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Friday, 18 November 2016

Public Library

When people ask me what I am doing these day, I tell them that I spend most of the time at public libraries, and that is true.  After I finished school, I moved into my wife’s parents’ house temporarily (hopefully).  And they do not have internet home.  That is why I began public library tour.

사람들이 요즘 뭐하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시간을 공립 도서관에서 보낸다고 대답한다.  그게 사실이니까. 졸업하고 나서 처가집으로 임시 (제발!) 이사를 갔다.  그런데 집에 인터넷이 없어서 공립 도서관에 가기 시작했다.

I’ve been to many public libraries around Chicago suburbs including Naperville, Aurora, Darien, Bolingbrook, and couple more.  All public libraries have free wi-fi, free A/C and heater (according to season), free books, free CD, free DVD.  They also rent game consoles such as X-Box and PlayStation, game titles, laptops (both PC and Mac), hoopla, netflix and other devices.  At Naperville libraries, the survey is going on what people want to check-out: Google Chromecast, iPad, Go Pro Cam, and couple more cool gadgets.

시카고 교외지역의 여러 공립 도서관에 다녀봤다.  네이퍼빌, 오로라, 대리언, 볼링브룩을 비롯한 여러 도시들인데, 모든 도서관에는 와이파이가 공짜, 냉난방(계절에 따라)이 공짜, 책이 공짜, 음악 씨디가 공짜, 영화 디비디가 공짜다.  또한 엑박이나 플스와 같은 게임기를 대여해 주고, 게임 타이틀도 수천개 빌릴 수 있고, 랩탑 (피씨와 맥 모두)도 빌려주고, 후플라와 넷플릭스 같은 장비도 대여해 준다.  네이퍼빌 도서관에서는 현재 어떤 장비를 추가로 대여하고 싶은지 설문조사 중인데, 장비에는 구글 크롬캐스트, 아이패드, 고프로 캠 등을 비롯한 최신 장비들이 가득 예시되어 있다.

All these are free.  And I wish they would have free coffee as well.  But as Christine, the head librarian at JKM Library (for both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 and Lutheran School of Theology in Chicago), pointed out, these are not free.  The library is run by the taxes we pay.  And for that reason, I am so proud that I am paying tax.  And I am so happy that my tax is used for the public library.

이 모든 게 공짜다!  커피도 좀 공짜로 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JKM 도서관(맥코믹 신학교와 루터교 신학교의 도서관) 관장인 크리스틴이 지적한 것 처럼 이들은 공짜가 아니다.  도서관은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운영된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내가 세금을 낸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또 그 세금이 이런 공립 도서관에 쓰인다는 게 너무 기쁘다.

When I moved to Canada from Korea, I was so surprised at Toronto Public Libraries.  They are so awesome and great.  I’ve never seen such library in Korea.  I guess Korea also has similar ones but they are not accessible.  I usually went to big book stores to read (for free) such as Kyobo and Chongro.  But these libraries in Toronto and also in Winnipeg are so easily accessible and has a lot of books (even Korean books!) and provide various services to the public.  There are giant libraries in downtown area, but there are also small libraries in residential areas.  If the book you want is not available at your next door library, you can ask for it, then they will bring it so that you can pick it up at your own next door library.

한국에서 캐나다로 처음 왔을 때, 토론토 공립 도서관을 보고 너무 놀랐다.  이렇게 좋고 훌륭할 수가!  이런 건 한국에서 본 적이 없었다.  물론 한국에도 이런게 있겠지만 잘 알려지지도 쉽게 갈 수도 없었다.  한국에서는 주로 교보문고나 종로서적과 같은 대형 책방에 가서 책을 공짜로 읽었다.  토론토와 위니펙의 도서관들은 쉽게 찾아갈 수가 있는데다 책도 많았다.  (한국책도 있었다!)  또한 대중에게 여러 다양한 서비스를 해준다.  다운타운 지역에는 거대한 도서관이 있지만, 주거지역에도 도서관들이 많이 있다.  집 근처 도서관에 원하는 책이 없어서 신청을 하면, 그 책을 다른 도서관에서 운반해 줘서 집 옆 도서관에서 찾아갈 수도 있다.

These library system is so cool and awesome.  This is the ONE thing that I love the most in Canada and in America.  God bless the public libraries!

이런 도서관 시스템은 너무 훌륭하고 좋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바로 이런 도서관 시스템이다.  도서관 만세!

Thursday, 10 November 2016

낙태에 대해

최근에 폴란드와 한국에서 낙태가 큰 이슈가 되었고, 게다가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낙태하는 여자들을 처벌하겠다고 공약을 했기 때문에 낙태에 대한 내 생각을 좀 정리해야 겠다고 생각되었다.  이 것은 내가 나중에 참고하기 위한 것으로,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내 생각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을 분들은 끝까지 읽기 바랍니다.  다만 말이 좀 거칩니다.

나는 생명을 존중하는가(프로라이프)?

나는 프로라이프다 (프로라이프 pro-life는 낙태를 할 권리보다 태아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것이며, 그 반대는 프로초이스 pro-choice가 있다).  나는 할 수 있을 때는 늘 그리고 언제나 생명을 선택할 것이다.  내 생각에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므로 고결하다고 본다.  잉태되는 순간 비록 사람처럼 보이지 않지만 수정란이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생명은 특별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하기 때문에 낙태는 살인의 다른 표현에 다름 아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결혼 5년 동안 아이를 가지려 하는데 성공하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도 인정하는 바다.

낙태를 금지해야 하나?

아니, 그건 아닌 거 같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기 사정이 있는 법이어서 하나님처럼 전지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다른 이들을 판변할 수 었다고 본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가 캐나다 살 때 명예 살인이 있었는데, 이민온 이슬람 가족이었는데, 아버지가 고등학생 딸 아이를 죽였다.  그 딸이 강간을 당해 임신을 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 여학생이 낙태를 쉽게 받을 수 있었다면 (아버지 몰래) 지금도 살아있을테지.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낙태가 필요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십대 미혼모들이 날마다 얼마나 큰 고통과 차별을 받는지 모두 알 것이다.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그 모든 차별과 고통을 평생 감내하면서 살라고 강요할 수 있나?

낙태하는 여자를 처벌해야 하나?

무슨 개 좃같은 트럼프같은 소리를 하고 지랄이야.  여자들이 재밌어서, 좋아서 낙태 하는 줄 알아? 얼마나 낙심되고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면 낙태를 다 하려고 하겠어?  그런 여자들은 처벌이 필요한게 아니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온 사회가, 온 나라가, 아니 온 우주가 일어서서 그런 여자들을 도와줘도 모자를 판에.

만일 정 누군가를 처벌해야겠다면, 임신한 여자 뒤에 숨어있는 남자를 찾아서 처벌해라.  내가 알기로, 그리고 믿기로, 동정녀 마리아는 역사상 한 분 뿐이다.  그분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여자도 남자없이 임신하지 못한다. 반복하는데, 정 누군가를 처벌해야겠다면, 자지를 마구 놀리는 그 자식을 찾아서 처벌해라.

여자가 낙태를 생각한다면, 그녀는 바로 피해자다.  그게 강간이던, 연인사이의 일이던, 아니면 심지어는 결혼한 부부가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든 관계없다.  어떤 지랄같은 야만적인 사회가 피해자를 처벌하나?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여자가 낙태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뭘 해야 하나?

첫째, 우리는 우리 사회를 개선하고 우리들 스스로를 문명화해서 낙태가 필요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강간이 (부부사이의 강간도 포함) 사라지도록 남자들을 교육시키는 것을 포함하며 또한 미혼모들이 차별을 받지 않고 대신에 미혼모 되는 것이 개이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혜택과 돌봄과 따스한 시선을 줘서 여자들이 낙태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을 포함한다.

둘째, 우리 사회가 이상적인 유토피아가 되기 전까지는 낙태 서비스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낙태 서비스를 정말 받기 쉽도록 하고, 완전 극도로 비밀스럽게 유지해야 한다.  이런 비밀성은 특히 식구들 (남자 식구들에겐 더더욱)에게 확실하게 유지되어서 누가 낙태를 했는지, 누가 상담을 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서비스는 인터넷, 전화, 문자, 소셜 미디어, 본인방문, 우편 등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특수한 그룹을 만들어서 (국가에 한 그룹이나 지역별로 개별 그룹일 수도 있다) 낙태를 생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받은 여성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고심하고 고민해야 한다. 여성들이 백명이면 사연과 사정은 천 가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논의는 매우 진지하고 자세하고 깊이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이자 마지막으로, 우리 문화를 바꿔서 남자에겐 엄격하고 여자에겐 공정하게 대할 수 있어야한다.  우리 사회는 강간범들에겐 너무 관대하다.  미국의 브록 터너뿐만 아니라 한국의 수많은 개별 또는 집간 강간 (소위 돌림빵)을 한 사람들이 너무 말이 안되도록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  이는 강간해도 된다는 메세지를 던지는 것과 같다.  통계에 따르면 모든 범죄 중에 강간이 재발비율이 제일 높다고 한다.  심지어 강간은 마약 및 알콜 중도보다도 더 재발을 높게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법으로 처벌을 강하게 해서 강간범들은 모조리 자지를 잘라 버리도록 해야 한다.  자지가 없으면 강간도 못하겠지.  내 생각엔 이게 재발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런 성차별적이고 남성우월주의적인 나라에서 여자는 한낱 성적인 대상으로밖에 취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는 낙태에 대한 필요는 더욱 늘릴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와 일반적인 인식을 바꿔야만 한다. 우리가 강간 피해자들을 비난하는데 너무 익숙한데, 이건 너무 억울하다.  니가 씨발 야하게 입었잖아.  너가 취했잖아.  이 썅 누가 밤늦게 다니래 등등.  사람들은 이게 말도 안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여자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다녀도 안전해야 한다.  여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은 아무리 술에 취해 있어도 안전해야 한다.  여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은 어떤 시간이던지 안전해야 한다.

한번 당신이 테슬라를 새로 샀다고 생각해 보자.  그 섹시하고 엄청난 전기차인 테슬라 말이다.  그런데 다른 차가 있어서 일단 차고에 넣지 못하고 집앞에 주차를 시켰는데 차를 도둑맞았다.  그래서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이 한다는 소리가 “뭐요? 집앞에 뒀다고요? 뭐 씨발 그냥 훔쳐가 달라고 도둑한데 애원을 했네. 이건 전적으로 아저씨 잘못이에요. 아 일단 백프로 본인 과실이니까 저희 경찰들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네요.  이거 미친놈 아냐? 테슬라를 집앞에 둬? 븅신.”  이게 바로 강간 피해자를 비난 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다.  만일 어떤 여성이 강간을 당한다면, 그건 그 여성의 잘못이 아니다.  그건 일단 강간범의 잘못이고, 우리–이 사회의 개개인 구성원–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Wednesday, 9 November 2016

About the Election 2016

Last night’s election result was very much shocking to me.  Personally to me, Donald Trump being the president is not that scary.  But the fact that more than half of the people, precisely more than 70% of white people who have smiled at me were not actually smiling is much more scary.

어제 밤의 선거 결과는 정말 충격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도날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크게 무섭지가 않다.  하지만 여지껏 나를 보면 미소를 지어줬던 사람들 중의 절반 이상이,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백인들의 70% 이상이 사실은 미소를 짓고 있는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더욱 나를 무섭게 한다.

And I am reminded that some churches did not mention anything about the Charleston church shooting at the following sunday’s service.  And I cannot forget the old white gentleman who yelled at me not gently when I prayed to God to forgive us about the racism at the church shooting, that there is no such a thing as racism in this country.  I wonder what it would have been like if a black guy visited white church and shot and killed white people during the Bible study in the church.  Would the media and the church have been this silent?  How about a white lady that I met who told me that American racism began with Obama’s presidency?

생각이 나는데, 찰스톤 교회에서 총격이 있었을 때 (백인 남성이 흑인 교회에 가서 수요 성경공부하는 흑인들을 기관총으로 쏴서 죽인 사건) 그 주일 예배에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 교회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내가 교회의 총격  사건에 대해 우리의 인종차별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예배 후에 백인 할아버지 신사분이 내게 와서는 신사적이지 않게 이 나라에는 인종차별같은 건 없엇! 이라고 소리지르던 것은 잊을 수가 없다.  만일 흑인이 백인 교회에 가서 성경공부 중인 백인들을 쏴서 죽였다면 어땠을까 궁금하다.  언론과 교회들이 그때처럼 침묵했을까?  미국의 인종차별이 오마바가 대통령 되면서 생겼다고 주장하는 내가 만났던 백인 아줌마는 또 어떤가?

I though they are just a few in this country.  But I was completely wrong.  They are majority in this country.  One of my friend posted on facebook that his muslim friends asked him if they’d better leave this country.

나는 그런 사람들이 극소수인줄 알았는데, 내가 완전 틀렸다.  그 사람들이 이 나라의 주류였다.  내 친구 하나는 페북에 글을 올렸는데, 무슬림 친구들이 자기들이 이 나라를 뜨는 게 좋을지 물어봤단다.

I wonder why so many people did not care about his problems?  Almost 80% of republican women voted for him.  So, are they OK if other men grab their or their daughter’s pussy?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의 문제점들을 문제시 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공화당원 여자들의 약 80%가 트럼프에게 투표를 했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은 남자들이 자신의 보지를, 그리고 자기 딸들의 보지를 막 만져도 괜찮은 걸까?

The news last night kept saying uneducated white men.  And that reminded me the article  that I read before, written by Michael Moore.  When I was reading it, I was so afraid and now I am afraid that he was so right.  (http://michaelmoore.com/trumpwillwin/)

어제 뉴스에서는 계속 못배운 백인 남자들이라는 말을 했다.  그 소리를 들으니, 예전에 읽었던 마이클 무어가 쓴 트럼프가 이긴다는 글이 생각난다.  그거 읽을 때 꽤 무서웠는데, 지금은 그 글이 너무 정확해서 더 무섭다. (http://www.huffingtonpost.kr/michael-moore/story_b_11174964.html)

To confess, I am a Bernie backer though I voted for her this election.  And now I am a bit angry at DNC.  It is quite funny that Trump blamed her not being honest while he is the bigger liar, but the thing is that the voters did not care about him but cared about her very much.  She is kind of an icon for existing and corrupted politicians.  I also had some feeling that she is just a typical (and another) politician.  During the primary, I was able to tell why we should support Bernie even to the republicans.  But during this final game, I was not actually able to defend her but just attacked him.  And they did not care about him.  I guess there are so many people without reason to vote for him, but having reasons not to vote for her.

사실을 말하지만 난 버니 지지잔데, 이번 투표에서는 힐러리에게 표를 던졌다.  그리고 지금은 민주당에 화가 난다.  트럼프가 자기는 더 큰 거짓말장이면서 힐러리가 부정직하다고 비난하는 게 참 웃기긴 한데, 문제는 사람들이 트럼프에 대해선 신경을 안 쓰고 힐러리에 대해서만 신경쓴다는 것이다.  힐러리가 기성의 그리고 부패한 정치인의 상징같았다.  나도 사실 힐러리가 전형적인 정치꾼같은 느낌을 받았다.  경선을 하는 동안에는 심지어 공화당 지지자에게도 왜 버니를 지지해야 하는지 내가 얘기를 할 수 있었는데, 본선에서는 힐러리를 사실 잘 변호할 수 없었고 대신 트럼프를 비난할 뿐이었는데, 문제는 그들이 트럼프에 대한 비난은 신경도 안쓴다는 사실.  내 생각에 꽤 많은 사람들이 트럼프에게 투표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힐러리에게 투표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들은 갖고 있는 듯 하다.

If DNC worked on the primary fairly and set Bernie as the official nominee, I guess we could have won this.  It is sad but obviously Americans hate women more than I thought.  We are so bad sexists.  I used to say to other guys that we need to be feminists, but now I have to say that to women as well.  Ladies, if you do not value women, men will never value women at all including you.

만일 민주당이 경선을 공정하게 해서 버니를 공식 후보로 선출했다면, 이번 선거를 이겼을 듯 하다.  슬프지만 미국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여자를 미워하는 듯 하다.  우리는 정말 악질 남성우월주의자들이다.  나는 여지껏 남자들에게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말해 왔는데, 이제는 이 말을 여자들에게도 해야겠다.  여자들이여, 당신이 여자를 가치있게 보지 않는다면 남자들도 여자를 가치있게 보지 않아요.  그리고 거기에는 당신도 포함된다고.

When Trump began leading the poll, all the economical numbers including Dow Jones and other stock markets around the world began falling.  And the CIC website (Immigration website of Canadian federal government) went down because it could not handle the enormous traffic from her neighbour country.  I checked that this morning and it took 15 minutes to show the page after I clicked “English.”

트럼프가 개표에서 앞서나갈 때,다우 존스와 세계 각국의 주가와 같은 경제 지표들이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캐나다 연방정부의 이민국 웹사이트가 미국에서 너무나 접속이 많이 폭주해서 멈췄다고 한다.  오늘 아침에 확인해 보니 “영어”를 선택한 다음에 첫 페이지가 뜨는데 15분이 걸렸다.

I believed America and Americans that they must have common sense.  Now, I don’t know what to do.

미국과 미국 시민은 기본 상식이 있다고 믿어왔는데, 이제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Or maybe, it is the last (hopefully) resistance or strike back of the uneducated white men to the change and evolving of this country.

어쩌면 (제발) 이번이 못배운 백인 남성들의 이 나라의 변화와 진화에 대한 최후의 발악 또는 마지막 일격일지도 모르겠다.

Wednesday, 30 December 2015

미국의 성평등

미국에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미국 사람들과 얘기를 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미국 사람들은 미국이 그냥 가장 위대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나라라고 생각하며,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가끔은 다른 어느 나라에 살아 가봤냐고 물어보면 약 70% 정도는 아무데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일리노이 주 밖으로 나가본 적조차 없는 사람들이 꽤 많다.

정확히 어떤 면으로 미국이 가장 위대한 나라라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쩌면 요세미티 공원인가?  어쩌면 인구당 수감자 수가 가장 많아서 그런가?  아니면 인류 역사상 총기 범죄 및 살인이 가장 많아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교육, 의료, 복지 및 기간시설을 개선하는데 돈을 쓰지 않고 전세계 모든 나라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군대와 무기에 쓰기 때문일까(스톡홀름 국제 평화 연구소 2015년 팩트 시트)?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미국이 인권이나 성평등 부분등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라고 믿는다.  이 문제, 즉 인권에 대해서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반박하지도 않는다.  난 성 문제에 대해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는데, 내 목표는 성 평등이 아니라 성 공평이다.  이 부분에 대해 허핑턴포스트의 글을 최근에 읽었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5/12/17/story_n_8834932.html

이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돈이 중요한 잣대가 될 수는 있는데, 임금에 있어서 심각한 차별이 존재한다.  헐리웃이든 심지어는 백악관에서도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 적은 돈을 받는다.

미국의 내각에는 대통령을 제외한 23명 가운데 여성이 일곱으로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캐나다 내각에서는 정확히 절반이 여성이다.  심지어 원주민의 땅 반환 재판을 총괄하게 될 법무부 장관에는 원주민 여성이 임명되었고, 인도의 시크 교도 이민자가 국방부 장관에 임명되어 있기까지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미국이 정말로 위대한 나라가 되려면, 미국 언론들은 국민들에게 최면을 중단해야 하고, 미국인들도 “우리는 가장 위대해”라고 되뇌이는 심리적 자위를 그만둬야 한다.  그리고 위대함이라는 마약도 버려야 한다.

미국이 최악의 저질 국가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인권이나 여성 지위 등에는 북한이나 ISIS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과 비교해서는 거의 최고의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끊임없이 진보를 해야만 한다.

Thursday, 11 June 2015

Chaplaincy became a fetter

From this Monday, I am doing a CPE, Clinical Pastoral Education, which is hospital chaplaincy intern and education.  The orientation is scheduled for two weeks, and I have been only here for four days.  I don’t really know anything about hospital chaplaincy.

이번주 월요일부터 CPE라는 걸 하는데, 병원 원목 인턴 교육 과정이다.  오리엔테이션만 2주로 잡혀 있는데, 이제 겨우 나흘 했기 때문에 사실상 병원 원목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Next to the hospital parking lot, there is Target and I went there after today’s education to get Shopkick point.  While I was trying to get the point on my cellphone, a lady next to me asked help of me for her iPhone.  She looked sick, and kept saying that she could not think right because of her excessive medication. That sounded like she was a patient of my hospital, and she also saw my badge and figured out that I am an chaplain there.

병원 주차장 옆에는 타겟이라는 대형 마트가 있는데, 샵킥의 점수를 받기 위해 오늘 교육이 끝난 후에 잠시 들렸다.  핸드폰 들고 점수를 받으려고 하는데, 옆에 어떤 아줌마가 아이폰 갖고 좀 도와달라고 했다.  아줌마가 좀 아파 보였고, 게다가 약이 과해서 정신이 핑 돌아서 제대로 생각할 수가 없다고 하는 걸 보면 아마 우리 병원 환자인 듯 하다.  그리고 그 아줌마가 내 배지를 보고 내가 병원 원목이라는 걸 알아 버렸다.

She was trying to backup her cellphone to iCloud and she couldn’t.  The error message was saying it needs Wi-Fi for iCloud backup, so I helped her connect to Target Wi-Fi, and the backup worked.  She began a conversation for a few minutes until she figured out that I used to live in Canada.  Then she asked me which country I prefer.  I was being polite and said, “There are many things that America is better than Canada, and there are a few things that Canada is better than America.”

아줌마가 하려던 건 핸드폰을 아이클라우드에 백업하는 것이었는데, 와이파이가 연결되어야 한다는 메세지가 나왔기에 매장 와이파이에 연결을 해 줬더니 제대로 작동했다.  아줌마랑 몇 분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캐나다에서 살았었다는 걸 말했다.  그랬더니 미국하고 캐나다 중에 어디가 더 좋냐고 묻길래 공손하기 위해서 본심을 숨기고 “미국은 캐나다보다 좋은 점이 훨씬 많아요.  그리고 캐나다고 미국보다 좋은 점이 몇기 있긴 하죠” 라고 말을 했다.

She was a bit curious about what can possibly Canada be better than America, and asked me.  I said what I always say – “Well, hospitals are free.”  And she said, “yes, but they die while waiting.”  I replied, “Well, according to my experiences in both countries, the waiting times are not that different.  But the service quality may be different.”

그랬더니 아줌마는 흥미롭다는 듯이 호기심을 보이면서 어떻게 캐나다가 미국보다 좋은 점이 있을 수가 있다는 것인지 내게 물어봤다.  그래서 내가 늘 하던 얘기를 했다. “뭐 일단 병원이 공짜죠.”  그랬더니 아줌마가 하는 얘기가, “공짜긴 한데 기다리다가 다들 죽어버린다면서”라고 하길래, 내가 “글쎄요, 두 나라에 모두 살아본 제 경험으로는 기다리는 시간 자체는 비슷한 거 같아요.  다만 미국이 의료의 질이 훨씬 좋겠죠”라고 대답을 해줬다.

Because she asked me, I said the second thing as well, “the guns are illegal in Canada.”  Then she looked extremely shocked and almost shouted, “What? Are you saying that is better?  YOU DON’T BELIEVE IN THE RIGHT TO CARRY GUNS?

아줌마가 또 뭐가 좋은지 묻길래 캐나다에서는 총이 불법이라고 말을 하자, 굉장히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거의 소리를 지르듯이 말을 했다. “뭐? 지금 그게 좋다고 말을 하는 거야? 넌 도대체 총기를 소유할 권리를 믿지도 않는다는 거냐?

Since then, I did not say anything for over twenty minutes, but she was quite angry and spitting (religious) political opinions.

그 이후로 난 20분이 넘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 아줌마는 꽤 흥분하고 화가 나서 (종교같은) 정치적 견해를 마구 쏟아냈다.

“This country,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is built upon the republican values NOT democratic values!  Republicans want big individuals and small government.  Democratics want big government and small individuals!  Democrats want to control the people.  Democrats hate blacks and Asians!  Democrats try to control them using food stamps and MediCaid….”

“이 나!라!는, 미!합!중!국!은 공화당의 가치 위에 세워졌지 민주당의 가치위에 세워진게 아니란 말이얏!  공화당은 힘쎈 개개인과 작은 정부를 원하고, 민주당은 큰 정부와 작은 개인을 원한다곳!  민자당 놈들은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햇!  민주당은 껌둥이랑 동양인을 증오한다곳!  민주당이 사람들을 통제하는 방식은 바로 푸드스탬프와 무상의료얏!….”

I was actually able to contradict every single word of hers, but I couldn’t.  First, because she already identified me as the chaplain in the hospital and I did not want to make any trouble.  Second, because she was quite angry.  To be polite, I was just nodding, and saying such as ah, oh, hmm…  I couldn’t even just walk away.  After listening to her preaching for over twenty minutes, finally I pretended that I got a phone text message, and apologised that my time was running out even though your words are very interesting.

그 아줌마 말을 하나 하나 조목 조목 반박할 수도 있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일단은 아줌마가 나를 병원 원목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었고, 나는 병원 시작하자 마자 뭔가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아줌마가 상당히 흥분해 있었기 떄문이다.  공손해 보이기 위해서 그냥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고, 아~ 오~ 흠.. 등과 같은 추임새만 넣었다.  그냥 나와버릴 수가 없었다.  그 아줌마 설교를 20분이 넘게 듣고 나서 핸드폰에 문자 온 것 처럼 속이고는 “아이쿠, 제가 좀 다른 데 늦었네요, 아줌마 말씀이 참 재밌는데 말이죠”라고 사과하고 나왔다.

I need to ask the staff chaplains what to do in those situations.

병원의 경험 많은 진짜 원목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봐야겠다.

Thursday, 11 September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쉰 여덟번째 날 – 다시 비행기

3번 터미널에 도착한 다음에 예닐곱 시간을 기다렸는데, 비행 3시간 전부터 보안 검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차 보안 검사를 새벽 2시에 통과했는데 (비행이 새벽 5시였다) 간단히 내 수화물로 부칠 가방 엑스선 촬영하고 남한테 받은 물건이 있는지,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지, 날카로운 물건을 지니고 있는지 세 가지 질문을 받았다. 꽤 간단했다. 그리고 내 가방을 부치고서는 2차 보안 검사를 통과했다. 새벽이라서 줄이 길지는 않았는데, 꽤 천천히 움직였다. 내 앞에 있던 인도 사람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너무 느리다고 뭐라 언성을 높였다. 보안 직원인 젊은 아가씨가 그 아저씨를 옆으로 따로 세우더니 결국엔 내 뒤에 보안 검사를 받았고, 조용하지만 강한 어조로 “똑바로 처신해!”라고 말을 했다. 보안 검사는 쉬웠고, 모두들 미소를 짓고 있었고, 나도 농담을 주고 받았다. 다른 공항에서는 못 보던 푸른 색 막대기를 갖고 있었는데, 내 가방이랑 노트북 등 소지품을 모두 막대 끝으로 문지르고 나서는 어떤 기게에 올려놔서 분석을 했다. 거기 아가씨에게 뭐냐고 물었더니 검지 손가락을 흔들면서 “비~밀”이라고 웃으며 얘기했다. 아까 그 불평했던 아저씨는 결국 독방으로 조사 받으러 끌려 가더니 2시간 후에 탑승구에서 만났는데, 아마 비행 시간 직전에 풀려난 듯 했다.

It is always good to see the windows error message in public

공공장소에서 윈도우즈 에러 메세지를 보면 늘 행복해져

맥코믹 그룹은 지난 번에 루프트한자를 탔는데, 모두 알고 있듯이 루프트한자는 1번 터미널을 사용하지만 다른 모든 국제항공편은 3번 터미널을 사용한다. 벤 구리온 공항은 독일 항공사에게 별도의 터미널을 따로 준 것이다. 3번 터미널의 보안 검사는 보통 수준으로 미국과 거의 동등하다. 1번 터미널의 보안 검사는 처절할 정도로 끔찍하다. 이스라엘이 독일 항공사에게만 아주 더럽고 어려운 보안 검사를 선물로 준 것 같아 보인다. 내가 충고를 하자면, 이스라엘 갈 때는 루프트한자를 타지 말라는 것.

What other airport has this easy chairs?

다른 어떤 공항에 이런 안락의자가 있을까?

내가 공항 탑승구에 갔을 때,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안락의자라니. 저 의자에 누워서 두 시간을 보냈다.

Playground at Ben Gurion Airport

벤 구리온 공항의 놀이터

벤 구리온 공항은 정말 시설들이 좋았는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도 훨씬 컸다. 위 사진은 일부일 뿐이라는 거.

쮜리히 공항까지 날아가서 시카고 가는 비행기로 갈아탔다. 이스라엘 갈 때에도 비상 탈출 통로 좌석에 앉아 갔듯이 이번에도 동일한 좌석을 차지했다. 다리가 넓으니 편안하고 좋았다. 스위스 항공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줬다는 것.

One thing Chicago Airport does not have

시카고 공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

벤 구리온 공항에서는 전기 콘센트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고, 쮜리히 공항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전기 콘센트는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는 거의 절대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시카고 공항에서 입국 심사 줄이 지난 1월과 비교해서 좀 달라진 것 같다. 내 기어이 맞다면 지난 번에는 심사 줄이 세 종류가 있었다. 미국 시민용, 미국 영주권자용, 그리고 나머지 (또는 방문비자용). 이번에도 줄이 세 개인 것은 같지만, 첫째 줄이 좀 달랐다. 미국 및 캐나다 시민용이었다. 왜 미국 입국 심사에서 캐나다 시민을 미국 시민과 같이 대할까? 두 나라가 인수합병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집에 오니 참 좋긴 하다. 왜 사람들이 집이 최고라고 하는 지 알 것 같다. 집에는 사랑스러운 자기가 있으니까.

또 다른 이야기. 이집트 이야기

내가 처음으로 이집트 여행 계획을 세웠을 때에는, 이스라엘의 여행사에 예약을 했다. 이스라엘 내 여행과는 달리 이집트 여행은 최소 두세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가자의 전쟁 때문에 날 뺀 모든 사람들이 여행을 취소해 버렸고, 결과적으로 나 혼자밖에 없어서 여행 자체가 취소가 되어 버렸다. 물론 환불을 받았다.

그 당시 나는 메깃도에서 발굴을 하고 있었다. 여행이 취소 되어서 어쩔 줄 몰랐다. 같이 발굴하는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온 사람이 있다고 얘기해 줬다. 리몬 나빌 사무엘이라는 사람이었는데, 한 구역 책임자였고, 얘기를 하니 도와주겠다고 했다. 이집트에 있는 친구 여러명과 얘기를 한 뒤에 그 중 한 사람이 날 돕겠다고 했다. 디나 제이콥이라는 여자였다.

디나가 자기가 다 알아서 카이로 관광 시켜줄 테니 일단 오기만 하라고 했다. 물론 난 그년을 믿었다. 페이스북 메신저로 얘기를 했고, 내가 카이로에 도착하면 전화하라고 전화번호도 내게 알려줬다. 그 때에는 룩소 관광을 할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았다. 이집트로 떠나기 이틀 전에, 내 구역 책임담당자인 셜리 벤 돌 에비앙이 꼭 룩소 가보라고 강추했다. 그래서 카이로에서 룩소 가는 당일 여행을 첫날 하기로 예약을 해버렸다. 카이로에 있는 리몬의 친구인 디나가 본인은 아주 일정이 유연하다고 해서 둘째날부터 그년을 만나려고 했다.

카이로는 이스라엘의 타바 국경에서 버스를 두 번 타고 갔다. 첫날 밤에 도착하고서 디나에게 페이스북 메신저로 글을 보냈는데, 문자가 전혀 가질 않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이년이 페이스북에서 날 차단해 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전에 받은 전화 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아무도 받질 않았다. 완전 우주에서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첫날은 룩소 관광을 예약했기 때문에 일단 하루 정도 여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과 다음날 하루 종일 인터넷 검색하고, 여기 저기 미친듯이 전화하고 하면서 계획을 하고 알아본 결과 이집트에 있는 모든 날들을 무사히 관광할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여행사를 이용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혼자 하기도 했다.

만일 룩소 관광을 미리 예약하지 않았다면, 이집트에 있던 대부분을 날들을 완전 망쳐버렸을 것이다. 디나 제이콥이 왜 저 지랄 했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리몬에게 따지지는 않았다. 내가 믿기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내 책임담당자가 룩소를 내게 추천하도록 역사하신 듯 하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개인적으로는 내 구역 책임담당자이며 예쁜 두 딸의 엄마인 셜리에게 감사함을 보낸다.

Sunday, 24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쉰 세번째 날 – 베들레헴의 바라카 장로교회

여기 온 첫날 내가 머무는 집 앞에 장로교 간판이 있는 것을 봤다. 하지만 주인집에서 말하길 주일에 예배드리는 걸 한 번도 못봤다고 한다.

Church Entrance

교회 입구

주인집에서 말하길 베들레헴에는 더 큰 장로교가 있다고 하는데 위치는 잘 모르겠다고. 내가 부탁을 해서 벳자훌 장로교회에 (교회의 정식 이름은 목동의 들판 장로교회다)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위치를 물어봐 줬다. 교회는 헤브론 길에 있었고, 나를 교회까지 태워다 줬다.

Church Building

교회 건물

교회는 길의 아래쪽 (여기는 어디든 언덕이므로)에 있다. 그래서 내가 사진 찍은 곳인 서쪽에서는 지상 1층이 반대쪽인 동쪽에서는 지하 1층이 된다.

Common Room in the church with pingpong table

탁구대가 있는 친교실

문을 들어서면 바로 예배당의 뒷 부분으로 가게 된다. 거기서 오른쪽에 문이 있는데, 친교실로 가게 되며, 친교실에서 예배후 차를 마시거나 한다. 이 곳에서 청년부 모임이 있을 때에는 탁구도 친다고 한다.

Simultaneous Translator Receiver

동시통역 수신기

친교실에서는 기술실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 곳에서 프로젝터와 컴퓨터 등을 제어 및 사용하며 사운드믹서 등이 있다. 또한 동시통역 설비까지 갖추고 있다. 오늘은 나 하나를 위해서 동시통역이 이루어 졌다.

Christmas Year Round

연중 성탄절

베들레헴에서는 어디든 언제든 성탄절이다.

Childrens' Story Time

어린이 설교 시간

예배는 캐나다나 미국의 장로교 예배와 거의 같다. 아이들 포함해서 약 50명 정도가 참석했다. 어린이 설교 시간이 있고, 그 후에 아이들이 주일학교에 가는 것도 캐나다 미국과 같다. 예배는 캐나다 미국과 비슷하지만, 인구 구성은 좀 다른데, 대부분이 2-30대의 젊은 부모들이었다. 꽤 이상적인 인구 구성인 아닌가. 이곳에서도 그리스 정교회 같은 경우는 대부분 나이 많이 잡수신 분들이 교회에 간다. 예배는 1시간 반 정도였는데, 그리스 정교회 처럼 3시간이 아닌 게 너무 감사하다.

Back to School Gift

개학 선물

모든 아이들은 주일학교에서 학용품 꾸러미를 선물로 받았는데, 내일 개학이라고 한다.

Playground at Church

교회 놀이터

북미에 있는 교회들은 대부분 뜰이 있고 내가 다니는 네이퍼빌의 낙스 장로교회와 같이 부자교회는 자체 놀이터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교회는 놀이터가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이 곳에서도 내가 방문해본 그리스 정교회는 아이들 놀이터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 장로교회에서 아이들 놀이터가 비록 조그마지만 있는 게 너무 좋았다.

Olive Everywhere

감람나무는 어디에나

여기는 무슨 공터만 있으면 감람나무 (올리브)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게 무슨 법이나 되는 듯 하다.

오늘 보니 벳자훌에 있는 장로교회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주일 예배를 이 곳에 합류해서 드린다. 사실 이곳 베들레헴 장로교회의 지부라고 한다. 또한 벳자훌에 보육원과 교육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어째든, 덕분에 집에 돌아올 때 한시간 20분 넘게 걷지 않고 차를 얻어 타고 왔다. 벳자훌 장로교회가 내가 사는 집의 진짜 옆집이라는 게 너무 감사할 뿐.

예배후 친교 시간에 사람들이 내게 여러 질문을 했다. 그 중에는 “외로워?”같은 것도 있었는데, 아마 미혼인지를 묻는 것 같았다. 왜냐면 바로 다음에 예수님 믿는 참한 아가씨 많다고 내게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나 밋-자위즈”라고 말을 했다. 이 말은 자위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결혼했다는 뜻이다. 또 다른 아주머니가 여기에 얼마나 있었냐고 물었는데, 내가 되물으면서 “팔레스타인 말이에요?”라고 하자 “팔레스탄이라고 말해줘서 고마워요”라고 했다. 나중에 서안지구(웨스트 뱅크)를 여행할 사람에게 조언을 하나 하자면, 여기를 “이스라엘”이라고 칭하는 건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다. 또한 여기 사람들은 서안지구(웨스트 뱅크)라고 불리는 것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제일 좋은 것은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러주는 것이다.

Who knows this?

이거 기억하는 사람?

교회에서는 몇몇 기념품과 교회 음악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 중에 일부는 카세트 테입으로 되어 있었다. 카세트 테입을 들어본 게 몇년 전인지 기억도 안난다. 이걸 틀만한 플레이어도 없기에 CD보다 훨신 쌈에도 불구하고 살 수가 없었다. 근데, 이건 판다는 건 사람들이 아직도 카세트 테입을 듣는다는 거 아닌가?

Arabic Gospel CD

아랍어 찬양 CD

카세트 테입 대신에 아랍어도 된 찬양 CD를 샀다. 내 이웃이 원한다면 빌려줄 수도 있다. 교회에서는 30세겔에 팔고 있었는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아마존에서는 좀 더 싸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5세겔 (약 2천원) 정도고 그냥 교회를 도왔다고 생각하련다.

오늘의 주제와 관련있는 건 아니지만, 주인집 아저씨가 이스라엘 정부에서 만든 경보 어플을 깔았다. 이 어플은 가자에서 미사일, 로켓이 발사되면 위치를 경보로 알려주고 사이렌을 울려준다. 그런데 정말 말 그대로 1분에 두 번씩 경보가 울린다. 위치는 대부분 남부 이스라엘이어서 대피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여기 벳자훌이나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대피소 자체가 없어서 대피할 곳도 없다.

Saturday, 9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서른 일곱째 날 – 일랏으로

내 홈스테이를 시라지 센터를 통해서 구하게 되었는데, 몇가지 여가활동을 더 신청을 했었다. 그런데 사람이 부족해서 취소한다고 연락이 왔고, 환불을 해줄테니 금요일에 센터로 오라고 했다. 오늘이 금요일이어서 센터에 갔다. 이메일을 받은 게 일주일 전이었는데, 오늘 갔더니 돈이 준비가 안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시간을 허비했다. 센터에서 택시타고 베들레헴 버스 정류장에 갔다. 그 버스는 예루살렘의 다마스커스 문까지 가는 버스다. 거기서 경전철을 타고 예루살렘 중앙 버스 터미널로 갔다.

Jerusalem Central Bus Station

예루살렘 중앙 버스 터미널

버스 터미널의 매표소에 갔더니 어떤 남자가 내게 다가와서 어디 가냐고 묻는다.

걔: 어이 친구, 어디가?
나: 일랏이요.
걔: 거기가는 표 매진됐어.
나: 에? 오늘 버스 모두 다요?
걔: 어. 개인 운수는 어때?
나: 얼만데요?
걔: 200.
나: 세겔로요 아니면 달러로요? 아니 잠시만요. 일단 매표소에 직접 먼저 물어보고요.

낯선 사람이 친근하게 굴면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매표소에 물어보니 이번 버스는 정말 매진되었지만 2시에 출발하는 다음 버스는 널널했다. 2시간 정도 더 기다리는 것이 돈을 무지 내고 가는 것보다 낫기에 당연히 표를 샀다.

그렇게 해서 일랏에 다시 왔고, 같은 호스텔에 묵었다.

지금까지 내 발굴 팀에 대해 쓸 기회가 없었다. 라기스 발굴은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전쟁이 나고 나서 가자와 가깝기 때문에 자원자들이 대거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은 현장이 폐쇄되었고, 라기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남부의 대부분의 현장은 다 폐쇄되었다. 절반 이상은 돌아가고 나같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북부에 있는 다른 발굴 현장에 참여하게 되었다. UCLA는 야포에서 발굴하고 있었는데, 메깃도로 합류했다.

우리 팀은 대부분 UCLA 학생들이었다. 사라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애가 있었는데, 이란계 미국인이고, 18살이었다. 여기 전체 발굴 합류자 중에서 최연소자였다.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고고학을 전공할 거라고 하며, 10살때부터 발굴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또 다른 여자는 꽤 게을렀고 미친듯이 말을 많이 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말하길 저 여자는 일주일에 이틀만 일한다더니 사실이었다. 정말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고 나머지 날들은 아프다고 신고하고 쉬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건강해 보였는데. 내게 말하길 자신이 최근에 커밍아웃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사귀는 여자는 없다고.

UCLA에서 온 두 여자는 이름이 바네사와 제나인데, 자기 둘이 한 팀을 만들었다고 내게 말을 했다. 그런데 그 팀 이름일 버제이나라고… 이는 여자의 성기를 의미하는 버자이나와 발음이 매우 비슷해서 혹시 그런 의미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하지만 이 둘이 우리 팀 전체에서 일을 가장 잘 하는 팀원들이었다.

캐나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스라엘을 떠났거나 아니면 이스라엘로 오는 일정을 모조리 취소해 버렸는데, 미국 학생들은 대부분 남았다. 미국 사람들이 캐나다 사람들보다 더 용감하던가 아니면 이런 총이나 위험에 이미 익숙해 있는 건지도.

Monday, 28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스물 다섯째 날 – 발굴 마지막 날

오늘은 발굴하는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텔 아비브에 가서 이집트 비자를 받아야 하고, 그 후에 하룻밤 지내기 위해 일랏에 가야 한다.

Still Digging

여전히 발굴중

이번 주가 발굴 마지막 주기 때문에 원래는 일주일 내내 마지막 날의 항공 촬영을 위한 청소를 해야 했지만 여전히 계속 파내려가고 있다. 나야 이제 떠나니까 상관없지만 아주 힘든 수요일이 될 듯 하다. 사진 촬영은 목요일이기 때문에 수요일까지는 청소를 모두 끝내야 한다.

My lovely Trainers

내 사랑스러운 운동화

오늘 발굴을 끝내고 나서 청바지와 신발을 버렸다. 둘 모두 캐나다에서 작업용으로 산 것으로 약 오륙년 입고 신었다.

Bottom of the shoes

신발 바닥

이게 내 신발 바닥이다. 내 나이키 신발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두 번 여행하고나서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에서 임종을 맞았다.

텔 아비브에서 카이로까지는 약 250마일 또는 403킬로미터 정도 된다. 시카고에서 뉴욕까지의 거리가 약 713마일 또는 1147킬로미터기 때문에 거의 삼분의 일 정도인데 항공료가 (편도) 400불이 넘어가고 15시간도 넘게 걸린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은 연결 비행기 기다리는데 쓰이지만 말이다. 참 바보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뭐 어째든, 내일 이집트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여권사진이 필요하다. 그런데 여권 사진이 없다. 텔 아비브 어디에서 여권사진을 찍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Sunday, 20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열 일곱번째 날 – 메깃도에서의 첫날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레지라고 하는 흑인 미국사람을 만났다. 꽤 친절하고 좋은 사람으로 내게 필요한 것 여러가지를 가르쳐줬다.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미국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먼저 나는 미국에 총기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총이 불법인 나라가 많고 그런 나라들은 더욱 안전한 사회를 갖고 있다. 레지가 갑자기 아냐!라고 말을 했다. 걔 말로는 총은 보호하기 위한 거라고 한다.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는 수단. 조금 더 얘기를 했는데, 우리 생각의 차이를 좁히는 게 불가능해 보여서 더이상의 대화는 쓸모없다고 생각되었다.

또 다른 얘기는 의료보험과 병원 시스템이었다. 내가 캐나다와 일부 (북)유럽 국가들이 국가 의료보험을 갖고 있고, 미국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을 하자 레지는 국가 의료보험은 멍청한 생각이라고 했다. 차라리 돈을 더 내고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겠다고 말을 했다. 가난해서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내가 말을 하자 레지가 정말 충격적인 말을 했는데, 그 사람들은 게을러서 가난하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 받을 자격조차 없다는 것이다. 정말 충격을 받아서 “하지만 사람들도 인간이고, 시민인데, 정부가 돌봐줘야하지 않을까?”라고 내가 말을 했지만 레지의 생각은 아주 확고했고 그 놈들은 자기가 가난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해줘선 안된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내가 다큐멘터리 식코를 언급했는데, 갑자기 흥분하면서 마이클 무어 그 씹새끼는 빨갱이고, 그 영화 백프로 다 구라야!라고 성질을 부렸다. 대학 등록금에 대해서도 레지는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대출 받아서 학교 다니면 되고, 졸업하고 일해서 갚으면 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빚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 것들이 멍청하고 병신같고 게을러서라고 말을 했다.

레지가 꽤 흥분해 보였고 더이상 대화를 했다가는 위험할 듯 해서 주제를 바꿨다. 하지만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정말 처음 만나서 얘기해 봤다.

Tel Megiddo

메깃도 언덕

위 사진은 메깃도 언덕을 아래서 바라본 것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났는데, 라기스에서보다 30분 먼저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라기스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사람이 많아서 대형 버스를 두 대나 이용했다. 아마 대부분의 발굴 현장이 현 전쟁 상황때문에 문을 닫고 메깃도가 몇개 안 남은 열린 곳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들이 이 곳으로 오는 것 같다.

Area T, Tel Megiddo

메깃도 언덕의 T구역

여기가 오늘 내가 일한 T구역이다. 라기스와 메깃도는 다른 것이 여럿 있는데,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기가 라기스보다 훨씬 덜 덥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도 별로 안 마셨다. 흙이 마르는 속도도 차이가 꽤 난다. 라기스에서는 새로 퍼낸 흙이 마르는데 한 시간도 채 안걸렸는데, 여기서는 다음날 아침에 보잔다. 작업 속도도 라기스에 비해서 슬슬 하는데, 여기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발굴에 참여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일 중독에 걸린 듯한 한국 사람들하고 라기스에서 발굴을 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제로 한국 사람들이 아침도 거르고 점심도 거르고 발굴을 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일 중독이다.

Sling Stones

돌팔매

내가 작업하는 구역은 현재 앗시리아 시대라고 하는데, 꽤 좋았던 게, 라기스에서는 바벨론 시대까지 했는데, 여기서는 바로 이전 시대라는 것이다. 위 사진은 오늘 발견한 돌팔매 돌 세 개인데, 이 돌 세 개를 보고는 여기가 돌팔매 돌 만드는 공장이라고 결정해 버렸다.

여기 메깃도의 일정은 라기스와 많이 비슷하지만 휴식이 훨씬 적고, 물을 따로 주지 않고 각자 본인 물을 챙겨야 한다. 라기스에서는 개개인이 옮길 수 없을 만큼 물이 필요했기 때문에 승합차로 물을 실어다 줬다.

대략 일정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오후 1시까지 발굴하고, 점심 후 잠시 쉬고, 도자기와 뼈를 씼고난 뒤에는 강의가 두 개 있으며 역시 10시에 끝난다. 오늘의 강의 둘 가운데 하나는 유전자와 고고학이라는 꽤 흥미로운 주제였다. 정말 피곤하고 지치는 일정이다. 그런데 이 걸 두 주나 더 해야 한다.

Saturday, 11 January 2014

이스라엘 여행 셋째 날: 예루살렘 구시가지

숙소는 아랍어가 통용되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데 이는 간판에서도 명백하게 나타난다.

Signs in Arabic

아랍어 간판

숙소에서 다마스커스(다메섹) 성문을 통해서 예루살렘 구시가지로 걸어 들어갔다.

Damascus Gate - one of the major access to Old City Jerusalem

다마스커스 성문 – 예루살렘 구 시가지로 가는 중요 지점 중 하나

이 문은 아랍어로는 밥 알-아무드라고 하는데 기둥 문이라는 뜻이다.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세운 기둥 두 개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기둥이 제거된지 천년이 넘어도 계속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옛날 기둥 자리에 표식을 해 놨다. 이 표식은 구 시가지로 들어오면 바로 보인다.

Pillar Mark

기둥 표시

통곡의 벽이라고도 하는 서쪽 벽으로 곧장 걸어 갔다. 이 벽에는 헤롯의 벽을 맨 밑으로 해서 여러 시대에 걸쳐 증축된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 후에 서쪽 벽 유산 센터로 갔는데, 역사적, 건축학적인 정보를 영상으로 볼 수 있었다.

Temple Mount and Temple model

성전 마운트와 성전 모델

헤롯의 성전은 이전 것 보다도 훨씬 크고 솔로몬 성전보다도 월등히 크다. 땅이 평평하지 않기 때문에 헤롯은 남쪽 부분을 훨씬 높게 지어서 성전을 놓는 토대가 평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높은 남쪽의 두 모서리를 성전 꼭대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두 곳에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나팔을 불었다고 한다. 북쪽 끝에서는 헤롯이 성전 마운트의 일부분으로 자연 암석을 사용했다.

Herod's Frame

헤롯의 프레임 모양

이 패턴은 헤롯의 독특한 문양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돌 한개의 일부분만을 찍은 것으로, 굉장히 크며, 평균 무게가 5톤이 나간다고 한다.

SANYO DIGITAL CAMERA

거대한 돌

알다시피 이 찬란한 헤롯의 성전은 70년에 로마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그 파괴된 현장이 아직도 보존되고 있다:

Destruction of the Temple by Romans

로마에 의한 성전 파괴

우리는 성전에 연결되는 중앙 통로 아래를 걸었고 (위의 모델 사진을 보길), 열린 부분으로 나갔는데, 헤롯 시대에는 열린 부분이었지만 그 후로 집들이 지어지고 거주지가 생기면서 지금은 여전히 지하인 듯 하다. 것다가 헤롯에 의해 세워진 기둥 2개를 보게 되었다.

Herodian Pillar

헤롯의 기둥

기둥의 옆 바닥에는 돌로 포장되어 있었는데, 예수님이 이 포장 돌들을 밟고 다니셨을 것이다.

Pavement from the Jesus' contemporary.

예수님 시대에도 있던 포장 돌

그리고 계속 걸어서 물 통로를 지나 물 저장소에 갔다.

SANYO DIGITAL CAMERA SANYO DIGITAL CAMERA

이 것들은 하스모니안 왕조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로마가 이스라엘에 오기도 전이라는 의미다. 물 저장소는 천년이 훨씬 넘게 사용되었는데, 어떻게 물을 모아 오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St. Anne's Chapel

세인트 앤 교회

세인트 앤 교회를 갔는데, 백색 신부회에서 운영하는 것이다. 백색 신부회는 선교사 모임 단체로 현재 담당 신부님은 캐나다에서 오신 분이다. 회원의 80%가 아프리카 흑인이어서 단체의 이름을 바꾸려고 했지만 흑인 회원의 만장일치 반대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고 있다. 백색 신부라고 하는 것은 인종이 아니라 흰색 사제복을 입기 떄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교회는 자연 음향이 너무 좋다. 맥코믹 그룹에서 몇명이 ‘나같은 죄인 살리신’을 불렀는데, 마치 천사가 함께 코러스를 하는 듯 했다.

Birthplace of Mary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태어난 곳

세인트 앤 교회는 앤 성녀에게 바쳐진 교회인데, 앤은 마리아의 어머니로  예수님의 외할머니가 된다. 천주교에서는 앤이 여기 살고 있을 때에 마리아가 이 곳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다.

Crusader's Chapel

십자군 교회

세인트 앤 교회 옆에는 큰 유적지가 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가 섞여 있는데, 하드리아누스의 이교도 신전, 비잔틴 교회, 십자군 교회 등등… 기둥 바닥을 보면  십자군의 십자가가 보인다.

Pool of Bethesda

베데스다 연못

그 유적지 옆에는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는데,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준 곳이다.

Via Dolorosa

고통의 길

기독교 순례자에게 가장 유명한 고통의 길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Church of Condemnation

정죄의 교회

정죄의 교회는 원래 본디오 빌라도와 그의 군대가 거주했던 안토니아 요새에 지어졌다.

Game board

게임 판

바닥에는 표시가 그려져 있는데, 병사들이 즐기던 놀이라고 한다. 가이드에 따르면 이 표식은 예수님 시대에 그려진 것이라고 한다.

Church of Flagellation

채찍 교회

이 채찍 교회에서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셨다고 믿어진다. 못, 채찍 등의 문양이 보인다. 문 위에는 가시 면류관 장식이 되어 있다.

Ecce Homo Church

에체 호모 교회

에체 호모는 “이 사람을 보라”는 의미로 본디오 빌라도가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교회 안팎으로 거대한 아치가 있는데, 학자들은 이 아치가 예수님 이후 시대인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에 건축되었다고 믿고 있다.

Jesus fell first time

예수님이 처음 넘어지신 곳

고통의 길에서는 예수님이 넘어지신 곳을 세 군데 지적하는데, 그 셋 중에 첫번째 것이다.

Jesus met mother

예수님이 어머니를 만나다

처음 넘어지신 곳 바로 옆에는 예수님이 어머니를 만난 곳으로 믿어지는 곳이 있다.

Simon of Cyrene

구레네 사람 시몬

이 장소는 구레네 사람 시몬이 로마 병사에 의해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갔다는 곳으로 믿으진다. 고통의 길에는 예수님이 여자들을 만난 장면 등 몇 가지 더 있다. 고통의 길은 교회마다 서로 다른 길을 주장하고, 학자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등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역사적으로 정확한 지점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이를 느끼고 우리 믿음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Holy Sepulchre

성묘교회

그 후에 우리는 콥트 교회를 거쳐 성묘 교회로 갔다. 사람들의 줄이 없었는데, 가이드가 기적이라고 했다. 여기엔 둘이나 셋만이 들어갈 수 있다. 나는 한 흑인 여성과 같이 들어갔는데, 관을 끌어 앉고는 엄청 흐느껴 울었다. 관은 비었고 예수님은 살아 계신다는 것을 말해줘야 하나 고민했다.

성묘 교회는 기독교인에게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 한다. 여러 교회가 각각 다른 부분을 소유하고 있다. 교회들 사이에 분쟁이 심해서 결국은 이슬람 교도 2가정이 교회 문을 열고 닫는 것을 책임진다고 한다.

Adam's Tomb

아담의 무덤

일부 교회에서는 아담이 여기 묻혔다고 믿는다. 그들 신학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유리를 통해 보이는 바위가 갈보리 바위다.

Broken Stone

갈라진 바위

창을 통해 보이는 바위는 갈보리 바위로 두 조각으로 갈라졌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 지진이 나고 이 바위가 두 개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Calvary Rock

갈보리 바위

위 사진은 실제로 갈보리 언덕 위에서 찍은 것으로 위에서도 갈라진 것이 보인다. 기름바르는 돌을 포함해서 볼 것이 몇 개 더 있다. 그 후에 유대인 지역으로 갔다.

Manora

마노라

거대한 마노라를 통해서만 유대인 지역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남자들이 모자를 쓰고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Golden Dome

황금 돔

황금 돔, 바위 돔이라고도 불리는데, 예루살렘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다. 그리고 돔 아래에 서쪽 벽을 볼 수 있다. 오늘 밤이 안식일 시작일이기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기도하러 이 곳에 왔다.

Western Wall

서쪽 벽 또는 통곡의 벽

이 곳은 유대인에게 가장 감성적인 곳이다. 여자는 남자와 함께 기도하지 못하고 여성 전용 구역이 있다. 그리고 모든 남성은 머리를 가려야 한다. 벽은 안쪽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안에는 히브리어 기도 책이 구비되어 있다.

Skull rock

해골 바위

그 후에 정원 무덤에 갔다. 여기는 (당연히) 성경에 근거를 갖고 있는데 해골이라는 뜻을 지는 골고다가 바로 그 것이다. 바위가 잘 보면 완전 해골 모양인데 공사 이후로 입 부분은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

SANYO DIGITAL CAMERA SANYO DIGITAL CAMERA SANYO DIGITAL CAMERA

첫번째위 세번째 사진은 무덤 입구고 가운데 사진은 무덤 속이다. 마지막 사진은 무덤을 막는 거대한 돌을 굴리는 레일을 볼 수 있다. 어떤 학자는 성묘교회가 예수님이 처형당하신 곳이라고 하고, 다른 이들은  정원 무덤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무덤은 비었고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Segregation

분리

이는 예루살렘이 갈라지는 곳이다. 한 도시, 한 예루살렘인데 한 쪽은 유대인지역이고 다른 곳은 웨스트 뱅크, 즉 점령지역이다. 예루살렘은 평화를 의미하는 곳인데, 언제 진정한 평화가 예루살렘에 찾아올까?

그 후에 사빌에 가서 세다라는 분에게 말씀을 들었다. 세다는 창립 회원 중 한분이다. 완전 깨는 내용이었다. 이는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겠다. 지금완전 졸립다.

Saturday, 29 June 2013

미국 북동부 여행 – 미시간

인디애나 다음으로는 미시간주로 갔는데, 상반도를 목적지로 해서 차를 몰았다. 하루만에 상반도까지 갈 수가 없어서 잠을 자기 위해 여행객 안내소랑 화장실이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Crossing two Great Lakes at the same time!

오대호 두 개를 동시에 건넌다!

하지만 미시간에서 엄청난 것이 있었으니, 바로 팀 호튼스!!!!!!!!!!!!!!!!!!!!! 캐나다에서는 정말 날마다 매일 가던 곳인데 반년이 넘게 가보질 못했다. 건물도, 종이컵도, 메뉴도, 복장도, 트레이도, 심지어 맛도 캐나다랑 똑같았다!

Lake Huron on your right

오른쪽에 휴론 호수

하반도 끝에서는 다리를 건너야 했다. 다리는 건널 때 정말 대단했는데, 왼쪽에는 미시간 호수가, 오른쪽에는 휴론 호수가 있었다.

Lake Michigan on the left

미시간 호수는 왼쪽에

말 그대로 오대호 두 개를 동시에 건넜다! 다리의 이름은 맥키낙이었는데, 다리를 건널 때 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상반도로 가기 위해서는 다리를 건너는 것 말고는 방법이 전혀 없을 뿐더러 경치가 좋아서 돈이 아깝지 않았다. 사진기로는 다만 그 광경을 제대로 담을 수가 없었을 뿐, 정말 아름다웠다.

Mackinac Bridge from the upper peninsular

상반도에서 바라본 맥키낙 다리

미시간에서는 날씨가 별로 도와주질 않았는데, 계속 구름이 끼고, 춥고, 게다가 바람도 세게 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아름다웠다. 진짜 아름다웠다. 아내가 왜 미시간이 이렇게 아름답냐고 물어봐서 내가 “캐나다 근처에 있어서 그래”라고 대답해 줬다.

Lake Superior

수페리어 호수

미시간은 오대호 셋을 갖고 있는데, 미시간 호수, 수페리어 호수, 그리고 휴론 호수다. 오대호 다섯 개 이름을 외우는 게 힘들다면, HOMES를 외워보라 – H는 휴론, O는 온타리오, M은 미시간, E는 이리, S는 수페리어.

Marquette, MI

미시간의 마켓

수페리어 호수는 세계에서 가장 큰 호수로 캐나다와 미국이 공유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온타리오 주가, 미국에서는 세 주가 걸치는데, 미네소타, 미시간, 그리고 위스콘신주다.

Presque Isle Park in Marquette

프레스크 섬 공원

미시간의 마켓이란 곳엘 갔는데, 그 중간에 경치를 보러 여기 저기 멈췄다. 마켓은 수페리어 호수가에 있는 조그마한 하지만 아름다운 마을이다. 날씨가 안좋아서 경치를 예쁘게 찍을 수가 없었다. 마켓에 있었을 때, 캐나다의 도시 두 군데가 생각이 났다. 하나는 이름 때문인데, 같은 이름을 쓰는 Marquette으로 마니토바 주에 있다. 또 하나는 같은 수페리어 호수가에 있는데 온타리오 주의 썬더베이라는 곳이다. 기회가 된다면 썬더베이는 꼭 가봐야 할 곳 중 하나다. 정말 아름답고 예쁘다.

Power of bank

둑의 힘을 보라

위 사진을 보면서 둑이 얼마나 강력한지 또 유용한지 알았다. 둑 양쪽의 물을 보기만 하면  느낌이 딱 올 것이다. 설명도 필요없다.

A way to a river

강으로 가는 길

미시간에서는 그냥 아무 길이나 들어가도 다 예뻤다. 나무의 고운 색을 보라. 미국 50개주 자동차 여행을 다 끝내고 나면 반드시 되돌아 와야 할 곳 중 한 곳이 미시간이다. 미시간은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아마 캐나다 옆에 있어서 그러겠지만 ㅋㅋ

Colourful Trees

색색이 나무들

고운 색의 나무들은 캐나다의 단풍나무를 떠올리게 했다. 온타리오 주와 퀘벡 주의 산에 있는 단풍 나무들의 색 변화는 우주에서도 관찰이 된다고들 한다. 아 그러고 보니 메이플 시럽이 먹고 싶다.

Next Page »

Create a free website or blog at Word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