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Wednesday, 24 June 2015

Interfaith or respect?

The hospital chaplaincy office has a Muslim chaplain and also a African Jewish resident.  And we always emphasise interfaith.  So we do not have a cross in the chapel but a mysterious giant hands.

병원 원목 부서에는 무슬림 원목과 흑인 유대인 레지던트가 있고, 원목 부서에서는 늘 상호신앙 존중을 강조한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의 예배당에는 십자가도 없고 정체불명의 거대한 손이 둘 있다.

We have Wednesday noon chapel service which mostly chaplaincy office people only come.  During the summer, Interns are going to lead the service in turn.  And today was my turn which is first intern leading service.

수요일 정오에는 예배를 드리는데, 원목 부서에 있는 사람들만 거의 참석한다.  여름 동안에는 인턴들이 돌아가면서 예배를 인도하는데, 오늘은 내 차례였는데, 내가 첫번째 순서였다.

I was very careful to choose songs and message not to offend any other religions.  The first song was “Servant Song.”  The basic idea of the song is:  I will be your servant, and you be my servant.  Let us serve each other as Christ did.  Then suddenly the Jewish resident left the chapel with anger.

다른 종교를 자극하거나 불쾌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노래 선곡이나 메세지 등에 매우 신경을 썼는데, 첫 노래는 “종의 노래”였다.  이 노래 가사는 내가 너의 종이 되고 너는 나의 종이 되고 우리 서로 그리스도 처럼 섬기자는 거다.  그런데 갑자기 유대인 레지던트가 벌떡 일어나더니 화를 내면서 확 나가는 것이었다.

It was obvious that he left because of the word Christ.  But the song never proclaim that Jesus is Lord or Christ is Saviour.  It simply says let us serve each other as Christ.

그리스도라는 단어 때문에 나가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노래에서는 그리스도가 주라던가, 예수가 구세주라던가 하는 메세지는 전혀 없고 그냥 그리스도 처럼 서로 섬기자는게 다다.

After the service I had to talk to my supervisor about INTERFAITH.  The hospital claims that it is based on Christian faith, and most of us are Christian chaplains.  But we are not supposed to talk about or even spit out the words such as Jesus or Christ, Holy Spirit, etc.

예배 후에는 인턴 책임자에게 불려가서 상호 신앙 존중에 대해 엄청난 설교를 들어야 했다.  그런데 이 병원이 기독교 신앙에 기반한다고 자청하고, 우리 부서 대부분이 기독교 원목들인데, 그런데 예수 또는 그리스도 혹은 성령에 대해 이야기는 고사하고 입 밖에 꺼내지도 못한다.

In my understanding interfaith is embracing each other even though we are different.  Even though I do not believe in Alah or Mohamed the prophet, I admit the muslim brothers and accept them.  Interfaith does not mean removing what I have which are different from others in order not to offend them.

내 생각에 신앙 상호 존중이란 서로 다르지만 서로 받아주는 것이다.  내가 알라 혹은 예언자 모하메드를 믿지 않지만 무슬림 형제들일 용인하는 것 처럼 말이다.  상호 신앙 존중이란 남을 기분나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내가 갖고 있는 남들과 다른 것들을 제거해 버리는 것은 아니다.

That Jewish guy definitely did not respect my faith.  That song was all about serving.  And the word Christ comes only once in the whole song.

그 유대인은 확실히 내 신앙은 존중하지 않는다.  그 노래는 섬김이 전부다.  그리고 그리스도란 단어는 노래 전체에서 딱 한번밖에 안나온다.

And I think the reason that he was able to do such rude thing is that I am an intern (while he is resident).  If I were staff chaplain or even his supervisor, I don’t think he would have done that.  To give an extreme example, if President Obama was leading the service, he would never have left the chapel like that because of the word Christ.

내 생각에 그 유대인이 이런 식으로 무례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는 레지던트인데) 내가 인턴 뿐이기 때문일 것이다.  막 말로 내가 자기보다 높은 정식 원목이거나 아니면 자기를 평가하는 사수였다면 이러지 못했을 것이다.  좀 극단적인 비유를 들자면 오바마 대통령이 예배를 인도했더라면 그리스도란 단어 때문에 그런 식으로 예배당을 박차고 나오진 못했을 것이다.

There are so many narrow minded people who cannot admit others and their differences.

왜 이리 이 세상엔 자기와 다른 남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이 좁은 인간들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Monday, 25 August 2014

두번째 성지여행 – 쉰 네번째 날 – 헤로디움 국립공원

원래 오늘은 아랍어 수업이 있어야 하는데, 선생이 주차 딱지를 다시 끊어서 벌금을 줄이기 위해 법원에 가느라 수업을 취소했다. 그래서 오늘은 헤로디움 (또는 헤로디온) 국립공원에 가기로 했다. 여기 식구들에게 물어보니 택시타고 가라고 한다. 하지만 걸을만한 거리면 걷고 싶었다.

Google Maps Sucks

구글 지도 등신

구글 지도에서 길찾기를 하니 6시간 16분을 걸어야 한다고 나온다. 그런데 완전 빙빙빙 돌아 가는 길이다. 그래서 구글 지도를 버리고 내 감을 믿기로 했다. 사실 구글 지도가 팔레스타인에서는 거의 무용지물이다. 깨끗한 위성사진을 보여주지도 않고 길도 많이 틀리다.

Herodyum from afar

멀리 보이는 헤로디움

나는 나침반이나 지도도 없었지만 시계가 있고 해, 즉 태양이 있었다. 헤로디움이 집에서 거의 완전 남쪽이지만 살짝 동쪽에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시간을 알면 방위(동서남북)를 알 수가 있다. 그래서 내 감대로 절반 정도를 걷자 멀리서 헤로디움이 보이기 시작했다.

Sheep and Goats

양과 염소

하도 봐서 이제는 지겨운 양과 염소.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생김새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명하긴 좀 힌든데, 쉽게 파악하는 방법은 꼬리를 보면 된다. 염소는 꼬리가 올라가 있는데, 양은 내려와 있다.

Olive trees are everywhere

어디에나 있는 감람나무

헤로디움에 가는 데만 총 1시간 반을 걸었다. 그 와중에 감람나무를 엄청 많이 봤다. 이게 무슨 공간만 있으면 감람나무 심어야 하는게 법인듯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길에 야생 고양이와 개가 꽤 많다. 가는 길에 큰 개 한마리가 멀리서 날 보고 짖어댔다. 일반적으로 여기 야생 개들은 사람을 피하는데, 저 놈은 날 보고 짖었다. 그래서 혹시 몰라 돌맹이 예닐곱개를 쥐어 들고 천천히 걸어갔다. 다행히도 그 개는 딴데로 걸어가 버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Herodyum from closer spot than before

아까보다 가까이서 본 헤로디움

점점 헤로디움에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위에 썼듯이 한시간 반 걸려 걸어갔다. 여섯시간 십육분이 아니고. 내 감이 구글 지도보다 훨 낫다. 사실, 군대에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감이라고 하면 안되는데. 밤에 달 보고도 방위를 알 수 있다. 약간 더 복잡하긴 한데, 어렵진 않다. 태양이 있는 낮에는 태양의 위치와 시각을 알면 된다. 달이 있는 밤에는 현재 시각과 태양의 위치를 알면 된다. 태양의 위치를 밤에 어떻게 알까? 바로 달의 위치와 모양을 보면 현재 태양의 위치가 나온다. 사실 현재시각은 알 필요도 없다. 태양의 위치를 알면 현재 시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Top Palace Model

산상 궁전 모델

위 사진은 산상 궁전의 모델이다. 헤로디움에는 궁전이 둘 있는데, 하나는 산 꼭대기에 있고, 하나는 중턱에 있다. 그래서 산상 궁전과 산중 궁전으로 부르련다. 산중 궁전은 아직 정비가 다 안되어서 들어갈 수 있다고 하지만 위에서 바라볼 수는 있었다.

Top Palace Ruin

산상 궁전 유적

위 사진은 산상 궁전의 유적이다. 위 유적의 동그란 것은 파수대다 (여호와의 증인이 생기기 전부터 파수대는 있었다). 헤로디움은 종합 엔터테인먼트 궁전으로 거의 모든 것이 여기 있었다고 한다.

Herodyum Tunnel

헤로디움 터널

헤로디움에는 터널과 수자원 시스템이 있었다. 꽤 아래로 내려가고 거대한 물 저장소도 있었다.

Royal Theatre

왕실 극장

산의 다른 면에는 왕실 극장이 있었다. 가이사랴에 있는 것 만큼 거대한 규모는 아니다. 하지만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 지은 게 아니라 헤롯이 본인 개인 용도로 지은 극장이니 클 필요도 없다.

Herod's Tomb Model

헤롯의 무덤 모델

이 곳에는 헤롯의 무덤도 있다. 헤롯이 여기 묻혔다고 한다. 물론 그의 무덤은 후에 파괴되고 잊혀졌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2007년인가 발굴되었다. 위 사진은 헤롯의 무덤 모델이다.

Israeli Army base seen from above

위에서 내려다본 이스라엘 육군 부대

여기는 확실히 팔레스타인 땅이지만 헤로디움은 이스라엘 국립공원이고 이스라엘 정부가 관리한다. 그리고 이곳에는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도 많고, 정착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군부대를 박아놨다.

Herodyum Model

헤로디움 전체 모델

위 사진은 헤로디움의 전체 모델이다. 헤로디움은 이 근방에서는 가장 높은 곳으로 전체 지역을 보고 통제할 수 있다.

USAID

USAID 미국 원조 교제

집에 걸어서 돌아갈 때 (다시 한시간 반을 걸었다), 위와 같은 미국의 원조 표지를 몇 개 봤다. 이런 걸 보니 기분이 좋다. 적어도 미국이 좋은 일도 한다는 거니까.

Kids on barefoot

맨발의 아이들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맨발로 놀고 있다. 그래도 괜찮은지 걱정이 되었다. 여기는 관광 지역이 아니라 외국인이 전혀 오지 않는 곳인 듯 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외부인을 처음 본 듯 했다.

Steeper than it looks

사진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가파르다

한 쪽 언덕 위에서 다른쪽 언덕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에서는 크게 가파르게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는 미친듯이 가파르다. 저런 언덕을 오늘 세 시간동안 계속 오르락 내리락, 오르락 내리락 했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산 또는 언덕 위에 산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외부 침입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그런 듯 하다. 하지만 산 위는 계곡보다 훨씬 덜 덥다. 그리고 위에서는 계속 바람이 부는데, 땀을 흘리면, 여기가 건조하기 때문에 바람에 의해 땀이 마르면서 꽤 시원해 진다.

한 절반쯤 왔을 때, 지나가던 차 한대가 서더니 태워주겠다고 했다. 걸으면서 마을도 보고 사람들도 보고 싶었기 때문에 됐다고 했다. 어디 가냐고 묻길래 벳자훌에 있는 YMCA 근처가 집아라고 말해줬더니 택시는 비싸지만 자기는 택시가 아니니까 싸게 태워주겠단다. 나는 가격도 묻지 않고 “고맙지만 걸을래요”라고 했더니, 그 인간이 “100 세겔 (약 3만 5천원)”이란다. 헐. 내가 여기 택시 요금을 아는데, 내가 있던 그 곳에서 집까지 약 15세겔 (5천원)이면 떡을 친다. 이거 미친 놈 아냐? 내가 진실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폭력 사태와 민간인 희생에 대해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해주고 그쪽 편이긴 한데, 여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 보면 일단 등쳐먹거나 벗겨먹을라고 진짜 최선의 노력을 다 한다. 몇일 전에는 가게에서 물 한병을 1세겔 반을 주고 샀다. 나는 아랍어를 해서 샀는데, 내 뒤에 영어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샀는데, 3세겔을 주고 샀다. 뭐 이 정도는 그냥 귀엽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15세겔 정도의 운전을 해서 100세겔을 받아 쳐먹겠다는 건 이건 진짜 아니지. 마지막으로 여전히 웃으면서 말해줬다. “슈크란 커티어, 바스 아나 빗-디 아루프.” 이게 아랍어로 “정말 고맙지만 걷고 싶네요”다. 그러지 그 인간이 떠났다.

Thorns in our hearts

우리 마음의 가시 덤불

여기서는 사람이 경작하지 않는, 밭 갈지 않는 땅은 어디에나 가시 덤불이 우거져 있다. 이를 보고 잠시 생각했다. 우리도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가르침과 사랑으로 끊임없이 갈아엎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도 가시 덤불, 즉 미음과 타인에 대한 분노가 가득차겠지. 여기가 거룩한 땅, 성지고 세 종교의 뿌리인 곳이지만 종교인들이 하나님의 참된 가르침으로 자신의 마음을 갈아엎지 않아서 그들의 마음에 가시덤불이 가득한 것 같다. 그러한 마음의 가시덤불이 유대인과 무슬림 사이의 유혈 폭력사태로 표면화되는 것 같다.

Saturday, 26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스물 세번째 날 – 그냥 쉬었음

오늘은 아침 9시까지 잤다. 완전 늦잠.

It is not a cup ramen

컵라면 아님

주말에는 여기서 식사를 제공해 주지 않기 때문에 지난 번에 산 컵라면을 먹으려고 했다. 그런데 컵라면이 아니었다. 그냥 무슨 곡물같은 것이 들어 있고 꽤 짰다.

오늘은 별로 한 게 없다. 그냥 방에서 쉬고, 이집트 여행에 대해서 검색했다. 이집트 여행은 전부다 2명 혹은 그 이상을 요구하기 때문에 나 혼자서 여행하기로 결심했다. 저녁 먹을 때 이집트 간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이집트 아직 불안정하고 위험하다고 했다. 그래서 이집트 갔다 온 후에는 베들레헴에 간다고 했더니 난리 났다. 거긴 요즘에 정말 위험하고 벌써 다섯 명이나 죽었다고.

뭐, 어째 내가 가는 데마다 다 위험하냐. 거참.

Kibbutz Shower Control

키부츠 샤워 손잡이

위 사진은 기밧 하비바의 샤워 조절 손잡인데, 케드마에서도 똑같은 것이 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 헤맸는데, 맨 위의 것은 뜨거운 물 조절하고, 바닥의 것은 찬 물, 그리고 중간의 것은 물의 흐름 자체를 제어한다. 그러니까 찬물 샤워를 하고 싶으면 중간과 아래 손잡이를 돌려서 밸브를 열어주면 된다.

내일은 다시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한다. 최대한 일찍 자야겠다. 문득 고대 유대인들에게 감사함이 생겼는데, 그들이 이레에 하루 쉬는 관습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령을 하셨다고 해야하지만). 만일 내가 이렇게 쉬는 거 없이 계속 일 한다면 곧 죽을지도 모른다. 궁금해 진 것이 있는데, 혹시 고대의 다른 문화에서도 이렇게 몇일에 하루 쉬는 풍습이 있었는가다. 기독교와 이슬람도 이레에 하루씩 쉬지만 두 종교 모두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혹시, 누구 답해 줄 사람?

Thursday, 24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스물 한번째 날 – 달콤한 주말

우리는 아침 일찍, 새벽 4시라는 이른 시각에 일어난다. 그 때부터 해가 뜰때까지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다. 시원한 산들 바람이 불고, 작렬하는 태양도 없다. 아마 이렇게 때문에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과 고대 중동 사람들도 일찍 일어났을 거라고 짐작한다. 왜냐면 한낮에는 너무 덥기 때문이다.

Before Sunrise

비포 선라이즈

그렇기 때문에 성경 히브리어 (고대 히브리어)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다”는 동사가 따로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좀 짜증나는 날이었는데, 우리 구역의 모든 인원이 V와 W의 다른 구역으로 불려가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 우리 구역에서 해야 할 작업들을 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휴식조차 없었다. 우리들은 서로 서로 나라, 아니 구역 잃은 서러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난 W 구역에서 내 주먹만한 돌팔매 돌을 발견했다.

히브리 대학교 (라기스 발굴)는 버스가 금요일 아침에 출발해서 주일 아침에 돌아오는데, 텔 아비브 대학교 (메깃도 발굴)는 버스가 목요일 오후에 출발해서 토요일 오후에 돌아온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는 오늘 오후부터 주말인 셈이다.

Hand Washing Laundry

손빨래

오후 일과도 강의도 없어서 손빨래를 했다. 케드마 숙소와 달리 이 키부츠에서는 주말에 공짜로 머물 수 있게 해 주지만 식사는 제공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까운 식료품점에 20분 걸어가서 6끼니 음식을 사 왔는데, 120 세겔, 약 4만원 정도 들었다. 1리터 정도 하는 오렌지 주스를 하나 사왔는데, 컵에 따를 때 콸콸 나오지 않고 마치 꿀 처럼 천천히 내려왔고, 맛을 보는데 너무 맛이 진했다. 그래서 라벨을 다시 잘 읽었는데, 히브리어로 써 있어서 하나도 이해를 못했지만, 영어로 표기된 것이 딱 두 개 있었다. 하나는 큰 글자로 “오렌지 주스”라고 써 있었고, 또 하나는 아주 작은 글씨로 영양성분 밑에 “60컵도 더 만들 수 있어요”라고 써 있었다. 농축액을 사왔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제 밤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를 했는데, 미국계 유대인 (남자), 이스라엘 유대인 (세속적이며 여자), 이스라엘 유대인 (세속적이며 남자), 벨기에 여자 (천주교), 그리고 물론 나도 거기 있었다. 여러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고 흥미로운 대화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흥미로운 것중 하나는 현재의 유대인들은 본인이 무슨 지파에 속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열 지파는 행방불명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말하길, 성씨가 코헨 (히브리어로 제사장이라는 뜻)하고 레비 (레위지파라는 뜻으로, 예전에 성전에서 여러가지 일을 했다)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은 재혼 불가나 묘지 접근 불가 등을 포함해서 스스로 엄격하게 자기 규제를 해서 율법적으로 본인들을 정결하게 유지한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개종한 유대인 여자와는 결혼할 수 없고 소위 말하는 순수 또는 나면서부터 유대인인 여자와만 결혼할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이 율법적으로 정결하게 유지하는 이유는 메시아가 와서 성전이 재건되면 언제라도 즉시 제사장 직분과 레위 지파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왜 유대교가 안되는 지에 대한 수 많은 농담을 했다. 세속적인 유대인들은 또한 정통 유대인, 특히 극보수주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미워한다고 했다.

성전에 관해서는, 종교적인 유대인에게 물어봤을 때는 성전 재건을 원하지만 공공연히 표현하기를 꺼리는 눈치였고, 세속적인 유대인들이게 어제 밤에 물어봤을 때에는 절대 성전 재건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성전을 짓기 위해 벌어질 수많은 살해와 피흘림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성전을 재건하려 한다면 아마 세계 3차대전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고 했다.

Saturday, 12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아홉째 날 – 베들레헴과 여리고

오늘은 원래 네게브 사막 사파리 여행 하는 날이었다. 호텔에서 픽업된 뒤에 나중에 보니 사막 여행이 취소 되었다고 나를 그냥 사해와 마사다 여행에 합류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이틀 전에 했던 거 또 하기 싫다고 했더니, 나를 베들레헴과 여리고 여행에 집어 넣었다.

Church of the Shepherds' field

목동의 터 교회

일단 베이트 자훌에 갔는데, 어제 조지랑 같이 가서 마라를 만났던 곳이다. 지난 1월 여행까지만 해도 목동의 터가 베들레헴에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인근 마을인 베이트 자훌에 있는 걸 안다.

Star of Nativity

성탄의 별

이미 와 본 곳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볼 게 많지는 않았다. 그냥 동굴 천장에 장식된 별 사진을 찍었다. 안내인이 말하길 이 곳이 동방박사가 헤롯에게 가지 않고 돌아가는 길에 머물렀던 곳이라고 믿어지는 곳이라고 했고, 또한 이 곳이 다윗의 할아버지인 보아스의 밭이라고 했다.

Milk Grotto Church

젖 동굴 교회

베들레헴에서는 성탄교회 가기 전에 젖 동굴 교회에 먼저 갔다. 이 곳은 지난 여행에서 가지 않았기 때문에 좋았다. 여기는 예수님 식구가 숨었던 곳이며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젖 먹일 때 젖이 몇 방울 흘렀는데, 그 몇 방울이 바위를 모조리 흰 색으로 영구히 변화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동굴의 바위가 모두 흰 색이다.

Church of Nativity

성탄교회

지난 번에 성탄교회에 갔을 때에는 예수님이 태어난 장소라고 믿어지는 별이 새겨진 곳에는 사실 들어가지 못했다. 오늘도 원래는 2-3시간 기다려야 했는데, 안내인이 우리를 8명이 안되는 그룹으로 나눠서 들여보냈는데, 경찰이 우리가 8명 이하의 그룹인 것을 보더니 다른 문으로 들여보냈다. 그래서 사실 5분도 채 기다리지 않고 내려갈 수 있었다.

Christmas tree in July

7월의 성탄 트리

순서대로 천주교회에도 갔는데, 천주교회 밖에는 조그만 분재 나무를 성탄 트리 모양으로 만들어 놨다.

오늘 새로 알게 된 사실은 유대인 여행 안내인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안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 안내인은 미니 버스에 남아 있고, 우리는 현지 팔레스타인 안내인을 만나서 베들레헴 전체 안내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맥코믹 그룹이 지난 번에 팔레스타인 안내인을 만난 것이 잘된 것 같다. 조지 필몬이 우리의 안내인을 한 것이 여러 모로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일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 지역을 혼자서 안내할 수도 있는데다가, 팔레스타인 사람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고, 또한 그다지 편파적이지도 않았다.

Bedouin

베두인도 갖고 있는 위성 안테나

여리고에 가는 길에서 많은 베두인 집을 봤는데, 지난 1월에 보던 것보다 훨씬 많았다. 위 사진을 잘 보면, 사진 윗 부분은 가축들이 있는데, 대부분은 그늘에 들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햇빛이 동물들 마저도 견딜 수 없을 만큼 강한 것이다.

11000 year-old tower

11000년 된 탑

11,000년 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을 다시 보니 반가웠다. 이 것들이 인간이 만든 첫 벽돌일 것이다. 이런 벽돌들 덕분에 마을도 생성이 되고 도시도 만들어질 수가 있었다. 완전 혁명적인 발명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Jericho updated in April 2014

2014년 4월에 업데이트 된 여리고

유대인 안내인이 좀 놀라운 얘길 했다. 그가 말하길 최근 여리고 발굴에 의해서 성경이 사실임이 입증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보니 설명 판이 새로운 게 보였다. 2014년 4월에 새로 만들었다고 하니 맥코믹 그룹이 방문한 이후다. 이에 대해서 좀 더 조사를 해봐야 겠다.

Elisha's water

엘리사의 물

그리고 나서는 엘리사의 물을 마셨다. 이에 대해서는 첫 여행에서 자세히 썼으니 이번엔 생략하겠다.

Mount of Temptation

시험산

시험산에 좀 더 가까이 가서 수도원을 봤다. 예수님이 40일 40야를 금식하시고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곳이다. 여리고에는 시험산 기도원이라고 한국어로 된 곳이 있다.

Zacchaeus' Tree

삭개오의 나무

그 후에는 삭개오의 나무에 멈췄다. 모두 알겠지만 키가 작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오른 나무로 예수님이 삭개오를 내려오라 하시고 그의 집에 머무셨다.

Taking Dove

비둘기를 잡아가…

원래 여행 계획이 완전 틀어져 버렸지만 크게 나쁜 하루를 보낸 것은 아니었다. 같은 장소를 오랫만에 다시 가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자파 문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좀 신기한 걸 봤다. 몇몇 사람들이 비둘기를 잡는 것이었다. 비둘기가 도망가지도 않고 순순히 잡힌다. 그리고는 비둘기를 그냥 들고 간다. 왜 비둘기를 잡아 가지? 그걸 먹나?

저녁을 먹은 후에 사이렌 소리가 몇 번 났는데, 예루살렘이 로케트 공격을 받고 있다는 소리다.

Wednesday, 9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여섯째 날 – 골란 고원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투어 서비스를 받았다. 지금까지는 예루살렘을 혼자서 걸어다녔지만, 오늘은 골란 고원에 당일 여행을 갔다왔다.

이번 예루살렘 여행은 조금 색다르게 했는데, 박물관 갔다올 때 빼고는 교통수단을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 지난 번 맥코믹 여행을 통해서 예루살렘 구시가지가 작다는 걸 알았는데, 이번에는 내가 지난 번에 깨닳은 것보다 훨씬 작다는 걸 알고 놀랬다. 지난 번에는 여기 저기 걸어 다녔지만 이동을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예를 들면 겟세마네에서 다윗성까지는 버스를 타고 갔다. 그래서 걷는 경험, 즉 예루살렘의 지리 지식이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머리에 산재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어디든지 간에 무조건 걸어다녀서 머리속에 예루살렘의 완전한 지도가 들어있는 듯 하다. 예루살렘의 몇 번이고 걸어다녔다. 성벽을 따라 걷고, 성벽의 위를 걸고, 성벽 안을 걷고, 성벽 밖을 걸었다. 시내도 돌아다녔다. 구시가지를 멈추고, 쉬고 하는 걸 다 포함해서 한바퀴 뺑 도는데 4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만일 옛날 사람이 (또는 나도) 급한 일이 있어서 급히 걷거나 뛰거나 하면 2시간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윗이 만든 다윗성, 현재의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포함되지 않은 그 다윗성은 예루살렘 구시가지보다 10분의 1 또는 8분의 1 정도로 정말 작다. 옛날의 도시들을 생각할 때에는 시카고나 서울 같은 현대 도시를 생각해서는 안될 것 같다. 고대에는 현재의 한 블럭이나 두 블럭만으로도 충분히 도시가 될 수 있을 듯 하다.

이런 말 하긴 미안하지만, 내가 혼자 다녔기 때문에 이런 여행이 가능했다고 본다. 우리 아내 얘기를 하는게 아니라 어떤 누구와 같이 여행했어도 이런 것은 불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중고등학교 6년간 날마다 두시간씩 걸어서 등하교를 했으니까. 내 생각에 군대 행군을 빼면 평생 제일 많이 걸어본 듯 하다. 아침 7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점심 먹을 때를 빼면 계속 걸었으니까.

Baptismal Site

세례지

그래서 베인 하림 여행사를 통해서 골란 고원에 갔다. 약 8분 거리인 다윗 시타델 호텔에서 관광버스를 탔다. 원래는 5시 50분에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20분 늦게 왔다. 뭐, 원래 여기는 그러니까.

관광버스는 텔 아빕에 가서 모인 사람들이 각 목적지 별로 다시 분류되어 버스를 나눠 탔다.

우리 그룹은 6명이라는 작은 그룹이었는데 (운전 및 안내 포함하면 일곱) 안내하는 사람이 유대인이었고. 좀 신기했던 것은 나 빼고는 모두 유대인이었다는 것. 미국에서 온 유대인, 이란 (영어 잘함)에서 온 유대인 등.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바마 대통령을 싫어한단다. 안내자는 스스로를 중도 우파라고 했는데, 예전에 시카고에서 온 자기가 안내했던 그룹과는 거의 싸울 뻔 했다고 한다. 이런 이상한 구성이 사실 내게는 색다른 견해를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과 자기들과의 관계만을 생각하는데, 유대인들(우파 또는 중도 우파)은 이웃 나라와의 관계를 더 생각하고 팔레스타인 문제는 그리 큰 게 아닌 듯 했다.

Fish in the Baptismal site

세례지의 물고기들

우리의 첫 목적지는 세례지로, 갈릴리 바다 남쪽 바로 아래의 요단 강이다. 갈릴리 얘기하니까 생각나는데, 현대에는 오대호 같은 것도 그냥 호수지만, 고대에는 갈릴리 바다도 바다였다는 걸 생각하면 고대의 도시 개념도 이해가 쉬울 듯 하다. 전통에 따르면 예수님이 이 곳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제는 인정하지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요단강 어디에선가는 세례를 받으셨다는 건 확실하다. 세례지는 정말 아름다운 곳이고 물고기들이 참 많다. 내가 발을 담그자 물고기들이 몰려와서 내 발에 뽀뽀하고 간지럽혔다. 사실은 저것들이 날 먹으려 든 것이지만. 다만, 내가 너무 크고 지들은 너무 작았다는 것 뿐.

Three countries in one sight

세 나라를 한 눈에

그 후에는 골란 고원 오르는 중간에 세 나라를 볼 수 있는 곳에서 멈췄다. 바로 이스라엘, 요단, 그리고 시리아다. 위 사진에서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이스라엘, 그리고 계곡 반대편이 보이는 것이 요단,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산지가 시리아다. 골란 고원은 갈릴리 바로 윗쪽에 있는데, 예전에 시리아 땅이었을 때, 고원의 높이를 이용해서 갈릴리 지역에 로켓을 쏴댔다고 한다. 안내인에 의하면 이스라엘 정부가 고원을 돌려주면서 평화협정을 제안했다고 했는데 시리아가 거부했다고 한다.

Scribe in Qazrin

카츠린의 서기관

그 뒤에는 카츠린이라는 옛 마을을 갔는데, 성경시대 이후인 탈무드 시대의 마을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이 골란 고원을 흡수한 뒤에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이 발굴했다고 한다. 이 곳은 회당에 붙어있는 서기관의 방으로 저 사람은 진짜 서기관이라고 한다. 저 사람의 본업은 토라의 복사고 부업은 관광객들 축복 써 주는 것인데, 내가 보기엔 주업과 부업이 바뀐 듯 하다. 하지만 서기관이 전통 방식으로 글 쓰는 걸 지켜보는 건 재밌었다.

Olive Oil Lab

올리브 기름 연구소

여기는 올레아 올리브 기름 공장 연구소다. 그들은 자기만의 올리브 나무를 키워서 자기네만의 제품을 만든다고 한다. 짧은 소개 영화를 봤는데, 시연이 제일 좋았다. 올리브 기름은 꽤 맛이 좋았지만 사지 않았다. 또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로 여러 다양한 피부미용 제품을 만드는데, 우리 아내를 위해 두 개 샀다.

View from Golan Heights

골란 고원에서 본 풍경

그 후에 우리는 풍경을 보기 위해 몇 곳에 더 갔다. 이 곳은 시리아 근처다. 고원에 올라가는게 경사가 하도 가파라서 사람과 짐이 가득한 봉고차가 (현대 차였음) 올라갈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맞아 떨어진다고, 안내인이 기어를 2단에서 1단으로 바꾸는데 엔진이 꺼졌다 (수동이었음). 안내인이 열 번도 넘게 시도를 했지만, 너무 가파라서 계속 실패했다. 그마나 다행인 것은 지나다니는 차가 거의 없었다는 거. 그런데 가끔 지나가는 차가 모두 서서 도우려고 했다. 심지어는 우리 앞에 가던 차는 되돌아 와서 우리가 괜찮은지 물어보기까지 했다. 유대인 안내인은 신나서 “이게 전형적인 이스라엘 사람이예요. 우리들은 서로 돕고 서로 사랑한답니다”고 떠들어댔다. 마침내 안내인은 차룰 후진으로 경사가 좀 덜한 곳에 가서 다시 시도했더니 차가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그 후로는 끝까지 다 오를 때까지 1단 기어에 머물러 있었다.

맥코믹 여행에서 가지 않았던 골란 고원을 가서 좋았다.

두번째 성지 여행 – 다섯째 날 – 다시 걷기

이전에 쓴 대로 예루살렘에 온 첫날 저녁에 엽서하고 우표를 샀다. 원래는 엽서만 사려고 했는데, 팔레스타인 용팔이가 우체국이 멀고 찾기도 어렵다고 말을 했다. 설마 이런 거 거짓말 하겠냐 생각을 해서 여러 나라로 보낼 거라고 했다.

그놈: 어느 나라로 보낼건지 말해 보세요.
나: 미국, 캐나다, 한국, 일본.
그놈: 문제 없어요. 이 우표는 전세계 어느 나라든 가는 우표거든요.

그래서 우표를 샀다. 그리고 오늘 아침, 호텔을 나가기 전에 데스크에 있는 아가씨에게 엽서 좀 부쳐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가씨가 엽서를 잠시 보더니 우표가 잘못되어서 배달이 안된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우표를 샀는지 말을 했다.

그녀: 아녜요. 이 우표는 유럽까지만 가는 거예요. 정 못 믿겠으면 우체국 가서 직접 물어보세요.
나: 아 예. 그럼 우체국 어딨는지 알려주세요. 찾기 힘들다고 하던데, 좀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그녀: 바로 저긴데요.

이제보니 내가 우표 산 가게에서 우체국이 걸어서 채 1분도 안걸리는 거리고, 가게에서도 우체국이 보이기까지 한다. 우체국 가서 물어보니 호텔 아가씨 말이 정확하다. 그래서 추가 우표를 더 샀다.

진짜 열받는다. 우표에 돈을 더 써서가 아니라 그놈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믿다니 정말 내가 멍청하게 느껴진다. 만일 그냥 우체통에 넣었으면 엽서가 단 한개도 배달이 안될 거라는 얘기잖아. 이걸로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당한 게 네 번째다. 너무 당혹스럽고, 그 사람들을 미워하기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Narrow Road in the Old City

구시가지의 좁은 길

위 사진은 우체국 바로 옆인데, 이런 좁은 길도 트럭이 빠져나간다. 가끔은 구시가지의 이런 좁은 길에서 어떻게 운전을 하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Model of the Tower of David

타윗 탑의 모형

그 뒤에는 자파 문 바로 옆에 있는 다윗 탑 박물관에 갔다. 아는 사람은 이미 알겠지만, 사실 이 탑은 다윗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예전에 사람들이 착각해서 이름을 다윗탑이라고 붙인 것 뿐이다.

View from the Tower of David

다윗 탑에서 바라 본 풍경

그래도 풍경은 정말 기가 막혔다. 돈 낼 가치가 있다. 이슬람 통치 하에 있을 때에는 이 건물이 병원이랑 약국으로 쓰였던 것 같다.

Jaffa Gate from North Route of Ramparts Walk

북쪽 램파트 길에서 본 자파 문

다윗 탑을 나온 뒤에는 다른 램파트 길을 갔다. 전날에는 자파 문에서 시작해서 똥문에서 끝나는 램파트 길의 남쪽 경로를 갔는데, 오늘은 자파 문에서 시작해서 다메섹 문을 거쳐 사자 문에서 끝나는 북쪽 경로를 갔다.

Selfie above the Damascus Gate

데메섹 문 위에서 셀카

북쪽 경로보다는 남쪽 경로가 훨씬 좋은 것 같다. 남쪽 경로는 성벽 안팎이 아주 높은데 비해 북쪽 경로는 성벽 안쪽은 거의 땅과 높이가 같다.

그 후에는 사자 문에서 가까운 록펠러 고고학 박물관에 가려고 했는데, 오늘은 문을 안 여는 날이라고 한다. 웹사이트에는 분명 날마다 연다고 되어 있는데, 문에 붙어있는 표지에는 화요일하고 금요일은 열지 않는다고 써 있다. 그러니 웹사이트 믿지 말기를. 사실 성지에는 믿을만한 게 거의 없는 것 같다.

Mamilla Street Arts

마밀라 길의 예술상

그 후에는 자파 문 근처에 있는 마밀라 길에 갔다. 마밀라 길은 자파 문에서 시작해서 마밀라 호텔과 다윗성 호텔에서 끝나는데 아메리칸 이글이나 크록스와 같은 미국 상점, 근대 예술등이 가득하고, 프리미엄 아웃렛과 느낌이 거의 똑같다. 아, 길에 전시되어 있는 예술품들은 구매할 수도 있다고 한다.

Aroma - best coffee shop in Israel

아로마 – 이스라엘에서 최고의 커피점

마밀라 길에서 아로마를 발견했다. 맥코믹 그룹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로마에 간 적이 있다. 아로마를 이스라엘의 스타벅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점심으로 예루살렘 샐러드를 먹었다. 새로운 장소를 찾는 것도 좋지만, 전에 갔던 곳을 발견하는 것도 좋다.

King David's Tomb

다윗왕의 무덤

그 후에는 시온산에 갔다. 그 유.명.한. 시온산. 그런데,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작아도 너무 작다. 시온산에는 토라, 탈무드, 공부, 교육과 관련된 센터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그리고 기대치 못했던 다윗왕의 무덤을 발견했다. 헤브론의 다른 무덤들과 달리 입장료는 없었다.

The Cenacle

마가의 다락방

그리고 나서 내가 찾던 걸 발견했다. 예수님이 유월절 식사, 최후의 만찬을 하신 곳. 그리고 성령이 제자들에게 내리시던 바로 그 방. 만일 이 곳이 진짜 그 곳이라면 어떻게, 예수님도 가난하고 제자들도 가난한데 다윗왕의 무덤 바로 옆에 있는 방을 구하실 수가 있었을까?

Excavation on the City of David

다윗성에서 진행되는 발굴

그리고 나서 다윗성에 걸어 갔는데, 새로운 발굴이 진행중인 걸 봤다. 나도 다음 주 부터 저런 노동을 할텐데.

그리고 입장표를 살 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안에서 표를 파는 유대인 여자 아이가 혹시 내가 몇달 전에도 오지 않았냐고 물어본 것이다. 정말 놀랬다. 그리고 기분이 좋았다.

나: 아, 예. 지난 일월달에 왔었는데요. 어떻게 알아요?
그녀: 아, 그냥… 얼굴이 기억이 나요.

주변을 둘러 보면서 기억을 새롭게 했다. 그리고 히스기야의 터널에 당연히 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였다. 그리고 불을 키지 않기로 했다. 램프도, 후레시도, 핸드폰도, 어떤 종류의 불도 키지 않았다. 중간에 단 한 번 손목시계 불을 켜봤다. 손목시계의 불빛은 꽤 희미해서 낮에 햇빛에서는 켜졌는지 꺼졌는지 구별도 안되는 건데, 이렇게 밝은지 처음 알았다. 완벽한 어둠에서 나는 천천히 더듬더듬 걸었다. 눈도 소용이 없어서 손으로 벽을 느끼면서 걸었다. 정말 수만번 부딪힌 것 같다. 다행히도 농사꾼 모자를 쓰고 있어서 머리는 벽에 부딪히기 전에 모자 챙에 닿는 느낌이 있어서 단 한 번도 박치기 하지 않았다.

Step Walk to the Temple

성전에 올라가는 계단 길

실로암 연못으로 나왔다. 하지만 셔틀을 타지 않았는데, 날 기억한 여자 아이가 1월 이후로 새 터널일 발굴하고 개방했다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사실은 터널이 아니고 실로암에서 성전에 올라가는 2000년된 계단 길이다. 어째든, 현재는 땅 아래에 있으니까. 그래서 새 터널을 걸어서 다윗성 방문센터에 갔다.

Harp Player on Jaffa Gate

자파 문의 하프 연주자

자파 문에 돌아가니 흰 옷을 입은 여자가 성문 창에 앉아서 하프를 켜고 있었다.

오늘 겁나 걸었다. 피곤하다.

Tuesday, 8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넷째 날 – 박물관

오늘은 박물관 가는 날. 예루살렘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어서 구글 지도를 찾아봤다. 경전철 역에 가서 자판기에서 표를 2장 샀다. 그런데 66번 버스를 타는 정류장을 찾을 수가 없어서 한참 헤매다가 자파 문에 있는 여행객 안내소에 와서 물어보니 구글 지도랑 다른 길을 가르쳐 준다.

Jerusalem Bus

예루살렘 버스

어째든, 무사히 버스에 탔다. 운전수에게 버스표를 줬는데, 자꾸 뭐라고 하면서 내가 뒤에 가지 못하게 한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돈 내라는 거 같길래 영어로 오늘 아침에 표를 샀고, 구매 후 아직 사용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는데, 문제는 운전수가 영어를 전혀 못한다는 거. 언어장벽 때문에 소통이 전혀 되질 않았다.

그때 뒤에서 서넛이 나를 도와주러 앞으로 나왔다. 모두 젊은 청년들이었고 유대인이 쓰는 키파를 머리에 쓰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 중 한 명은 버스 운전수에게 내 운임을 본인이 내주겠다고 했다. 정말 감동했다. 돈 때문이 아니다. 버스비 해봤자 2천원정도다. 돈은 얼마 안되지만 낯선 사람에게 그런 호의를 베푼다는 게 너무 감동적이었다. 나는 내가 내겠다고 했다. 다른 청년이 운전수와 통역을 해 줘서 알았는데, 표를 구매하고 나서 1시간 반 내에 타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그런 병신같은 시스템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현금 내고 타야겠다.

나를 유대인 너댓명이 둘러싸서 서로 호의를 베풀겠다고 난리였다. 어째든 운임을 내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오 주여, 나를 도와준 저들 모두를 축복하여 주소서! 아, 문제가 하나 남아 있었다. 버스에서 안내방송을 히브리어로만 하고 영어를 하지 않아서 알아듣지 못하는 거였다. 그래서 내 옆에 있는 유대인 키파를 쓰고 있는 중년 아저씨에게 부탁을 했더니, 나를 운전수 옆으로 데려가서 히브리어로 대신 부탁을 해줬다. 그 아저씨가 내가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시카고라고 했고, 시카고에 대해 그 아저씨 내릴 때까지 즐겁게 얘기를 했다.

어제 밤에 내가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두 변 능멸을 당했는데, 오늘 아침에는 유대인들에게 친절을 두번이나 받았다. 만일 당신이 내가 한 것과 똑같은 경험을 한다면 누구의 친구가 되겠는가? 맥코믹 사람들과 나는 모두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제대로 취급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걸 알거라고 생각하는가? 설령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이런 경험을 한다면 아마도 친유대 반팔레스타인이 될 것이다.

Signet Ring

서명 반지(?)

나는 성경의 땅 박물관에 먼저 갔다. 위 사진은 시그넷 반지로 이 것은 고대에는 현재의 여권, 신용카드, 인감도장, 집문서 등을 모두 합친 것과 같은 것이다. 유대도 이런 것을 갖고 있다가 며느리랑 그거할 때 줬던 것으로 생각된다.

Sumerian Mythology

수메르 신화

위 사진은 수메르의 창조 신화인데, 신들이 세상을 창조하고 나서 관리하고 돌보느라 너무 바쁘고 힘들어서 서로서로 짜증을 냈다고 한다. 그래서 일을 거둘어줄 목적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한다. 결국 수메르 신화에서는 사람들이 공짜 노동력인 셈이다.

Family Idols

가족 우상

또한 박물관 설명에 의하면 위와 비슷한 것을 라헬이 아버지에게서 숨겼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위의 것들이 여성의 성을, 즉 생산을 강조하기 때문에 라헬이 임신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던 듯 하다.

Riding Man

말타는 남자

위는 말 또는 다른 걸 타고 있는 남자인데, 성기가 확연히 보인다. 아래 사진도 보라.

Ancient Women

고대 여성

위의 고대 여성은 고려대학교 여학생을 의미하는 게 아님을 밝힌다. 내 생각에 고대 세계에서는 성을 부끄러이 여기거나 숨기지 않았던 듯 하다. 그럼 왜 우리는 이렇게 성을 터부하게 된 걸까? 성을 억압하기 때문에 이상한 방식으로 나타나서 엄청난 규모의 야동 산업이 발달하고, 심지어 헐리웃도 성을 요상하게 묘사하지 않는가?

Lachish Battle

라기스 전투

그 후에 이스라엘 박물관에 갔다. 여기서 사진을 많이 찍지는 않았다. 박물관 두 곳에서 음성 안내를 빌려서 하나 하나 다 들었다. 단 한개의 아이템도 놓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사진보다는 배움에 목적을 뒀다. 위 사진은 라기스 전투로 내가 다음 주부터 발굴할 곳이다.

Shrine of the Book

책의 성지

당연히 책의 성지에도 갔다. 지난 1월 여행으로 맥코믹 그룹은 이 모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 알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보니 네 모서리가 마치 제단의 네 모서리 모양이다.

박물관 너무 좋았다. 박물관이 닫는다는 방송이 나왔을 때, 벌써 하고 깜짝 놀랐다. 그저 몇 시간 밖에 안있었던 줄 알았는데, 아마 오후 1시나 됐을까 생각했었는데. 그리고 문득 깨닳았다. 색안경이 사라졌다는 것을. 내 색안경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전혀 감이 안온다.

Yaffo Street

야포 길

그리고 다시 버스에 탔는데, 이번에는 66번이 아니고 7번을 탔다. 자파 길에서 내리면 되는데, 히브리어로 자파 정도는 알아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못 들었다. 내 옆에 있던 사람이 날 찔러서 내리라고 해줘서 내렸다. 내가 왜 못들었을까? 안내 방송이 자파가 아니라 야포라고 해서 못 알아 들었다. 이스라엘 정부인 관광청에서 나온 지도에서도 자파 길이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 길에 있는 표지는 야포라고 써 있다.

Light Rail

경전철

이 것은 경전철로 예루살렘 신도시에 있다. 예루살렘 신도시는 미국이나 유럽의 여느 도시마냥 보인다.

잠시 생각해 보니, 구시가지에서도 유대인 지역은 이슬람 지역이나 아르메니아 지역 처럼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깨끗하고 현대적이다. 또한 햇빛도 잘 받는데, 다른 지역은 햇빛이 잘 들지 않는다.

Thursday, 30 January 2014

이스라엘 여행 열 네번째 날: 지포리, 마르 엘리아스 학교, 나사렛 민속촌

Filed under: Lang:한국어,Subj:Christianity,Subj:Travel — Jemyoung Leigh @ 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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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단 지포리 또는 세포리스라는 곳에 갔다. 이 지명이 성경에 나오는지 안나오는지는 모르겠다.

Water Reservoir

물 저장소

여기는 고대 도시에서 약간 떨어진 물 저장소로 꽤 깊고 크다. 백만 갤런 이상을 저장할 수 있다고 하니 우리식으로 하면 약 380만 리터다.

Roman Paved Road

지포리에 있는 로마식 포장 도로

위 사진은 로마식 포장 도로인데 꽤 잘 보존되어 있다. 로마의 기록에 따르면, 돌과 돌 사이에 바늘 꼽을 틈도 없었다고 한다. 포장도로는 늘 마차 두 대가 다닐 너비인데 이는 군대의 행군을 위해서 그렇게 되어 있으며 약간 아치 모양으로 굽어 있는데 이는 길 양옆으로 배수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로마의 건축가들은 돌은 그들의 친구고 물은 그들의 적이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도로만 훌륭한 것이 아니라, 도로에 따라 옆으로 아름다운 모자이크가 있었다.

Nile House Floor Mosaic

나일 하우스의 바닥 모자이크

공공 건물 가운데 하나였던 나일 하우스라는 곳에 갔는데, 아름다운 바닥 모자이크가 많이 있었다.

Zippori Theatre

지포리 극장

위 사진은 극장인데, 고대에는 극장 입장 및 관람이 공짜였는지, 아니면 어떤 방식으로든 요금을 부과했는지 궁금하다.

Toilet in private Mansion

개인 저택의 변기

그 후에는 고대의 개인 저택에 들어갔다. 위 사진은 개인 변기고, 그 옆에는 헬라어로 “건강을 위해”라고 쓰여 있다. 탈무드에 있는 문답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자면, “저 사람이 부자인지 어떻게 판별할까?” “식사하는 곳 근처에 개인 변기가 있다면 부자지” 라는 것이 있다. 그러니까 이 저택의 소유자는 굉장한 부자였을 것이다. 거실 근처에 이른 물이 흐르는 수세식 변기는 아무나 마련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 거실에서는 갈릴리의 모나리자라고 부르는 모자이크가 있었다.

Zodiac in the Centre of Zippori Synagogue

지포리 회당의 정 가운데에 있는 점성술용 별자리

그 뒤에는 회당에 갔는데 굉장히 아름다웠다. 그런데 회장 정 중앙에 점성술용 별자리가 있는 것은 내게 충격이었다. 다른 모든 바닥의 장식과 모자이크는 율법 및 유대교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왜 하필 회당의 정 중앙에 이교도의 점성술을 고대 유대인들은 배치해 놓은 것일까?

고대 지포리는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는데, 지진에 의해 파괴된 후에는 재건되지 않아서 그렇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폼페이도 화산에 의해 파괴되었기 때문에 잘 보존되어 있고 쿰란도 마찬가지다. 쿰란에서는 전쟁의 위협 때문에 문서들을 항아리에 넣고는 동굴에 보관했다. 쿰란 공동체 자체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불행과 재앙이 (현재에 사는) 우리들에게는 축복이 되었다. 재앙 덕분에 많은 것이 보존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연구할 고 알 수가 있다.

Director and Teacher of the Mar Elias School

마르 엘리아스 학교의 감독과 선생님

그 후에는 마르 엘리아스 학교에 갔다. 이는 나사렛 인근의 이빌린이라는 조그만 마을에 있는 기독교 학교로 팔레스타인, 아랍등 차별하지 않고 모든 학생에게 교육을 제공한다. 예전에는 유대인 학생들도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는 없다. 그 건물 가운데 하나는 미국 전대통령인 빌 클린턴 혼자 기부한 것이라고 한다.

Kids in the class

교실에 있는 아이들

학교 감독과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들은 뒤에, 우리는 한 교실에 들어갔다. 유대인 선생님이 가르치는 히브리어 시간이었다. 내가 듣기로는 유대인 선생님과 아랍 (또는 팔레스타인) 선생님이 같이 일하고 같이 가르치는 유일한 학교라고 한다. 아이들은 그저 아이들이었다. 웃고 떠드는 행복한 아이들. 아이들이 심각하지 않고 아이들 같은 걸 보니 내가 더 행복해 졌다.

Girls who love Korea

한국을 사랑하는 소녀들

교실을 떠날 때, 두 소녀가 다가오더니 내가 한국에서 왔냐고 물었다. “미국 시카고에 살지만 원래는 한국 서울에서 태어나서 자랐다”고 대답을 하자 너무 기뻐하면서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하길래 흔쾌히 승락했다. 그리고 그 소녀들이 한국의 드라마와 음악, 가수들에 대해 얘기를 했는데, 최신 것이어서 난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 그냥 한국 문화가 대단하구나 하고 느꼈다.

Church near the school

학교 근처에 있는 교회

그 후에는 학교 근처에 있는 교회에 갔다. 옆에서 보면 꼭 방주같이 생겼다.

Stairway to the church

교회로 올라가는 계단

계단에는 예수님이 마태복음 5장에서 가르치신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가 영어, 불어, 히브리어, 아랍어의 네 언어로 새겨져 있었다.

Church door

교회 문

위 사진은 교회 문으로 세계 각지의 아이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다. 두 소년이 떨어져 있는 것이 보이는데, 작은 아이는 유대인의 키파를 쓰고 있으며, 다른 아이는 팔레스타인 소년이다. 이 장면은 팔레스타인 소년이 유대인 소년을 예수님께로 (전도해서) 데려가는 모습이라고 한다.

Inside the church

교회 내부

교회 내부는 정말 아름다웠는데, 수많은 사람들의 재정적 또는 재능적 기부를 통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각 부분부분이 모든 직접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이 교회는 거룩한 장소와 일반 장소를 분리하는 칸막이가 쳐져 있다. 그들의 전통이라고 한다.

Shepherd and Sheep in Nazareth Village

나사렛 민속촌의 양과 목자

그 후에는 민속촌과 같은 나사렛 마을에 갔는데, 일종의 체험 박물관이다. 양들이 우리에 있고 문이 닫혀 있었다. 나사렛 마을 안내인인 다니엘에 따르면 1세기에는 낮에 문이 열어 놓지만 양치기가 문에 서 있으면 양들이 못 나가고 다른 것들도 못 들어온다고 한다. 이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 7절에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Tomb Gate

무덤 문

이 것은 전형적인 1세기 무덤의 복제품으로 부활절 아침에는 배우들이 와서 성경의 부활 관련된 장면을 연기한다고 한다. 만일 부활절 기간에 이 곳에 올 수 있다면 연극을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것은 작은 복제품으로, 실제 무덤과 입구의 돌은 훨씬 컸다고 한다.

Daniel on Wine Press

포도 와인 프레스 위에 서 있는 다니엘

위 사진은 와인 프레스의 상단 부분이다. 거기에 포도를 잔뜩 올려놓고 사람들이 맨발로 밟으면 포도즙이 홈을 따라 아래의 통으로 흘러간다. 1세기에는 반드시 맨발로 밟았는데, 이유는 포도씨가 깨지면 쓴 맛이 배어나오기 때문에 포도씨를 으깨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다니엘에 따르면 와인 프레스는 계단 농지의 아래에 있고, 타작마당은 꼭대기 위에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드온이 몰래 타작을 할 때 와인 프레스에 있었던 것이다. 사사기 6장 11절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Watch Tower

망루 또는 파수대

위 사진은 1세기의 전형적인 망루다. 파수꾼이 서 있다.

Olive Oil Press

감람유 (올리브 오일) 프레스

위 사진은 감람유 (올리브 오일) 프레스로 그 옆에는 거대한 올리브 멧돌이 있다. 올리브를 으깨기 위해서 거대한 멧돌을 사용하는데, 일반적으로는 당나귀가 멧돌을 움직이지만 오늘은 내가 자원해서 당나귀처럼 멍에를 메고 멧돌을 움직여 보았다. 이 멧돌은 올리브의 씨까지 부수는데, 씨에도 기름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위 사진의 오일 프레스의 나무 봉에 돌을 메다는 곳이 세 군데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름은 세 번 짜는데, 처음에는 돌을 하나만 메달고 짠다. 이 때는 가장 깨끗하고 품질 좋은 기름이 나오며 통상 버진 오일이라고 부른다. 이는 가장 깨끗하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보냈다고 한다. 두 번째는 돌 두개를 메달고 짜며, 최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품질의 기름이 나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러 목적으로 (요리 및 치료등) 사용한다. 마지막으로는 돌 셋을 메달고 짜는데, 찌꺼기 기름이 나오기 때문에 사람에게 쓸 수는 없고 오일 램프에 사용한다고 한다.

Carpenter and Sister

목수와 실짜는 아낙네

위 사람들은 1세기의 갈릴리 사람들 처럼 분장해 있다. 저 남자는 목수 역할을 했는데, 우리에게 1세기 목수의 기술 몇 가지를 보여줬다. 옆의 아줌마는 이름이 한나였는데, 양털을 갖고 어떻게 실을 만드는지 보여줬다.

First Century Synagogue in Nazareth Village

나사렛 민속촌에 있는 1세기의 회당

위 사진은 1세기의 유대인 회당이다. 여지껏 우리가 본 다른 회당과는 달리 여기에는 성서를 보관하는 자리도, 모세의 의자도 없었다. 다니엘은 회당 즉 시나고그는 헬라어로 모이는 장소라는 뜻이고 (한자 번역도 모일 회會하고 장소 당堂을 쓴다) 실제로도 원래는 그런 역할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이고, 기도하고, 공부하고, 이야기하는 마치 마을 회관과 같은 곳이었다. 예루살렘의 성전이 파괴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종교적인 장소가 아니었다고 한다. 회당에서 맘에 드는 것 가운데 하나는 모퉁이에 있는 기둥들인데, 사진에 안보이는 기둥의 뒷면은 90도 각도로 되어 있어서 기둥의 모양인 하트같이 된다. 여기만이 아니라 실제 고고학 발굴지에서 본 회당들도 그런 기둥들이 있었다. 이 것은 4세기 이후가 아니라 1세기 회당을 복원한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 그리고 바울을 비롯한 다른 제자들이 회당에 갔을 때에는 이런 것과 비슷한 곳이었을 것이다.

다니엘은 꽤 흥미로운 사람인데, 메시아파 유대인이라고 한다. 이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유대인이다. 우리의 현지 안내인 조지에 따르면 메시아파 유대교에도 여러 분파가 있는데, 대부분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으며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다.

Sunday, 19 January 2014

이스라엘 여행 아홉째 날: 헤브론

오늘은 강의로 범벅이 된 날이었다. 세 명의 연사에게 강의를 들었다. 한 명은 종교적으로 열심인 유대인, 또 한 명은 기독교 그룹에서, 마지막은 이슬람의 이맘이었다.

View of Bethlehem from the Hotel

호텔에서 바라 본 베들레헴 풍경

아침에 일어나서 발코니에 나가서 찍은 사진으로 호텔에서 바라 본 베들레헴 전경이다.

Machbelah Cave(?)

막벨라 동굴(?)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동굴에 갔다. 막벨라는 아브라함이 사라를 위해 구매한 매장용 동굴로 유대인들의 가장 중요한 선조의 첫 세 세대가 아내들을 포함해서 묻혀 있다. 예외로는 성경에 나와 있듯이 라헬이 있다.

헤롯과 그 이후 시대의 막벨라 벽

헤롯과 그 이후 시대의 막벨라

이 무덤 빌딩은 헤롯에 의해 지어졌다. 헤롯이 잔인하고 나쁜 짓도 많이 했지만 남긴 것이 정말 많다. 여기에 쓰인 돌들은 독특한 패턴으로 인해 헤롯의 것으로 인식이 된다. 윗 부분은 맘룩시대의 것이다.

Machbelah Mosque

막벨라 모스크

이 곳은 이슬람 교도들에게 네 번째로 성스러운 곳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이 점령을 했을 때에 이 곳은 물론 이슬람의 것이었는데, 이스라엘 군대가 점령한 후에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한 부분은 이슬람교도용, 나머지 반은 유대인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기독교용은 없다. 그냥 아무데나 섞여 들어가면 된다.

Machbelah Mosque Ceiling

막벨라 모스크 천장

다른 모스크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참 아름답다. 분할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아브라함과 사라는 양쪽이 공유하고 있다. 양쪽 모두 창살을 통해 볼 수만 있다. 이슬람은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를 갖고 있으며 유대인은 야곱과 그의 아내 레아를 갖고 있다. 유대인은 정말 중요한 것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데, 야곱은 자신들에게만 해당하는 조상 중에 가장 위에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슬람에게는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다지 유익하다고 볼 순 없다.

Prayer towards Mecca

메카를 향해 기도하라

이전 포스팅에도 썼듯이 모스크에서는 메카가 어느 방향인지 쉽게 알 수 있다.

Sarah's tomb

사라의 무덤

이슬람쪽의 막벨라에 들어가면 처음에 나오는 것이 사라의 무덤이다.

Rebecca’s tomb

리브가의 무덤

그리고 나서 모스크에 들어가면 다음에 보이는 것이 리브가의 무덤이다.

Isaac's tomb

이삭의 무덤

이삭은 리브가 옆에 있는데 조금 떨어져 있다.

Abraham's tomb

아브라함의 무덤

그리고 돌아서 가면 아브라함의 무덤을 볼 수 있다.

In front of the Machbelah

막벨라 앞에서

이슬람쪽에서 나온 후에 맥코믹 그룹 일부는 유대인쪽으로 들어갔다. 현지 안내인 없이 들어가야만 했는데, 안내인은 기독교임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스라엘 병사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현지 안내인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갖고 있다. 이해할 수가 없는 처사다. 아무런 말썽이 없는 시민이고 미국 관광객의 안내인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런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헤브론과 막벨라 지역은 굉장히 긴장이 높은 곳으로 수 많은 병사들과 군용 차량이 늘 배회하고 있다.

Leah's tomb

레아의 무덤

유대인쪽에서는 히브리어로 “여자들”이라고 써 있고 칸막이가 쳐져 있었다. 입구에 가까운 쪽인 오른쪽에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있다. 먼 쪽인 왼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가면 방에 들어서면서 오른쪽에는 레아가, 왼쪽에는 야곱이 묻혀 있다.

Jacob's tomb

야곱의 무덤

이슬람쪽이나 유대인쪽이나 영어 표지나 설명은 없었다. 이슬람쪽에서는 우리의 현지 안내인이 아랍어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아랍어와 히브리어 모두 능통하다) 문제가 없었고 유대인쪽에서는 내가 히브리어로 씌어진 이름들을 알아볼 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Christian Peacemaker Team

기독교 평화 만들기 팀

그 뒤에 우리는 헤브론 구시가지에 있는 기독교 평화 만들기 팀(Christian Peacemaker Team) 사무실에 찾아갔다. 박해받는 팔레스타인들을 위해 일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고 하는데, 팀 창립멤버는 살해당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을 위해 일하고 희생하는 자신들의 입지를 버리지 않고 있다.

View of Hebron

헤브론 풍경

이 것은 기독교 평화 만들기 팀 사무실 옥상에서 바라 본 헤브론 풍경이다.

Kia Hebron

기아 헤브론

베들레헴에서는 현대를 봤는데, 헤브론에서는 기아를 봤다.

Glass Factory

유리 공장

그 뒤에는 유명한 유리 공장에 갔다. 용광로의 양쪽에 둘이 일하고 있었는데 유리 꽃병을 만드는 과정을 봤는데, 정말 신기한 쇼였다. 어떻게 저리 쉽게 슥슥 만들어 내는지 놀라웠다.

Horse as transportation

교통수단으로 사용되는 말

위의 말을 보면 관광용이나 재미가 아니라 실제 교통수단으로 쓰이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말이나 당나귀를 실제 교통 및 운송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여러번 봤는데, 모두 팔레스타인 지역인 듯 하다. 이게 뭘 의미하는 것일까?

Tourist Police Bike

관광 경찰 오토바이

헤브론 다운타운은 굉장히 많은 자동차, 버스, 트럭 그리고 말들이 뒤섞여 있는 번잡한 곳이다. 여지껏 관광 경찰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경찰관이 와서 우리 버스를 안내해 주고, 필요하면 교통의 흐름도 우리를 위해서 차단해 주고 (경찰이니까!) 주차가 안되는 곳에 주차도 하게 해 주고 여러모로 편의를 봐줬다. 관광객들에게 얼마나 좋은 경찰 시스템인지!

Sheep neck

양 모가지 고기

헤브론에서 아주 좋은 식당엘 갔는데 식당 이름이 “헤브론 식당”이었다. 나는 양 모가지 고기를 주문했다. 이상하기는 커녕 아주 부드럽고 연했다. 혀에 닿는 순간 그냥 녹아버리는 듯 했다. 혀 이야기를 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오늘 저녁에 송아지 혓바닥을 먹었다.

Jewish Settler Speaking

유대인 정착촌 거주자

그 뒤에는 근처에 있는 유대인 회당에 가서 유대교에 열심인 헤브론 정착촌 거주자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맥코믹 그룹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던 듯 하다. 그가 했던 말 중에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지역에 도로, 병원, 학교 등을 세워줬고 이를 고마워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이 말을 할 때, 한국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일본인이 빙의한 줄 알았다.

Imam Maher Assaf

마헤르 아사푸 이맘

저녁에는 마헤르 아사푸 이맘을 호텔 강당에 초대했다. 이맘은 이슬람 종교 지도자의 호칭이다. 옆에 앉아 있는 우리의 현지 안내인이 아랍어에서 영어로 번역을 해줬다. 마헤르 아사푸 이맘은 자유주의 이슬람으로 대다수의 이슬람 교도들은 그와 정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다. 상당히 흥미로운 인물임에 틀림 없다.

Palestine Traditional Drink

팔레스타인 전통 술

저녁 세션에는 우리의 현재 안내인인 조지가 함께 참석했는데 우리에게 팔레스타인 전통주 (굉장히 독하다고 함)를 소개시켜줬다. 이름은 잊어 버렸는데, 독하기 때문에 물을 타고 얼음도 조금 넣어서 마신다. 나는 물론 안 마셨지만.

Friday, 17 January 2014

이스라엘 여행 여덟째 날: 라기스와 브엘세바

오늘은 백색 수녀님의 게스트하우스를 체크아웃 하기 때문에 모든 짐을 버스에 담았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한글 성경 (열왕기하 18장)에서는 라기스라고 나오는 라키쉬다.

Ark of the Covenant stayed here for 18 years

언약궤가 18년동안 머물렀던 곳

가는 길에 현지 안내인이 위에 사진 찍은 곳이 하나님의 언약궤가 다윗 시대에 18년 동안 머물렀던 곳이라고 얘기해 줬다. 아마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들어봤을 것이다. 여기에 언약궤가 있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다윗이 좋아서 춤을 추다가 바지가 벗겨졌던 일 말이다.

David and Goliath

다윗과 골리앗

그 다음에는 다윗과 골리앗이 싸웠던 지점에 차를 세웠다. 위의 사진에 나오는 부분은 이스라엘 군대가 진을 쳤던 곳이라고 한다.

Green Green on the west

푸르고 푸른 서부

여지까지는 고산지대의 서쪽을 본 적이 없다. 쿰란이나 여리고 같은 동쪽으로만 다닌 데다가 텔 아비브의 벤 구리온 공항에 내린 첫 날은 공항에서 예루살렘에 갈 때 이미 해가 져서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산지대의 동쪽은 거의 모든 부분이 광야였다. 그런데 오늘 고산지대의 서쪽은 완전 푸른 걸 보고 놀랐다. 정말 이런 대비가 있을까.

Lachish Wall

라기스 성벽

마침내 라기스에 도착했다. 라기스는 남왕국 유다의 국경에 있는 곳으로 히스기야 시대에 앗시리아의 군대에 정복당했다.

Lachish from down under

밑에서 바라 본 라기스

밑에서 바라보면, 그냥 그저 그런 언덕중 하나에 불과하다. 전혀 인상적이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하지만 왜 이 장소가 그토록 중요한지는 위에 올라가 보면 안다.

Altar of the Sun

태양신 제단

라기스 성벽에 올라가는 길목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기 전에 가나안 사람들이 세웠던 태양신 제단이 있었다.

View From Lachish

라기스에서 바라본 풍경

일단 라기스 위로 올라가면 왜 중요한지 이해가 된다. 360도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어서 주변 지역을 장악하고 제어할 수 있다. 이 곳은 유다의 군사기지였으며, 정복 당한 뒤에는 앗시리아의 군사기지가 된다. 그리고 지리학적으로도, 이 곳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연결 중간 지점이 된다. 전략적 목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 된다.

Gate of Lachish

라기스 성문

이 것은 라기스 성문으로 세 개의 문과 몇 개의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에 장로들이 나오면 사람들이 각자 하소연이나 문제점등을 갖고 나온다.

Lachish Ramp by Assyrians

앗시리아 군대가 지은 라기스 경사로

이 것은 앗시리아의 경사로 중 일부가 남은 것이다. 성 안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앗시리아 군대가 경사로를 만드는 걸 보고 있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무엇을 느꼈을지, 무슨 기도를 했을지 궁금하다.

Regular size Espresso

일반 크기의 에스프레소

그 후에는 고속도로 휴게실에 들어 갔는데, 맥도날드랑 몇몇 식당이 있었다. 나는 그냥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 마셨다. 커피 맛은 좋았고, 10세겔이였다. 근데 크기가 너무 작았다. 커피잔이 내 손바닥의 반 만했다.

Military Training

군사훈련

군사 훈련등을 하는 걸 몇 번이나 봤다. 휴게소에서는 아파치 헬리콥터 4대가 주변을 계속 비행하고 다녔다. 탱크가 고속도로에서 운반되는 것을 보기도 했다. 당연한 것일지도, 이 땅은 분쟁 지역이니까.

Well of Beersheva

브엘세바의 우물

이 것은 브엘세바의 우물로 이 곳에서 아브라함이 거주민들과 언약을 했는데, 기본적으로는, ‘내가 너희를 선대했으니, 너희도 나와 내 자손에게 선대하라’는 상호존중 계약이다. 그런데, 그 언약은 어디에 갔을까?

Bench at the Beersheva Gate

브엘세바 문의 벤치

이 것은 성문 사이에 있는 벤치로 보아스 시대의 것이다. 이 벤치에 보아스와 마음을 장로 열 명이 앉아서 룻과 나오미에 대한 문제를 의논했다.

Beersheva Downtown

브엘세바 시내

위 사진은 브엘세바의 절반 또는 1/3을 높은 곳에서 찍은 것이다.

House remain on the wall

성벽위에 지은 집터

이 것은 브엘세바의 성벽 위에 지은 집의 터가 남은 것이다. 여리고의 라합의 집도 이 처럼 성벽 위에 지어졌다. 내 생각엔 가난한 사람들이 성벽 위에 집을 짓고 살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적이 침공해 오면, 가장 노출되어 위험하고 무서웠을 테니까.

Where they store rain water

빗물을 저장하는 곳

이 것은 빗물 저장소로 굉장히 깊게 파여있고 그 속에는 빗물을 저장할 공간이 상당히 넓다.

Hagit Beck, Jewish activist

유대인 활동가 하깃 벡

그 뒤에는 하깃 벡이라는 유대인 활동가 아줌마를 브엘세바 인근 마을인 오머에 있는 아줌마 집에서 만났다. 막솜 감시라는 단체에 자원해서 활동하고 있는 분으로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막솜 감시는 이스라엘 군에 의한 팔레스타인 체크 포인트를 말한다.

Hyundai Bethlehem

베들레헴에 있는 현대

베들레헴에서 현대 매장을 봤다. 타지에서 모국 기업이 잘 나가는 걸 보면 늘 기분이 좋다.

Nazi Dental Lab

나찌 치과

이 것은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치과로 이름을 보고 경악했다. 이게 정말 독일의 그 나찌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사람 이름인 것인지, 그리고 사람 이름이라면 그냥 다른 뜻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독일의 나찌를 본따서 지은 것인지 모르겠다.

Saint Gabriel Hotel

성 가브리엘 호텔

성 가브리엘 호텔로 정말 아름다운 호텔이다. 자녁 식사는 부페였는데, 끝내줬다. 다만 룸메이트가 차를 따로 주문했는데, 2불 청구가 되자 매우 언짢아 했고 (내 생각엔 시켰으면 돈 내는 게 당연하지만…) 본인이 미국에서 사온 국제전화 카드가 이스라엘 지역에서는 됐는데, 웨스트뱅크 지역에서는 안되는 등 문제가 좀 있었는데, 그래서 본인에겐 나쁜 호텔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내게는 정말 좋은 호텔이었다.

Thursday, 16 January 2014

이스라엘 여행 일곱째 날: 박물관의 날

오늘은 박물관 날이었다.

Israel Museum

이스라엘 박물관

이스라엘 박물관에 갔는데, 문을 통과하자 마자 기원후 60년 경의 예루살렘 모델이 굉장히 멋있게 놓여 었었다.

Jerusalem Model 1:50 Scale

1:50 비율의 예루살렘 모델

가운데가 헤롯이 지은 성전 마운트다. 템플 마운트의 오른쪽 부분 (양쪽 끝)이 성전 꼭대기라고 불리는 곳이고 템플 마운트의 왼쪽 윗 부분이 안토니아 요새로 본디오 빌라도가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기 때문에 고난의 길이 여기서 시작된다.

Part of the Ancient Column

고대 기둥의 일부

여기서 꽤 오랜 시간을 보낸 후에 성서의 성지로 갔다. 짧은 가는 길에 돌 조각들이 여러개 있었는데 위에 사진 찍은 것은 기원전 2세기의 것이라고 한다.

Shrine of the Book Main building

성서의 성지 건물

이 것은 성지 건물의 바깥 부분인데 흰 돔은 빛의 아들들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는 쿰란의 에세네파를 의미하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여기에 투영하는 듯 하다. 주변의 물은 그들이 예식적으로 깨끗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The other side of the Shrine of the Book

성서의 성지 건물의 반대편

성서의 성지 건물의 반대편에는 검은색 벽이 서 있는데, 이는 어둠의 아들들을 의미한다고 한다.

Shrine of the Book by the entrance

성서의 성지 건물 입구 근처

성지 내부에는 사해 사본 일부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사해 사본 및 알레포 코덱스와 관련된 것들이 여럿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진 찍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Bible Land Museum

바이블 랜드 박물관

그 뒤에는 바이블 랜드 박물관으로 갔다. 거기에는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아주 오래된 초기의 성서들이 수많은 언어로 전시되어 있었다. 다음 전시장소는 바티칸이라고 한다. 역시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다.

Holy Snow in Jerusalem

예루살렘의 홀리 스노우

이스라엘에 온 첫날, 올 초에 예루살렘에 눈이 왔는데 이는 특이한 것이라고 들었다. 오늘 남은 눈을 봤다. 캐나다의 위니펙에서는 눈 쌓아두는 곳은 8월까지 남아있기도 하는데 뭘. 이전에 성 앤의 교회에 갔을때, 신부님이 말하길 삽을 구하거나 살 곳이 전혀 없어서 눈 치우는데 애먹었다고 했다.

Holocaust Museum

학살 박물관

그 다음에는 학살 박물관에 갔다. 학살 박물관은 워싱턴에 있는 것을 방문해 봤기 때문에 이 번은 두번째다. 물론 전시 스타일은 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내용을 보여준다. 여기서도 사진 촬영은 금지되었다.

Ribbis for Human Rights

인권을 위한 랍비들

다음 목적지는 ‘인권을 위한 랍비들’이었고 이 곳에서 회장인 아릭 아서만 랍비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꽤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익을 위해 일하고 싸우는 유대인을 보니 좋았다. 문제는 그런 유대인은 극소수라는 것이다.

Ribbi Arik Ascherman

아릭 아서만 랍비

만일 기회가 된다면, 내 짧은 리서치에 대해 포스팅을 따로 하고 싶지만 가능할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주변의 아랍 국가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많이 도와주기를 기대했었다. 같은 아랍어를 말하고, 같은 이슬람을 믿고, 같은 인종이니까. 그런데 내 기대와는 정반대로 주변의 아랍 국가들이 어찌보면 이스라엘보다 더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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