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Tuesday, 12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마흔 첫번째 날 – 비디오를 얻지 못하다

홈스테이 집주인이 이스라엘에 억압받는 팔레스타인의 현실에 대한 비디오를 보라고 내게 권유했다. 그러한 비디오들은 시라지 센터에서 빌릴 수 있다고 얘기도 해줬다. 그래서 약 7일 전에 시라지 센터에 전자우편을 보내서 문의를 했더니 바로 답변이 와서 다음 월요일에 시라지 센터에 와서 비디오들을 빌려 가라고 했다. 다음 월요일은 바로 어제였다. 그래서 어제 시라지 센터에 갔다.

나: 안녕하세요. 이제명이라고 합니다. 비디오 좀 빌리러 왔는데요.
걔: 안녕하세요. 무슨 비디오요?
나: 저기 전자우편으로 얘기했던 비디오요.
걔: 무슨 전자우편이요?
나: 혹시 여기 조지라고 있나요? 조지하고 전자우편 주고 받았거든요.
걔: 제가 조진데요.
나: 아, 그럼 전자우편 한번 찾아 보세요. 6일 전에 월요일에 와서 빌려 가라고 했는데, 오늘이 월요일이거든요.
걔: (전자우편을 뒤적이고 나서). 아, 네. 그런데 저희는 그런 비디오가 없어요.
나: 네? 분명히 와서 빌려 가라고 하셨잖아요?
걔: 그랬죠. 근데, 저희는 그런 비디오가 없다고요. AI 센터에 가시면 거기서 빌릴 수 있어요.

AI 센터 또는 AIC는 대체 정보 센터(Alternative Information Centre)로 팔레스타인의 현실에 대해 국제사회에 알리는 노력을 하는 단체다. 시라지 센터에서 별로 멀지 않지만 뒷골목에 숨어 있기 때문에 찾는데 애를 좀 먹었다.

Alternative Information Centre

대체 정보 센터 AI 센터

어째든, 센터를 찾았고, 거기에 들어갔다. 거기서 이러저러한 비디오가 있냐고 물어더니 있단다. 이스라엘의 지배와 억압하에 놓인 팔레스타인의 현실과 생활에 대한 DVD가 174개나 있단다. 내가 좀 빌릴 수 있냐고 하니 안된단다. 빌려줄 수는 없지만 복사해 줄 수는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출국 공항 보안 검사를 받아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런 종류의 비디오나 책자를 갖고 있는 건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다. 그래서 노트북을 가져 오면 그 속에다 복사할 수 있냐고 했더니 괜찮단다. 하지만 어제는 노트북이 없었다.

몇시에 퇴근하냐고 물었더니 2시란다. 내가 수업이 1시에 끝나니 수업 끝나고 걸어오면 1시 반쯤 될테니 다음날 (그러니까 오늘) 오후 1시 반에 와도 되냐고 물었더니 꼭 기다리겠다고 약속해 줬다.

내 노트북은 거의 10살이 다 되가는 지라 꽤 무겁다. 이 무거운 노트북을 메고 학교까지 아침에 50분을 걸어갔다. 그리고는 AI 센터까지 수업 끝나고 다시 걸어가서 1시 반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다. 청소하는 사람이 있어서 물어보니 모두들 퇴근했단다.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분명히 어제 나를 꼭 기다리겠다고 약속을 했고, 게다가 지금은 아직 퇴근 시간도 아니다. 내가 이러는게 자기네들 팔레스타인 사람들 위해서 하는 건지 모르나? 내가 그 비디오를 보고 팔레스타인의 처참한 현실을 더 알면 더 많이 도우려 할텐데. 그리고 시카고에 돌아가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비디오를 공유할텐데. 솔직히 말해서 지네들이 나 있는 집으로 비디오 들고 찾아와줘야 하는 거 아냐? 시라지 센터가 한 번 전자우편이랑 비디오 갖고 날 엿먹이더니 이제는 AI 센터도 날 완전 엿먹이네!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내가 비디오 달라고 무릎꿇고 사정이라도 해야 하나? 조까.

Saturday, 9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서른 일곱째 날 – 일랏으로

내 홈스테이를 시라지 센터를 통해서 구하게 되었는데, 몇가지 여가활동을 더 신청을 했었다. 그런데 사람이 부족해서 취소한다고 연락이 왔고, 환불을 해줄테니 금요일에 센터로 오라고 했다. 오늘이 금요일이어서 센터에 갔다. 이메일을 받은 게 일주일 전이었는데, 오늘 갔더니 돈이 준비가 안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시간을 허비했다. 센터에서 택시타고 베들레헴 버스 정류장에 갔다. 그 버스는 예루살렘의 다마스커스 문까지 가는 버스다. 거기서 경전철을 타고 예루살렘 중앙 버스 터미널로 갔다.

Jerusalem Central Bus Station

예루살렘 중앙 버스 터미널

버스 터미널의 매표소에 갔더니 어떤 남자가 내게 다가와서 어디 가냐고 묻는다.

걔: 어이 친구, 어디가?
나: 일랏이요.
걔: 거기가는 표 매진됐어.
나: 에? 오늘 버스 모두 다요?
걔: 어. 개인 운수는 어때?
나: 얼만데요?
걔: 200.
나: 세겔로요 아니면 달러로요? 아니 잠시만요. 일단 매표소에 직접 먼저 물어보고요.

낯선 사람이 친근하게 굴면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매표소에 물어보니 이번 버스는 정말 매진되었지만 2시에 출발하는 다음 버스는 널널했다. 2시간 정도 더 기다리는 것이 돈을 무지 내고 가는 것보다 낫기에 당연히 표를 샀다.

그렇게 해서 일랏에 다시 왔고, 같은 호스텔에 묵었다.

지금까지 내 발굴 팀에 대해 쓸 기회가 없었다. 라기스 발굴은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전쟁이 나고 나서 가자와 가깝기 때문에 자원자들이 대거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은 현장이 폐쇄되었고, 라기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남부의 대부분의 현장은 다 폐쇄되었다. 절반 이상은 돌아가고 나같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북부에 있는 다른 발굴 현장에 참여하게 되었다. UCLA는 야포에서 발굴하고 있었는데, 메깃도로 합류했다.

우리 팀은 대부분 UCLA 학생들이었다. 사라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애가 있었는데, 이란계 미국인이고, 18살이었다. 여기 전체 발굴 합류자 중에서 최연소자였다.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고고학을 전공할 거라고 하며, 10살때부터 발굴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또 다른 여자는 꽤 게을렀고 미친듯이 말을 많이 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말하길 저 여자는 일주일에 이틀만 일한다더니 사실이었다. 정말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고 나머지 날들은 아프다고 신고하고 쉬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건강해 보였는데. 내게 말하길 자신이 최근에 커밍아웃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사귀는 여자는 없다고.

UCLA에서 온 두 여자는 이름이 바네사와 제나인데, 자기 둘이 한 팀을 만들었다고 내게 말을 했다. 그런데 그 팀 이름일 버제이나라고… 이는 여자의 성기를 의미하는 버자이나와 발음이 매우 비슷해서 혹시 그런 의미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하지만 이 둘이 우리 팀 전체에서 일을 가장 잘 하는 팀원들이었다.

캐나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스라엘을 떠났거나 아니면 이스라엘로 오는 일정을 모조리 취소해 버렸는데, 미국 학생들은 대부분 남았다. 미국 사람들이 캐나다 사람들보다 더 용감하던가 아니면 이런 총이나 위험에 이미 익숙해 있는 건지도.

Tuesday, 5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서른 두번째 날 – 첫 수업

선시티 호텔을 새벽 5시 10분에 떠나서 텔 아비브의 중앙 버스 터미널로 갔다. 거기서 예루살렘에 가는 5시 50분발 버스를 탔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는 경전철을 타고 다마스커스 성문에 갔다. 이번에도 어떤 유대인 청년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상당히 친절하고 도움을 많이 주는 청년이었는데, 버스카드를 사면 훨씬 싸게 예루살렘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등의 생활의 팁도 많이 가르쳐주려고 애를 썼다.

이번 여름에 두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히브리 대학교고 다른 하나는 팔레스타인의 베들레헴 대학교다. 두 학교 모두 어떻게 오는지에 대한 안내를 해 줬다. 히브리 대학교에서는 지도를 첨부한 이메일을 보내줬는데, 지도에는 만나는 장소, 버스를 타는 장소 등을 정확히 표시해 줬다. 베들레헴 대학교에서 온 이메을은 그냥 텍스트가 전부였고, 자세하다기 보다는 “예루살렘에서 아랍버스 21번을 타서 베들레헴에 옵니다. 버스에 내려서 학교까지 걸어오거나 원하면 택시를 탑니다”가 전부였다. 문제는 아랍 버스를 예루살렘의 어디서 타는지 내가 모른다는 것이었다. 구글에서 검색해 보아도, 사람들에게 물어도 모르는 것이었다. 이 버스 정류장 찾는데만 3주가 넘게 걸렸다. 그리고 베들레헴에 도착해서도 사람들에게 물어도 심지어 경찰관에게 물어도 배들레헴 대학교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이었다.

어째든, 다마스커스 문에서 21번 아랍 버스를 탔다. 버스에는 나 밖에 없었다.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에 오는 버스는 마치 콩나물 시루처럼 사람들이 빽빽하더만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 가는 버스는 완전 비었다.

Bethlehem University

베들레헴 대학교

택시를 타고 베들레헴 대학교에 직접 갔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아랍어 발음과 기초적인 것 몇 가지를 배웠다. 맥코믹 그룹은 위 사진을 보면 어딘지 기억이 날 것이다.

히브리 대학교와 베들레헴 대학교의 차이점이 하나 더 있는데, 돈에 관한 것이다. 히브리 대학교는 꽤 유연성이 있다. 미국 달러로 내던, 유로로 내던, 이스라엘 세겔로 내던 상관없다고 하고, 현금으로 내도 신용카드로 내도, 개인 수표로 내도 된단다. 그리고 아무때나 내가 내키는 때에 내면 된다고 한다. 반면에 베들레헴 대학교는 이메일을 예닐곱번 보내서 신신당부한 것이 있는데, 반.드.시. 수업 첫날에 전액 납부해야 하고, 무조던 미국 달러여야만 하고, 반드시 현금으로 내야 한다. 신용카드 사절이란다.

My room for one month

한달간 머물 내 방

수업이 끝난 뒤에 영국에서 온 아저씨를 만났는데, 내 홈스테이랑 같은 마을인 벳자훌에 머문다고 했다. 우리 모두 시라지 센터에 가야 해서 함께 택시를 탔다. 학교 선생님이랑 직원이 시라지 센터까지는 15세겔이 적당하고, 20세겔 이상은 절대 주지 말라고 했다. 택시 탈때 말을 했는데, 운전수가 가만히 있더니, 조금 가서는 갑자기 50세겔을 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둘이 탔으니 두배를 내라는 것이었다. 가격에 대해 옥신각신했고, 택시 운전수가 고함치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20세겔 이상은 줄 수 없다고 버텼다. 그랬더니 길 한복판에 우리를 내리게 했다. 사실 나와 영국 아저씨는 시라지 센터에 온 줄 알았다. 그리고나서 뻔뻔하게도 운전수가 5세겔 더 달라고 또 그러는 것이었다. 물론 주지 않았다. 알고보니 도착한게 아니었다. 시라지 센터까지 약 10분 걸어갔다. 팔레스타인 사람과 겪은 또 다른 나쁜 경험이다. 왜 자꾸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나쁜 경험을 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시라지 센터가 홈스테이 주인에게 전화를 해서 날 데리러 왔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으로 매우 친절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위 사진은 내가 한달간 머물 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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