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Saturday, 2 January 2016

성적 공평

몇일 전에 “미국의 성평등“이라는 포스팅에서 성적 공평과 성적 평등에 대해 언급을 했다.  이에 대해 차이점을 좀 더 명확히 하고 왜 내가 평등보다는 공평을 추구하는지 얘기하고 싶다.  시작하기 전에, 신학교의 한 친구가 내가 공평 fairness라는 말을 할 때마다 공정 equity라고 자꾸 정정을 해 주는데, 나도 equity라는 단어를 알지만 피하고 있다.  첫 이유로는 equality하고 철자 및 발음이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fairness가 모든 사람들에게 쉬운 단어라는 점이다.  고등교육의 가장 큰 목적 가운데 하나라면 아마도 똑같은 것을 더욱 어렵고 현학적인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혼동되고 괜히 멋있게 보이도록.  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말과 내가 쓰는 글이 심지어는 국민학교 졸업한 사람들조차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성적 평등은 내가 정의하기에는 남자와 여자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똑같은 일을 해서 남자가 100불을 받는다면, 어떤 여자도 같은 금액인 100불을 받아야 한다.  또 어떤 자선단체에서 물품을 노숙자들에게 나눠준다고 할 때, 남자들에게 나눠주는 것과 같은 양 및 가치를 여자 노숙자들도 공급받아야 한다.  이게 바로 성적 평등이다.  그리고 예전에도 썼지만, 제3세계는 말할 것도 없이 미국에서도 아직 성적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성적 공평이란 무엇인가?  아주 멋지고 현학적인 학자처럼 단문으로 정의하기 보다는 예시를 하나 들겠다 — 실제 있었던 일을.  한국에서 여행을 할 때, 한 번은 고속도로 휴게실에 들어갔는데, 작은 식당이 하나 있고, 남녀 화장실이 있었다.  그리고 전세버스가 둘 들어왔고 약 70명 쯤 되는 사람들이 용무가 급해서 마구 쏟아져 나왔다.  내가 기억하기에는 남녀의 비율이 거의 같았고, 화장실도 남녀모두 칸이 다섯개씩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그 휴게실에서는 성적 평등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상황은 좀 달랐다.  한 십 분 정도에 남자는 줄이 사라졌지만 여자들은 여전히 긴 줄을 서 있었고 뒤에 서 있는 많은 여자들이 용무가 너무 급해서 다리를 꼬거나 발을 구르고 있었다.  이 예에서 내가 생각하는 공평은 남녀의 대기시간이 같은 것이다.  만일 남자가 최대 10분을 기다린다면 여자도 딱 그만큼 기다려서 볼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상황에서는 성적 평등은 있으나 성적 공평은 없다고 하겠다.

위에서 쓴 바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성적 평등조차 존재하질 않는다.  성적 평등이 존재하는 곳에서도 상황이 이런데, 실제로는 얼마나 더 심할까?  우리의 문화, 관습, 그리고 전통 때문에 불평등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만일 남자 칸이 다섯, 여자 칸이 셋 뿐이었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등이 아니라 공평하기 위해서는 여자에게 불당하다고 생각될 만큼 더 큰 이득을 줘야만 한다.  그러면 성적 공평이 이뤄질 수도 있을지도.

위에 든 예는 한국이지만, 시카고에서도 많이 봤다.  어디를 가든 아무데를 가든, 심지어는 그 유명한 관광지인 네이비피어를 가도 마찬가지다.  성적 평등이 없기 때문에 현재는 성적 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그게 우리의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반드시 성적 공평이 되어야 한다.

노숙자에 대한 물품 배분에 대한 얘길 했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여성 노숙자가 더 많이 받아야 한다.  적어도 생리대를 포함한 여성용 청결제등은 더 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미혼모는 … 아 정말 내가 이런 부분까지 설명을 해야 하나?

기독교인들이여 시민들이여, 공평한 사회를 만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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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30 December 2015

미국의 성평등

미국에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미국 사람들과 얘기를 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미국 사람들은 미국이 그냥 가장 위대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나라라고 생각하며,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가끔은 다른 어느 나라에 살아 가봤냐고 물어보면 약 70% 정도는 아무데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일리노이 주 밖으로 나가본 적조차 없는 사람들이 꽤 많다.

정확히 어떤 면으로 미국이 가장 위대한 나라라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어쩌면 요세미티 공원인가?  어쩌면 인구당 수감자 수가 가장 많아서 그런가?  아니면 인류 역사상 총기 범죄 및 살인이 가장 많아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교육, 의료, 복지 및 기간시설을 개선하는데 돈을 쓰지 않고 전세계 모든 나라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군대와 무기에 쓰기 때문일까(스톡홀름 국제 평화 연구소 2015년 팩트 시트)?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미국이 인권이나 성평등 부분등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라고 믿는다.  이 문제, 즉 인권에 대해서는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공개적으로 반박하지도 않는다.  난 성 문제에 대해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는데, 내 목표는 성 평등이 아니라 성 공평이다.  이 부분에 대해 허핑턴포스트의 글을 최근에 읽었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5/12/17/story_n_8834932.html

이 부분에 있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돈이 중요한 잣대가 될 수는 있는데, 임금에 있어서 심각한 차별이 존재한다.  헐리웃이든 심지어는 백악관에서도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더 적은 돈을 받는다.

미국의 내각에는 대통령을 제외한 23명 가운데 여성이 일곱으로 약 30%를 차지하고 있는데 비해 캐나다 내각에서는 정확히 절반이 여성이다.  심지어 원주민의 땅 반환 재판을 총괄하게 될 법무부 장관에는 원주민 여성이 임명되었고, 인도의 시크 교도 이민자가 국방부 장관에 임명되어 있기까지 한다.

문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미국이 정말로 위대한 나라가 되려면, 미국 언론들은 국민들에게 최면을 중단해야 하고, 미국인들도 “우리는 가장 위대해”라고 되뇌이는 심리적 자위를 그만둬야 한다.  그리고 위대함이라는 마약도 버려야 한다.

미국이 최악의 저질 국가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인권이나 여성 지위 등에는 북한이나 ISIS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과 비교해서는 거의 최고의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끊임없이 진보를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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