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Tuesday, 26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쉰 다섯번째 날 – 라헬의 무덤

지난 주 시작할 때, 선생님이 기말고사를 수요일에 본다고 했는데, 갑자기 오늘 말을 바꿔서 시험을 바로 보겠다고 해서 시험을 봤다. 다른 학생들은 좀 열받았지만 난 뭐 하루 더 공부한다고 성적이 더 잘 나올 것도 아닌 걸 알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방과후에 라헬의 무덤에 가려고 했다. 몇일 전에 구글에서 검색을 하니까 검색 결과로 나온 웹사이트 중에 이스라엘 당국이 라헬의 무덤에 걸어가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었다. 반드시 뭔가를 타고 가야만 한다는데, 일단은 시도해 보기로 했다.

Dumb boys doing dumb things

멍청한 놈들이 멍청한 짓거리 하고 있네

그래서 방과 후에 검문소까지 걸어갔는데, 라헬의 무덤이 분리장벽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분리 장벽 근처의 헤브론 길을 걷고 있을 때 (검문소는 아직 멀리 있다) 한 스무 명쯤 되는 아이들이 길에 있는 것을 봤다. 아마 중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아이들인데, 도로에 쓰레기와 돌들을 잔뜩 놓아 두고는 길을 막고는 지나가려는 차에는 소리지르고 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 옆의 인도로 지나가고 있었는데, 거의 다 지나갔을 때에 그놈들이 내게 달려 오더니 나를 거칠게 밀치고 내게 뭐라고 막 소리를 질러댔다. 나중에 어떤 인간이 이스라엘에 대해 시위하는 거라고 얘기를 해 줬는데, 이해가 안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용하는 길을 불법적으로 쓰레기를 이용해서 막고 팔레스타인 차량에 소리지르고 욕하는게 어떻게 이스라엘에 대한 시위라는 건지. 여기는 A 구역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리고 관광객에게 욕하고 소리지르고 위협하는 게 어떻게 이스라엘에 대한 시위인지 이해가 안된다. 인도에는 상점 앞에 수많은 어른들도 있었는데, 단 한명도 관광객을 해꼬지하는 아이들을 막거나 제지하는 놈이 없었다. 아이들이 나를 밀치는 게 점점 거칠어 지고 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서 몇놈 뒤지게 패줘야 겠다고 드디어 결심을 했다.

Nostalgic Tear Gas

추억의 최루탄

그때,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최루탄 쏘는 소리였다. 대학생 때 시위 좀 해서 최루탄 많이 맞았지. 나는 아내가 시카고에서 사준 농부 모자 때문에 아주 멀리서도 관광객 티가 팍팍 난다. 파수대에 있는 이스라엘 병사가 관광객 한명이 성난 팔레스타인 아이들에 둘러쌓인 것을 보고 나와 아이들 있는 곳을 향해 최루탄을 두 방 쏜 것이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순식간에 도망가서 사라졌다. 분리 장벽 위에 있는 이스라엘 파수대를 올려다 보니 최루탄을 쏜 병사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이것으로 최루탄은 날 위해 쐈다는 게 명확해 졌다.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게 팔레스타인 경찰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여기 A 구역은 팔레스타인 경찰이 치안과 질서를 담당하는 곳인데.

마침내 이스라엘 검문소에 도착했을 때 주인집 아저씨인 함디 바누라를 만났다. 그래서 검문소 내 안내를 해 줬다. 검문소 내부는 마치 미로처럼 어지러운데, 덕분에 헤매지 않고 쉽게 통과했다. 주인집 아저씨는 이스라엘 입국 허가가 있지만 본인 차량을 운전해 갈 수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검문소 근처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검문소를 통과한 다음에 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에 간다. 맥코믹의 관광 안내인이었던 조지 필몬은 인종이 팔레스타인 사람이지만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이스라엘 사람이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운전해 다닐 수 있다.

검문소를 지나자 라헬의 무덤의 첫 문이 바로 있었다. 거기에는 아가씨 군인이 둘 있었는데, 위험하기 때문에 걸어서 가게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택시를 타야 하냐고 물었다 (예루살렘 중앙 버스 정류장에서 이곳에 오는 버스가 있다). 아가씨들이 내게 매우 친절하게 잘 대해줬다. 그래서 나도 귀엽다, 예쁘다 해 줬더니 좋아 죽는다. 한 10분 정도 같이 웃고 떠들었다. 그러지 차 한대가 왔는데, 아가씨 군인들이 차를 세우고는 나를 태워 가도록 명령했다.

Gender Separated Entrance

성차별 입구

도착하고 나서 영어로 차비 낼까요 하고 묻자 바로 하는 말이 “잉글리시 노”란다. 그래서 그냥 왔다. 건물에 들어가기 앞서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서 건물 앞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영어로 이게 라헬의 무덤이냐고 물었는데 이해를 못한다. 그래서 천천히 두서너번 “뤠-이-철-스 투-움?”이라고 하니 내게 되묻기를 “배스룸(화장실)” 이냐고 한다. 그래서 잠시 생각하니 뤠이철스 툼이 히브리어로는 “카베어 라켈”일 것 같아서 시도해 봤더니 알아 듣는다. 물론 유대인 회당에는 남녀칠세부동석이다. 입구가 따로 있다.

Inside the Synagogue of Rachael's Tomb

라헬의 무덤 회당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두꺼운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청바지 입고 유대인 모자 쓴 한 아저씨가 친절하게 내부 안내를 해줬다.

Rachael's Coffin

라헬의 무덤

위 사진은 실제 (하지만 전승 말고는 아무런 증거가 없다) 라헬의 무덤이다. 라헬은 야곱 또는 이스라엘이 매우 사랑했던 아내다. 내 생각엔 남편은 라헬을 더 사랑했지만 하나님은 다른 아내인 레아를 더 사랑하신 듯 하다. 어째든 레아는 유다지파의 어머니가 되었고 결국 예수님과 다윗왕의 조상이 되었으니까. 게다가 라헬은 혼자 누워있지만 레아는 남편 옆에 묻혀 있으니까.

Toward Jerusalem

예루살렘을 향해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한가지 공통점이라면 늘 방향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무슬림은 메카를, 유대인은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만 다를 뿐.

Parking lot

주차장

여기는 라헬의 무덤에 있는 주차장이다. 사진 오른쪽의 길은 더 큰 주차장으로 간다. 몇일 전에 팔레스타인 쪽의 분리장벽을 방문했을 때 분리장벽의 모양이 왜 이딴식인지 불평을 했는데, 지금 보니 라헬의 무덤 때문이다. 라헬의 무덤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입장이 불가능하다. 첫 문에 돌아가는 것도 차를 얻어 탔는데, 아까 친절하게 대해줬던 아저씨가 대신 차를 잡아줬다. 문에 도착하자 아까 있던 아가씨 둘이 여전히 있어서 다시 조금 더 웃고 떠들었다. 검문소에서 집까지 약 1시간 40분 가량을 걸어 돌아왔다. 여기 주인집에 걸어왔다고 하니 기겁을 하면서 거기서 여까지 걸어오는 사람은 평생 처음 본단다.

Is it mosquito or what?

이게 모가야 뭐야?

예전에 모기에 잔뜩 물린 다리 사진을 올렸는데, 그 후로는 전자모기향을 피워서 좀 낫긴 한데, 그래서 계속 물린다. 오늘 블로그에 글을 쓰는데 팔이 따끔해서 보니 이 놈이 날 물고 있어서 현장에서 사살했다. 이게 모기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 모기의 약 사분의 일 크기다. 이렇게 작아서 방충망을 그냥 지나서 들어오나보다. 하지만 이제 이 집에서는 오늘 포함해서 이틀만 자면 되고, 공항에서 하루밤 지새면 집에 가니까 문제 없다.

Wednesday, 20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마흔 아홉번째 날 – 선생과 싸움, 그리고 헤브론

우리 반 아랍어 선생님은 마르와 바누라인데 지난 달에 결혼한 젊은 아줌마다. 물론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을 하지만 교육 방법에는 문제가 좀 있다. 날마다 꽤 많은 단어를 우리에게 내 주고는 모든 걸 다 외울 거라고 기대를 한다. 우리 교실에서 아무도 이걸 다 외우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늘 우리에게 화를 낸다. 그리고 우리가 참 바보같다고 스스로 느끼게 늘 한다. 늘 말하길 이렇게 쉬운 걸 왜 못하니라고 한다. 그래, 너한텐 쉽겠지. 하지만 우리한텐 안쉽거든.

우리 교실에는 다섯 학생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온 마테오, 스위스에서 온 안나, 독일에서 온 리나, 아프리카의 가나에서 온 클리토스 (클리토리스라고 부른다), 그리고 나. 다른 학생들도 모두 내게 몇번 말하길 자신이 너무 멍청이 같단다. 그런데 오늘은 선생에게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기분이 안좋아 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아랍어를 본인 기대만큼 하질 못하자 목소리가 점점 올라가더니 나중에는 우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3주동안 참아왔는데,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선생에게 맞받아 쳤다. 선생이 점점 감정적이 되더니 마치 자신이 여왕이고 내가 하인인 양 내게 명령을 했다. 결국에 나는 교실을 나와버렸다.

팔레스타인의 문화와 교육 방식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단 난 팔레스타인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를 마치 애들처럼 취급해선 안된다.

선생이 먼저 학장에게 얘기를 했고, 나중에 학장이 나한테 찾아와서 얘기를 했다. 선생이 학장에게 나에 대해 불평한 것 중 하나는 내가 질문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다. 이 얘길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학생은 원래 질문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도대체 여긴 뭐가 어떻게 된거지? 학생이 따라오질 못하면, 특히 모든 학생이 전부 따라오지 못하면 선생은 자신의 교수 방법을 바꾸고 학생이 습득할 때까지 반복해야지, 학생들에게 멍청하다고 소리 지를 게 아니라.

그리고 자기 주차 딱지 끊었기 떄문에 법정에 가야 한다면서 수업을 이틀이나 선생이 빼먹었다. 4주 동안에 이틀이면 굉장히 많은 거다. 선생, 특히 이런 학원 선생은 학생 위에 군림하는 여왕이나 통치자가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일 뿐이다. 이 선생은 전혀 프로페셔널하지 못하고 완전 아마추어같다.

Jewish Settlement

유대인 정착촌

어째든, 학생 여섯이 방과후에 헤브론에 갔다. 이를 주도한 학생이 말하길 자기 친구가 공식 투어 가이드는 아니지만 훨씬 낫고, 헤브론 무덤만이 아니라 시장이니 여기 저기 갈 거고 팔레스타인의 실상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나도 꼈다. 위 사진은 헤브론 구시장 위의 유대인 정착촌이다.

Protecting Net

보호망

구시장의 일부 길은 위에 보호망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설치해 놨는데, 위에 있는 유대인 정착민들이 쓰레기를 엄청나게 쏟아 붓고 심지어는 돌맹이도 던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맥코믹 그룹이 경험했듯이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민들은 대부분 매우 종교적은데, 이런 종교적인 사람들이 비종교적인 사람보다 훨씬 악랄하다. 여학우 마라가 이곳 헤브론에서 크게 당하는 걸 봤지 않는가.

Market Checkpoint

시장 검문소

오늘은 헤브론에서 검문소를 세 군데 지났다. 하나는 구시장에서 나갈 때로 위 사진이다. 그리고 무덤의 유대인 쪽에 입장할 때와 무슬림 쪽에 입장할 때 검문소를 통과했다. 그런데 상당히 이상했던 게, 군인들이 꽤 친절했다. 우리한테 계속 웃어주고, 아주 나긋나긋 대해줬다. 아니,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고 좋았다. 누군가 그러기를 유대인들도 여러 인종이 있고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인종차별이 심하다고 한다. 또 말하기를 유럽계 (백인) 유대인은 이곳 헤브론에 군 배치를 잘 안받는다고 한다. 이곳 헤브론은 꽤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글쎄, 그 말이 100%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 둘러본 바에 의하면 사실인 듯 보였다.

우리는 유대인 회당 쪽에 먼저 들어갔다. 내가 거의 무슨 투어 가이드같이 하게 되었는데, 비공식인 우리 팔레스타인 투어 가이드는 유대인 회당에 입장이 금지되어 있고 또 내가 히브리어를 읽을 줄 알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 무슬림 쪽 검문소를 통과하고 나니 무슬림 기도 시간이 되어서 한시간 동안 입장이 금지되었다. 그래서 무슬림 쪽 입장은 포기했다. 가짜 투어 가이드가 말하길 “유대인 쪽 봤잖아요. 거기랑 똑같이 생겼어요” 라고 했다. 사실 많이 다르게 생겼다. 마음 같아서는 그놈에게 “너 유대인 쪽 한 번도 못 들어가 봤는데 같은지 다른지 어떻게 알아?”라고 묻고 싶었다. 자칭 투어 가이드는 말 그대로 아무 것도 한게 없었고, 사실 내가 했다.

Hirbawi Textile Factory

힐바위 면직 공장

그 후에 힐바위 면직 공장에 갔다. 기계가 완전 낡아서 무슨 산업혁명 보는 줄 알았다. 두 여학우가 목도리 같은 면직을 좀 사려고 했는데, 판매원이 가격을 굉장히 높게 불렀고, 태도가 굉장히 무례한데다 협상할 의지도 없어 보였다. 여학우들은 사지 않았는데, 가격보다는 그놈들 태도 때문이었다.

Another Glass Factory

또다른 유리 공장

그 후에는 유리 공장에 갔는데, 맥코믹 그룹이 방문했던 곳이 아니었다. 훨씬 작은 곳이었지만, 뭐 유리 만드는 건 다 똑같다.

돌아갈 때, 투어 가이드가 공장 두 곳을 들렀으니 돈을 더 내란다. 30세겔 이었는데, 1인당 치면 5세겔이어서 그냥 냈다. 정식 투어 회사는 집에까지 태워다 주는게 이놈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냥 우리를 베들레헴 대학교에 내려다 줬다. 결국 나는 마찬가지로 50분을 걸어야 했다. 그냥 정식 투어 서비스를 이용하는게 훨씬 안전하고 낫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오늘은 완전 시간과 돈 낭비였다. 게다가 오늘은 이번 여행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한 날이 되길 빈다) 아주 지랄같은 날이었다.

Tuesday, 28 January 2014

이스라엘 여행 열두번째 날: 갈릴리 바다, 가버나움, 고라신

오늘은 신약, 특히 복음서의 날이었다.

Nazareth View from Saint Gabriel Hotel

성 가브리엘 호텔에서 본 나사렛 풍경

호텔에서 바라 본 나사렛 모습인데, 꽤 안개가 껴서 아래쪽이 보이질 않았다.

Cana

가나

버스타고 가는 동안, 현지 안내인이 예수님이 첫 기적을 행하신 가나의 위치를 알려줬다. 현지 안내인에 따르면 포도주는 굉장히 값진 선물이라는데, 이는 한해의 노동과 재산의 상당부분이 포도주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과 같은 잔치에서 포도주를 넉넉하게 제공하지 않으면 집안의 굉장한 수치로 여겨지며 가나와 같은 작은 마을에서는 동네에서 엄청 이야기 거리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말 그대로 한 집안을 구원하신 셈. 또한 조지가 말하기를 예수님은 어머니와 함께 앉아있지 않았을 거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당시 유대인 풍습으로는 남녀가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금도 회당에서는 여자와 남자가 함께 있지 못한다.

Church of Beatitudes

팔복교회

첫 목적지는 팔복교회로 마태복음에 예수님께서 ‘xxx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xxx함이라’는 팔복을 가르치신 산상보훈 설교를 하신 곳이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산 꼭대기에 계셨고, 예수님이 앉으시는 장면으로 설교가 시작한다. 유대인 풍습에 따르면, 랍비가 일반적으로는 서 있지만, 랍비가 앉으면, 이제 할 말은 심각한 얘기니까 조용히하고 잘 들으라는 의미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앉으시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조용해졌을 것이다. 팔복교회는 예수님이 앉아서 설교하셨다고 생각되는 바위위에 지어졌다.

마태복음 5장 3절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Between the two Hieberts

히버트 교수님과 히버트 교수님 사이에서

맥코믹에서 구약 및 히브리어를 가르치시는 부부 교수님으로 참 잘 어울리신다.

With George, our local guide

현지 안내인 조지와 함께

그 후에는 갈릴리 바다에 가서 “예수님” 배를 타고 예배를 드렸다. 시편 150편을 영어, 한국어, 스페인어, 히브리어, 아랍어로 읽었다. 아랍어는 우리 현지 안내인 조지가 읽었는데, 최고의 안내인이다.

2000 Years old boat

2000년 된 배

이 배는 갈릴리 바다 진흙 속에서 발견되었는데, 과학자들이 측정한 결과 2000년이 조금 넘은 배라고 한다.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 바다에는 이런 배가 무지 많았을 텐데, 그 중 하나다. 예수님께서 이 배에 타셨을 가능성도 없지 않으며, 특이한 점은 이 배는 12개의 다른 종류의 나무로 제작되었다는 것이다.

Migdal

믹달

여기는 고대 믹달의 고고학 발굴터인데, 막달라 센터 및 리조트를 만들기 위해 거대한 공사가 진행중이다. 유명한 막달라 마리아는 믹달이라는 동네에서 온 마리아란 뜻이다. 갈릴리 지역은 예수님 사역의 핵심 지역이다. 여기서 점심을 했다.

Herod's Massacre

헤롯의 학살

이 산의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현지 안내인에 따르면 헤롯 시대에 이 지역에서 반란이 있었고,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이 저 산으로 도망갔는데, 헤롯이 병사들에게 명령해서 반란에 포함된 모든 사람들을 저 산 절벽에서 내던지게 했으며, 갈릴리 사람들이 봤다고 한다.

Church of Peter's Primacy

베드로 으뜸 교회

그 후에 베드로 으뜸 교회를 갔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이 곳에 와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불과 식사를 준비하셨다. 요한이 주님을 먼저 발견하고 베드로에게 일렀다. 그 후에 이 곳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랑하냐고 세 번 물으셨다. 이 교회는 그러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다.

요한복음 21장 15절 말씀이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One of seven springs

일곱 샘물 중 하나

이 지역은 헵타페곤이라고 불리는데, 그리스어로 일곱 샘물이라는 뜻이다. 샘물을 찾으러 갈 시간은 없었지만, 혼자서 겁나 뛰어서 샘물 하나 발견했다.

Olive grinder

감람(올리브) 분쇄기

그 다음에는 고라신으로 갔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저주하신 세 마을 가운데 하나다. 이는 작은 시골 마을로 동네 사람들은 아마도 더욱 보수적이고, 상대적으로 마음이 전통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닫혀 있었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곳에 오셔서 사역을 하신게 아닐까 한다. 바로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려고. 위 사진은 고대의 감람유 (올리브 기름) 짜내는 기계다.

Peter or Peter's mother-in-law's house

베드로 또는 베드로 장모의 집

여기는 가버나움에 있는 베드로의 집이다. 상당히 많은 성지는 단순히 기념하기 위한 목적이고 살제 장소는 논쟁이 있지만, 이 곳은 100% 정확하다고 하며 논쟁도 전혀 없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실제로 이 곳에서 드시고, 주무시고, 쉬시고, 가르치시고, 기적을 행하시고, 이야기 하셨다는 것이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마을 전체를 다니셨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의 실제 유대교 회당이 옆에 있다. 예수님께서 그 회당에 가셔서 말씀을 읽으시고, 가르치셨음에 틀림이 없다.

Stairway to the roof

지붕으로 가는 계단

이 집은 베드로의 집 옆인데, 지붕으로 가는 계단이 보인다. 복음서에 보면, 온 몸이 마비된 환자를 친구들이 지붕으로 옮겨서 내린 것이 나오는데, 바로 이런 계단을 통해 갔을 것이다. 지붕은 대체로 나무가지 및 잎사귀등으로 덮여 있으므로 쉽게 열 수 있었을 것이다.

Sunset in Capernaum

가버나움의 일몰

정말 아름다운 일몰이었는데, 사진기가 별로 좋지 않아서 그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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