다.

에드워드의 비행기는 9시, 조이는 11시, 그리고 나는 다음 날 아침 5시였다. 예루살렘에서 공항에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공요택시라고도 하는 셔룻을 타는 것과 공공교통을 이용하는 것이다. 가장 빠르고 좋은 것은 셔룻이다.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설명해 줬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에드워드가 공공교통을 이용하겠다고 고집을 했다. 에드워드의 비행이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본인이 그런다는 걸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마스커스 문에서 경전철을 타고 예루살렘 중앙 버스 정류장까지 갔고, 거기서 약 1시간 조금 넘게 기다려서 하이파 가는 버스를 타서 공항시에서 내렸다. 거기서 원래 무료 셔틀 버스를 타거나 일반 버스를 타고 공항 터미널까지 가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택시를 타고 터미널까지 갔다. 약 8시 경에 터미널에 도착했고 아저씨는 막 뛰어 갔다. 비행 3시간 전부터 보안 심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이는 곧바로 보안 심사대에 갔다. 나중에 에드워드 아저씨를 다시 만났는데, 비행기를 놓쳤단다. 셔룻 탔으면 45분만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는데, 공공교통을 이용해서 3시간 걸려서 공항에 왔기 때문이다.

Ilaria from Italy

이탈리아 아가씨 일라리아

이번 여행의 몇 가지 이야기들.

베들레헴에서 내가 묵은 집은 현대 투싼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온 중고차 같다. 사용자 설명서도 한국어로 되어 있고, 차에서 음성 안내라던가 전부 한국어로 나오고, 네비에서도 한국어로 말하고, 한글로 나온다. 그래서 블루투스, 음악, 비디오, 네비 등 차의 좋은 기능들은 하나도 못 쓰고 그냥 운전만 한다. 한국어로 고통받는다고 말 하더라.

그 집은 딸 하나, 아들 둘 있는데, 나는 딸 방에서 지냈다. 그리고 밤마다 딸은 거실 쇼파에서 잤다 (딸은 대학을 졸업했다). 그걸 보는 게 좀 불편했다. 그거 빼고는 매우 좋았다. 아주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그리고 아랍세계도 마찬가지겠지만) 엄마가 뭐든지 다 한다. 남편과 아이들은 절대 가사일을 할 수 없다. 한 번은 내가 빨래를 하기 위해서 딸에게 세탁기가 어딨냐고 물어보자 자기 집에 그런게 있냐고 내게 되물었다. 그리고 5분 후에 딸 방 앞에 세탁기가 있는 걸 봤다. 또한 식구들은 엄마를 위해 빨래를 한 곳에 모아두지도 않는다. 엄마가 온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여기 저기 널부러져 있는 빨래를 모아서 빤다. 다른 아줌마에게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남자가 집안일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을 한다고 하자 굉장히 충격 먹는 모습이었다. 그 아줌마가 말하길 여기서는 여자가 가정일에 불평만 해도 사악한 아내, 사악한 여자로 취급받는다고 한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서로 죽이는 다른 중동지역과 달리 사람들이 평화롭게 산다. 베들레헴에서는 심지어는 기독교인과 무슬림들도 큰 마찰 없이 산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게 가능한 이유는 더 큰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스라엘.

위에도 섰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미국을 싫어한다. 그럼 이스라엘은 어떨까? 내가 시카고에서 왔다고 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바마 무지 싫어하는 거 알아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바마 겁나 싫어해요”라는 말을 이스라엘에서 여러번 들었다. 미국은 정말 호구다. 돈과 노력을 양쪽에 엄청 쏟아 부으면서 욕은 욕 대로 먹고 모두에게 미움받고.

헤브론에 같이 갈 때, 자칭 투어 가이드라는 인간이 하마스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 말이 논리가 하나도 없어서 나는 전혀 듣지 않고 있었는데, 독일에서 온 리나는 니 말에 100% 다 동의하는 건 아니라고 얘기를 했다. 그러자 그 인간이 리나에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리나는 무지 놀라서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가짜 투어 가이드의 그런 태도는 친구를 만드는 데 별로 도움이 안될 듯 하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친구가 절실히 필요하고.

어제, 학교 뜰에 앉아 있는데, 베들레헴 대학교 한 교수님이 오더니 내가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다.  한국 사람이지만 시카고에서 왔다고 하자, 해마다 한국에서 교환학생 둘이 오는데, 내가 그 학생인줄 알았다고 했다.  몇가지 얘기를 하다가, 교수님이 팔레스타인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냐고 해서 아니라고 했더니, 내 옆에 앉아있던 두 아가씨를 가리키며 “팔레스타인 아가씨들 예쁘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그래서 결혼했다고 얘기를 했다.  이 곳에서 세 번째 중매 제의를 받았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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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27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쉰 여섯번째 날 – 가짜들

The famous Stars & Bucks in Bethlehem

그 유명한 베들레헴의 스타 & 벅스

위 사진은 베들레헴의 가짜 스타벅스다. 맥코믹 그룹이 지난 1월에 여행할 때, 베들레헴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성탄교회로 걸어갈 때 길에서 봤던 것이다. 간판의 색과 글꼴은 스타벅스와 동일하지만 일단 이름이 살짝 다르고 (스타 & 벅스) 로고가 다르기 때문에 진짜 스타벅스가 아니고 관심끌려고 하는 것인 줄 쉽게 알게 된다.

F.R.I.E.N.D.S in Bethlehem

베들레헴의 F.R.I.E.N.D.S

위 가게는 베들레헴 대학교 옆에 있는 걸로 위 간판이 어디서 따온 것인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위 장소는 여러 기능을 가진 곳인데, 인터넷 연결된 컴퓨터가 있고, 인쇄기와 복사기도 구비되어 있다. 그리고 당구대가 여럿 있어서 학생들이 돈 내고 즐길 수 있다.

Toast-R-Us in Bethlehem

베들레헴의 토스트-알-어스

위 사진은 어떤가? 한국에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에는 토이즈-알-어스 (Toys-R-Us) 하고 베이비즈-알-어스 (Babies-R-Us)라는 유명한 체인점들이 있다. R은 좌우가 뒤집혀 쓰여 있고, 영어로는 “장난감은 우리들이에요,” “아가들은 우리들이에요”와 같은 소리로 들린다. 위 사진에서 잘못된 것이라곤 토스트를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썼다는 것 정도. 이 것도 애교 정도로 봐줄 수 있다.

베들레헴에는 이런 패러디가 엄청 많이 있다. 다 관광객들 관심 끌고 웃게 만들려는 목적이지만. 이렇게 하면 관광지에서 마케팅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Starbucks in Bethlehem. Really?

베들레헴의 스타벅스. 진짠가?

성탄교회 옆의 구시장에서 위 사진에 있는 스타벅스를 발견했다. 성탄교회로 가는 길목에 있는 다른 가짜 스타벅스가 “스타 & 벅스”인 것과 달리 여기는 상호명 철자도 완전 똑같고, 로고도 동일하다. 이게 진짜 스타벅스의 체인점인지 궁금해졌다.

Starbucks mug sales in Bethlehem

스타벅스 머그컵도 팔아

여기선 스타벅스 머그컵도 판다. 여기 일하는 사람에게 이게 진짜 시애틀 스타벅스의 프랜차이즈인지 물어봤는데, 이 총각이 프랜차이즈란 말을 못 알아 듣는다. 그래서 좀 더 쉬운 영어로 약 1분 가량을 설명했더니, 미국 스타벅스의 진짜 체인점이 아니란다. 이렇게 동일한 이름과 로고를 사용해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는 저작권을 옆집 개 이름마냥 취급하는 곳이니 괜찮겠지. 여기 사람들에게 내가 음악(CD)을 돈 주고 산다고 했더니 이해를 못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다들 음악과 영화 같은 걸을 돈 주고 구입한다고 했더니 미국 사람들은 전부 멍청한 병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다운로드 받으면 되는데 왜 돈주고 사는 병신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KFC Bethlehem. Hmm...

베들레헴의 KFC 글쎄…

위 KFC 간판은 지난 1월에 버스 세웠던 버스 정류장 건물에 있는 것이다. 위 KFC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근데 위 KFC가 정말인지 아닌지 이젠 나도 모르겠다.

Two licence plates coexist in Palestine

두 나라의 번호판이 공존하는 팔레스타인

테드 히버트 교수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번호판이 있는 차가 팔레스타인 지역에 주차하면 돌을 던지기 때문에 이스라엘 번호판이 있는 차 주인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주차할 때 번호판을 떼어서 갖고 다닌다고 했다. 교수님이 아내와 함께 이스라엘에 살았던 때가 약 2-30년 전인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역이나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번호판이 달린 차를 엄청 많이 본다. 사실 서안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능하면 이스라엘 번호판을 얻길 원하고 또 노력한다. 왜냐면 이스라엘 번호판이 있으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이제는 이스라엘 번호판이 달렸어도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차량은 모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다 자기 친구, 이웃, 식구들인 셈이니 더 이상 돌을 던지지 않는다.

Tuesday, 26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쉰 다섯번째 날 – 라헬의 무덤

지난 주 시작할 때, 선생님이 기말고사를 수요일에 본다고 했는데, 갑자기 오늘 말을 바꿔서 시험을 바로 보겠다고 해서 시험을 봤다. 다른 학생들은 좀 열받았지만 난 뭐 하루 더 공부한다고 성적이 더 잘 나올 것도 아닌 걸 알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방과후에 라헬의 무덤에 가려고 했다. 몇일 전에 구글에서 검색을 하니까 검색 결과로 나온 웹사이트 중에 이스라엘 당국이 라헬의 무덤에 걸어가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반드시 뭔가를 타고 가야만 한다는데, 일단은 시도해 보기로 했다.

Dumb boys doing dumb things

멍청한 놈들이 멍청한 짓거리 하고 있네

그래서 방과 후에 검문소까지 걸어갔는데, 라헬의 무덤이 분리장벽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분리 장벽 근처의 헤브론 길을 걷고 있을 때 (검문소는 아직 멀리 있다) 한 스무 명쯤 되는 아이들이 길에 있는 것을 봤다. 아마 중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아이들인데, 도로에 쓰레기와 돌들을 잔뜩 놓아 두고는 길을 막고는 지나가려는 차에는 소리지르고 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 옆의 인도로 지나가고 있었는데, 거의 다 지나갔을 때에 그놈들이 내게 달려 오더니 나를 거칠게 밀치고 내게 뭐라고 막 소리를 질러댔다. 나중에 어떤 인간이 이스라엘에 대해 시위하는 거라고 얘기를 해 줬는데, 이해가 안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을 불법적으로 쓰레기를 이용해서 막고 팔레스타인 차량에 소리지르고 욕하는게 어떻게 이스라엘에 대한 시위라는 건지. 여기는 A 구역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리고 관광객에게 욕하고 소리지르고 위협하는 게 어떻게 이스라엘에 대한 시위인지 이해가 안된다. 인도에는 상점 앞에 수많은 어른들도 있었는데, 단 한명도 관광객을 해꼬지하는 아이들을 막거나 제지하는 놈이 없었다. 아이들이 나를 밀치는 게 점점 거칠어 지고 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서 몇놈 뒤지게 패줘야 겠다고 드디어 결심을 했다.

Nostalgic Tear Gas

추억의 최루탄

그때,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최루탄 쏘는 소리였다. 대학생 때 시위 좀 해서 최루탄 많이 맞았지. 나는 아내가 시카고에서 사준 농부 모자 때문에 아주 멀리서도 관광객 티가 팍팍 난다. 파수대에 있는 이스라엘 병사가 관광객 한명이 성난 팔레스타인 아이들에 둘러쌓인 것을 보고 나와 아이들 있는 곳을 향해 최루탄을 두 방 쏜 것이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순식간에 도망가서 사라졌다. 분리 장벽 위에 있는 이스라엘 파수대를 올려다 보니 최루탄을 쏜 병사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이것으로 최루탄은 날 위해 쐈다는 게 명확해 졌다.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게 팔레스타인 경찰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여기 A 구역은 팔레스타인 경찰이 치안과 질서를 담당하는 곳인데.

마침내 이스라엘 검문소에 도착했을 때 주인집 아저씨인 함디 바누라를 만났다. 그래서 검문소 내 안내를 해 줬다. 검문소 내부는 마치 미로처럼 어지러운데, 덕분에 헤매지 않고 쉽게 통과했다. 주인집 아저씨는 이스라엘 입국 허가가 있지만 본인 차량을 운전해 갈 수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검문소 근처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검문소를 통과한 다음에 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에 간다. 맥코믹의 관광 안내인이었던 조지 필몬은 인종이 팔레스타인 사람이지만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운전해 다닐 수 있다.

검문소를 지나자 라헬의 무덤의 첫 문이 바로 있었다. 거기에는 아가씨 군인이 둘 있었는데, 위험하기 때문에 걸어서 가게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택시를 타야 하냐고 물었다 (예루살렘 중앙 버스 정류장에서 이곳에 오는 버스가 있다). 아가씨들이 내게 매우 친절하게 잘 대해줬다. 그래서 나도 귀엽다, 예쁘다 해 줬더니 좋아 죽는다. 한 10분 정도 같이 웃고 떠들었다. 그러지 차 한대가 왔는데, 아가씨 군인들이 차를 세우고는 나를 태워 가도록 명령했다.

Gender Separated Entrance

성차별 입구

도착하고 나서 영어로 차비 낼까요 하고 묻자 바로 하는 말이 “잉글리시 노”란다. 그래서 그냥 왔다. 건물에 들어가기 앞서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건물 앞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영어로 이게 라헬의 무덤이냐고 물었는데 이해를 못한다. 그래서 천천히 두서너번 “뤠-이-철-스 투-움?”이라고 하니 내게 되묻기를 “배스룸(화장실)” 이냐고 한다. 그래서 잠시 생각하니 뤠이철스 툼이 히브리어로는 “카베어 라켈”일 것 같아서 시도해 봤더니 알아 듣는다. 물론 유대인 회당에는 남녀칠세부동석이다. 입구가 따로 있다.

Inside the Synagogue of Rachael's Tomb

라헬의 무덤 회당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청바지 입고 유대인 모자 쓴 한 아저씨가 친절하게 내부 안내를 해줬다.

Rachael's Coffin

라헬의 무덤

위 사진은 실제 (하지만 전승 말고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라헬의 무덤이다. 라헬은 야곱 또는 이스라엘이 매우 사랑했던 아내다. 내 생각엔 남편은 라헬을 더 사랑했지만 하나님은 다른 아내인 레아를 더 사랑하신 듯 하다. 어째든 레아는 유다지파의 어머니가 되었고 결국 예수님과 다윗왕의 조상이 되었으니까. 게다가 라헬은 혼자 누워있지만 레아는 남편 옆에 묻혀 있으니까.

Toward Jerusalem

예루살렘을 향해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한가지 공통점이라면 늘 방향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무슬림은 메카를, 유대인은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만 다를 뿐.

Parking lot

주차장

여기는 라헬의 무덤에 있는 주차장이다. 사진 오른쪽의 길은 더 큰 주차장으로 간다. 몇일 전에 팔레스타인 쪽의 분리장벽을 방문했을 때 분리장벽의 모양이 왜 이딴식인지 불평을 했는데, 지금 보니 라헬의 무덤 때문이다. 라헬의 무덤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입장이 불가능하다. 첫 문에 돌아가는 것도 차를 얻어 탔는데, 아까 친절하게 대해줬던 아저씨가 대신 차를 잡아줬다. 문에 도착하자 아까 있던 아가씨 둘이 여전히 있어서 다시 조금 더 웃고 떠들었다. 검문소에서 집까지 약 1시간 40분 가량을 걸어 돌아왔다. 여기 주인집에 걸어왔다고 하니 기겁을 하면서 거기서 여까지 걸어오는 사람은 평생 처음 본단다.

Is it mosquito or what?

이게 모가야 뭐야?

예전에 모기에 잔뜩 물린 다리 사진을 올렸는데, 그 후로는 전자모기향을 피워서 좀 낫긴 한데, 그래서 계속 물린다. 오늘 블로그에 글을 쓰는데 팔이 따끔해서 보니 이 놈이 날 물고 있어서 현장에서 사살했다. 이게 모기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 모기의 약 사분의 일 크기다. 이렇게 작아서 방충망을 그냥 지나서 들어오나보다. 하지만 이제 이 집에서는 오늘 포함해서 이틀만 자면 되고, 공항에서 하루밤 지새면 집에 가니까 문제 없다.

Sunday, 24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쉰 세번째 날 – 베들레헴의 바라카 장로교회

여기 온 첫날 내가 머무는 집 앞에 장로교 간판이 있는 것을 봤다. 하지만 주인집에서 말하길 주일에 예배드리는 걸 한 번도 못봤다고 한다.

Church Entrance

교회 입구

주인집에서 말하길 베들레헴에는 더 큰 장로교가 있다고 하는데 위치는 잘 모르겠다고. 내가 부탁을 해서 벳자훌 장로교회에 (교회의 정식 이름은 목동의 들판 장로교회다)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위치를 물어봐 줬다. 교회는 헤브론 길에 있었고, 나를 교회까지 태워다 줬다.

Church Building

교회 건물

교회는 길의 아래쪽 (여기는 어디든 언덕이므로)에 있다. 그래서 내가 사진 찍은 곳인 서쪽에서는 지상 1층이 반대쪽인 동쪽에서는 지하 1층이 된다.

Common Room in the church with pingpong table

탁구대가 있는 친교실

문을 들어서면 바로 예배당의 뒷 부분으로 가게 된다. 거기서 오른쪽에 문이 있는데, 친교실로 가게 되며, 친교실에서 예배후 차를 마시거나 한다. 이 곳에서 청년부 모임이 있을 때에는 탁구도 친다고 한다.

Simultaneous Translator Receiver

동시통역 수신기

친교실에서는 기술실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 곳에서 프로젝터와 컴퓨터 등을 제어 및 사용하며 사운드믹서 등이 있다. 또한 동시통역 설비까지 갖추고 있다. 오늘은 나 하나를 위해서 동시통역이 이루어 졌다.

Christmas Year Round

연중 성탄절

베들레헴에서는 어디든 언제든 성탄절이다.

Childrens' Story Time

어린이 설교 시간

예배는 캐나다나 미국의 장로교 예배와 거의 같다. 아이들 포함해서 약 50명 정도가 참석했다. 어린이 설교 시간이 있고, 그 후에 아이들이 주일학교에 가는 것도 캐나다 미국과 같다. 예배는 캐나다 미국과 비슷하지만, 인구 구성은 좀 다른데, 대부분이 2-30대의 젊은 부모들이었다. 꽤 이상적인 인구 구성인 아닌가. 이곳에서도 그리스 정교회 같은 경우는 대부분 나이 많이 잡수신 분들이 교회에 간다. 예배는 1시간 반 정도였는데, 그리스 정교회 처럼 3시간이 아닌 게 너무 감사하다.

Back to School Gift

개학 선물

모든 아이들은 주일학교에서 학용품 꾸러미를 선물로 받았는데, 내일 개학이라고 한다.

Playground at Church

교회 놀이터

북미에 있는 교회들은 대부분 뜰이 있고 내가 다니는 네이퍼빌의 낙스 장로교회와 같이 부자교회는 자체 놀이터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교회는 놀이터가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이 곳에서도 내가 방문해본 그리스 정교회는 아이들 놀이터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 장로교회에서 아이들 놀이터가 비록 조그마지만 있는 게 너무 좋았다.

Olive Everywhere

감람나무는 어디에나

여기는 무슨 공터만 있으면 감람나무 (올리브)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게 무슨 법이나 되는 듯 하다.

오늘 보니 벳자훌에 있는 장로교회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주일 예배를 이 곳에 합류해서 드린다. 사실 이곳 베들레헴 장로교회의 지부라고 한다. 또한 벳자훌에 보육원과 교육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어째든, 덕분에 집에 돌아올 때 한시간 20분 넘게 걷지 않고 차를 얻어 타고 왔다. 벳자훌 장로교회가 내가 사는 집의 진짜 옆집이라는 게 너무 감사할 뿐.

예배후 친교 시간에 사람들이 내게 여러 질문을 했다. 그 중에는 “외로워?”같은 것도 있었는데, 아마 미혼인지를 묻는 것 같았다. 왜냐면 바로 다음에 예수님 믿는 참한 아가씨 많다고 내게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나 밋-자위즈”라고 말을 했다. 이 말은 자위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결혼했다는 뜻이다. 또 다른 아주머니가 여기에 얼마나 있었냐고 물었는데, 내가 되물으면서 “팔레스타인 말이에요?”라고 하자 “팔레스탄이라고 말해줘서 고마워요”라고 했다. 나중에 서안지구(웨스트 뱅크)를 여행할 사람에게 조언을 하나 하자면, 여기를 “이스라엘”이라고 칭하는 건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다. 또한 여기 사람들은 서안지구(웨스트 뱅크)라고 불리는 것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제일 좋은 것은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러주는 것이다.

Who knows this?

이거 기억하는 사람?

교회에서는 몇몇 기념품과 교회 음악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 중에 일부는 카세트 테입으로 되어 있었다. 카세트 테입을 들어본 게 몇년 전인지 기억도 안난다. 이걸 틀만한 플레이어도 없기에 CD보다 훨신 쌈에도 불구하고 살 수가 없었다. 근데, 이건 판다는 건 사람들이 아직도 카세트 테입을 듣는다는 거 아닌가?

Arabic Gospel CD

아랍어 찬양 CD

카세트 테입 대신에 아랍어도 된 찬양 CD를 샀다. 내 이웃이 원한다면 빌려줄 수도 있다. 교회에서는 30세겔에 팔고 있었는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아마존에서는 좀 더 싸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5세겔 (약 2천원) 정도고 그냥 교회를 도왔다고 생각하련다.

오늘의 주제와 관련있는 건 아니지만, 주인집 아저씨가 이스라엘 정부에서 만든 경보 어플을 깔았다. 이 어플은 가자에서 미사일, 로켓이 발사되면 위치를 경보로 알려주고 사이렌을 울려준다. 그런데 정말 말 그대로 1분에 두 번씩 경보가 울린다. 위치는 대부분 남부 이스라엘이어서 대피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여기 벳자훌이나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대피소 자체가 없어서 대피할 곳도 없다.

Thursday, 21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쉰번째 날 – 베들레헴의 분리장벽

Mosquito bites on my leg

모기에 물린 다리

이번 여행 동안 호텔에서든지, 호스텔에서든지, 지금 머무는 홈 스테이에서도 모기가 없었다. 그런데 나흘전 갑자기 모기에 마구 물리기 시작했다.

Mosquito bites on my foot

모기에 물린 발

더이상 견딜 수가 없었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래서 주인집에 얘기를 하니 전자모기향을 줬다. 그래서 어제는 모기에 물리지 않았다.

Separation Wall - Jesus Wept

분리장벽 – 예수께서 우시니라

어제 선생이랑 싸운 뒤에 오늘은 선생이 자중했다. 하루 종일 전혀 화를 내지 않았고 꽤 친절했다. 어제 학장이랑 선생이 제일 염려했던 건 내가 중도에 하차할까봐였다. 물론 난 그러진 않는다. 어쩌면 선생이 어제 학장이랑 면담한 후에 자기가 짤리고 대체 선생을 구하기 쉽다는 것을 알고 본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깨달았나보다. 여기에 실직률은 꽤 높은데다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아랍어 선생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다.

Separation Wall Painting

분리장벽의 그림

어째든 오늘 방과후에 학교에서는 아랍어 학생들 모두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간다고 했는데, 나를 비롯해서 꽤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지 않았다. 집에 가면 점심이 공짠데 왜 따로 돈을 또 내고 밥을 사먹어? 그 대신에 나는 분리장벽에 걸어갔다.

Wall surrounded House

장벽에 둘러 쌓인 집

장벽은 그냥 똑바르게 가질 않는다. 정말 많이 굽고 이리 저리 휘어져 있는데, 누가 왜 지도에 이런 모양으로 장벽을 세울 걸 결정했는지 이해가 안간다. 정말 지랄 같은 것 중 하나는 위 사진에 나온 집이다. 집이 장벽에 삼면이 둘려쌓였다. 왜 이스라엘은 저런식으로 지랄맞게 장벽을 세운 것일까?

Wall becomes canvas

벽은 캔버스가 되었다

장벽은 정말 끔찍한 것이다. 일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차타고 단지 15분 거리인 예루살렘에 가질 못하고, 갈 수 있는 사람도 꽤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 장벽을 예술을 위한 거대한 캔버스로 바꿔버렸다.

Smiling Lady with rifle

소총들고 웃는 아줌마

위 사진은 날 좀 슬프게 만들었다. 난 어느 쪽이든 폭력을 사용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위 사진의 아줌마는 소총을 들고 웃고 있다. 이 그림보다는 꽃을 들고 웃는 여인을 보고 싶다.

Make Hummus Not Walls

장벽이 아니라 허머스를 만들어

위 글은 꽤 웃겼다. 장벽에 있는 일부 그림이나 글들은 상당히 웃긴다. “장벽이 아니라 허머스를 만들어.” 나도 그러길 빈다. 허머스는 여기서 많이 먹는 빵 찍어먹는 소스 같은 것이다.

John Paul 2 Foundation

요한 바오로 2세 재단

돌아오는 길에, “요한 바오로 2세 재단”이라는 건물을 봤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제 264대 천주교 교황으로 2005년까지 교황이었다. 그 후로 교황이 두분이나 더 계시지만, 나는 교황을 생각할 때면 늘 이 분이 떠오른다. 이 건물은 헤브론 길에 있다.

기왕 분리 장벽에 대해 쓰는 김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여행 자유에 대해 쓰고자 한다.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여행을 완전 못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여러 그룹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1. 이스라엘에 살고 이스라엘 시민권을 갖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
  2. 이스라엘에 살고 영주권을 갖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
  3. 서안지구에 살고 이스라엘 입국 허가를 갖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
  4. 서안지구에 살고 이스라엘 입국 허가가 없는 팔레스타인 사람.
  5. 가자 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

이스라엘에 살면서 이스라엘 시민권이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 이스라엘 시민과 동등한 권리를 누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여행할 수 있고, 전세계 어디든 여행할 수 있다. 지난 1월 맥코믹 여행의 가이드였던 조지 필몬이 이 그룹에 속한다. 이 그룹에 있는 사람들은 벤 구리온 국제공항을 통해서 해외 여행을 할 수 있다.

영주권을 갖고 이스라엘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여행할 수 있다. 하지만 해외 여행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여권도 팔레스타인 여권도 없기 때문이다.

서안지구에 살며 이스라엘 입국 허가가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여행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팔레스타인 여권을 갖고 해외여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벤 구리온 국제공항을 사용할 수는 없고 먼저 요르단에 간 후에 암만에 있는 공항을 이용해야만 한다. 주인집의 아버지인 함디 바누라가 이 그룹에 속해 있다.

서안지구에 살며 이스라엘 입국 허가가 없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은 여행할 수 있지만 이스라엘 지역은 여행할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팔레스타인 여권을 갖고 세계여행을 할 수 있다. 사실 이스라엘 시민(이스라엘 시민권이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 포함해서)보다 갈 수 있는 나라는 더 많다. 왜냐면 이집트와 요르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이 이스라엘 국민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가 입국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발리에 갈 수 없다. 주인집 아주머니인 일함 바누라와 세 자녀가 이 그룹에 속해 있다. 아줌마는 기독교인으로 정말 예루살렘과 나사렛을 방문해 보고 싶어서 몇 번 이스라엘 입국 허가를 신청했지만 모조리 거부당했다. 딸은 독일에서 공부했고, 아들도 다음 학년에 독일에 공부하러 간다. 사촌은 미국의 워싱턴주에 공부하러 간다. 이 그룹의 사람들은 해외 여행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이스라엘을 여행할 수 없고, 가까운 벤 구리온 국제공항을 이용할 수 없다는 점 뿐이다.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극소수의 몇몇 정치 지도자를 빼고는 아무도 아무데도 못간다. 이스라엘 여행은 물론 같은 팔레스타인 지역인 서안지구로도 못간다. 이는 대부분 이스라엘 탓이지만 이집트도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집트는 가자지구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아무도 입국을 허용하지 않는다. 예전에 가자지구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여권을 발급받지 못했을 때 이집트가 자국 여권을 발급해 줬다. 하지만, 이집트 정부는 이집트 여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단 한 사람도 이집트로 넘어오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해외여행하는데 문제가 없다 (물론 불편을 하다). 그리고 일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지역에 여행을 할 수 없다.

Wednesday, 20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마흔 아홉번째 날 – 선생과 싸움, 그리고 헤브론

우리 반 아랍어 선생님은 마르와 바누라인데 지난 달에 결혼한 젊은 아줌마다. 물론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을 하지만 교육 방법에는 문제가 좀 있다. 날마다 꽤 많은 단어를 우리에게 내 주고는 모든 걸 다 외울 거라고 기대를 한다. 우리 교실에서 아무도 이걸 다 외우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늘 우리에게 화를 낸다. 그리고 우리가 참 바보같다고 스스로 느끼게 늘 한다. 늘 말하길 이렇게 쉬운 걸 왜 못하니라고 한다. 그래, 너한텐 쉽겠지. 하지만 우리한텐 안쉽거든.

우리 교실에는 다섯 학생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온 마테오, 스위스에서 온 안나, 독일에서 온 리나, 아프리카의 가나에서 온 클리토스 (클리토리스라고 부른다), 그리고 나. 다른 학생들도 모두 내게 몇번 말하길 자신이 너무 멍청이 같단다. 그런데 오늘은 선생에게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기분이 안좋아 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아랍어를 본인 기대만큼 하질 못하자 목소리가 점점 올라가더니 나중에는 우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3주동안 참아왔는데,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선생에게 맞받아 쳤다. 선생이 점점 감정적이 되더니 마치 자신이 여왕이고 내가 하인인 양 내게 명령을 했다. 결국에 나는 교실을 나와버렸다.

팔레스타인의 문화와 교육 방식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단 난 팔레스타인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를 마치 애들처럼 취급해선 안된다.

선생이 먼저 학장에게 얘기를 했고, 나중에 학장이 나한테 찾아와서 얘기를 했다. 선생이 학장에게 나에 대해 불평한 것 중 하나는 내가 질문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다. 이 얘길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학생은 원래 질문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도대체 여긴 뭐가 어떻게 된거지? 학생이 따라오질 못하면, 특히 모든 학생이 전부 따라오지 못하면 선생은 자신의 교수 방법을 바꾸고 학생이 습득할 때까지 반복해야지, 학생들에게 멍청하다고 소리 지를 게 아니라.

그리고 자기 주차 딱지 끊었기 떄문에 법정에 가야 한다면서 수업을 이틀이나 선생이 빼먹었다. 4주 동안에 이틀이면 굉장히 많은 거다. 선생, 특히 이런 학원 선생은 학생 위에 군림하는 여왕이나 통치자가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일 뿐이다. 이 선생은 전혀 프로페셔널하지 못하고 완전 아마추어같다.

Jewish Settlement

유대인 정착촌

어째든, 학생 여섯이 방과후에 헤브론에 갔다. 이를 주도한 학생이 말하길 자기 친구가 공식 투어 가이드는 아니지만 훨씬 낫고, 헤브론 무덤만이 아니라 시장이니 여기 저기 갈 거고 팔레스타인의 실상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나도 꼈다. 위 사진은 헤브론 구시장 위의 유대인 정착촌이다.

Protecting Net

보호망

구시장의 일부 길은 위에 보호망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설치해 놨는데, 위에 있는 유대인 정착민들이 쓰레기를 엄청나게 쏟아 붓고 심지어는 돌맹이도 던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맥코믹 그룹이 경험했듯이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민들은 대부분 매우 종교적은데, 이런 종교적인 사람들이 비종교적인 사람보다 훨씬 악랄하다. 여학우 마라가 이곳 헤브론에서 크게 당하는 걸 봤지 않는가.

Market Checkpoint

시장 검문소

오늘은 헤브론에서 검문소를 세 군데 지났다. 하나는 구시장에서 나갈 때로 위 사진이다. 그리고 무덤의 유대인 쪽에 입장할 때와 무슬림 쪽에 입장할 때 검문소를 통과했다. 그런데 상당히 이상했던 게, 군인들이 꽤 친절했다. 우리한테 계속 웃어주고, 아주 나긋나긋 대해줬다. 아니,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고 좋았다. 누군가 그러기를 유대인들도 여러 인종이 있고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인종차별이 심하다고 한다. 또 말하기를 유럽계 (백인) 유대인은 이곳 헤브론에 군 배치를 잘 안받는다고 한다. 이곳 헤브론은 꽤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글쎄, 그 말이 100%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 둘러본 바에 의하면 사실인 듯 보였다.

우리는 유대인 회당 쪽에 먼저 들어갔다. 내가 거의 무슨 투어 가이드같이 하게 되었는데, 비공식인 우리 팔레스타인 투어 가이드는 유대인 회당에 입장이 금지되어 있고 또 내가 히브리어를 읽을 줄 알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 무슬림 쪽 검문소를 통과하고 나니 무슬림 기도 시간이 되어서 한시간 동안 입장이 금지되었다. 그래서 무슬림 쪽 입장은 포기했다. 가짜 투어 가이드가 말하길 “유대인 쪽 봤잖아요. 거기랑 똑같이 생겼어요” 라고 했다. 사실 많이 다르게 생겼다. 마음 같아서는 그놈에게 “너 유대인 쪽 한 번도 못 들어가 봤는데 같은지 다른지 어떻게 알아?”라고 묻고 싶었다. 자칭 투어 가이드는 말 그대로 아무 것도 한게 없었고, 사실 내가 했다.

Hirbawi Textile Factory

힐바위 면직 공장

그 후에 힐바위 면직 공장에 갔다. 기계가 완전 낡아서 무슨 산업혁명 보는 줄 알았다. 두 여학우가 목도리 같은 면직을 좀 사려고 했는데, 판매원이 가격을 굉장히 높게 불렀고, 태도가 굉장히 무례한데다 협상할 의지도 없어 보였다. 여학우들은 사지 않았는데, 가격보다는 그놈들 태도 때문이었다.

Another Glass Factory

또다른 유리 공장

그 후에는 유리 공장에 갔는데, 맥코믹 그룹이 방문했던 곳이 아니었다. 훨씬 작은 곳이었지만, 뭐 유리 만드는 건 다 똑같다.

돌아갈 때, 투어 가이드가 공장 두 곳을 들렀으니 돈을 더 내란다. 30세겔 이었는데, 1인당 치면 5세겔이어서 그냥 냈다. 정식 투어 회사는 집에까지 태워다 주는게 이놈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냥 우리를 베들레헴 대학교에 내려다 줬다. 결국 나는 마찬가지로 50분을 걸어야 했다. 그냥 정식 투어 서비스를 이용하는게 훨씬 안전하고 낫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오늘은 완전 시간과 돈 낭비였다. 게다가 오늘은 이번 여행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한 날이 되길 빈다) 아주 지랄같은 날이었다.

Monday, 18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마흔 일곱번째 날 – 축구 결승전

사실은 어제 일어난 일이다. 어제 밤 늦게. 여기는 낮에는 무지 덥기 때문에 사람들이 최대한 밤을 즐기려고 노력을 한다. 저녁이 되면 이웃들이 으레 우리 주인집으로 모인다. 그리고는 저녁 7시나 8시 즈음에 터키식 또는 아랍식 그 진한 커피를 마신다. 잠은 어떻게 들지 걱정할 필요 없다. 완전 밤 늦게까지 안 자니까.

Family Soccer Game in Beit Sahour

벳자훌의 가문대 축구경기

우리 주인집이 벳자훌의 YMCA에서 축구 경기가 있다고 해서 같이 갔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내가 보기엔 시 전체 인구의 약 사분의 일 정도가 모인게 아닌가 싶다.

Family Soccer Game in Beit Sahour

벳자훌의 가문대 축구경기

심지어는 전문적인 방송장비로 녹화까지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경기냐고 묻자 벳자훌의 가문별 대항 축구 경기란다. 영어로 패밀리라고 했지만, 정황이나 느낌 상 가족보다는 가문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듯 하다. 여기는 오랜 역사와 더불어 사람들의 유동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유입도 유출도 거의 없다) 같은 성씨는 무조건 같은 친척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같은 도시에 사는 같은 베이커라고 해서 친척일 확률이 별로 없지만 말이다.

Family Soccer Game in Beit Sahour

벳자훌의 가문대 축구경기

엄청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울타리 밖에서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었고, 심지어는 건물 옥상에서도 사람들이 관람하고 있었다. 게다가 전후반전 사이의 쉬는 시간에는 경품 추첨까지 있었다. 한 아줌마가 대상인 평면 테레비를 타갔다.

오늘 결승은 바누라 가문과 이름을 잊어버린 또 다른 가문의 대결이었다. 바누라 가문은 벳자훌에서 가장 큰 가문이고, 다른 가문은 두번째로 큰 가문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열 여섯 가문이 가문 축구팀을 갖고 있으며 해마다 이런 친선 경기를 한다. 물론 열 여섯가문 보다 더 많은 가문들이 있지만, 나머지 가문은 조그만해서 별도의 축구팀을 갖추지 못했다고 한다.

오직 두 가문만 모였는데도 마치 도시 전체 축제 같았다. 이 곳에서 가문의 결속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 내 생각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죽이는 건 절대 효과가 없을 것이다. 만일 이 가문에서 한 사람을 죽이면, 여기 운동장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단번에 적으로 돌변하는 데다가 모두가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변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사람들을 한번에 모조리 죽일 수 없다면 팔레스타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하나 더 말하자면, 이런 큰 행사가 가능한 이유는 이들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무슬림 가문은 이런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런 행사는 남녀 불문하고 가문의 모든 구성원이 이런 공공 장소에 함께 몰려와서 함께 섞여서 함께 놀고 즐기는 것인데, 무슬림 여성들인 공공장소에서 남자들과 함께 어울려 놀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팔레스타인의 기독교 여성들은 (적어도 내가 말해본 사람들은 모조리) 자신이 무슬림이 아니라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것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시리아에서 이슬람 국가라는 꼴통들이 하루만에 700명을 죽였다는 절망적인 뉴스를 봤다. 어젯밤에는 벳자훌에서 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시리아나 이라크에 있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삶을 즐길 수 있는 때가 어서 오길 기도한다.

Sunday, 17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마흔 여섯째 날 – 팔레스타인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에서 주일 예배

오늘은 주인집 아주머니를 따라 벳자훌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에 갔다. 예배는 아침 7시에 시작인데 집에서 7시 5분에 출발했다. 교회 가는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 벳자훌이 상당히 조그만 마을이기 때문이다.

Paintings in Narthex

복도의 그림

성전 들어가기 전의 공간에는 그림이 네 개 걸려 있었는데, 그 중 두 개는 알겠고 나머지 두개는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알아 본 것 두 개는 당연히 예수님 그림과 성모 마리아 그림이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곳에 서서 그림 네개에 모두 절하고 뽀뽀했다.

Candle Light

촛불

성전 앞 공간의 한쪽 구석에는 촛불을 결 수 있는 곳이 있었고, 나도 하나 켰다.

Blessing, blessing

축복, 축복

예배 내내 사람들이 앞쪽의 오른쪽 구석으로 식구별로 나갔다. 그리고 사제 앞에 허리를 굽혀 머리를 숙이는데, 여자는 반드시 스카프로 머리를 가려야 한다. 그러면 사제가 수건 같은 걸로 모든 사람들의 머리를 덮어준다. 그리고 손으로 십자가 모양을 만들고는 뭐라고 한참 축복을 하고, 마지막으로 다시 십자가를 손으로 만들면서 축복을 끝낸다. 그리고 수건을 치우고 나서 포도주와 빵을 각자에게 먹인다. 성찬인 듯 하지만 성찬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또 아니다.

Kissing the Bible

성경에 뽀뽀를

실제 예배는 8시 15분 경에 시작한다.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한 건 뭐? 지금까지는 예배에 대한 준비로 하나님께 예배의 허락을 구하고 축복을 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제가 황금 성경을 들면, 앞자리에 있는 남자들은 위로 올라가 성경에 뽀뽀를 한다. 그 후에는 사제가 성경을 들고 성전 중간쯤으로 나오면 여자들이 똑같이 성경에 뽀뽀를 한다.

Light up the Church!

성전을 밝히라!

그 후에는 성전에 있는 모든 불을 켠다. 심지어는 성탄절 장식까지 불을 켠다. (뒷문에 있다)

Choir seat

성가대석

성가대는 2층에 있다.

First Procession

첫번째 행진

그 뒤에는 행진을 한다. 소년들이 초 두개, 심볼 두 개, 그리고 십자가를 들고 행진을 하면 사제들이 성경책을 들고 뒤따른다. 십자가 앞에 가는 심볼 두 개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을 의미한다고 한다.

Men and Women should not seat together

남녀칠세부동석

이스라엘에 있는 대부분의 유대인 회당은 남자와 여자 공간이 따로 있다. 하지만 교회는 그런 거 없다. 모든 남자와 여자는 한 공간에서 함께 하나님을 섬긴다. 하지만 위 사진을 잘 보면, 모든 남자들은 앞쪽에 몰려 앉아 있고, 여자들은 모두 남자들 뒤쪽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주인집 아주머니와 함께 갔기 때문에 거의 맨 뒤에 앉았다. 주변의 모든 여자들이 날 쳐다보는 눈빛이 “이자식 뭐야?” 하는 듯 했다.

Second Procession

두번째 행진

예배가 거의 끝날 때 즈음, 두 번째 행진이 있었다. 행진을 할 동안에는 사람들이 물품 (심볼, 십자가, 성경)들에 뽀뽀를 하거나 자기 손가락에 뽀뽀한 후에 손가락을 물품들을 향해 뻗는다.

Offering is Universal

헌금은 세계 공통

헌금 걷는 방식은 전세계 공통인듯 별반 다르지 않다.

Sharing the bread, but not communion

떡은 떼지만 성찬은 아니다

그 후에 어떤 아저씨가 사람들에게 빵 덩어리를 나눠주기 시작했고, 앉아있던 많은 (나이드신) 아주머니들도 집에서 자신이 가져온 빵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게 성찬인가 보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아니었다. 이를 거룩한 빵 (혹시 진설병을 말하는게 아닌지)이라고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성찬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다 먹고 축복을 받도록 이런 빵을 모두에게 나눠주는 거라고 한다.

This is communion

드디어 성찬

그리고 나서 예배의 맨 마지막에 진짜 성찬이 있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앞으로 나아갔다. 사제는 포도주와 빵을 축복하고는 한사람 한사람 나눠줬다. 몇분 전에 들은 대로 모두가 성찬에 나가는 건 아니었다. 무슨 규칙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규칙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 그냥 나가지 않았다.

예배는 총 3시간동안 진행되었다. 전형적인 장로교 또는 여느 개신교 예배와는 완전 달랐다. 내가 만일 아랍어를 알아 들었다면 더 좋고 신났을텐데. 음악담당(캔터)이 굉장히 노래를 많이 했다. 캔터는 무대 또는 성소의 양옆에 있었는데, 누군가 그러기를 성경 혹은 자신들의 전승에서 어떤 사람이 천국을 봤는데, 천사들이 보좌 양 옆에서 찬양을 하는 것을 봤다고 한다. 그래서 캔터들이 양 옆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

좀 지루했지만 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Saturday, 16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마흔 다섯번째 날 – 가자지구 사람들을 위한 음식

오늘은 벳자훌에 있는 슈퍼마켓에 갔다.

Palestinian Supermarket

팔레스타인 슈퍼마켓

위 사진과 같이 생겼다. 거대한 코카콜라 간판이 눈에 띈다.

Food for Gazans

가자 사람들을 위한 음식

거기서 위 사진에 있는 쇼핑카트를 발견했다. 큰 사진이 붙어 있고 내가 읽을 수 없는 아랍어로 뭐라고 막 적혀 있었다. 그래서 일하는 여자아이에게 물어봤다.

나: 말해바 (안녕)
여자애: 말해바 (안녕)
나: 비흐키 잉글리제? (영어 할 줄 알아?)
여자애: 예스.

위 상황이 내 현재 아랍어 수준을 나타내 준다. 어째든, 여자애한테 저 쇼핑카트가 뭐냐고 물었더니 가자지구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할 음식을 기부하는 카트란다.

My food donation

내가 기부한 음식

그래서 캔 두 통 사서 카트에 넣었다.

집에 와서 여기 식구들에게 얘기하니 요즘은 웨스트 뱅크의 모든 슈퍼마켓에 가자 사람들을 위한 음식 기부 바구니가 다 있다고 한다.

Pita Bread

피타 빵,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 찾음

이 집 주인은 가자에 친한 친구가 있다는데 어제 통화를 했다고 한다. 가자에 있는 그 친구에 따르면 요즘 가자에서는 음식을 배급해 주고 있는데,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 친구는 11시간을 줄서서 기다려서 (정확히는 자신이 6시간, 아내가 5시간을 기다렸다) 위 사진에 있는 피타 빵 하나를 받았다고 한다. 온 식구에게 주는 음식이란다. 그게 피타 빵 한 줄이 아니라 딱 하나. 여기서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데, 아랍어로 피타 빵을 뭐라 하는지 까먹었다.

구글 플러스에서 한 아줌마가 이스라엘에 집들을 부숴서 가자 사람들이 겨울에 얼어 죽을 거라고 글을 써놨는데, 정말 급한 것은 넉달 후의 추위가 아니라 당장 오늘 먹을 음식이다. 내가 알기로 가자는 얼어 죽을 만한 추위가 있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댓글을 달아서 가자가 얼마나 춥냐고 물었더니 사흘 후에 답변을 달았는데, “가자는 추워”라고만 해놨다. 이건 사실 대답도 아니다. 이스라엘이나 다른 사람들을 비난 하는 것은 좋은데, 정확한 사실을 갖고 비난해야지 거짓말 갖고 하면 안된다. 사실 이스라엘을 비난할 정확한 사실이 수천개나 되는데.

어째든, 우리가 심각하게 가자에 있는 사람들을 실제 음식을 갖고 도와야 한다 (돈으로는 말고). 왜 돈은 아니냐고? 돈을 주면 하마스와 다른 정치 지도자들이 그 돈으로 무기 사고, 터널 만들고, 그리고 자기 배 불려서 지들만 백만장자가 되는데 쓰기 때문이다. 결국 가자 사람들은 계속 굶주리게 된다. 실제 음식을 갖고 가자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Friday, 15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마흔 네번째 날 – 저항

오늘은 금요일이기 때문에 학교에 원래는 수업이 없는 날이지만 선생님이 월요일 수업을 오늘로 옮겨서 우리 반만 수업을 하게 되었다.

아랍어로 요일 이름은 주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숫자를 사용한다. 주일은 “제1일” 그리고 목요일은 “제5일” 이렇게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금요일은 “주마 일”이라고 부른다. 내 생각에 이 말은 모스크를 의미하는 아랍어 “자미-“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지역은 어째든 무슬림이니까. 그래서 아랍어로 금요일은 “모스크 가는 날”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또한 토요일은 “삽트의 날”이라고 하는데, 이는 유대인의 안식일(샤바트)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Friday Worship of Muslims on the street

금요일 길거리에서 예배하는 무슬림들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왜 기독교 대학교가 금요일에 수업을 안하는지 알았다. 무슬림들이 모스크 꼭대기에 달린 확성기와 스피커로 엄청 시끄럽게 예배를 생중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위 사진의 반대쪽, 그러니까 길의 다른 쪽은 완전히 막아놨고 사람들이 전혀 다닐 수 없게 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말구유 광장 (메인저 스퀘어: 성탄교회 바로 옆에 있는 큰 광장)에는 무슬림들이 대단히 많이 집결해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나는 전혀 이동할 수가 없었다. 이거 좀 짜증난다. 게다가 우회하려면 한 참을 되돌아 걸어 나가야 한다.

Palestinians protesting against Israel

이스라엘에 대항해 시위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무슬림들의 예배가 끝난 뒤에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면서 많은 깃발을 올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가자지구를 위해서 이스라엘에 대항해 시위하는 거라고 한다. 시위하는 사람들은 “그 유명한” 이스라엘의 분리장벽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말하기를 이스라엘 군인들을 향해서 돌을 많이 던질 것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총을 쏠지도 모르는데 부디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Thursday, 14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마흔 세번째 날 – 베들레헴과 벳자훌

나는 베들레헴에 있는 베들레헴 대학교에서 공부하지만 벳자훌에 있는 집에 머문다. 날마다 등하교를 걸어서 한다. 한번 걷는데 50분이 걸리니까, 하루에 100분을 걷는 셈이다. 베들레헴과 벳자훌 모두 조그만 마을로 한 마을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다. 내가 머무는 집이 벳자훌의 반대편 외각에 있기 때문에 걷는 거리가 훨씬 멀어지는데, 만일 벳자훌 시내에서 베들레헴 시내까지 걸어 간다면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두 마을이 얼마나 조그만지 이해가 될 것이다.

Christians are easily found in Bethlehem and Beit Sahour

베들레헴과 벳자훌에서는 기독교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굉장히 가깝기 때문에 두 마을에는 비슷한 점이 굉장히 많고, 베들레헴의 반대편에 있는 벳잘라를 포함해서 세 마을이 하나의 경제권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두 마을에는 굉장히 많은 차이점이 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두 마을 모두 기독교인이 굉장히 많다. 이는 위치의 특수성 때문인데, 베들레헴은 기독교에서 구세주로 믿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곳이고, 벳자훌은 목동의 들판이 있는 곳이다. 이 목동의 들판이란 천사들이 양치는 목동들에게 나타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려준 곳이다. 하지만 베들레헴에는 기독교인의 대다수가 천주교고, 벳자훌에는 대부분이 그리스 정교회다.

두 마을 모두 아랍어를 쓰지만 좀 다르다. 발음도 다르고 단어와 표현도 또한 다르다. 여기 사람들은 말하는 걸 들어보면 이 사람이 베들레헴에서 왔는지, 아니면 벳자훌 사람인지 100% 알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베들레헴에서는 깔브가 개고, 깔립이 마음이다. 하지만 벳자훌에서는 그 반대가 된다. 그래서 벳자훌 사람이 “내 마음을 받아주오”라고 하면 그게 베들레헴 사람들 귀에는 “내 개(강아지)를 받아주오”로 들린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한 동사의 활용하는 모습도 다르다. “바꼴”이라는 동사의 2인칭 단수 남성 현재를 한 곳에서는 “브또낄”이라고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브따꼴”이라고 한다. 또한 모른다는 말을 할 때도 벳자훌에서는 “마 바라프”라고 하지만 베들레헴에서는 “바라피쉬”라고 한다.

이러한 언어의 차이 때문에 걸어서 30분도 안걸린다는 근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언을 구사한다고 표현을 한다. 이는 결국 역사적으로 두 마을 사이에 왕래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짐작했겠지만, 주로 베들레헴 사람이 벳자훌 사람들 놀리지 그 반대는 거의 없다고 한다. 마치 서울 사람이 시골 사람 놀리지 시골 사람이 서울 사람 별로 안 놀리는 것 처럼. 그런데, 이런 언어의 차이를 한 번 생각해 보면 참 어처구니 없는게, 마치 신림동 사람과 봉천동 사람이 꽤 다른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두 마을 사람들 모두 굉장히 강하고 분명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다. 베들레헴 사람, 그리고 벳자훌 사람이라는 인식이 또렷히 박혀 있다. 물론 그 둘 모두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는 강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Wednesday, 13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마흔 두번째 날 – 개인 이름일 바뀌는 팔레스타인

요즘은 날마다 얌전히 아랍어 수업을 듣고 있는데 단기 집중 코스라서 꽤 어렵고, 내가 이런 단기 코스에 약하다.

오늘은 교실에서 선생님이 첫 아들이 태어나면 이 곳에서는 이름이 바뀐다고 얘기해 줬다. 예를 들어서 남편 이름이 유세프고 아내 이름이 마르와인 경우에 야콥이라는 아들이 태어나면 남편 이름은 더 이상 유세프가 아니라 “아부 야콥”이 되고 아내 이름은 더 이상 마르와가 아니라 “임 야콥”이 된다는 것이다. 아부 야콥은 야콥 아빠란 뜻이고 임 야콥은 야콥 엄마란 뜻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법적인 이름이 변하는 것은 아니어서 신분증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생활에서는 실질적인 이름이 바뀌는 것이라고 봐야 하는데, 본인들도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부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 이름은 반드시 첫째 아들의 이름이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첫째로 딸이 태어나면? 그런 경우에는 딸의 이름으로 부를까, 아니면 아들이 태어나기까지 기다렸다가 이름을 바꿀까? 다음에 아들이 태어나길 기다리지 않고 첫째 딸이 태어나자마자 이름을 바꾼다고 한다. 하지만 딸의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그럼, 아들이 없는데 어떻게 해? 답은 간단하다. 부모들이 망상 상상을 하는 것이다. “언젠가 우리에게 야콥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들이 태어날거야.” 그리고는 스스로를 야콥이라는 미래의 상상속의 아들 이름으로 부른다.

만일 딸만 일곱이 태어나고 아들이 영원히 없는 경우에는? 그런 경우에도 여전히 실존하지 않는, 영원히 태어나지 않을 상상속의 아들 이름으로 본인들을 부른다. 물론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해 주고.

선생님께 만일 내가, 그러니까 부모 본인들이 딸의 이름으로 자신들을 부르고 싶어하면 어떻하냐고 물어봤다. 선생님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럴 순 없어! 그런 일 절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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