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Thursday, 11 September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쉰 여덟번째 날 – 다시 비행기

3번 터미널에 도착한 다음에 예닐곱 시간을 기다렸는데, 비행 3시간 전부터 보안 검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차 보안 검사를 새벽 2시에 통과했는데 (비행이 새벽 5시였다) 간단히 내 수화물로 부칠 가방 엑스선 촬영하고 남한테 받은 물건이 있는지, 무기를 소지하고 있는지, 날카로운 물건을 지니고 있는지 세 가지 질문을 받았다. 꽤 간단했다. 그리고 내 가방을 부치고서는 2차 보안 검사를 통과했다. 새벽이라서 줄이 길지는 않았는데, 꽤 천천히 움직였다. 내 앞에 있던 인도 사람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너무 느리다고 뭐라 언성을 높였다. 보안 직원인 젊은 아가씨가 그 아저씨를 옆으로 따로 세우더니 결국엔 내 뒤에 보안 검사를 받았고, 조용하지만 강한 어조로 “똑바로 처신해!”라고 말을 했다. 보안 검사는 쉬웠고, 모두들 미소를 짓고 있었고, 나도 농담을 주고 받았다. 다른 공항에서는 못 보던 푸른 색 막대기를 갖고 있었는데, 내 가방이랑 노트북 등 소지품을 모두 막대 끝으로 문지르고 나서는 어떤 기게에 올려놔서 분석을 했다. 거기 아가씨에게 뭐냐고 물었더니 검지 손가락을 흔들면서 “비~밀”이라고 웃으며 얘기했다. 아까 그 불평했던 아저씨는 결국 독방으로 조사 받으러 끌려 가더니 2시간 후에 탑승구에서 만났는데, 아마 비행 시간 직전에 풀려난 듯 했다.

It is always good to see the windows error message in public

공공장소에서 윈도우즈 에러 메세지를 보면 늘 행복해져

맥코믹 그룹은 지난 번에 루프트한자를 탔는데, 모두 알고 있듯이 루프트한자는 1번 터미널을 사용하지만 다른 모든 국제항공편은 3번 터미널을 사용한다. 벤 구리온 공항은 독일 항공사에게 별도의 터미널을 따로 준 것이다. 3번 터미널의 보안 검사는 보통 수준으로 미국과 거의 동등하다. 1번 터미널의 보안 검사는 처절할 정도로 끔찍하다. 이스라엘이 독일 항공사에게만 아주 더럽고 어려운 보안 검사를 선물로 준 것 같아 보인다. 내가 충고를 하자면, 이스라엘 갈 때는 루프트한자를 타지 말라는 것.

What other airport has this easy chairs?

다른 어떤 공항에 이런 안락의자가 있을까?

내가 공항 탑승구에 갔을 때,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안락의자라니. 저 의자에 누워서 두 시간을 보냈다.

Playground at Ben Gurion Airport

벤 구리온 공항의 놀이터

벤 구리온 공항은 정말 시설들이 좋았는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도 훨씬 컸다. 위 사진은 일부일 뿐이라는 거.

쮜리히 공항까지 날아가서 시카고 가는 비행기로 갈아탔다. 이스라엘 갈 때에도 비상 탈출 통로 좌석에 앉아 갔듯이 이번에도 동일한 좌석을 차지했다. 다리가 넓으니 편안하고 좋았다. 스위스 항공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줬다는 것.

One thing Chicago Airport does not have

시카고 공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

벤 구리온 공항에서는 전기 콘센트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고, 쮜리히 공항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전기 콘센트는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는 거의 절대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시카고 공항에서 입국 심사 줄이 지난 1월과 비교해서 좀 달라진 것 같다. 내 기어이 맞다면 지난 번에는 심사 줄이 세 종류가 있었다. 미국 시민용, 미국 영주권자용, 그리고 나머지 (또는 방문비자용). 이번에도 줄이 세 개인 것은 같지만, 첫째 줄이 좀 달랐다. 미국 및 캐나다 시민용이었다. 왜 미국 입국 심사에서 캐나다 시민을 미국 시민과 같이 대할까? 두 나라가 인수합병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집에 오니 참 좋긴 하다. 왜 사람들이 집이 최고라고 하는 지 알 것 같다. 집에는 사랑스러운 자기가 있으니까.

또 다른 이야기. 이집트 이야기

내가 처음으로 이집트 여행 계획을 세웠을 때에는, 이스라엘의 여행사에 예약을 했다. 이스라엘 내 여행과는 달리 이집트 여행은 최소 두세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가자의 전쟁 때문에 날 뺀 모든 사람들이 여행을 취소해 버렸고, 결과적으로 나 혼자밖에 없어서 여행 자체가 취소가 되어 버렸다. 물론 환불을 받았다.

그 당시 나는 메깃도에서 발굴을 하고 있었다. 여행이 취소 되어서 어쩔 줄 몰랐다. 같이 발굴하는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온 사람이 있다고 얘기해 줬다. 리몬 나빌 사무엘이라는 사람이었는데, 한 구역 책임자였고, 얘기를 하니 도와주겠다고 했다. 이집트에 있는 친구 여러명과 얘기를 한 뒤에 그 중 한 사람이 날 돕겠다고 했다. 디나 제이콥이라는 여자였다.

디나가 자기가 다 알아서 카이로 관광 시켜줄 테니 일단 오기만 하라고 했다. 물론 난 그년을 믿었다. 페이스북 메신저로 얘기를 했고, 내가 카이로에 도착하면 전화하라고 전화번호도 내게 알려줬다. 그 때에는 룩소 관광을 할 생각은 전혀 하지도 않았다. 이집트로 떠나기 이틀 전에, 내 구역 책임담당자인 셜리 벤 돌 에비앙이 꼭 룩소 가보라고 강추했다. 그래서 카이로에서 룩소 가는 당일 여행을 첫날 하기로 예약을 해버렸다. 카이로에 있는 리몬의 친구인 디나가 본인은 아주 일정이 유연하다고 해서 둘째날부터 그년을 만나려고 했다.

카이로는 이스라엘의 타바 국경에서 버스를 두 번 타고 갔다. 첫날 밤에 도착하고서 디나에게 페이스북 메신저로 글을 보냈는데, 문자가 전혀 가질 않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이년이 페이스북에서 날 차단해 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전에 받은 전화 번호로 전화를 했는데, 아무도 받질 않았다. 완전 우주에서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첫날은 룩소 관광을 예약했기 때문에 일단 하루 정도 여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과 다음날 하루 종일 인터넷 검색하고, 여기 저기 미친듯이 전화하고 하면서 계획을 하고 알아본 결과 이집트에 있는 모든 날들을 무사히 관광할 수 있었다. 어떤 때는 여행사를 이용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혼자 하기도 했다.

만일 룩소 관광을 미리 예약하지 않았다면, 이집트에 있던 대부분을 날들을 완전 망쳐버렸을 것이다. 디나 제이콥이 왜 저 지랄 했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리몬에게 따지지는 않았다. 내가 믿기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내 책임담당자가 룩소를 내게 추천하도록 역사하신 듯 하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개인적으로는 내 구역 책임담당자이며 예쁜 두 딸의 엄마인 셜리에게 감사함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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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1 September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쉰 일곱번째 날 – 마지막 날

마지막 날엔 수업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늘 마지막 날인 목요일에 수업이 있다고 했는데 어제 언어센터 비서가 와서는 마지막 날엔 수업이 없다고 얘기했다. 대신에 조촐한 종료식이 있었다.

종료식이 11시여서 집을 10시반에 나섰다.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고 해서 타고 갔는데, 집에서 학교까지 20세겔이었다. 여기 베들레헴 온 첫날 택시에서 25세겔 안 준다고 고함지르고 길 한 복판에 떨궈줬던 그 택시를 기억하는가? 그 때는 베들레헴 대학교에서 시라지 센터까지 가는 거였고, 오늘은 집에서 베들레헴 대학교까지 가는 거였는데, 오늘 가는 거리가 그 전보다 4분의 3 더 멀다. 그런데도 20세겔만 받았다.

Classmates.  Lina from Germany, me, Cletos from Ghana, Mateo from Italy.  Anna from Switcherland is not here

우리 반 친구들. 독일에서 온 리나, 나, 가나에서 온 클리토스, 이탈리아에서 온 마테오. 스위스에서 온 안나는 오늘 없다

종료식은 간단했고, 수료증을 받았다. 스위스에서 온 안나는 항공사가 비행편을 마음대로 하루 앞당기는 바람에 공항에 가야 해서 오늘 못 나왔다. 그리고 아랍어 회화 초급과정 선생님도 안나왔다. 안나는 스위스 아가씨지만 독일에서 일하고 있으며, 매우 좋은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본인의 의식과 주장이 매우 강하고 주변 사람들이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 한 번은 이번 전쟁에 대해 다 같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안나가 가자의 사망자 수를 얘기하면서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악마로 묘사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은 부인하지 않지만 하마스도 공격을 했지만 단지 성공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안나가 양측의 사망자 수를 대며 어떻게 이 둘이 똑같냐며 흥분했다. 이스라엘이 좋은 방어 기술이 있고, 그 기술을 써서 자국민을 보호한 것이지 하마스가 선하고 착해서 공격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 내면은 둘이 모두 똑같이 서로를 죽이고자 했다고 말하자 굉장히 화를 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특히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은 좋고 이스라엘은 악마라고 생각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이런 얘기 하지 몇일 전에 우리 반에서 (나와 안나를 포함해서) 항공사와 비행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내가 스위스 항공을 탄다고 하자 안나는 매우 기뻐했는데, 그 후에 루프트한자가 조금 더 낫다고 하자 굉장히 언짢아 했다. 그리고 어제, 다시 다 같이 동일한 얘기를 하게 되었을 때, 내가 스위스 항공이 세계 최고의 항공사 중 하나라고 하자 안나가 약간은 화나고 흥분한 조금 큰 목소리로 “스위스 항공은 최고의 항공사 중 하나가 아니라, 세계 유.일.의. 최.고. 항.공.사.야! 내가 스위스 사람이라서 그러는게 아니고 그건 단지 사실일 뿐이야”라고 말을 했다. 증거를 대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OK라고 말하고는 대화를 피해버렸다.

Gemma from Spain

스페인 아가씨 헴마

종료식이 끝나고 일부 학생은 최후의 점심을 같이 먹으러 갔다. 오늘 공항에 가는 사람이 나까지 셋 있었는데, 영국에서 온 중년 아저씨인 에드워드 폭스는 나랑 같이 갈지 말지 망설였다. 일리노이주 시골에서 온 조이라는 아가씨는 나랑 같이 가길 원해서 나보고 버스 정류장에서 1시간 만 기다려 달라고 얘기를 했다. 이 아가씨는 굉장히 곱게 자라서 대학생인 지금도 아빠가 뭐든지 다 해줘서 혼자서는 비행기 표 끊는 방법도 모르고, 아무 것도 혼자서 할 줄 모른다. 어째든 나는 한시간이 아니라 두 시간을 기다렸다.

버스 정류장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 택시 기사들이 나한테 와서 택시 타라고 호객했는데, 친구를 기다리고 있고 버스 타고 갈 거라고 얘기를 했다. 내가 아랍어를 어설프게라도 하는 게 신기해서 사람들이 내 주변에 몰려들었다. 둘러쌓여서 두 시간을 얘기했다. 기독교인과 무슬림은 같은 아랍어라도 인삿말부터 다르다는 걸 알았다. 나랑 얘기한 사람들 중 일부는 아내가 여럿 있었다(최대 4명까지라고 한다). 나중에 사람들이 반 장난으로, 반 진심으로 내 주변에서 마치 대사관 앞에서 시위 하듯이 “좃같은 미국”을 외쳐댔다. 사람들이 그러길 자기들 (팔레스타인 사람들) 중에는 미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고 이스라엘보다 미국을 더 싫어한다고 했다. 후에 한 아저씨는 충고하듯이 미국에서 왔다고 하지 말고 그냥 한국 사람이라고만 말하라고 하면서, 여기서 미국인이라고 말하는 건 별로 현명한 건 아니라고 얘기해 줬다.

두 시간을 기다리자 드디어 조이가 버스 정류장에 나타났는데, 그 때 에드워드도 나타났다. 그래서 셋이서 같이 공항에 가게 되었다. 버스는 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인 베들레헴 대학교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검문소에서 사람들이 모두 내려서 허가증이나 여권을 검사 받았다. 늘 군인들이 버스에 타서 검사를 했지, 승객들이 모조리 버스에서 내리긴 처음이었다. 결국, 내 자리를 뺏겼다.

에드워드의 비행기는 9시, 조이는 11시, 그리고 나는 다음 날 아침 5시였다. 예루살렘에서 공항에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공요택시라고도 하는 셔룻을 타는 것과 공공교통을 이용하는 것이다. 가장 빠르고 좋은 것은 셔룻이다.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설명해 줬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에드워드가 공공교통을 이용하겠다고 고집을 했다. 에드워드의 비행이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본인이 그런다는 걸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마스커스 문에서 경전철을 타고 예루살렘 중앙 버스 정류장까지 갔고, 거기서 약 1시간 조금 넘게 기다려서 하이파 가는 버스를 타서 공항시에서 내렸다. 거기서 원래 무료 셔틀 버스를 타거나 일반 버스를 타고 공항 터미널까지 가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택시를 타고 터미널까지 갔다. 약 8시 경에 터미널에 도착했고 아저씨는 막 뛰어 갔다. 비행 3시간 전부터 보안 심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이는 곧바로 보안 심사대에 갔다. 나중에 에드워드 아저씨를 다시 만났는데, 비행기를 놓쳤단다. 셔룻 탔으면 45분만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는데, 공공교통을 이용해서 3시간 걸려서 공항에 왔기 때문이다.

Ilaria from Italy

이탈리아 아가씨 일라리아

이번 여행의 몇 가지 이야기들.

베들레헴에서 내가 묵은 집은 현대 투싼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온 중고차 같다. 사용자 설명서도 한국어로 되어 있고, 차에서 음성 안내라던가 전부 한국어로 나오고, 네비에서도 한국어로 말하고, 한글로 나온다. 그래서 블루투스, 음악, 비디오, 네비 등 차의 좋은 기능들은 하나도 못 쓰고 그냥 운전만 한다. 한국어로 고통받는다고 말 하더라.

그 집은 딸 하나, 아들 둘 있는데, 나는 딸 방에서 지냈다. 그리고 밤마다 딸은 거실 쇼파에서 잤다 (딸은 대학을 졸업했다). 그걸 보는 게 좀 불편했다. 그거 빼고는 매우 좋았다. 아주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그리고 아랍세계도 마찬가지겠지만) 엄마가 뭐든지 다 한다. 남편과 아이들은 절대 가사일을 할 수 없다. 한 번은 내가 빨래를 하기 위해서 딸에게 세탁기가 어딨냐고 물어보자 자기 집에 그런게 있냐고 내게 되물었다. 그리고 5분 후에 딸 방 앞에 세탁기가 있는 걸 봤다. 또한 식구들은 엄마를 위해 빨래를 한 곳에 모아두지도 않는다. 엄마가 온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여기 저기 널부러져 있는 빨래를 모아서 빤다. 다른 아줌마에게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남자가 집안일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을 한다고 하자 굉장히 충격 먹는 모습이었다. 그 아줌마가 말하길 여기서는 여자가 가정일에 불평만 해도 사악한 아내, 사악한 여자로 취급받는다고 한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서로 죽이는 다른 중동지역과 달리 사람들이 평화롭게 산다. 베들레헴에서는 심지어는 기독교인과 무슬림들도 큰 마찰 없이 산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게 가능한 이유는 더 큰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스라엘.

위에도 섰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미국을 싫어한다. 그럼 이스라엘은 어떨까? 내가 시카고에서 왔다고 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바마 무지 싫어하는 거 알아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바마 겁나 싫어해요”라는 말을 이스라엘에서 여러번 들었다. 미국은 정말 호구다. 돈과 노력을 양쪽에 엄청 쏟아 부으면서 욕은 욕 대로 먹고 모두에게 미움받고.

헤브론에 같이 갈 때, 자칭 투어 가이드라는 인간이 하마스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 말이 논리가 하나도 없어서 나는 전혀 듣지 않고 있었는데, 독일에서 온 리나는 니 말에 100% 다 동의하는 건 아니라고 얘기를 했다. 그러자 그 인간이 리나에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리나는 무지 놀라서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가짜 투어 가이드의 그런 태도는 친구를 만드는 데 별로 도움이 안될 듯 하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친구가 절실히 필요하고.

어제, 학교 뜰에 앉아 있는데, 베들레헴 대학교 한 교수님이 오더니 내가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다.  한국 사람이지만 시카고에서 왔다고 하자, 해마다 한국에서 교환학생 둘이 오는데, 내가 그 학생인줄 알았다고 했다.  몇가지 얘기를 하다가, 교수님이 팔레스타인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냐고 해서 아니라고 했더니, 내 옆에 앉아있던 두 아가씨를 가리키며 “팔레스타인 아가씨들 예쁘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그래서 결혼했다고 얘기를 했다.  이 곳에서 세 번째 중매 제의를 받았다.  헐.

Wednesday, 27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쉰 여섯번째 날 – 가짜들

The famous Stars & Bucks in Bethlehem

그 유명한 베들레헴의 스타 & 벅스

위 사진은 베들레헴의 가짜 스타벅스다. 맥코믹 그룹이 지난 1월에 여행할 때, 베들레헴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성탄교회로 걸어갈 때 길에서 봤던 것이다. 간판의 색과 글꼴은 스타벅스와 동일하지만 일단 이름이 살짝 다르고 (스타 & 벅스) 로고가 다르기 때문에 진짜 스타벅스가 아니고 관심끌려고 하는 것인 줄 쉽게 알게 된다.

F.R.I.E.N.D.S in Bethlehem

베들레헴의 F.R.I.E.N.D.S

위 가게는 베들레헴 대학교 옆에 있는 걸로 위 간판이 어디서 따온 것인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위 장소는 여러 기능을 가진 곳인데, 인터넷 연결된 컴퓨터가 있고, 인쇄기와 복사기도 구비되어 있다. 그리고 당구대가 여럿 있어서 학생들이 돈 내고 즐길 수 있다.

Toast-R-Us in Bethlehem

베들레헴의 토스트-알-어스

위 사진은 어떤가? 한국에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에는 토이즈-알-어스 (Toys-R-Us) 하고 베이비즈-알-어스 (Babies-R-Us)라는 유명한 체인점들이 있다. R은 좌우가 뒤집혀 쓰여 있고, 영어로는 “장난감은 우리들이에요,” “아가들은 우리들이에요”와 같은 소리로 들린다. 위 사진에서 잘못된 것이라곤 토스트를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썼다는 것 정도. 이 것도 애교 정도로 봐줄 수 있다.

베들레헴에는 이런 패러디가 엄청 많이 있다. 다 관광객들 관심 끌고 웃게 만들려는 목적이지만. 이렇게 하면 관광지에서 마케팅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Starbucks in Bethlehem. Really?

베들레헴의 스타벅스. 진짠가?

성탄교회 옆의 구시장에서 위 사진에 있는 스타벅스를 발견했다. 성탄교회로 가는 길목에 있는 다른 가짜 스타벅스가 “스타 & 벅스”인 것과 달리 여기는 상호명 철자도 완전 똑같고, 로고도 동일하다. 이게 진짜 스타벅스의 체인점인지 궁금해졌다.

Starbucks mug sales in Bethlehem

스타벅스 머그컵도 팔아

여기선 스타벅스 머그컵도 판다. 여기 일하는 사람에게 이게 진짜 시애틀 스타벅스의 프랜차이즈인지 물어봤는데, 이 총각이 프랜차이즈란 말을 못 알아 듣는다. 그래서 좀 더 쉬운 영어로 약 1분 가량을 설명했더니, 미국 스타벅스의 진짜 체인점이 아니란다. 이렇게 동일한 이름과 로고를 사용해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는 저작권을 옆집 개 이름마냥 취급하는 곳이니 괜찮겠지. 여기 사람들에게 내가 음악(CD)을 돈 주고 산다고 했더니 이해를 못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다들 음악과 영화 같은 걸을 돈 주고 구입한다고 했더니 미국 사람들은 전부 멍청한 병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다운로드 받으면 되는데 왜 돈주고 사는 병신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KFC Bethlehem. Hmm...

베들레헴의 KFC 글쎄…

위 KFC 간판은 지난 1월에 버스 세웠던 버스 정류장 건물에 있는 것이다. 위 KFC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근데 위 KFC가 정말인지 아닌지 이젠 나도 모르겠다.

Two licence plates coexist in Palestine

두 나라의 번호판이 공존하는 팔레스타인

테드 히버트 교수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번호판이 있는 차가 팔레스타인 지역에 주차하면 돌을 던지기 때문에 이스라엘 번호판이 있는 차 주인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주차할 때 번호판을 떼어서 갖고 다닌다고 했다. 교수님이 아내와 함께 이스라엘에 살았던 때가 약 2-30년 전인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역이나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번호판이 달린 차를 엄청 많이 본다. 사실 서안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능하면 이스라엘 번호판을 얻길 원하고 또 노력한다. 왜냐면 이스라엘 번호판이 있으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이제는 이스라엘 번호판이 달렸어도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차량은 모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다 자기 친구, 이웃, 식구들인 셈이니 더 이상 돌을 던지지 않는다.

Tuesday, 26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쉰 다섯번째 날 – 라헬의 무덤

지난 주 시작할 때, 선생님이 기말고사를 수요일에 본다고 했는데, 갑자기 오늘 말을 바꿔서 시험을 바로 보겠다고 해서 시험을 봤다. 다른 학생들은 좀 열받았지만 난 뭐 하루 더 공부한다고 성적이 더 잘 나올 것도 아닌 걸 알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방과후에 라헬의 무덤에 가려고 했다. 몇일 전에 구글에서 검색을 하니까 검색 결과로 나온 웹사이트 중에 이스라엘 당국이 라헬의 무덤에 걸어가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반드시 뭔가를 타고 가야만 한다는데, 일단은 시도해 보기로 했다.

Dumb boys doing dumb things

멍청한 놈들이 멍청한 짓거리 하고 있네

그래서 방과 후에 검문소까지 걸어갔는데, 라헬의 무덤이 분리장벽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분리 장벽 근처의 헤브론 길을 걷고 있을 때 (검문소는 아직 멀리 있다) 한 스무 명쯤 되는 아이들이 길에 있는 것을 봤다. 아마 중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아이들인데, 도로에 쓰레기와 돌들을 잔뜩 놓아 두고는 길을 막고는 지나가려는 차에는 소리지르고 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 옆의 인도로 지나가고 있었는데, 거의 다 지나갔을 때에 그놈들이 내게 달려 오더니 나를 거칠게 밀치고 내게 뭐라고 막 소리를 질러댔다. 나중에 어떤 인간이 이스라엘에 대해 시위하는 거라고 얘기를 해 줬는데, 이해가 안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을 불법적으로 쓰레기를 이용해서 막고 팔레스타인 차량에 소리지르고 욕하는게 어떻게 이스라엘에 대한 시위라는 건지. 여기는 A 구역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리고 관광객에게 욕하고 소리지르고 위협하는 게 어떻게 이스라엘에 대한 시위인지 이해가 안된다. 인도에는 상점 앞에 수많은 어른들도 있었는데, 단 한명도 관광객을 해꼬지하는 아이들을 막거나 제지하는 놈이 없었다. 아이들이 나를 밀치는 게 점점 거칠어 지고 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서 몇놈 뒤지게 패줘야 겠다고 드디어 결심을 했다.

Nostalgic Tear Gas

추억의 최루탄

그때,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최루탄 쏘는 소리였다. 대학생 때 시위 좀 해서 최루탄 많이 맞았지. 나는 아내가 시카고에서 사준 농부 모자 때문에 아주 멀리서도 관광객 티가 팍팍 난다. 파수대에 있는 이스라엘 병사가 관광객 한명이 성난 팔레스타인 아이들에 둘러쌓인 것을 보고 나와 아이들 있는 곳을 향해 최루탄을 두 방 쏜 것이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순식간에 도망가서 사라졌다. 분리 장벽 위에 있는 이스라엘 파수대를 올려다 보니 최루탄을 쏜 병사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이것으로 최루탄은 날 위해 쐈다는 게 명확해 졌다.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게 팔레스타인 경찰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여기 A 구역은 팔레스타인 경찰이 치안과 질서를 담당하는 곳인데.

마침내 이스라엘 검문소에 도착했을 때 주인집 아저씨인 함디 바누라를 만났다. 그래서 검문소 내 안내를 해 줬다. 검문소 내부는 마치 미로처럼 어지러운데, 덕분에 헤매지 않고 쉽게 통과했다. 주인집 아저씨는 이스라엘 입국 허가가 있지만 본인 차량을 운전해 갈 수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검문소 근처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검문소를 통과한 다음에 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에 간다. 맥코믹의 관광 안내인이었던 조지 필몬은 인종이 팔레스타인 사람이지만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운전해 다닐 수 있다.

검문소를 지나자 라헬의 무덤의 첫 문이 바로 있었다. 거기에는 아가씨 군인이 둘 있었는데, 위험하기 때문에 걸어서 가게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택시를 타야 하냐고 물었다 (예루살렘 중앙 버스 정류장에서 이곳에 오는 버스가 있다). 아가씨들이 내게 매우 친절하게 잘 대해줬다. 그래서 나도 귀엽다, 예쁘다 해 줬더니 좋아 죽는다. 한 10분 정도 같이 웃고 떠들었다. 그러지 차 한대가 왔는데, 아가씨 군인들이 차를 세우고는 나를 태워 가도록 명령했다.

Gender Separated Entrance

성차별 입구

도착하고 나서 영어로 차비 낼까요 하고 묻자 바로 하는 말이 “잉글리시 노”란다. 그래서 그냥 왔다. 건물에 들어가기 앞서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건물 앞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영어로 이게 라헬의 무덤이냐고 물었는데 이해를 못한다. 그래서 천천히 두서너번 “뤠-이-철-스 투-움?”이라고 하니 내게 되묻기를 “배스룸(화장실)” 이냐고 한다. 그래서 잠시 생각하니 뤠이철스 툼이 히브리어로는 “카베어 라켈”일 것 같아서 시도해 봤더니 알아 듣는다. 물론 유대인 회당에는 남녀칠세부동석이다. 입구가 따로 있다.

Inside the Synagogue of Rachael's Tomb

라헬의 무덤 회당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청바지 입고 유대인 모자 쓴 한 아저씨가 친절하게 내부 안내를 해줬다.

Rachael's Coffin

라헬의 무덤

위 사진은 실제 (하지만 전승 말고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라헬의 무덤이다. 라헬은 야곱 또는 이스라엘이 매우 사랑했던 아내다. 내 생각엔 남편은 라헬을 더 사랑했지만 하나님은 다른 아내인 레아를 더 사랑하신 듯 하다. 어째든 레아는 유다지파의 어머니가 되었고 결국 예수님과 다윗왕의 조상이 되었으니까. 게다가 라헬은 혼자 누워있지만 레아는 남편 옆에 묻혀 있으니까.

Toward Jerusalem

예루살렘을 향해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한가지 공통점이라면 늘 방향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무슬림은 메카를, 유대인은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만 다를 뿐.

Parking lot

주차장

여기는 라헬의 무덤에 있는 주차장이다. 사진 오른쪽의 길은 더 큰 주차장으로 간다. 몇일 전에 팔레스타인 쪽의 분리장벽을 방문했을 때 분리장벽의 모양이 왜 이딴식인지 불평을 했는데, 지금 보니 라헬의 무덤 때문이다. 라헬의 무덤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입장이 불가능하다. 첫 문에 돌아가는 것도 차를 얻어 탔는데, 아까 친절하게 대해줬던 아저씨가 대신 차를 잡아줬다. 문에 도착하자 아까 있던 아가씨 둘이 여전히 있어서 다시 조금 더 웃고 떠들었다. 검문소에서 집까지 약 1시간 40분 가량을 걸어 돌아왔다. 여기 주인집에 걸어왔다고 하니 기겁을 하면서 거기서 여까지 걸어오는 사람은 평생 처음 본단다.

Is it mosquito or what?

이게 모가야 뭐야?

예전에 모기에 잔뜩 물린 다리 사진을 올렸는데, 그 후로는 전자모기향을 피워서 좀 낫긴 한데, 그래서 계속 물린다. 오늘 블로그에 글을 쓰는데 팔이 따끔해서 보니 이 놈이 날 물고 있어서 현장에서 사살했다. 이게 모기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 모기의 약 사분의 일 크기다. 이렇게 작아서 방충망을 그냥 지나서 들어오나보다. 하지만 이제 이 집에서는 오늘 포함해서 이틀만 자면 되고, 공항에서 하루밤 지새면 집에 가니까 문제 없다.

Sunday, 24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쉰 세번째 날 – 베들레헴의 바라카 장로교회

여기 온 첫날 내가 머무는 집 앞에 장로교 간판이 있는 것을 봤다. 하지만 주인집에서 말하길 주일에 예배드리는 걸 한 번도 못봤다고 한다.

Church Entrance

교회 입구

주인집에서 말하길 베들레헴에는 더 큰 장로교가 있다고 하는데 위치는 잘 모르겠다고. 내가 부탁을 해서 벳자훌 장로교회에 (교회의 정식 이름은 목동의 들판 장로교회다)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위치를 물어봐 줬다. 교회는 헤브론 길에 있었고, 나를 교회까지 태워다 줬다.

Church Building

교회 건물

교회는 길의 아래쪽 (여기는 어디든 언덕이므로)에 있다. 그래서 내가 사진 찍은 곳인 서쪽에서는 지상 1층이 반대쪽인 동쪽에서는 지하 1층이 된다.

Common Room in the church with pingpong table

탁구대가 있는 친교실

문을 들어서면 바로 예배당의 뒷 부분으로 가게 된다. 거기서 오른쪽에 문이 있는데, 친교실로 가게 되며, 친교실에서 예배후 차를 마시거나 한다. 이 곳에서 청년부 모임이 있을 때에는 탁구도 친다고 한다.

Simultaneous Translator Receiver

동시통역 수신기

친교실에서는 기술실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 곳에서 프로젝터와 컴퓨터 등을 제어 및 사용하며 사운드믹서 등이 있다. 또한 동시통역 설비까지 갖추고 있다. 오늘은 나 하나를 위해서 동시통역이 이루어 졌다.

Christmas Year Round

연중 성탄절

베들레헴에서는 어디든 언제든 성탄절이다.

Childrens' Story Time

어린이 설교 시간

예배는 캐나다나 미국의 장로교 예배와 거의 같다. 아이들 포함해서 약 50명 정도가 참석했다. 어린이 설교 시간이 있고, 그 후에 아이들이 주일학교에 가는 것도 캐나다 미국과 같다. 예배는 캐나다 미국과 비슷하지만, 인구 구성은 좀 다른데, 대부분이 2-30대의 젊은 부모들이었다. 꽤 이상적인 인구 구성인 아닌가. 이곳에서도 그리스 정교회 같은 경우는 대부분 나이 많이 잡수신 분들이 교회에 간다. 예배는 1시간 반 정도였는데, 그리스 정교회 처럼 3시간이 아닌 게 너무 감사하다.

Back to School Gift

개학 선물

모든 아이들은 주일학교에서 학용품 꾸러미를 선물로 받았는데, 내일 개학이라고 한다.

Playground at Church

교회 놀이터

북미에 있는 교회들은 대부분 뜰이 있고 내가 다니는 네이퍼빌의 낙스 장로교회와 같이 부자교회는 자체 놀이터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교회는 놀이터가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이 곳에서도 내가 방문해본 그리스 정교회는 아이들 놀이터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 장로교회에서 아이들 놀이터가 비록 조그마지만 있는 게 너무 좋았다.

Olive Everywhere

감람나무는 어디에나

여기는 무슨 공터만 있으면 감람나무 (올리브)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게 무슨 법이나 되는 듯 하다.

오늘 보니 벳자훌에 있는 장로교회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주일 예배를 이 곳에 합류해서 드린다. 사실 이곳 베들레헴 장로교회의 지부라고 한다. 또한 벳자훌에 보육원과 교육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어째든, 덕분에 집에 돌아올 때 한시간 20분 넘게 걷지 않고 차를 얻어 타고 왔다. 벳자훌 장로교회가 내가 사는 집의 진짜 옆집이라는 게 너무 감사할 뿐.

예배후 친교 시간에 사람들이 내게 여러 질문을 했다. 그 중에는 “외로워?”같은 것도 있었는데, 아마 미혼인지를 묻는 것 같았다. 왜냐면 바로 다음에 예수님 믿는 참한 아가씨 많다고 내게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나 밋-자위즈”라고 말을 했다. 이 말은 자위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결혼했다는 뜻이다. 또 다른 아주머니가 여기에 얼마나 있었냐고 물었는데, 내가 되물으면서 “팔레스타인 말이에요?”라고 하자 “팔레스탄이라고 말해줘서 고마워요”라고 했다. 나중에 서안지구(웨스트 뱅크)를 여행할 사람에게 조언을 하나 하자면, 여기를 “이스라엘”이라고 칭하는 건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다. 또한 여기 사람들은 서안지구(웨스트 뱅크)라고 불리는 것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제일 좋은 것은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러주는 것이다.

Who knows this?

이거 기억하는 사람?

교회에서는 몇몇 기념품과 교회 음악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 중에 일부는 카세트 테입으로 되어 있었다. 카세트 테입을 들어본 게 몇년 전인지 기억도 안난다. 이걸 틀만한 플레이어도 없기에 CD보다 훨신 쌈에도 불구하고 살 수가 없었다. 근데, 이건 판다는 건 사람들이 아직도 카세트 테입을 듣는다는 거 아닌가?

Arabic Gospel CD

아랍어 찬양 CD

카세트 테입 대신에 아랍어도 된 찬양 CD를 샀다. 내 이웃이 원한다면 빌려줄 수도 있다. 교회에서는 30세겔에 팔고 있었는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아마존에서는 좀 더 싸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5세겔 (약 2천원) 정도고 그냥 교회를 도왔다고 생각하련다.

오늘의 주제와 관련있는 건 아니지만, 주인집 아저씨가 이스라엘 정부에서 만든 경보 어플을 깔았다. 이 어플은 가자에서 미사일, 로켓이 발사되면 위치를 경보로 알려주고 사이렌을 울려준다. 그런데 정말 말 그대로 1분에 두 번씩 경보가 울린다. 위치는 대부분 남부 이스라엘이어서 대피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여기 벳자훌이나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대피소 자체가 없어서 대피할 곳도 없다.

Thursday, 21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쉰번째 날 – 베들레헴의 분리장벽

Mosquito bites on my leg

모기에 물린 다리

이번 여행 동안 호텔에서든지, 호스텔에서든지, 지금 머무는 홈 스테이에서도 모기가 없었다. 그런데 나흘전 갑자기 모기에 마구 물리기 시작했다.

Mosquito bites on my foot

모기에 물린 발

더이상 견딜 수가 없었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그래서 주인집에 얘기를 하니 전자모기향을 줬다. 그래서 어제는 모기에 물리지 않았다.

Separation Wall - Jesus Wept

분리장벽 – 예수께서 우시니라

어제 선생이랑 싸운 뒤에 오늘은 선생이 자중했다. 하루 종일 전혀 화를 내지 않았고 꽤 친절했다. 어제 학장이랑 선생이 제일 염려했던 건 내가 중도에 하차할까봐였다. 물론 난 그러진 않는다. 어쩌면 선생이 어제 학장이랑 면담한 후에 자기가 짤리고 대체 선생을 구하기 쉽다는 것을 알고 본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깨달았나보다. 여기에 실직률은 꽤 높은데다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아랍어 선생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다.

Separation Wall Painting

분리장벽의 그림

어째든 오늘 방과후에 학교에서는 아랍어 학생들 모두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간다고 했는데, 나를 비롯해서 꽤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지 않았다. 집에 가면 점심이 공짠데 왜 따로 돈을 또 내고 밥을 사먹어? 그 대신에 나는 분리장벽에 걸어갔다.

Wall surrounded House

장벽에 둘러 쌓인 집

장벽은 그냥 똑바르게 가질 않는다. 정말 많이 굽고 이리 저리 휘어져 있는데, 누가 왜 지도에 이런 모양으로 장벽을 세울 걸 결정했는지 이해가 안간다. 정말 지랄 같은 것 중 하나는 위 사진에 나온 집이다. 집이 장벽에 삼면이 둘려쌓였다. 왜 이스라엘은 저런식으로 지랄맞게 장벽을 세운 것일까?

Wall becomes canvas

벽은 캔버스가 되었다

장벽은 정말 끔찍한 것이다. 일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차타고 단지 15분 거리인 예루살렘에 가질 못하고, 갈 수 있는 사람도 꽤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 장벽을 예술을 위한 거대한 캔버스로 바꿔버렸다.

Smiling Lady with rifle

소총들고 웃는 아줌마

위 사진은 날 좀 슬프게 만들었다. 난 어느 쪽이든 폭력을 사용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위 사진의 아줌마는 소총을 들고 웃고 있다. 이 그림보다는 꽃을 들고 웃는 여인을 보고 싶다.

Make Hummus Not Walls

장벽이 아니라 허머스를 만들어

위 글은 꽤 웃겼다. 장벽에 있는 일부 그림이나 글들은 상당히 웃긴다. “장벽이 아니라 허머스를 만들어.” 나도 그러길 빈다. 허머스는 여기서 많이 먹는 빵 찍어먹는 소스 같은 것이다.

John Paul 2 Foundation

요한 바오로 2세 재단

돌아오는 길에, “요한 바오로 2세 재단”이라는 건물을 봤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제 264대 천주교 교황으로 2005년까지 교황이었다. 그 후로 교황이 두분이나 더 계시지만, 나는 교황을 생각할 때면 늘 이 분이 떠오른다. 이 건물은 헤브론 길에 있다.

기왕 분리 장벽에 대해 쓰는 김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여행 자유에 대해 쓰고자 한다.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여행을 완전 못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여러 그룹으로 나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1. 이스라엘에 살고 이스라엘 시민권을 갖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
  2. 이스라엘에 살고 영주권을 갖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
  3. 서안지구에 살고 이스라엘 입국 허가를 갖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
  4. 서안지구에 살고 이스라엘 입국 허가가 없는 팔레스타인 사람.
  5. 가자 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

이스라엘에 살면서 이스라엘 시민권이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 이스라엘 시민과 동등한 권리를 누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여행할 수 있고, 전세계 어디든 여행할 수 있다. 지난 1월 맥코믹 여행의 가이드였던 조지 필몬이 이 그룹에 속한다. 이 그룹에 있는 사람들은 벤 구리온 국제공항을 통해서 해외 여행을 할 수 있다.

영주권을 갖고 이스라엘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여행할 수 있다. 하지만 해외 여행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여권도 팔레스타인 여권도 없기 때문이다.

서안지구에 살며 이스라엘 입국 허가가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여행할 수 있다. 그리고 또한 팔레스타인 여권을 갖고 해외여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벤 구리온 국제공항을 사용할 수는 없고 먼저 요르단에 간 후에 암만에 있는 공항을 이용해야만 한다. 주인집의 아버지인 함디 바누라가 이 그룹에 속해 있다.

서안지구에 살며 이스라엘 입국 허가가 없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은 여행할 수 있지만 이스라엘 지역은 여행할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팔레스타인 여권을 갖고 세계여행을 할 수 있다. 사실 이스라엘 시민(이스라엘 시민권이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 포함해서)보다 갈 수 있는 나라는 더 많다. 왜냐면 이집트와 요르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이 이스라엘 국민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가 입국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발리에 갈 수 없다. 주인집 아주머니인 일함 바누라와 세 자녀가 이 그룹에 속해 있다. 아줌마는 기독교인으로 정말 예루살렘과 나사렛을 방문해 보고 싶어서 몇 번 이스라엘 입국 허가를 신청했지만 모조리 거부당했다. 딸은 독일에서 공부했고, 아들도 다음 학년에 독일에 공부하러 간다. 사촌은 미국의 워싱턴주에 공부하러 간다. 이 그룹의 사람들은 해외 여행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이스라엘을 여행할 수 없고, 가까운 벤 구리온 국제공항을 이용할 수 없다는 점 뿐이다.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극소수의 몇몇 정치 지도자를 빼고는 아무도 아무데도 못간다. 이스라엘 여행은 물론 같은 팔레스타인 지역인 서안지구로도 못간다. 이는 대부분 이스라엘 탓이지만 이집트도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집트는 가자지구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만 아무도 입국을 허용하지 않는다. 예전에 가자지구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여권을 발급받지 못했을 때 이집트가 자국 여권을 발급해 줬다. 하지만, 이집트 정부는 이집트 여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단 한 사람도 이집트로 넘어오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해외여행하는데 문제가 없다 (물론 불편을 하다). 그리고 일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지역에 여행을 할 수 없다.

Saturday, 16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마흔 다섯번째 날 – 가자지구 사람들을 위한 음식

오늘은 벳자훌에 있는 슈퍼마켓에 갔다.

Palestinian Supermarket

팔레스타인 슈퍼마켓

위 사진과 같이 생겼다. 거대한 코카콜라 간판이 눈에 띈다.

Food for Gazans

가자 사람들을 위한 음식

거기서 위 사진에 있는 쇼핑카트를 발견했다. 큰 사진이 붙어 있고 내가 읽을 수 없는 아랍어로 뭐라고 막 적혀 있었다. 그래서 일하는 여자아이에게 물어봤다.

나: 말해바 (안녕)
여자애: 말해바 (안녕)
나: 비흐키 잉글리제? (영어 할 줄 알아?)
여자애: 예스.

위 상황이 내 현재 아랍어 수준을 나타내 준다. 어째든, 여자애한테 저 쇼핑카트가 뭐냐고 물었더니 가자지구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할 음식을 기부하는 카트란다.

My food donation

내가 기부한 음식

그래서 캔 두 통 사서 카트에 넣었다.

집에 와서 여기 식구들에게 얘기하니 요즘은 웨스트 뱅크의 모든 슈퍼마켓에 가자 사람들을 위한 음식 기부 바구니가 다 있다고 한다.

Pita Bread

피타 빵, 구글 이미지 검색에서 찾음

이 집 주인은 가자에 친한 친구가 있다는데 어제 통화를 했다고 한다. 가자에 있는 그 친구에 따르면 요즘 가자에서는 음식을 배급해 주고 있는데,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 친구는 11시간을 줄서서 기다려서 (정확히는 자신이 6시간, 아내가 5시간을 기다렸다) 위 사진에 있는 피타 빵 하나를 받았다고 한다. 온 식구에게 주는 음식이란다. 그게 피타 빵 한 줄이 아니라 딱 하나. 여기서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데, 아랍어로 피타 빵을 뭐라 하는지 까먹었다.

구글 플러스에서 한 아줌마가 이스라엘에 집들을 부숴서 가자 사람들이 겨울에 얼어 죽을 거라고 글을 써놨는데, 정말 급한 것은 넉달 후의 추위가 아니라 당장 오늘 먹을 음식이다. 내가 알기로 가자는 얼어 죽을 만한 추위가 있는 곳이 아니다. 그래서 댓글을 달아서 가자가 얼마나 춥냐고 물었더니 사흘 후에 답변을 달았는데, “가자는 추워”라고만 해놨다. 이건 사실 대답도 아니다. 이스라엘이나 다른 사람들을 비난 하는 것은 좋은데, 정확한 사실을 갖고 비난해야지 거짓말 갖고 하면 안된다. 사실 이스라엘을 비난할 정확한 사실이 수천개나 되는데.

어째든, 우리가 심각하게 가자에 있는 사람들을 실제 음식을 갖고 도와야 한다 (돈으로는 말고). 왜 돈은 아니냐고? 돈을 주면 하마스와 다른 정치 지도자들이 그 돈으로 무기 사고, 터널 만들고, 그리고 자기 배 불려서 지들만 백만장자가 되는데 쓰기 때문이다. 결국 가자 사람들은 계속 굶주리게 된다. 실제 음식을 갖고 가자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Friday, 15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마흔 네번째 날 – 저항

오늘은 금요일이기 때문에 학교에 원래는 수업이 없는 날이지만 선생님이 월요일 수업을 오늘로 옮겨서 우리 반만 수업을 하게 되었다.

아랍어로 요일 이름은 주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숫자를 사용한다. 주일은 “제1일” 그리고 목요일은 “제5일” 이렇게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금요일은 “주마 일”이라고 부른다. 내 생각에 이 말은 모스크를 의미하는 아랍어 “자미-“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아랍어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지역은 어째든 무슬림이니까. 그래서 아랍어로 금요일은 “모스크 가는 날”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또한 토요일은 “삽트의 날”이라고 하는데, 이는 유대인의 안식일(샤바트)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다.

Friday Worship of Muslims on the street

금요일 길거리에서 예배하는 무슬림들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왜 기독교 대학교가 금요일에 수업을 안하는지 알았다. 무슬림들이 모스크 꼭대기에 달린 확성기와 스피커로 엄청 시끄럽게 예배를 생중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위 사진의 반대쪽, 그러니까 길의 다른 쪽은 완전히 막아놨고 사람들이 전혀 다닐 수 없게 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말구유 광장 (메인저 스퀘어: 성탄교회 바로 옆에 있는 큰 광장)에는 무슬림들이 대단히 많이 집결해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나는 전혀 이동할 수가 없었다. 이거 좀 짜증난다. 게다가 우회하려면 한 참을 되돌아 걸어 나가야 한다.

Palestinians protesting against Israel

이스라엘에 대항해 시위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무슬림들의 예배가 끝난 뒤에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면서 많은 깃발을 올리기 시작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가자지구를 위해서 이스라엘에 대항해 시위하는 거라고 한다. 시위하는 사람들은 “그 유명한” 이스라엘의 분리장벽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말하기를 이스라엘 군인들을 향해서 돌을 많이 던질 것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총을 쏠지도 모르는데 부디 다치는 사람이 없기를.

Tuesday, 12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마흔번째 날 – 벳자훌 걷기

원래 수업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인데 이번주만은 선생님이 교통 벌칙금 딱지 때문에 법원에 가야 해서 수업이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다. 벌금이 한 육칠백 세겔 나온 듯 한데, 이를 이삼백 세겔까지 낮출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Glass Bead

유리구슬

길거리에서 이걸 줏었다. 팔레스타인 아이들도 구슬을 갖고 노나보다. 나도 어렸을 때 구슬 갖고 많이 놀았는데… 정말 재미있었지. 이런 걸 먼나라에서 발견하니 재밌네.

Damaged Hosue

부서진 집

지난 번에 로켓을 맞아 부서진 집에 갔다. 길거리의 파편들과 잔해들은 모두 치워졌고, 집주인이 집을 수리하고 있었다. 수리비용을 누가 대는지 묻고 싶었는데 집주인이 영어를 못 하고, 내 아랍어 실력도 이제 겨우 인사하고 자기 소개하는 정도라 묻질 못했다. 이 사진을 찍고 가려는데 윗층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려서 올려다 봤다. 한 일곱 여덜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귀여운 여자아이가 날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웃음을 보자 가슴이 너무 아팠다. 아 이렇게 귀여운 여자아이를 사람들이 죽이려고 했구나. 미사일이 하마스에서 쏜 것이든 이스라엘에서 쏜 것이든 상관없다. 도대체 우리 사람들이 얼마나 미친 짓들을 하고 있는 것인가!

PalPay, not PayPal

페이팔이 아니라 팔페이

그 후에 발견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베들레헴의 스타앤벅스는 알지만 이것은 잘 모를 것이다. 미국에 페이팔이 있다면 팔레스타인에는 팔페이가 있다!

Beit Sahour Hospital

벳자훌 병원

어떻게 봐도 동네 의원정도로밖에 안보이지만 어째든 이게 벳자훌 병원이다. 그나마 팔레스타인 사람이나 정부에서 지은게 아니고 일본 대사관에서 지어준 것이다. 베들레헴이나 적어도 라말라에는 훨씬 크고 좋은 병원이 있기를 기대한다. 그런 병원이 꼭 필요하니까 말이다.

LOL Retaurant

LOL 식당

여기 식당 이름이 LOL이다. 미국에서는 엘-오-엘이라고 읽는데, 여기 사람들은 그냥 롤이라고 읽는다. 나중에 집주인이 그러는데, 저 식당이 자기 친척이 운영하는 곳이란다. 그런데 자기들은 비싸서 절대 안간다고. 가격이 한사람당 40세겔, 그러니까 약 미화로 15불이 안되고, 한국 돈으로도 만오천원정도가 될 것이다. 내 생각엔 그리 나쁜 가격은 아닌데…

Sunday, 10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서른 여덟번째 날 – 요르단의 페트라

일랏에서 페트라 당일 여행 패키지를 구매했다. 원래는 혼자 갈 생각이었는데, 메깃도 발굴에서 룸메이트였으며, 미국계 유태인이고 UCLA에서 역사를 전공하는 헨리가 만류를 했다. 국경을 건넌 뒤에 페트라까지 택시를 타야 하는데 2시간 반 거리다. 그런데 여기의 닳고 닳은 택시 운전수하고 흥정해서 바가지 안쓰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페트라 입장료도 매우 비싸다. 그래서 헨리가 여행 패키지를 하는 게 오히려 더 쌀 수도 있다고 했다. 물론 훨씬 안락하기도 하고.

King of Jordan welcomes you!

요르단의 국왕이 당신을 환영합네다!

요르단은 왕국이다. 이번 여행은 두 명의 멕시코 여자들과 함께 했다. 자매였다는데 전혀 안닮았다. 큰애는 피부도 매우 검고 완전 멕시코 여자처럼 보였는데, 둘째는 백인같이 생겼다. 물어보니 엄마가 멕시코 여자고 아빠가 유태인이란다. 타바 국경에서 얼마나 사람이 많았고 난장판이었는지 나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런데 오늘은 국경에 달랑 우리 셋이었다. 이스라엘을 나가는 건 타바에서도 어디에서도 원래 별 문제가 없었다. 요르단 국경도 쉬웠다. 여행사에서 나온 직원이 우리 여권을 받아가더니 우리가 커피 마시는 동안 그냥 다 해왔다.

Bedouin Village

베두인 마을

여기는 베두인 마을이다. 아랍어로 베두는 여행자란 뜻이고 -인은 복수형 접미사다. 마치 영어의 s나 히브리어의 -임 처럼 말이다. 베두인은 결국 여행자들이란 뜻이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정착해서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위 사진을 잘 보면 집들이 전부 2층을 짓다 만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원래 2층을 지을 계획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집을 완공하지 않으면 세금을 안내기 때문에 1층만 필요하지만 2층을 시작만 하고 만 것이다. 2층은 영원히 짓지 않을 것이란다.

Aaron Tomb Mosque

아론의 무덤 모스크

2시간 반 달려서 페트라에 도착했다. 위 사진에서 산 꼭대기의 흰 점은 모스크인데 대제사장이자 모세의 형인 아론이 죽은 지점을 기리는 것이라고 한다.

페트라 입장료가 미화로 130불이었다. 정말 비싸다. 이스라엘의 고고학 공원들이 20불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정말 미친 가격이다. 관광객을 벗겨먹겠다는 요르단 정부의 굳은 결의가 엿보인다.

Stairway to Heaven

천국 가는 계단

일부 동굴은 위 사진과 같은 계단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 것은 무덤을 의미한다고 한다. 계단은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상징한다.

Gateway to Petra

페트라의 관문

이 협곡은 시크라고 부르는데 페트라로 가는 관문이다. 굉장히 길고 좁은 협곡이다. 이게 상당히 놀라운 것이기도 하고, 양 옆에는 물길이 둘 있는데, 하나는 동물들이 마시고, 오른쪽은 사람들이 마시는 것이라고 한다.

Peeping the Petra

페트라 엿보기

한참을 걸어서 협곡의 갈라진 틈으로 웅장함이 엿보이기 시작한다.

The carved palace!

조각한 궁전!

마침내 협곡을 빠져나오면 위대함이 확연히 나타난다. 2층 건물이 보이지만 사실은 3층이다. 로마시대의 지진으로 인해서 건물들이 마구 파괴되고 도시의 4분의 3이 땅에 파묻혔다고 한다. 가이드가 말하길 현재 우리가 밟는 땅은 원래 땅보다 6미터 높게 뒤덮힌 것이라고 한다.

정말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건축된 것이 아니라 통바위를 깎아서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Tourism Police - To Protect and To Serve who?

관광 경찰 – 누구를 보호하고 누구를 섬기나?

페트라에서 거의 네 시간을 보냈다. 정말 거대한 도시고, 심지어 로마식 극장도 있다. 물론 극장도 건축한게 아니고 깍아낸 것이다. 관광 경찰들이 많이 보였는데, 누군가 그러길 관광 경찰은 관광객을 보호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고 자국 상인들을 관광객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있는 거란다. 그러나 아예 상인들과 엮이지 않는게 제일 좋은 것이다.

View from the Restaurant

식당에서의 풍경

그 후에 근처 식당을 갔늗네 약 4시 경이었다. 정말 미친 듯이 배가 고팠는데고 불구하고 음식이 썩 맛있진 않았다. 식당에서 옆에 있던 요르단 사람에게 이스라엘-가자 충돌과 하마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내게 몸을 숙이고 내 귀에 속삭이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주변에 종종 있어서 말하기 곤란합니다. 하지만 이 것으로 답변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고 말을 했다.

Back to Israel

이스라엘로 귀국

저녁 7시 경에 이스라엘 국경에 돌아왔다. 역시 우리 셋 뿐이었다. 이스라엘 국경에 얼마나 지랄같은지 잘 알기 때문에 좀 긴장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괜찮았다. 아마 사람들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번엔 내 가방을 열어서 뒤지지도 않았고, 타바 국경에서 처럼 왜 비누를 갖고 다니냐, 샴푸가 뭐에 쓰는 물건이냐 같은 바보스런 질문도 하지 않았다. 딱 한 질문을 받았다 – “이번 이스라엘 방문의 목적이 뭡니까?”

왜 이집트 국경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요단 국경엔 아무도 없는지 모르겠다.

Friday, 8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서른 여섯번째 날 – 자동차 사고

방과 후에, 내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뭔가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나고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Accident Happened!

사고 났음!

밖에 나가 보니 차가 뒤집어져 있고 사람들이 주변이 있었다. 나도 거기에 갔다.

Upside Down

뒤집혔어

이 차는 기아 차였다. 위 사진은 다친 사람들이 구급차에 실려 간 뒤에 찍은 것이다.

사고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20대 중반의 두 아가씨가 타고 있었는데, 자매였다. 운전자는 두 다리가 모두 부러진 듯 보였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여자는 오른쪽 다리를 다쳤지만 걸을 수는 있었다.

Palestinian Ambulance

팔레스타인 구급차

위 사진은 팔레스타인 구급차로 굉장히 늦게 왔다.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신고하고 나서 약 25분 후에 도착했다. 베들레헴과 벳자훌이 얼마나 작은 곳인지 안다면 이렇게 늦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운전자는 길을 잃었다고 했다. 경찰과 구급차 운전자는 길을 다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특히나 마을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30분이면 걸어가는 곳에서 말이다.

Dangerous Road

위험한 길

내가 이 길을 걸어 다닐 때, 과연 이래도 안전한지 늘 궁금했었다. 위 사진에서 보이듯이 가드레일이 전혀 없다. 사람들이 그러기를 매달 한두건의 똑같은 사고가 난다고 한다. 치명적인 사고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 가드레일을 설치해서 길이 좀 더 안전해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도로가 나쁜 것에 대해 이스라엘을 비난했고, 이번 사고가 이스라엘 책임이라고 했다. 동의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무슨 길가다 넘어져도 다 노무현 탓도 아니고. 또한 사람들이 구급차가 늦은 것도 이스라엘 때문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이 구급차에 GPS 설치를 허가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라고 했다. 뭐 그럴 지도 모르지만, 내 생각엔 GPS를 떠나서 구급차 운전자는 모든 길을 알아야 한다. 특히나 이토록 작은 마을에서는 말이다.

Wednesday, 6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서른 세번째 날 – 하마스의 로켓 공격

오늘이 홈스테이 집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이었다. 홈스테이는 베들레헴 인근인 벳자훌에 있다. 여기 식구들이랑 아침을 먹는데 갑자기 집이 흔들리면서 굉장한 폭발음을 들었다.

Building Attacked by a rocket

로켓 공격을 받은 건물

모든 사람들이 놀랐고 집 밖으로 나갔다. 모든 이웃들도 나와있었다. 시가지 쪽 건물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봤다. 주인 아주머니가 아침 일찍 시가지 쪽으로 갔기 때문에 여기 식구들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다. 주인 아주머니는 로켓 현장에 없었고, 다른 곳에서 안전하게 있었다. 주님께 감사한 것은 이번 일로 사망자가 없다는 것이다.

Broken Building Pieces

부서지 건물 파편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분노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인 듯 했다. 사람들은 서로 서로 로켓이 어디서 온 것인지, 이스라엘인지 하마스인지 묻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당국이 로케트 잔해를 수거해 갔고, 나중에 경찰관이 아랍 로켓이기 때문에 아마 하마스에서 쏜 것일 거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분노가 사라지고, 조용해 지고 이 일에 대해 아무도 더 이상 말하지 않기 시작했다. 온라인에 팔레스타인의 어려운 삶과 이스라엘의 박해에 대해 글을 쓰는 팔레스타인 아저씨를 봤는데, 현장에서 사진을 많이 찍고 있었다. 그런데 로켓이 하마스 것이라고 판명이 나자 길거리 그 자리에서 찍은 사진을 모조리 지우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휴전이 오늘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하마스는 휴전할 의사가 없나보다. 자기 사람들이 1800명 넘게 죽었는데도 말이다. 팔레스타인 당국은 공식적으로 이 로켓은 아랍 로켓이라고 발표했고 뉴스에서도 그렇게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일부 사람들이 이 로켓이 이스라엘 것이라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이제 가자에서의 전쟁을 끝내려고 하는 판에 왜 웨스트뱅크에서 새롭게 전쟁을 시작하겠는가? 그리고 웨스트뱅크에는 하마스와 같은 테러조직이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를 공격할 아무런 명분도 갖고 있지 못한다.

어제 밤에 몇몇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이스라엘 공격에 의해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었지만 하마스 공격에 의해 이스라엘은 조금밖에 안 죽었다는 얘기를 내게 했다. 또한 내게 말하기를 가자에서 이스라엘로 쏘는 로켓 위력도 약하고 집에서 만든 것들이기 때문에 쏴도 괜찮다고 했다. 이 말도 내 생각엔 말이 안된다. 무기의 위력이 약하다고 해서 공격해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양쪽 모두 공격을 하지 말아야 한다. 건물 주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주인도 위력이 약하기 때문에 정말 로켓을 맞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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