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Saturday, 19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열 여섯번째 날 – 야마다 교수

맥코믹 총장인 프랭크 야마다 교수님 역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있어서 몇 번의 전자우편을 주고 받은 뒤에 만날 약속을 잡았다.

A Park

공원

어제 밤에 교수님이 묵는 호텔에서 1시 45분에 만나기로 약속을 확정지었다. 나는 오늘 호텔을 아침 11시에 체크아웃 해야 했기에 약속시간보다 일찍 호텔에 갔다.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는 동안 공짜 와이파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연결을 했는데, 야마다 교수님에게서 다른 곳에서 만나고 싶다는 전자우편이 왔다. 어제 갔던 포카치아에서 만나자고 했다. 사실 안식일이기 때문에 별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위 사진은 호텔에서 포카치아까지 가는 길에서 통과한 공원이다.

With Dr. Frank Yamada, the president of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

맥코믹 신학교 총장인 프랭크 야마다 교수님과 함께

오후 2시경에 교수님과 만났다. 맛있는 점심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3시가 좀 넘어서 셔룻을 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구글에서 검색했을 때는 2012년에 쓰여진 글을 보여줬는데, 어느 곳에 가면 탈 수 있다고 나왔었다. 오늘 오전에 관광 안내에 갔을 때는 훨씬 더 먼 다른 곳을 알려줬다. 그런데 키카르 찌온에 갔을 때 어떤 아저씨가 “텔 아빕?”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바로 셔룻 운전자였는데, 원래 셔룻을 승객이 꽉 차면 출발하는데, 내가 마지막 승객이어서 곧바로 출발했다.

Payphone does not like coins

공중전화가 동전을 싫어해

텔 아빕의 중앙 버스 정류장에 갔고 우리가 만나기로 한 다른 버스 정류장까지는 특별 택시를 타고 갔다. 이스라엘에서는 두 종류의 택시가 있는데, 셔룻이라고도 하고 합승 택시라고도 하는 것과 한국에서는 그냥 택시라고 부르는 특별 택시가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4시 55분까지 기다렸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를 해 보려고 공중전화에 갔는데, 동전을 받지 않고 전화 카드로만 쓸 수 있는 것이었다. 곤란해 하는데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핸드폰을 빌려주셨다. 전화 통화를 하고 난 뒤에 모두들 안내 부스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On the bus

버스 타고 가는 길

라기스 발굴에서와는 달리 큰 버스를 타고 꽤 많이 운전해 갔다.

Givat Haviva

기밧 하비바

이 캠프의 이름은 기밧 하비바다. 여기엔 장단점이 있는데, 일단 와이파이 신호가 좋다는 것과 방마다 테레비가 있다는 것은 좋다. 하지만 세탁기가 없고 음식도 케드마보더 별로라는 것은 좋지 않다.

내일 다시 발굴이 일찍 시작하기 때문에 곧 자야겠다.

Friday, 18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열 다섯번째 날 – 예루살렘 복귀

아침에 케드마 숙소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예루살렘 중앙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Jerusalem Central Bus Station

예루살렘 중앙 버스 정류장

사람들이 구름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요즘과 같은 건기에 저렇게 구름으로 하늘이 뒤덮이는 것이 이상하다고들 했다. 최 박사님과 아로마에서 아점을 했다.

Gloria Hotel's View

글로리아 호텔에서 본 풍경

아침내 예루살렘 구시가지내 자파문 근처에 있는 글로리아 호텔에 돌아왔다. 위 사진은 새로 배정받은 151호실에서 찍은 것으로, 예전에는 178호실에 묵었다. 지난 한 주 동안 테레비도 없고 인터넷도 거의 안되는 곳에 있다가 와서 이스라엘과 가자의 문제에 대한 소식을 좀 듣고자 테레비를 켰는데, 더욱 충격적이고 끔찍한 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에서 비행기가 요격당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가자의 전쟁에 대한 뉴스는 거의 나오질 않는다.

좀 쉬고 나서 안식일인 내일 텔 아비브까지 가는 교통편에 대해 묻고자 여행자 안내소에 갔는데, 이미 1시 반에 문이 닫혔다. 안식일이 오늘 저녁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Empty Western Wall

텅빈 통곡의 벽

승천교회에 가고자 해서 통곡의 벽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통곡의 벽에 가까이 가는데, 총성이 계속 들리고 사람들이 벽에서 멀리 모두 물러나 있었다. 그리고 경찰차와 경찰 봉고가 굉장히 많이 있었다. 통곡의 벽이 늘, 특히 금요일에는 더 기도하는 사람들로 붐빈다는 걸 감안해 보면 위 사진에는 거의 텅 빈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이슬람 교도들이 모스크에서 공포탄으로 총을 쏘면서 기도하는 거라고 한다. 금요일에 통곡의 벽에 온 게 벌 써 몇 번인데, 한 번도 이런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정통 유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평상시에는 이러지 않지만, 긴장이 고조될 때에는 그런다고 말해주었다.

전쟁이 진행중이고, 총성이 마구 들리는데도 하늘에서 비행선을 하나 발견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여전히 사람들이 평상시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Pater Noster

주기도문 교회

승천교회에 가기 전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곳인 주기도문 교회에 먼저 들렀다. 벽에는 세계 각국 언어로 주기도문이 쓰여 있었다. 위 사진은 히브리어 처럼 보이지만 갈대아어다. 입장료는 8세겔이었다.

Church of Ascension

승천교회

그 후에 승천교회에 갔는데, 정말 실망했다. 지도에 나온 이름과 달리 교회가 아니라 모스크, 정말 작은 모스크였다. 5세겔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거의 볼 게 없다. 위 사진은 승천하실 때 남긴 예수님의 발자국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Tomb of the Prophets

선지자의 무덤

그 후에 선지자들의 무덤이라는 곳을 갔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이 곳에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가 묻혀 있다고 한다.

Church of Mary Magdalene from Dominus Flevit

눈물교회에서 바라본 막달라 마리아 교회

그 후에는 눈물 교회에 갔는데, 원래 이름은 Dominus Flevit인데, 이는 라틴이러 “주님께서 우시니라”는 의미라고 한다. 여기서 2차 성전시대와 비잔틴 시대의 무덤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위 사진은 눈물교회에서 바라 본 막달라 마리아 교회다.

눈물 교회를 나왔을 때 한 팔레스타인 노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나 가난해. 몇 세겔 만 줘”라고 하기에 갖고 있는 전부인 14세겔을 줬다. 그랬더니 “더 줘! 더 줘!”라고 해서, 더 이상 돈이 없다고 했더니 성질을 내면서 “20불 더 줘! 나 가난해! 20불 더 내놔”라고 하는 것이었다. 완전 말 문이 막혀서 대꾸도 않고 그냥 언덕을 걸어 내려왔다.

Focaccia Salad

포카치아 사라다

좀 더 쉰 다음에, 자파 길과 벤 예후다 길에 있는 키카르 찌온 (시온 광장)에 갔다. 라기스에서 같이 발굴한 사람 몇을 만나기도 되어 있었다. 안식일이 이미 시작되었고 온 도시가 완전 정지하고 문 연 식당이 하나도 안보여서 걱정을 했다. 그런데 나를 포카치아라는 뒷골목 식당에 데려갔다. 와! 온 도시가 회당 아니면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거기서 요시 교수님도 우연히 만났다.

Thursday, 17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열 네번째 날 – 표식 달기

오늘은 발굴 현장에 가는 날이 아니다. 요시 교수님을 비롯해서 몇몇 스태프만이 현장에 조감 (항공) 사진을 찍으러 갔다. 항공 사진은 특수한 회사에 맡기는데, 드론을 갖고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문제는 이스라엘 공군이 전쟁인 현 상황때문에 어떤 것도 하늘에 비행하도록 허락을 안해준다는 것이었다. 결국은 항공 사진을 찍는데는 실패하고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조잡한 사진을 찍어왔다고 한다.

Writing ID on pottery

도자기에 표식 적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케드마 숙소에 남아서 뼈와 도자기에 대한 작업을 했다. 오늘 내 일과는 도자기에 표식 번호를 다는 것이었다. 위 사진에는 글자가 크게 보이지만 굉장히 작게 쓴 것이어서 몇몇 사람은 읽지조차 못했다. 첫 줄은 발굴 허가 번호로 현장 위치와 연도를 나타낸다. 두번째와 세번째 줄의 첫 글자 (C)는 구역 번호를 나타낸다. 두번째 줄은 로커스 번호를, 그리고 마지막 줄은 바구니 번호를 나타낸다.

Pattern on Pottery

도자기의 문양

도자기에 표식을 적는 동안에 위와 같이 멋진 문양이 칠해진 도자기 파편을 발견했다.

Tel Lachish Digging Certificate

라기스 발굴 증명서

점심시간에 내가 라기스에서 실제로 발굴했다는 증명서를 받았다.

Professor Yossi

요시 교수님

요시 교수님과 사진 찍는 팀이 오후에 돌아왔고, 모두 도자기 분석조에 합류했다. 요시 교수님은 고고학적 도자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 줬다. 위 사진에서 요시 교수님은 중간에 앉아 있고, 오른쪽의 남자는 히브리 대학교에서 요시 교수님 밑에서 고고학 박사 학위를 진행하고 있는 이고라는 학생이다.

Stone Knife

돌칼

위 사진은 고대의 칼로 (전쟁용이 아니라) 가정용으로 아마 요리를 비롯한 여러 목적으로 쓰였을 것이다. 이 것은 아마 청동기 시대의 것인데 왜 청동기 시대에서 석기를 쓸까? 청동기 시대라는 것이 청동기만을 썼다는 게 아니라 청동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디오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신문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테레비가 나왔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터넷과 웹이 퍼지기 시작할 때는 테레비가 종말할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신문, 라디오, 테레비, 인터넷 모두를 동시에 쓰고 있다. 요시 교수님에 의하면 철기가 보편화 되고 나서야 사람들이 석기를 쓰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케드마 숙소에서 피자 파티를 했다. 공식 뒷풀이는 수요일에 한다고 하는데, 나는 메깃도에서 발굴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참가할 수가 없다. 수요일은 또한 요시 교수님의 생일이라고 한다. 요시 교수님, 생일 축하해요!

Tuesday, 29 January 2008

TV가 생겼다

Filed under: Lang:한국어,Subj:Canada,Subj:Life — Jemyoung Leigh @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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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TV를 주셔서 이제 테레비를 갖게 되었다. 🙂

TV

오래되어 보이지만, 화질은 꽤 선명하게 잘 나온다. 그런데, LG도 아닌 골드스타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하던 그 골드스타!

TV

채널도 손으로 돌려야 한다. 🙂 그리고 올해 들어 21년 된 놈이다.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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