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Friday, 18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열 다섯번째 날 – 예루살렘 복귀

아침에 케드마 숙소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예루살렘 중앙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Jerusalem Central Bus Station

예루살렘 중앙 버스 정류장

사람들이 구름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요즘과 같은 건기에 저렇게 구름으로 하늘이 뒤덮이는 것이 이상하다고들 했다. 최 박사님과 아로마에서 아점을 했다.

Gloria Hotel's View

글로리아 호텔에서 본 풍경

아침내 예루살렘 구시가지내 자파문 근처에 있는 글로리아 호텔에 돌아왔다. 위 사진은 새로 배정받은 151호실에서 찍은 것으로, 예전에는 178호실에 묵었다. 지난 한 주 동안 테레비도 없고 인터넷도 거의 안되는 곳에 있다가 와서 이스라엘과 가자의 문제에 대한 소식을 좀 듣고자 테레비를 켰는데, 더욱 충격적이고 끔찍한 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에서 비행기가 요격당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가자의 전쟁에 대한 뉴스는 거의 나오질 않는다.

좀 쉬고 나서 안식일인 내일 텔 아비브까지 가는 교통편에 대해 묻고자 여행자 안내소에 갔는데, 이미 1시 반에 문이 닫혔다. 안식일이 오늘 저녁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Empty Western Wall

텅빈 통곡의 벽

승천교회에 가고자 해서 통곡의 벽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통곡의 벽에 가까이 가는데, 총성이 계속 들리고 사람들이 벽에서 멀리 모두 물러나 있었다. 그리고 경찰차와 경찰 봉고가 굉장히 많이 있었다. 통곡의 벽이 늘, 특히 금요일에는 더 기도하는 사람들로 붐빈다는 걸 감안해 보면 위 사진에는 거의 텅 빈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이슬람 교도들이 모스크에서 공포탄으로 총을 쏘면서 기도하는 거라고 한다. 금요일에 통곡의 벽에 온 게 벌 써 몇 번인데, 한 번도 이런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정통 유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평상시에는 이러지 않지만, 긴장이 고조될 때에는 그런다고 말해주었다.

전쟁이 진행중이고, 총성이 마구 들리는데도 하늘에서 비행선을 하나 발견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여전히 사람들이 평상시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Pater Noster

주기도문 교회

승천교회에 가기 전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곳인 주기도문 교회에 먼저 들렀다. 벽에는 세계 각국 언어로 주기도문이 쓰여 있었다. 위 사진은 히브리어 처럼 보이지만 갈대아어다. 입장료는 8세겔이었다.

Church of Ascension

승천교회

그 후에 승천교회에 갔는데, 정말 실망했다. 지도에 나온 이름과 달리 교회가 아니라 모스크, 정말 작은 모스크였다. 5세겔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거의 볼 게 없다. 위 사진은 승천하실 때 남긴 예수님의 발자국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Tomb of the Prophets

선지자의 무덤

그 후에 선지자들의 무덤이라는 곳을 갔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이 곳에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가 묻혀 있다고 한다.

Church of Mary Magdalene from Dominus Flevit

눈물교회에서 바라본 막달라 마리아 교회

그 후에는 눈물 교회에 갔는데, 원래 이름은 Dominus Flevit인데, 이는 라틴이러 “주님께서 우시니라”는 의미라고 한다. 여기서 2차 성전시대와 비잔틴 시대의 무덤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위 사진은 눈물교회에서 바라 본 막달라 마리아 교회다.

눈물 교회를 나왔을 때 한 팔레스타인 노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나 가난해. 몇 세겔 만 줘”라고 하기에 갖고 있는 전부인 14세겔을 줬다. 그랬더니 “더 줘! 더 줘!”라고 해서, 더 이상 돈이 없다고 했더니 성질을 내면서 “20불 더 줘! 나 가난해! 20불 더 내놔”라고 하는 것이었다. 완전 말 문이 막혀서 대꾸도 않고 그냥 언덕을 걸어 내려왔다.

Focaccia Salad

포카치아 사라다

좀 더 쉰 다음에, 자파 길과 벤 예후다 길에 있는 키카르 찌온 (시온 광장)에 갔다. 라기스에서 같이 발굴한 사람 몇을 만나기도 되어 있었다. 안식일이 이미 시작되었고 온 도시가 완전 정지하고 문 연 식당이 하나도 안보여서 걱정을 했다. 그런데 나를 포카치아라는 뒷골목 식당에 데려갔다. 와! 온 도시가 회당 아니면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거기서 요시 교수님도 우연히 만났다.

Tuesday, 8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셋째날 – 예루살렘 걷기

오늘 일을 시작하기 전에, 어제 있던 것 추가를 해야 겠다. 어제 예루살렘에 오는 합승 택시에서 내 옆에 스위스 엄마-딸이 있었는데, 독일어를 하는 듯 해서 몇가지 물었다. 스위스에는 공식 언어가 4개라는 것을 확인했고, 하지만 인구의 대부분은 독일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가 말하길 자기네 독일어는 독일의 독일어와 다르다고 했다. 자기들은 독일의 독일어를 알아 듣지만, 독일 사람들은 스위스의 독일어를 잘 못 알아 듣는다는 것이다. 스위스 사람들은 독일의 독일어를 학교에서 배운다고 한다. 엄마가 말하길 스위스에는 독일어 방언이 4 종류가 있다고 했는데, 딸이 다시 말하길 학교 선생님이 12개라고 가르쳐 줬다고 했다.

어째든, 오늘은 일찍 일어났다. 호텔 카운터에 있는 직원에게 루터교회가 어딨냐고 물었는데, 지도를 좀 보더니 못 찾았다. 그리고는 기독교지역 (Christian Quarter)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여기 어딜텐데요…” 라는 것이다. 나는 결국 학교의 신학 교수님은 캐씨 교수님이 빌려준 책에서 교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지도가 상세하지 않아서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갔다.

Empty Road in Old City Jerusalem

예루살렘 구시가지가 텅빈 모습

아침 일찍이어서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같은 거린데 사람이 없으니 다르게 느껴진다. 역시 사람들이야 말로 어떤 장소를 활기차게도 만들고 죽은 듯이도 만드는, 거룩하게도 만들고 더럽게도 만드는, 평화롭게도 만들고 난리통으로도 만드는 주체다.

Sunday Service at Holy Sepulchre

성묘교회의 주일 예배

예수님의 무덤이라고 추정되는 성묘교회에 먼저 갔는데 몇몇 교단이 주일 예배를 진행하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관이 있는 곳에 들어가서 좀 묵상이나 하려고 했는데, 담당 성직자가 문을 탁탁 치길래 빨리 나왔서 보니 몇초 안되는 금새 줄이 확 길어져 버렸다.

Byzantine Cardo

비잔틴 시대의 시장

루터교회에 가니 아직 문이 열려있지 않고 예배가 9시라는 걸 알았는데, 예배까지 약 한 시간이 정도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 구역으로 갔다. 위 사진은 비잔틴 시대의 시장인 곳으로 현재도 시장이다.

Jewish and Learning, the same word

유대인과 배움은 같은 단어

길 맞은 편에는 센터가 있는데 (유대인 구역에는 센터가 매우 많다), 이름이 “유대인의 삶과 배움을 위한 아리에와 에바 할펀 센터”였다. 내가 유대인에 대해서 꽤 좋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배움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유대인으로 산다는 것은 평생 끊임없는 배움과 같은 말로 들릴 정도다.

LUtheran Church of our Redeemer

루터교회

그 후에 루터교회에 갔는데 약 25명 정도가 있었다. 테드와 폴라 교수님이 예루살렘에 1년 살 때 아이들을 데리고 이 교회를 다녔다고 했다. 예배는 뭐 괜찮았다. 장로교회랑 큰 차이는 없는 듯 했다.

Dome of the Rock

황금돔

예배 후에, 나한테 말 거는 사람이 없어서 바로 교회를 빠져나와서 유대인 지역으로 다시 갔는데, 위 사진은 황금 돔이고 그 아래에 통곡의 벽이 보인다.

Ancient Wasabi Bowl?

고대의 와사비 간장 종지?

불탄 집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에 갔다. 이 곳은 카트로스 가문에 속한 유적지로, 제사장 가문으로 여겨진다. 위 사진은 집 터에서 발견된 것으로 일식집에서 주는 와사비 간장 종지와 비슷하게 생겼다.

Burnt House

불탄 집

이 곳에서 여러가지가 발견이 되었는데, 그 중에는 화살촉과 칼에 짤린 젊은 여자의 팔 뼈도 포함되어 있다.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불탄 집에서 한국 아가씨 둘을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은 신학석사를 하는데, 학교 이름은 잊어 버렸는데, 순복음 교단이라고 한다.

다시 길로 돌아와서, 길에 세워진 지도를 보고 있는데, 팔레스타인 노인이 와서 좋은 거 보여준다고 했다. 괜찮다고 했는데, 한두 세겔만 주면 된다고 했다. 그 때 내가 갖고 있는데 정말 16세겔이 전부여서 보여줬더니 바로 가로채더니, 20불 더 내놓으라고 한다. 사기꾼이구나 짐작을 했고, 실제로도 돈이 하나도 없어서 그게 전부라고 했더니 그냥 가버린다, 돈 갖고. 내 돈 돌려달라고 했더니 갑자기 뛰어 도망가면서 순식간에 눈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후에 ATM가서 돈을 뽑았다. 돈 없을 때 그 인간 만난게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다.

Ritual Bath at Archaeological Museum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의식용 욕조

“헤롯의 구역”이라고 이름지어진 고고학 박물관에 갔다. 불탄 집과 아주 가깝게 있는데, 이 박물관은 2000년 전 유대인 상류층의 집 예닐곱 채가 있던 터를 포함하고 있다.

유대인 고고학의 특이한 점은 정말 정말 의식용 욕조가 많다는 것이다. 어딜 가나 있다. 어떤 집은 서너개씩 있다. 고대 유대인들은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목욕한 했나 싶다.

Hallelujah!

할렐루야!

지하 박물관을 나와 (불탄 집과 고고학 박물관 모두 지하에 있고, 지상은 일반적인 상가 건물이다) 할렐루야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기는 맥코믹 그룹이 유대인 지역을 방문할 때 와서 먹었던 곳이다. 버거는 정말 컸다!

사실, 예루살렘에서 어디를 가던 거의 기억이 난다. 지난 번에 정말 안 가본 곳이 없는 듯 하다. 지역 가이드 조지 필몬과 가이딩 스타가 예루살렘의 거의 모든 것을 커버한 듯 하다.

Rampart Walk

성벽 길

그 후에 자파 문으로 다시 가서 남쪽을 향해 성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내 계획은 성벽을 따라 걷는 것이었다. 그런데 램파트라는 것이 나타나서 돈을 내고 들어갔다. 아하, 성벽 위로 걷는 것이었다. 정말 좋았다. 경치도 좋고. 왜 가이딩 스타가 이 걸 우리 여행일정에 포함시키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좀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위 사진과는 다르게 길 대부분은 한 쪽이 탁 트여 있고 바닥의 돌은 닳아서 아주 반질반질 매끄럽다. 내가 전혀 뛰지 않고 조심스럽게 걸었다. 나랑 같이 여행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 것이다. 성벽이 아주 높아서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은 못 올라올 것 같다. 이 길은 자파 문에서 똥문까지 지속된다.

Geopolitical location of Jerusalem - Archaeological Park

예루살렘의 지정학적 위치 – 고고학 공원

그 후에는 고고학 공원에 갔다. 똥문 아래쪽에 있는데, 이슬람 제국 때에는 왕궁 터였다고 한다. 여기서 예루살렘의 지리적, 그리고 외교적 위치를 잘 보여주는 그림을 하나 발견했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은 실질적으로 세 대륙을 연결하는 허브와 같았다.

Muslim Cemetary

이슬람교 공동묘지

고고학 공원을 나와서, 길을 따라 계속 걸었고, 성벽 바로 아래에 있는 이슬람교 공동묘지를 통과해 갔다. 꽤 긴 편이었는데, 하람 또는 성전터를 가기 위해 맥코믹 그룹이 갔던 곳인 사자문에 가게 되었다.

Ecce Homo

에체 호모

길을 계속 걸어서 고난의 길에 가게 되었다. 여기는 에체 호모라는 곳으로 본디오 빌라도가 “에체 호모 (이 호모, 아니 이 사람을 보라)”라는 말을 했다고 믿는 곳이다.

이슬람 지역에서 불쾌한 경험을 둘 했다. 지역에 이슬람 지역이기 때문에 이슬람을 믿는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짐작을 하고 있다.

먼저, 세 팔레스타인 청년이 길 가에 앉아 있었는데, 나를 보자 일본에서 왔냐고 물었다. 내가 시카고에서 왔다고 하자 조롱하는 듯한 말투로 “애이 애앰 퍼럼 쉬이 케이 거어어”라고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중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고 외쳐댔다.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계속 걸었다.

두번째, 길을 가는데 팔레스타인 청년이 “친구야, 우리 가게 들어와서 봐봐”라고 해서 부드럽게 “괜찮습니다”고 했더니 내 뒤통수에다가 “중국놈”이라고 소리치고는 원숭이 소리를 흉내내고 있었다. 이번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오늘은 아침에 만난 내 돈 16세겔, 약 5천원을 들고 튄 노인을 포함해서 팔레스타인 사람한테서 불쾌한 경험을 세 번 당했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의 관계에 대해서는 할말이 참 많은데, 내 의견으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해외 친구들을 만들기 위해 목숨 걸고 노력을 해야 할 때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돌릴 때가 아니다.

한 번 간단히 계산해 보자. 내가 오늘 두 사람을 만났는데 (아침에 만난 노인은 인종적인 능욕을 한 것이 아니므로 제외하자), 그 둘이 하루에 동양인 열명씩 놀린다고 하자. 그리고 그 중 셋은 공통된다고 하면, 모두 합쳐서 날마다 17명의 동양인이 인종적인 능멸을 당하게 된다. 이를 일년으로 환산하면 6,205명이다.

저 사람들이 남들 놀려서 잠시 재밌을지는 몰라도 해마다 6천명이 넘는 사람들을 팔레스타인 안티로 만들고 있다. 자기들이 이스라엘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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