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Thursday, 7 August 2014

두번째 성지여행 – 서른 네번째 날 –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의 세례

오늘 학교 끝나고 나서 집 주인이 혹시 세례식 보는 거에 관심이 있냐고 물었다. 물론 관심이 있다. 그래서 주인집네와 함께 교회에 갔다.

Palestinian Christian Church in Beit Sahour

벳자훌에 있는 팔레스타인 기독교 교회

이 건물은 약 300년 되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더 오래된 교회 건물 위에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 오래된 건물을 사용하고 있다. 지하로 내려가는 문이 몇 개 있는데 그 문을 통해서 내려갈 수 있다.

Baby Baptismal Tub

유아 세례용 욕조

위 사진은 유아 세례용 욕조다. 세례는 최소한 두 명의 사제가 진행을 한다. 한 사제는 욕조에 물을 받으면서 기도도 하고 손으로 물에 십자가를 그리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축복을 한다. 다른 사제는 옆에서 아기와 아기 부모와 함께 있으면서 아기를 계속 축복하는데, 아기에게 기도도 하고 십자가를 손으로 그리기도 하고 올리브 기름으로 또한 십자가를 아기 얼굴에 그어준다. 현재 아기는 일반적인 옷을 입고 있다.

Baby Baptism

유아 세례

다른 사제는 욕조에 감람유를 붓는다. 그러면 부모들이 아이를 홀딱 옷을 벗겨서 준비를 시킨다. 이 때 사제도 허리에 수건을 두른다. 아기를 물에 넣기 전에 아기를 번쩍 들어서 모두 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나서 아기를 물에 완전히 그리고 세 번 집어 넣는다. 이 때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기쁨의 고함을 친다. 그리고 나서 사제가 특별히 제조된 기름을 아기에게 십자가 모양으로 발라준다. 이 때는 물론 아기가 옷을 벗고 있다.

Procession of the Baby

아기 행진

그리고 나서 사제들은 앞으로 나아가고, 아기는 이제 흰 결혼 드레스를 입는다. 남자 아기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서 식구들이 전부 앞으로 행진한다.

Merry Go Round?

강강술래?

그 후에 아기와 식구들은 테이블 한 쪽에 서고, 사제들은 반대편에 선다. 그리고 테이블을 빙글빙글 돌면서 아기를 축복한다. 한 사제는 향을 피운 통을 끊임없이 흔든다. 이런 강강술래 놀이를 한참 한다.

Bow to the Bible

성경에 고개 숙이라!

그리고 나서 다른 사제가 나아와서 성경을 열고는 아기의 머리에 성경을 댄다. 이 때에는 모든 식구가 머리를 숙여야 한다. 그리고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은 거의 대부분 손님들도 모두 가능하면 서 있어야 한다. 이 때에 아기를 최초의 성찬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아기와 식구들은 밖으로 행진해 나가고, 밖에서 한 줄로 서 있는다. 손님들도 나가서 인사하고 축하한다. 유아 세례는 주일 예배의 일부가 절대 아니며, 독자적인 행사다. 결혼식과 상당히 유사하다. 약 80여명 정도가 참석을 해서, 이게 교회 성도들이냐고 물었더니 세례식은 가족 행사기 때문에 가까운 친척들만 모이는 거라고 했다.

Christmas Year Round

연중 무휴 성탄절

베들레헴과 벳자훌에서는 일년 내내 성탄절이다.

Fresh Figs

무화과 열매

캐나다에 있을 때 말린 무화과를 먹어본 적이 몇 번 있지만 한 번도 생 무화과를 직접 먹어본 적은 없었다. 무화과는 참 독특한 열매다. 사과 같은 경우는 씨가 있는 중앙 부분은 먹지 못하고, 귤도 껍질은 먹지 못한다. 그런데 무화과는 말 그대로 모조리 먹는다. 그리고 굉장히 달고 맛있고, 한 두개 먹으면 배고픔이 사라진다. 아마 이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시장하실 때 무화과를 찾으셨던 게 아닌가 한다. 위 무화과는 집에서 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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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6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서른 세번째 날 – 하마스의 로켓 공격

오늘이 홈스테이 집에서 맞이하는 첫 아침이었다. 홈스테이는 베들레헴 인근인 벳자훌에 있다. 여기 식구들이랑 아침을 먹는데 갑자기 집이 흔들리면서 굉장한 폭발음을 들었다.

Building Attacked by a rocket

로켓 공격을 받은 건물

모든 사람들이 놀랐고 집 밖으로 나갔다. 모든 이웃들도 나와있었다. 시가지 쪽 건물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봤다. 주인 아주머니가 아침 일찍 시가지 쪽으로 갔기 때문에 여기 식구들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다. 주인 아주머니는 로켓 현장에 없었고, 다른 곳에서 안전하게 있었다. 주님께 감사한 것은 이번 일로 사망자가 없다는 것이다.

Broken Building Pieces

부서지 건물 파편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분노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인 듯 했다. 사람들은 서로 서로 로켓이 어디서 온 것인지, 이스라엘인지 하마스인지 묻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당국이 로케트 잔해를 수거해 갔고, 나중에 경찰관이 아랍 로켓이기 때문에 아마 하마스에서 쏜 것일 거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분노가 사라지고, 조용해 지고 이 일에 대해 아무도 더 이상 말하지 않기 시작했다. 온라인에 팔레스타인의 어려운 삶과 이스라엘의 박해에 대해 글을 쓰는 팔레스타인 아저씨를 봤는데, 현장에서 사진을 많이 찍고 있었다. 그런데 로켓이 하마스 것이라고 판명이 나자 길거리 그 자리에서 찍은 사진을 모조리 지우고 있었다.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선언한 휴전이 오늘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하마스는 휴전할 의사가 없나보다. 자기 사람들이 1800명 넘게 죽었는데도 말이다. 팔레스타인 당국은 공식적으로 이 로켓은 아랍 로켓이라고 발표했고 뉴스에서도 그렇게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일부 사람들이 이 로켓이 이스라엘 것이라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이제 가자에서의 전쟁을 끝내려고 하는 판에 왜 웨스트뱅크에서 새롭게 전쟁을 시작하겠는가? 그리고 웨스트뱅크에는 하마스와 같은 테러조직이 없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웨스트뱅크를 공격할 아무런 명분도 갖고 있지 못한다.

어제 밤에 몇몇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이스라엘 공격에 의해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었지만 하마스 공격에 의해 이스라엘은 조금밖에 안 죽었다는 얘기를 내게 했다. 또한 내게 말하기를 가자에서 이스라엘로 쏘는 로켓 위력도 약하고 집에서 만든 것들이기 때문에 쏴도 괜찮다고 했다. 이 말도 내 생각엔 말이 안된다. 무기의 위력이 약하다고 해서 공격해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양쪽 모두 공격을 하지 말아야 한다. 건물 주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만나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주인도 위력이 약하기 때문에 정말 로켓을 맞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게.

Saturday, 2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스물 아홉째 날 – 카이로 첫 날

View from the Hotel Room

호텔 방에서 본 풍경

위 사진은 르 메리디앙 호텔의 내 방에서 본 풍경이다. 여기는 별 다섯 개 호텔이어서 건물이랑 시설을 매우 좋다. 하지만 관리랑 고객 서비스는 완전 엉망이다. 절대 이 호텔 다시 안온다.

오늘은 문제가 아침에 좀 있었는데, 시간이 바뀐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축제 기간을 포함하는 라마단 금식 기간에는 저녁을 일찍 먹을 수 있도록 시간을 한시간 앞당기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이제 라마단 금식 기간과 그 후의 축제기간이 모두 끝났기 때문에 원래 시간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오늘 완전 망칠 뻔 했다.

Ramses II

람세스 2세

아침에 밋 라히나 박물관에 갔는데, 원래는 장인과 텍스타일의 신을 모시는 신전이었다고 한다. 이 신이 장인이기 때문에 우주를 만들었다고 한다.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이 있었다. 람세스 2세는 가장 강력했던 파라오로 고고학자가 발굴하는 곳마다 그의 이름이 나온다고 한다.

First Stone Building in the world

세계 최초의 석조건물

이 것이 세계 최초의 석조건물이다. 최초라는 건 결국 경험이 전무하다는 뜻이기 때문에 돌기둥을 지탱하기 위해서 쓸모없는 벽을 붙여놨다.

First Pyramid

최초의 피라미드

이 것이 이집트 최초 즉 세계 최초의 피라미드다.

Pharaoh's Court

파라오의 뜰

이 곳이 파라오의 뜰로 사진 앞에 있는 강단 같은 것이 파라오가 앉는 의자가 있는 곳이고 멀리 있는 벽은 양쪽으로 있는데 파라오의 총독들이 앉는 의자가 나열되어 있어서 파라오가 총독들을 상벌을 주거나 처형을 바로 이 곳에서 했다고 한다.

No Egyptian Cats but dogs

이집트에 고양이가 아니라 개만 있어

내게 이집트 하면 피라미드 보다 고양이가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이집트에 사흘 있으면서 아직 고양이를 한 마리도 못 보고 개만 겁나게 봤다. 타바에서 그렇고, 샴에서도 카이로에서도, 그리고 룩소에서도 그랬다. 이집트는 정말 덥다. 어제 룩소에서는 섭시 47도, 그러니까 화씨 117도를 기록했다. 이렇게 덥기 때문에 그늘마다 개들이 늘어져 있는 것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셔널 지오그라피인데, 고양이들의 DNA를 조사하고 검사한 결과 모든 고양이들은 고대 이집트에 있던 다섯 마리의 암코양이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리고 제노그라피 프로젝트가 고양이에게 했던 똑같은 기술을 사람에게 적용해서 지구상의 모든 종족의 DNA를 비교 분석했는데, 그 결과 지구상의 모든 현생인류는 단 한 여성의 후손이라고 하며, 편의상 미토콘드리아 이브라고 부른다.

Titi Pyramid

티티 피라미드 입구

이 것이 티티라는 파라오의 피라미드인데, 티티는 이집트 역사상 가장 오래 다스린 통치자라고 하며, 첫번째 고대왕국의 마지막 파라오다.

Longest Reigned Pharaoh with Humblest Tomb

가장 오래 통치한 파라오의 가장 초라한 무덤

그의 통치 기간동안 파라오는 권력을 대부분 잃었고, 그렇기 때문에 피라미드가 상당히 작고 내부도 매우 초라하다.

Servant's Tomb is more Glorious

신하의 무덤이 더 웅장해

하지만 그의 고위 관료가 실권력을 가졌고, 티티보다 더 크고 아름답고 정교한 무덤을 만들었다. 내부에서는 사진이 금지되어서 찍지 못했는데, 모든 그림과 벽의 조각이 정말 정교하고 대단했다.

Traditional Carpet Making

전통적 카페트 제작

이집트에는 고대부터 이어져 오는 산업 중 다섯 개가 아직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남아있다고 들었다. 카펫이 그 중 하나다.

Papyrus Factory

파피루스 공장

그 뒤에는 파피루스 공장에 갔다. 파피루스는 두 가지 이유로 경배의 대상이었다고 하는데, 먼저 그 꽃의 모양이 태양이 햇살을 내리는 듯 생겼고, 또 하나는 그 줄기가 피라미드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이다. 공장 직원이 파피루스 제작 과정을 실제로 보여주고 설명해 줬다. 영어의 페이퍼라는 말 자체가 파피루스에서 나왔다.

Chicken Chicken!

닭고기 닭고기!

이 곳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닭고기 전문이라고 한다. 미국이나 캐나다와는 달리 여기선 물이 공짜가 아니다. 룩소의 호텔, 카이로의 식당, 심지어 이스라엘 하이파의 식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이미 경험했기 때문에 오늘은 물병을 가져갔다. 절약해야 잘 살죠~

Climbing a Pyramid

피라미드에 오르다

그 후에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에 갔다. 이미 알고 있었듯이 피라미드 표면은 계단식이었다. 그런데 이게 원래는 아주 매끄러운 표면이었는데, 이슬람 통치 기간동안 모스크 짓기 위해서 표면 돌들을 가져다 썼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한다.

Picking a Pyramid

피라미드 들어볼까

위 사진에서 피라미드 꼭대기를 보면 원래의 매끄러운 표면이 잘 나타나 있다.

Labourers' Village

노동자의 임시 마을

위 사진은 피라미드 노동자들의 마을 및 공동묘지라고 한다. 전통적으로는 피라미드는 노예들이 강제 노역을 해서 지었다고 했다. 몇년 전에 일본 NHN의 다큐를 봤는데, 어떤 고고학자가 이 마을을 발견했고, 또한 작업관리자 또는 십장의 점토판을 발견했는데, 작업일지 같은 것이었다. 거기에는 작업자들의 이름이 있고 몇일 일을 했는지, 그리고 일을 빠진 날은 왜 빠졌는지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 이유들에는 다쳤다, 치료중이다, 아들이 결혼한다, 아버지 장례식이다 등등이라고 한다. 어떤 노예가 아들 결혼식때문에 왕의 노역을 빠질 수 있단 말인가? 피라미드는 일반 시민이 지은 것이고, 이 프로젝트는 현대의 미국도 했지만 경기부양책이 아니었을까 한다.

Sphynx

스핑크스

누가 이집트에 와서 스핑크스를 지나칠 수 있을까?

Horse Station

말 정류장

이집트에는 말이 꽤 많았는데 대부분의 관광지에는 심지어 말 정류장까지 있었다.

호텔에 돌아왔을 때, 카드키가 작동하지 않아서 방에 들어가지 못했다. 여러번 시도하고, 다른 호텔 직원도 시도해 보고 했는데 작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리셉션에 내려가서 물어봤다. 한 놈이 컴퓨터를 확인해 보더니 내가 오늘 아침에 이미 체크아웃을 했다는 것이다. 뭔 소리야! 내가 그 놈에게 설명해서 내 에약이 주일 아침까지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다른 놈이 와서 또 컴퓨터를 확인해 보더니 내 방은 3090호가 아니란다. 내방이 아닌데 내가 어떻게 이틀밤이나 거기서 잤을까? 곧이어 세번째 놈이 와서 또 컴퓨터를 확인해 보더니 내 방이 3045호실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좀 목소리를 올려서 얘기를 했다. “나한테 말도 안하고 방을 어떻게 옮겨!” 그리고 나서는 내가 방에 놔둔 짐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결국 내 원래 방에 올라가서 내 짐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나서는 새 카드키를 받고 내 방을 재확인 받았다.

화가 났기 때문에 지배인에게 따지기로 했다. 그래서 리셉션에 내려가서 내 방에 같이 올라온 놈에게 말을 했다. 5분만 기다리라고 했는데, 15분이 지나서 그 놈이 다시 오더니 지배인이 바쁘다고 한 10분쯤 걸리니 방에 올라가서 쉬고 있으면 지배인 나오는 대로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현재 다섯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 모든 직원들이 지배인을 나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눈에 보인다. 기자 카이로에 있는 르 메리디앙 호텔, 여기 고객 서비스 개판이니 절대 이용하지 말기를. 오늘 리셉션에서 아랍어 쓰는 아저씨가 막 소리 지르는 것도 봤고, 중년 아줌마가 매우 화가 나 있는 것도 봤다.

Pyramids and Moon

피라미드와 달

피라미드에서 하는 밤 라이트 쇼를 보러 갔다.

현 이스라엘-가자의 상황에 대해 이집트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가 좀 있었다. 내 짐작으로는 이집트 사람들이 같은 무슬림인 가자를 지지할 것이기 때문에 대체로 대화를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으로 시작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마스를 싫어했다. 모든 대화를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요약을 하겠다.

  • 하마스는 (진정한) 무슬림이 아니야.
  • 하마스는 로켓 만들고 땅굴 파는 거 중단하고 그 돈을 가자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해.
  • 하마스는 무슬림 형제단의 일종인데, 이집트에서 그 형제단에 대해 안좋은 경험이 많아.
  • 하마스 지들도 가자에 있는 사람들 많이 죽였어.
  • 하마스가 웨스트뱅크의 정부를 부정했잖아, 그거 쿠데타야.
  • 하마스는 자진 해체하고 가자는 웨스트뱅크랑 단일 정부 구성해야 해.
  • 폭력은 잘못된 거고 이슬람교가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아.
  • 하마스는 비폭력 저항하는 웨스트뱅크를 보고 배워야 해.
  • 가자 사람들은 멍청해서 하마스같은 걸 뽑았어. 이집트 사람들은 3년 전에 혁명도 했고, 이제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해 간다고.
  • 하마스는 일반 시민에게 로켓 쏘는 거 그만해야 해, 군기지라면 모를까. 일반시민 죽이는 건 이슬람에서 금지하고 있다고.

그리고 이집트 사람에게 스스로를 아프리카인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한중일은 당연히 한국인으로, 일본인으로, 중국인으로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스스로를 아시아인으로 생각하는데, 이집트 사람들은 어떤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물어본 사람들은 모두 다 “우리는 이집트 사람이지 아프리카 사람이 절대 아니야”였다.

Tuesday, 29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스물 여섯째 날 – 일랏과 홍해

다른 날과 달리 오늘은 다섯시에 일어나서 한 시간이나 더 잤다! 그 후에 발굴 사무소에 신고해서 오늘 떠난다고 알려주고 거기서 택시를 불러줬다.

Double Deck Israel Railway Train

이스라엘의 이층 기차

파데스-한나 기차역으로 갔다. 가는 길에 택시에 있으면서 버스정류장에 앉아있는 젊은 여자 둘을 봤는데 한 명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굴의 일부분만 빼고 다 칭칭 감은 걸로 봐서 이슬람교도임에 틀림이 없고, 다른 한 명은 이스라엘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 둘은 서로 이야기하고 웃고 그랬다. 그 둘이 거기서 처음 만난 사이인지 아니면 오랜 친구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광경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이스라엘과 가자가 전쟁을 하면서 서로 죽이는 이 때에는 말이다. 오늘 그들에게서 희망을, 그리고 빛나는 미래를 봤다.

이스라엘에서 기차 타 보기는 처음이다. 놀랍게도 이층 기차였다! 기차타고 한나에서 텔 아비브까지 갔다.

Are these founders of Tel Aviv?

텔 아비브 개척자들인가?

이스라엘 경제의 수도인 텔 아비브에 왔다. 이스라엘에서 마음에 안드는 거는 버스건 기차건 영어 안내를 전혀 안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버스도 지하철도 모두 영어 방송을 하는데 말이다.

이집트 대사관으로 가기 위해 타야하는 25번 버스 정류장을 못 찾아서 헤매고 있었다. 길거리에서 아가씨에게 길을 물었는데, 같이 있던 아주머니가 직접 버스 회사에 전화까지 해 가면서 물어봐줬다. 물론 히브리어로 대화해서 못 알아들었지만 한 단어는 알아들었다. 바로 미쯔라임으로 이집트라는 뜻이다.

역시나 버스 운전사가 영어를 전혀 못했고, 또 다시 승객 중 한 분이 도와줬다. 이집트 대사관에 갔는데, 문이 닫혀 있는 것이었다. 어디에도 공지가 안붙어 있고, 웹사이트에서도 휴무 공지나 알림이 없었다. 경비에게 물어보니 뭔 말만 하면 무조건 “내일”이란다. 그래서 다시 물어봤다.

나: 넌 할줄 아는 말이 “내일”뿐이냐?
걔: 예, 예. 내일. 내일

내 추측으로는 이집트 국경일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텔 아비브 중앙 버스 터미널로 가서 일랏에 가는 버스표를 샀다. 내가 버스표를 살 때가 9시 33분이었는데, 3분 전에 일랏 버스가 떠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다음 버스는 11시다. 어이쿠.

Highway Stop before Beersheva

브엘세바 가기 전에 고속도로 휴게소

맥코믹 그룹은 위 사진을 기억할 것이다. 지난 1월에 브엘세바 가기 전에 멈췄던 곳으로 오늘도 브엘세바 가기 전에 이 곳에서 휴식했다. 여기가 바로 내가 처음 맛본 아로마다.

Negev Desert

네게브 사막

버스는 거의 다섯 시간 운행했다. 위 사진은 네게스 사막의 모습으로 정말 웅대하다.

Fish on  the Road

바닥에 새겨진 물고기

일랏에 갔는데,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완전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바닥에 물고기가 많이 새겨져 있었다.

Fish Statue in Eilat

일랏의 물고기상

또한 물고기 상들도 많이 있었다. 일랏은 이스라엘의 최남단으로 일랏에 가기 직전에 검문소를 거쳤다. 맥코믹 그룹은 이미 경험해 봤지만, 이번에도 반자동 소총을 든 군인 둘이 버스에 올라왔다. 아마 전시라서 그런 듯 하지만 버스 승객의 절반이 군복을 입고 있었고, 그 중 또 절반은 모두 반자동 소총을 들고 있었다.

Eilat Youth Hostel and Guest House

일랏 유스호스텔 및 게스트하우스

호스텔까지 약 10분 걸어 갔는데, 땀이 마치 비룡폭포 쏟아지듯 했다. 일랏의 호스텔은 정말 광경이 좋다. 위 사진에서도 홍해가 보인다. 방은 다섯이 공유하는 방이고, 아침식사가 제공된다. 나는 booking.com을 통해서 예약을 하고 30불을 냈는데, 직접 예약하면 120세겔, 그러니까 약 40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Red Sea is blue

홍해가 푸르네

이런 찌는 날씨에 누가 바다의 유혹을 견딜 수 있을까? 여기가 바로 모세가 쩍 갈랐다는 홍해다 (물론 이 지점에서 가른 건 아니지만). 왜 이걸 홍해, 붉은 바다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내 눈에는 아무리 봐도 푸른 바다로 보이는데 말이다.

오늘 이집트 대사관에 못 갔기 때문에 내일 아침 일찍 국경에 가야겠다.

Friday, 25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스물 두번째 날 – 벳 쉐아림

오늘은 별 다른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아침에 텍사스 오스틴에서 온 빌 할아버지가 당일 여행 관심 없냐고 묻길래 어디 가냐고 되물었다.

빌: 가버나움
나: 벌써 갔다왔어. 별루.
빌: 그리고 떡과 생선 교회
나: 그게 뭐야?
빌: 주저리 주저리 주저리…
나: 아, 답가! 벌써 갔다왔어. 별루.
빌: 그리고 가이사랴
나: 벌써 갔다왔어. 별루.
빌: 그리고 벳 쉐아림.
나: 어디라구?

그래서 껴서 같이 가기로 했다. 독일에서 온 은퇴한 목사님이라는 분도 있었다. 그렇게 셋이서 당일 여행을 가게 되었다.

Cave of the Coffins, Beit Shearim

벳 쉐아림, 관의 동굴

벳 쉐아림은 꽤 흥미로운 곳이었다. 기리앗 티본이라는 곳에 있는데, 굉장히 많은 무덤과 (매장용) 동굴이 있다. 그중 유명한 것으로는 랍비 예후다 하나시의 무덤으로 그 후부터 전세계의 수많은 유대인들이 이 곳에 와서 매장되었다고 한다. 위 사진은 관의 동굴이라는 곳으로 굉장히 내부가 크고 넓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관들이 있는데 글자도 새겨져 있고, 문양도 새겨져 있다. 이 동굴은 자체만으로도 마치 하나의 도시같은데, 굉장히 많은 방과 복도가 있다.

동굴 위에서, 그러니까 천년이 훨씬 넘은 무덤 위에서 사용된 콘돔하고 포장지를 발견했다. 무덤 위에서 섹스를 하다니 역겹다. 도대체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뭐가 문제지?

Jesus Boat

예수님의 배

그리고 나서 예수님의 배가 있는 박물관에 갔다. 위 사진은 실제 배가 아니고 모조품이다. 이 배를 갈릴리 바다의 바닥 아래에서 발견했고 측정해 보니 약 2,00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맥코믹 그룹이 지난 1월에 왔던 곳이다.

Tabgha

답가

그리고 나서 답가에 갔다. 바닥의 모자이크는 꽤 유명한데, 떡 네 덩어리와 생선 두 마리가 있다. 떡이 다섯 덩어리가 아니고 네 덩어리인 이유는 예수님께서 축사하시느라 떡 하나를 손에 쥐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시 맥코믹 그룹이 지난 1월에 왔던 곳이다.

St. Peter's House, Capernaum

가버니움, 사도 베드로의 집터

그 후에는 가버나움에 갔다. 이 곳은 회당 옆에 있는 사도 베드로의 집터다. 역시 맥코믹 그룹이 지난 1월에 왔던 곳이다.

Bahai Gardens, Haifa

하이파, 바하이 정원

그 후에는 하이파에 갔다. 위 사진은 하이파의 독일 구역에 있는 바하이 가든이다. 독일 구역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맛이 별로였다.

Mediterranean beach, Haifa

하이파, 지중해 해변

그 후에는 하이파의 해변, 바로 지중해 해변에 갔다. 여기도 물맛은 짜네.

Caesarea in the dusk

해질녘의 가이사랴

해질녘에 가이사랴에 갔다. 다들 알겠지만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에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없고 텅 비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웬걸, 주차장은 이미 꽉 차 있고, 길거리도 모두 차들고 가득차 있었다. 이중 주차하면 된다고? 장난하심? 이미 모든 곳이 삼중 주차가 되어 있었다. 이곳 식당은 새벽 1시까지 열고, 사람들이 외식하러 갈 데가 여기 밖에 없기 때문인 듯 하다. 꽤 많은 이슬람교도들이 해가 완전히 져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기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맥코믹 그룹이 지난 1월에 이 곳에 물론 왔었다.

So called Penis Man

소위 곧휴맨

지난 1월에 보지 못한 예술품을 발견했다. 내가 발견했을 때에는 약 7살부터 10살 정도 되는 여자아이들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모두들 곧휴 부분은 쥐거나, 문대거나 만지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들은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있었다. 뭐, 조기 성교육은 필요하니까.

Tuesday, 15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열한번째 날 – 두번째 발굴 작업

라기스에서 두 번째 발굴 작업인 날이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현장에 가서 아직 달이 떠 있을 때 바로 일을 시작했다. 정말 덥고 목마르고 지치게 만드는 날이다. 미친 듯이 물을 계속 마셔댔는데 하루에 소변을 단 한 번만 본다. 아마도 땀으로 물이 다 나가서 그러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다.

Ancient River

고대의 강 흔적

이 번은 네 번째 라기스 발굴이라고 한다. 인도자는 히브리 대학교의 요시 가펑클 교수로, 이번에 동쪽의 성문을 발견했다. 고대의 라기스는 주요 도로가 동쪽에 있었는데, 지금도 동쪽에 도로가 있다. 그리고 수자원은 동쪽에 흐르는 강이 있었는데,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지만 성경 시대에 흘렀던 강의 흔적은 볼 수 있다.

Babylonian Destruction Layer

바빌론에 의한 멸망 지층

나는 언덕의 북쪽을 발굴하고 있는데, 페르시아 시대를 파고 있었는데, 바닥에 검은 층을 발견했는데, 재층이라고도 부른다. 이 검은 층은 도시 전체를 망라하는 대규모 파괴와 화재의 흔적이라고 한다. 이 검은 지층은 바벨론에 의한 멸망으로 판명되었다. 나는 현재 느부갓네살의 군대와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 현장에 바로 서 있는 것이다.

Rosetta Seal Impression

로제타 인장

로제타 인장을 두 개 발견했다. 이 것은 항아리 손잡이 부분으로 이 인장은 왕의 것임을 표시하는 것으로 아마도 세금용일 것이다. 이 깨진 항아리가 예전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왕에게 (유배당하기 전의 유대인 항아리였으므로) 세금을 바치는 감람유라던가 다른 것들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Pottery Reading

도자기 분석

하루 일과는 새벽 다섯 시에 시작했고 현장에서 땅 파는 일은 오후 2시에 끝났다. 하지만 하루 일과가 끝난 것은 아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 세 그룹으로 나뉘어 졌는데, 도자기 분석조, 도자기 세척조, 뼈 세척조였다. 도자기 분석조는 대체로 학자라던기 이미 고고학적 도자기에 대한 지식이 상당한 사람들이 배정되고, 나같은 일반 사람들은 도자기나 뼈 세척조에 배정된다. 분석조는 도자기를 확인하고 여러가지 분석을 하고, 세척조는 현장에서 발견된 도자기나 뼈를 물로 씼는 일을 한다.

저녁 7시까지 세척을 했고, 그 후에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에는 요시 교수님이 밤 10시까지 강의를 하셨다.

밤 11시 직전에야 자러 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내일 아침에는 여전히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 정말 빡빡한 일정이 아닐 수 없다.

Thursday, 10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일곱째 날 – 마사다와 사해

Map of Westbank and Vicinity

웨스트 뱅크와 인근지역 지도

위 사진은 호텔 벽에 걸려 있는 지도의 일부다. 여기 지도는 어디서 사느냐에 따라 제목이 달라진다. 팔레스타인 가게에서 사면 “웨스트뱅크와 인근지역”이고 이스라엘 가게에서 사면 “이스라엘 지도”다.

Gerald Halbert Park

제럴드 할버트 공원

오늘도 어제와 같은 관광회사의 관광을 했다. 텔 아빕에서 모인 어제와 달리 오늘은 예루살렘을 걸쳐 가야하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모였다. 제럴드 할버트 공원에서 모였는데, 예루살렘의 동쪽이 잘 보이는 곳으로 가장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선이 에돔 산으로 성경에 나오는 에서의 후손들이 살았던 곳이다.

Ahava Factory

아하바 공장

오늘의 주요 목적지는 마사다와 사해 해변이지만, 첫 목적지에 가기 전에 아하바 공장과 방문자 센터에 먼저 들렀다. 아하바는 피부 미용 관련 제품을 사해의 진흙과 미네랄에서 만들어 내는 회사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꽤 큰 그룹이었고 큰 관광 버스를 사용했다. 관광 안내인은 아미르라는 유대인이고, 버스 운전사는 이슬람교도인 팔레스타인 사람이었다. 내가 알기로 아미르는 아랍어로 왕자인데, 유대인이 아랍 이름을 갖는 게 좀 이상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Masada from afar

멀리서 본 마사다

마사다는 그 비극적인 역사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에 유대인 일부가 마사다에 와서 계속 저항했다. 하지만 그들은 절망적이었고, 모조리 자살을 해서 로마군이 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 마사다는 사실 정말 난공불략의 요새다. 주변의 모든 산들이 절벽이지만 꼭대기는 연결되어 있는데 비해 오직 마사다만은 주변이 완전히 다 절벽이다.

Model of Masada

마사도 모형

위 사진은 마사다 모형으로 완전 절벽인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헤롯이 엄청난 마을과 심지어 자신의 궁전까지 이런 절벽 위에 지었다는 것이다. 그냥 걸어 올라가는 것도 죽을 지경인데, 거대한 돌들과 나보다 세 배는 더 큰 항아리들을 모두 올렸다는 건 말도 안된다.

Masada Cablecar

마사다 케이블카

마사다의 케이블카는 방문자 센터에서 마사다 꼭대기까지 연결이 된다. 사실 안내인인 아미르에게 혹시 걸어서 올라가도 되내고 물어봤었는데, 오전 9시 이후에는 걸어 올라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온도를 확인하더니, “지금 섭시 43도가 넘어가는데, 이런 온도에 엄청나게 가파른 언덕을 40분 넘게 계속 걸어 올라가면 죽을 수도 있어요”라고 말을 했다. 섭시 43도는 화씨로 110도다.

Snake path from above

위에서 바라다 본 뱀길

위 사진은 마사다에 걸어 올라가는 길로 뱀길이라고 부른다. 옛날의 요세푸스도 언급했던 길이다. 위 사진은 사실 뱀길 중에서 가장 완만하고 넓은 길이다. 내가 버스에서 내렸을 때, 땅에서 올라오는 엄청난 열기에 숨이 탁 막혔다. 게다가 햇살은 너무나 다가워서 마치 바늘에 피부가 찔리는 듯 느꼈다. 걷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Original Wall painting in Masada

마사다의 오리지날 벽화

위에 올라가니 모든 건물에 검은 선이 그려져 있었다. 선 위는 고고학자들이 재구성한 것이고, 검은 선 아래는 원래 있던 그대로로 전혀 건드리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위 사진의 벽화는 헤롯 시대에 만들어진 것 그대로다. 그림과 색깔이 저렇게 선명하게 보존되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Herod's Palace on the edge of Masada

마사다 절벽에 있는 헤롯의 궁전

마사다 절벽 끝에는 헤롯이 지은 3층 궁전이 있다. 위 사진은 꼭대기 층에서 바라본 2층 궁전이다. 아, 헤롯, 헤롯, 헤롯. 맥코믹 그룹은 지난 여행 때 우리가 어디를 가든지 상관없이 단 하루도 빠짐 없이 헤롯의 이름을 들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만일 헤롯이 없었다면 유대인과 이스라엘은 별로 역사적인 유물이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면 헤롯이 거의 모든 것을 지었기 때문이다.

Ritual Bath of Masada

마사다의 의식용 욕조

안내인 아미르는 헤롯이 (적어도 굉장히 노력했다) 유대인보다 더 유대인 같았고, 로마 사람보다 더 로마식이었다고 평했다. 위 사진은 헤롯이 유대인 보다 더 유대인 같았던 것 중 하나로 헤롯이 그 높은 마사다에 지은 의식용 욕조 및 세례터다. 그리고 마사다의 모든 예술은 패턴으로 동물이든 사람이든 어떤 것이든 형상은 하나도 없다.

Hot Bath on Masada

마사다의 열탕

위 사진은 헤롯이 로마 사람보다 더 로마 사람이었다는 증거로 헤롯은 마사다에 냉탕과 열탕을 설치했다. 위 사진은 열탕으로 아랫 부분은 불을 지피는 곳으로 불과 연기가 바닥을 데우고, 바닥이 물을 데우는 식이다. 연기는 건물 옆의 통로를 지나 건물 위로 빠져 나가서 목욕하는 사람은 타는 냄새를 전혀 맡지 않는다고 한다.

Small Cistern on Masada

마사다의 조그만 수조

마사다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사막지역에 있다. 전혀가 아니라 거의라고 한 것은, 일년에 한두 차례, 어떤 경우는 그냥 3년에 한 번 비가 오기 때문이다. 마사다 같은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빗물을 한방울까지도 모아서 저장해야 한다. 위 사진은 마사다 위에 있는 수조로 조그마한 규모다.

Model for Rain water collecting system of Masada

마사다의 빗물 집결 시스템 모형

헤롯은 또 다른 시스템을 만들었는데, 훨씬 거대하면서 주변 지역의 모든 빗물을 중력을 이용해서 모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리고 마사다 아래에 저장해서 그냥 길어오면 된다. 이런 엄청난 시스템 덕분에 유대 저항군은 물이 풍부했던 반면에 로마군은 물이 없어서 곤란에 처했고, 멀리 엔게디에서 물을 길어와야만 했다. 내 생각에 이런 모습은 전혀 로마적이지 않다.

Synagogue on Masada

마사다의 회당

더 유대인스럽기 위해서 헤롯은 마사다 위에 회당도 지었다. 위 사진은 회당으로 여기에도 서기관은 방이 있다. 카츠린에서 본 것과 같이 진짜 서기관이 축복을 적어서 관광객들에게 팔고 있었다.

Dovecot on Masada

마사다의 비둘기 사육장

그들은 뭘 먹었을까? 여기서 대추 씨를 엄청 많이 발견했다고 한다 (그 중 일부를 심어서 실제로 대추 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2천년이나 지나 싹을 틔운 셈이다.) 하지만 위 사진과 같은 비둘기 사육장도 있었는데, 비둘기는 유대인이 먹을 수 있는 식품인 데다가 크기도 적당하다. 소는 너무 커서 마사다 위로 끌고 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뿐더러 한 번 잠으면 고기가 너무 많은데 비해 비둘기는 두세명이 한 끼 먹이게 적당하다. 위 사진은 마사다의 비둘기 사육장이다. 헤롯은 정말 대단한 듯 하다.

View from Masada Restaurant

마사다 식당의 풍경

위 사진은 창문을 통해 바라 본 마사다 식당의 풍경이다. 사해가 정말 아름답다!

Reading on the Dead Sea

사해에 누워 읽기

마사다를 나와서 사해 미네랄 해변에 갔다. 사해에 가기는 두 번째인데 사실은 읽지 못하는 (아랍어 신문이었다) 것을 읽는 척 하는 건 늘 재밌는 듯 하다.

Dead Sea skincare

사해에서 피부 미용

이번에는 사해 진흙을 몸에 발랐다. 심지어 밤 늦은 지금도 내 피부가 너무 부드럽다. 아, 보들보들한 내 피부, 넘 좋아.

Hot Mineral Spa of Dead Sea

사해의 미네랄 스파

여기에는 사해 물을 사용하는 뜨거운 스파가 공짜다. 알겠지만 사해 물은 바닷물보다 열배 짜다고 한다. 맛을 보면 짠 맛은 느낄 수 없고, 굉장한 쓴 맛만 느껴진다. 맛은 봐도 되지만 마시면 안된다. 안내인이 이 거 한 잔 마시면 죽는다고 한다.

Rocket trail on the sky

하늘에 보이는 로케트 흔적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윗 시타델 호텔에서 내렸다. 정말 아름다운 날이었다. 위 사진을 보면 정말 아름답자 않은가? 길을 건너서 마밀라갈과 왕 솔로몬 길에 서서 아름다운 하늘을 올려다 봤다. 호텔에서 5분 걸어서 올 수 있는 곳이다. 로케트가 날고 있으며,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곧 요격당했다. 사진을 찍으려 했는데, 사진기가 아주 고물딱지여서 로케트의 흔적만 찍혔다. 구름같이 생기기도 하고 비행기 흔적같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은 로켓의 흔적으로 잘 보이라고 검은 색으로 둘러 칠했다.

CNN 뉴스를 보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사망자 수가 81명 대 0명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그냥 큰 뉴스 중 하나로만 취급된다. 뉴스에서는 미국 이민 문제, 미국과 독일의 스파이 문제, 그리고 텍사스의 총질을 더 크게 다루고 있다.

Wednesday, 9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다섯째 날 – 다시 걷기

이전에 쓴 대로 예루살렘에 온 첫날 저녁에 엽서하고 우표를 샀다. 원래는 엽서만 사려고 했는데, 팔레스타인 용팔이가 우체국이 멀고 찾기도 어렵다고 말을 했다. 설마 이런 거 거짓말 하겠냐 생각을 해서 여러 나라로 보낼 거라고 했다.

그놈: 어느 나라로 보낼건지 말해 보세요.
나: 미국, 캐나다, 한국, 일본.
그놈: 문제 없어요. 이 우표는 전세계 어느 나라든 가는 우표거든요.

그래서 우표를 샀다. 그리고 오늘 아침, 호텔을 나가기 전에 데스크에 있는 아가씨에게 엽서 좀 부쳐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가씨가 엽서를 잠시 보더니 우표가 잘못되어서 배달이 안된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우표를 샀는지 말을 했다.

그녀: 아녜요. 이 우표는 유럽까지만 가는 거예요. 정 못 믿겠으면 우체국 가서 직접 물어보세요.
나: 아 예. 그럼 우체국 어딨는지 알려주세요. 찾기 힘들다고 하던데, 좀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그녀: 바로 저긴데요.

이제보니 내가 우표 산 가게에서 우체국이 걸어서 채 1분도 안걸리는 거리고, 가게에서도 우체국이 보이기까지 한다. 우체국 가서 물어보니 호텔 아가씨 말이 정확하다. 그래서 추가 우표를 더 샀다.

진짜 열받는다. 우표에 돈을 더 써서가 아니라 그놈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믿다니 정말 내가 멍청하게 느껴진다. 만일 그냥 우체통에 넣었으면 엽서가 단 한개도 배달이 안될 거라는 얘기잖아. 이걸로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당한 게 네 번째다. 너무 당혹스럽고, 그 사람들을 미워하기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Narrow Road in the Old City

구시가지의 좁은 길

위 사진은 우체국 바로 옆인데, 이런 좁은 길도 트럭이 빠져나간다. 가끔은 구시가지의 이런 좁은 길에서 어떻게 운전을 하는지 신기하기도 하다.

Model of the Tower of David

타윗 탑의 모형

그 뒤에는 자파 문 바로 옆에 있는 다윗 탑 박물관에 갔다. 아는 사람은 이미 알겠지만, 사실 이 탑은 다윗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예전에 사람들이 착각해서 이름을 다윗탑이라고 붙인 것 뿐이다.

View from the Tower of David

다윗 탑에서 바라 본 풍경

그래도 풍경은 정말 기가 막혔다. 돈 낼 가치가 있다. 이슬람 통치 하에 있을 때에는 이 건물이 병원이랑 약국으로 쓰였던 것 같다.

Jaffa Gate from North Route of Ramparts Walk

북쪽 램파트 길에서 본 자파 문

다윗 탑을 나온 뒤에는 다른 램파트 길을 갔다. 전날에는 자파 문에서 시작해서 똥문에서 끝나는 램파트 길의 남쪽 경로를 갔는데, 오늘은 자파 문에서 시작해서 다메섹 문을 거쳐 사자 문에서 끝나는 북쪽 경로를 갔다.

Selfie above the Damascus Gate

데메섹 문 위에서 셀카

북쪽 경로보다는 남쪽 경로가 훨씬 좋은 것 같다. 남쪽 경로는 성벽 안팎이 아주 높은데 비해 북쪽 경로는 성벽 안쪽은 거의 땅과 높이가 같다.

그 후에는 사자 문에서 가까운 록펠러 고고학 박물관에 가려고 했는데, 오늘은 문을 안 여는 날이라고 한다. 웹사이트에는 분명 날마다 연다고 되어 있는데, 문에 붙어있는 표지에는 화요일하고 금요일은 열지 않는다고 써 있다. 그러니 웹사이트 믿지 말기를. 사실 성지에는 믿을만한 게 거의 없는 것 같다.

Mamilla Street Arts

마밀라 길의 예술상

그 후에는 자파 문 근처에 있는 마밀라 길에 갔다. 마밀라 길은 자파 문에서 시작해서 마밀라 호텔과 다윗성 호텔에서 끝나는데 아메리칸 이글이나 크록스와 같은 미국 상점, 근대 예술등이 가득하고, 프리미엄 아웃렛과 느낌이 거의 똑같다. 아, 길에 전시되어 있는 예술품들은 구매할 수도 있다고 한다.

Aroma - best coffee shop in Israel

아로마 – 이스라엘에서 최고의 커피점

마밀라 길에서 아로마를 발견했다. 맥코믹 그룹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로마에 간 적이 있다. 아로마를 이스라엘의 스타벅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점심으로 예루살렘 샐러드를 먹었다. 새로운 장소를 찾는 것도 좋지만, 전에 갔던 곳을 발견하는 것도 좋다.

King David's Tomb

다윗왕의 무덤

그 후에는 시온산에 갔다. 그 유.명.한. 시온산. 그런데,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작아도 너무 작다. 시온산에는 토라, 탈무드, 공부, 교육과 관련된 센터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그리고 기대치 못했던 다윗왕의 무덤을 발견했다. 헤브론의 다른 무덤들과 달리 입장료는 없었다.

The Cenacle

마가의 다락방

그리고 나서 내가 찾던 걸 발견했다. 예수님이 유월절 식사, 최후의 만찬을 하신 곳. 그리고 성령이 제자들에게 내리시던 바로 그 방. 만일 이 곳이 진짜 그 곳이라면 어떻게, 예수님도 가난하고 제자들도 가난한데 다윗왕의 무덤 바로 옆에 있는 방을 구하실 수가 있었을까?

Excavation on the City of David

다윗성에서 진행되는 발굴

그리고 나서 다윗성에 걸어 갔는데, 새로운 발굴이 진행중인 걸 봤다. 나도 다음 주 부터 저런 노동을 할텐데.

그리고 입장표를 살 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안에서 표를 파는 유대인 여자 아이가 혹시 내가 몇달 전에도 오지 않았냐고 물어본 것이다. 정말 놀랬다. 그리고 기분이 좋았다.

나: 아, 예. 지난 일월달에 왔었는데요. 어떻게 알아요?
그녀: 아, 그냥… 얼굴이 기억이 나요.

주변을 둘러 보면서 기억을 새롭게 했다. 그리고 히스기야의 터널에 당연히 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였다. 그리고 불을 키지 않기로 했다. 램프도, 후레시도, 핸드폰도, 어떤 종류의 불도 키지 않았다. 중간에 단 한 번 손목시계 불을 켜봤다. 손목시계의 불빛은 꽤 희미해서 낮에 햇빛에서는 켜졌는지 꺼졌는지 구별도 안되는 건데, 이렇게 밝은지 처음 알았다. 완벽한 어둠에서 나는 천천히 더듬더듬 걸었다. 눈도 소용이 없어서 손으로 벽을 느끼면서 걸었다. 정말 수만번 부딪힌 것 같다. 다행히도 농사꾼 모자를 쓰고 있어서 머리는 벽에 부딪히기 전에 모자 챙에 닿는 느낌이 있어서 단 한 번도 박치기 하지 않았다.

Step Walk to the Temple

성전에 올라가는 계단 길

실로암 연못으로 나왔다. 하지만 셔틀을 타지 않았는데, 날 기억한 여자 아이가 1월 이후로 새 터널일 발굴하고 개방했다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사실은 터널이 아니고 실로암에서 성전에 올라가는 2000년된 계단 길이다. 어째든, 현재는 땅 아래에 있으니까. 그래서 새 터널을 걸어서 다윗성 방문센터에 갔다.

Harp Player on Jaffa Gate

자파 문의 하프 연주자

자파 문에 돌아가니 흰 옷을 입은 여자가 성문 창에 앉아서 하프를 켜고 있었다.

오늘 겁나 걸었다. 피곤하다.

Tuesday, 8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셋째날 – 예루살렘 걷기

오늘 일을 시작하기 전에, 어제 있던 것 추가를 해야 겠다. 어제 예루살렘에 오는 합승 택시에서 내 옆에 스위스 엄마-딸이 있었는데, 독일어를 하는 듯 해서 몇가지 물었다. 스위스에는 공식 언어가 4개라는 것을 확인했고, 하지만 인구의 대부분은 독일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가 말하길 자기네 독일어는 독일의 독일어와 다르다고 했다. 자기들은 독일의 독일어를 알아 듣지만, 독일 사람들은 스위스의 독일어를 잘 못 알아 듣는다는 것이다. 스위스 사람들은 독일의 독일어를 학교에서 배운다고 한다. 엄마가 말하길 스위스에는 독일어 방언이 4 종류가 있다고 했는데, 딸이 다시 말하길 학교 선생님이 12개라고 가르쳐 줬다고 했다.

어째든, 오늘은 일찍 일어났다. 호텔 카운터에 있는 직원에게 루터교회가 어딨냐고 물었는데, 지도를 좀 보더니 못 찾았다. 그리고는 기독교지역 (Christian Quarter)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여기 어딜텐데요…” 라는 것이다. 나는 결국 학교의 신학 교수님은 캐씨 교수님이 빌려준 책에서 교회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지도가 상세하지 않아서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갔다.

Empty Road in Old City Jerusalem

예루살렘 구시가지가 텅빈 모습

아침 일찍이어서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같은 거린데 사람이 없으니 다르게 느껴진다. 역시 사람들이야 말로 어떤 장소를 활기차게도 만들고 죽은 듯이도 만드는, 거룩하게도 만들고 더럽게도 만드는, 평화롭게도 만들고 난리통으로도 만드는 주체다.

Sunday Service at Holy Sepulchre

성묘교회의 주일 예배

예수님의 무덤이라고 추정되는 성묘교회에 먼저 갔는데 몇몇 교단이 주일 예배를 진행하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관이 있는 곳에 들어가서 좀 묵상이나 하려고 했는데, 담당 성직자가 문을 탁탁 치길래 빨리 나왔서 보니 몇초 안되는 금새 줄이 확 길어져 버렸다.

Byzantine Cardo

비잔틴 시대의 시장

루터교회에 가니 아직 문이 열려있지 않고 예배가 9시라는 걸 알았는데, 예배까지 약 한 시간이 정도 있었다. 그래서 유대인 구역으로 갔다. 위 사진은 비잔틴 시대의 시장인 곳으로 현재도 시장이다.

Jewish and Learning, the same word

유대인과 배움은 같은 단어

길 맞은 편에는 센터가 있는데 (유대인 구역에는 센터가 매우 많다), 이름이 “유대인의 삶과 배움을 위한 아리에와 에바 할펀 센터”였다. 내가 유대인에 대해서 꽤 좋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배움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유대인으로 산다는 것은 평생 끊임없는 배움과 같은 말로 들릴 정도다.

LUtheran Church of our Redeemer

루터교회

그 후에 루터교회에 갔는데 약 25명 정도가 있었다. 테드와 폴라 교수님이 예루살렘에 1년 살 때 아이들을 데리고 이 교회를 다녔다고 했다. 예배는 뭐 괜찮았다. 장로교회랑 큰 차이는 없는 듯 했다.

Dome of the Rock

황금돔

예배 후에, 나한테 말 거는 사람이 없어서 바로 교회를 빠져나와서 유대인 지역으로 다시 갔는데, 위 사진은 황금 돔이고 그 아래에 통곡의 벽이 보인다.

Ancient Wasabi Bowl?

고대의 와사비 간장 종지?

불탄 집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에 갔다. 이 곳은 카트로스 가문에 속한 유적지로, 제사장 가문으로 여겨진다. 위 사진은 집 터에서 발견된 것으로 일식집에서 주는 와사비 간장 종지와 비슷하게 생겼다.

Burnt House

불탄 집

이 곳에서 여러가지가 발견이 되었는데, 그 중에는 화살촉과 칼에 짤린 젊은 여자의 팔 뼈도 포함되어 있다.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불탄 집에서 한국 아가씨 둘을 만났다. 그 중 한 사람은 신학석사를 하는데, 학교 이름은 잊어 버렸는데, 순복음 교단이라고 한다.

다시 길로 돌아와서, 길에 세워진 지도를 보고 있는데, 팔레스타인 노인이 와서 좋은 거 보여준다고 했다. 괜찮다고 했는데, 한두 세겔만 주면 된다고 했다. 그 때 내가 갖고 있는데 정말 16세겔이 전부여서 보여줬더니 바로 가로채더니, 20불 더 내놓으라고 한다. 사기꾼이구나 짐작을 했고, 실제로도 돈이 하나도 없어서 그게 전부라고 했더니 그냥 가버린다, 돈 갖고. 내 돈 돌려달라고 했더니 갑자기 뛰어 도망가면서 순식간에 눈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후에 ATM가서 돈을 뽑았다. 돈 없을 때 그 인간 만난게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다.

Ritual Bath at Archaeological Museum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의식용 욕조

“헤롯의 구역”이라고 이름지어진 고고학 박물관에 갔다. 불탄 집과 아주 가깝게 있는데, 이 박물관은 2000년 전 유대인 상류층의 집 예닐곱 채가 있던 터를 포함하고 있다.

유대인 고고학의 특이한 점은 정말 정말 의식용 욕조가 많다는 것이다. 어딜 가나 있다. 어떤 집은 서너개씩 있다. 고대 유대인들은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목욕한 했나 싶다.

Hallelujah!

할렐루야!

지하 박물관을 나와 (불탄 집과 고고학 박물관 모두 지하에 있고, 지상은 일반적인 상가 건물이다) 할렐루야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여기는 맥코믹 그룹이 유대인 지역을 방문할 때 와서 먹었던 곳이다. 버거는 정말 컸다!

사실, 예루살렘에서 어디를 가던 거의 기억이 난다. 지난 번에 정말 안 가본 곳이 없는 듯 하다. 지역 가이드 조지 필몬과 가이딩 스타가 예루살렘의 거의 모든 것을 커버한 듯 하다.

Rampart Walk

성벽 길

그 후에 자파 문으로 다시 가서 남쪽을 향해 성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내 계획은 성벽을 따라 걷는 것이었다. 그런데 램파트라는 것이 나타나서 돈을 내고 들어갔다. 아하, 성벽 위로 걷는 것이었다. 정말 좋았다. 경치도 좋고. 왜 가이딩 스타가 이 걸 우리 여행일정에 포함시키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좀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위 사진과는 다르게 길 대부분은 한 쪽이 탁 트여 있고 바닥의 돌은 닳아서 아주 반질반질 매끄럽다. 내가 전혀 뛰지 않고 조심스럽게 걸었다. 나랑 같이 여행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 것이다. 성벽이 아주 높아서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은 못 올라올 것 같다. 이 길은 자파 문에서 똥문까지 지속된다.

Geopolitical location of Jerusalem - Archaeological Park

예루살렘의 지정학적 위치 – 고고학 공원

그 후에는 고고학 공원에 갔다. 똥문 아래쪽에 있는데, 이슬람 제국 때에는 왕궁 터였다고 한다. 여기서 예루살렘의 지리적, 그리고 외교적 위치를 잘 보여주는 그림을 하나 발견했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은 실질적으로 세 대륙을 연결하는 허브와 같았다.

Muslim Cemetary

이슬람교 공동묘지

고고학 공원을 나와서, 길을 따라 계속 걸었고, 성벽 바로 아래에 있는 이슬람교 공동묘지를 통과해 갔다. 꽤 긴 편이었는데, 하람 또는 성전터를 가기 위해 맥코믹 그룹이 갔던 곳인 사자문에 가게 되었다.

Ecce Homo

에체 호모

길을 계속 걸어서 고난의 길에 가게 되었다. 여기는 에체 호모라는 곳으로 본디오 빌라도가 “에체 호모 (이 호모, 아니 이 사람을 보라)”라는 말을 했다고 믿는 곳이다.

이슬람 지역에서 불쾌한 경험을 둘 했다. 지역에 이슬람 지역이기 때문에 이슬람을 믿는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짐작을 하고 있다.

먼저, 세 팔레스타인 청년이 길 가에 앉아 있었는데, 나를 보자 일본에서 왔냐고 물었다. 내가 시카고에서 왔다고 하자 조롱하는 듯한 말투로 “애이 애앰 퍼럼 쉬이 케이 거어어”라고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중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고 외쳐댔다.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계속 걸었다.

두번째, 길을 가는데 팔레스타인 청년이 “친구야, 우리 가게 들어와서 봐봐”라고 해서 부드럽게 “괜찮습니다”고 했더니 내 뒤통수에다가 “중국놈”이라고 소리치고는 원숭이 소리를 흉내내고 있었다. 이번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오늘은 아침에 만난 내 돈 16세겔, 약 5천원을 들고 튄 노인을 포함해서 팔레스타인 사람한테서 불쾌한 경험을 세 번 당했다.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의 관계에 대해서는 할말이 참 많은데, 내 의견으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해외 친구들을 만들기 위해 목숨 걸고 노력을 해야 할 때지,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적으로 돌릴 때가 아니다.

한 번 간단히 계산해 보자. 내가 오늘 두 사람을 만났는데 (아침에 만난 노인은 인종적인 능욕을 한 것이 아니므로 제외하자), 그 둘이 하루에 동양인 열명씩 놀린다고 하자. 그리고 그 중 셋은 공통된다고 하면, 모두 합쳐서 날마다 17명의 동양인이 인종적인 능멸을 당하게 된다. 이를 일년으로 환산하면 6,205명이다.

저 사람들이 남들 놀려서 잠시 재밌을지는 몰라도 해마다 6천명이 넘는 사람들을 팔레스타인 안티로 만들고 있다. 자기들이 이스라엘에서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Sunday, 6 July 2014

두번째 성지여행 – 첫날과 둘쨋날 전반부 – 비행

이번에 두 번째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여행하게 되었는데, 지난 번과 크게 다른 것이 두 가지 있는데, 먼저 지난 번에는 단체여행이었지만 이번에는 개인여행이라는 것, 그리고 지난 번에는 루프트한자를 탔지만 이번에는 스위스 에어를 탄다는 것이다. 그 결과 스위스 에어와 루프트한자의 비교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

Swiss Air

스위스 에어

비교하기 전에 할 말은, 시카고의 오헤어 공항에서 Big Bowl (대접)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비싸고, 맛 별로고, 음식 양도 적게 준다. 다시는 먹고 싶지 않다.

지난 번에 여행을 갔이 갔던 사람들이 루프트한자가 우리들 버릇을 잘못 들여놨다고 농담처럼 이야기를 하는데, 나도 정말 동의한다. 하지만 스위스 에어도 루프트한자처럼 에어버스를 운용하고 있어서 비행기는 동일하게 좋고, 사실 따지자면 스위스 에어가 살짝 더 좋은 면들이 있다.

Hanger Sign

옷걸이 아이콘

루프트한자에서는, 조그만 버튼이 무었인지 파악하는데 애를 먹었다. 결국 옷걸이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스위스 항공에서는 옷걸이 아이콘이 그려져 있고, 옷걸이 자체도 훨씬 크고 좋다. 이게 뭔가 하고 추측하는데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된다.

Hat on hanger

옷걸이에 걸어놓은 모자

위 사진처럼 옷걸이에 모자를 걸어놨다. 문제는, 좁은 비행기 복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자꾸 쳐서 거의 마흔 번 가까이 모자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Hat in the pocket

주머니에 걸쳐놓은 모자

그래서 결국, 모자를 주머니에 걸쳐서 얹어놓기 시작했다. 문제 해결.

스위스 항공의 엔터테인 시스템도 루프트한자와 거의 동급이지만 컨트롤은 훨씬 좋았다. 루프트한자는 터치스크린을 채택했는데, 문제는 그게 잘 안된다는 것이었다. 스위스 항공은 유선 리모콘을 사용하는데 조종이 훨씬 쉬웠다.

Baby Bassinet

아기 바구니

루프트한자에도 똑같이 있지 싶지만, 아직 한 번도 보지는 못했는데, 스위스 항공에서는 벽걸이용 아기 바구니가 있었다. 쮜리히에서 텔 아빕으로 가는 두번째 비행기에서 내 옆에 쌍동이 아기가 있었는데, 정말 귀여웠다. 게다가 놀랍게도 울지도 않고 비행 내내 즐겁게 놀았다!

Enough Legroom

넓은 다리 공간

스위스 항공의 최고 좋은 점은 예매할 때 좌석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비지니스 석보다 더 넓은 다리 공간을 갖고 있는 비상탈출 통로 좌석을 선택했다. 다리를 뻗기에 충분한 공간이 있는 것이 정말 너무 좋았다. 왜 사람들이 돈을 그렇게 많이 주면서 상위급 좌석을 구매하는지 알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돈 내고 일등석 못탈 것 같다.

하지만 비행, 특히 시카고에서 쮜리히 가는 비행이 쾌적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예매할 때 자동 체크인을 선택했는데, 어제 저녁에 스위스 항공에서 자동 체크인 실패했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그래서 공항에 원 계획보다 조금 더 먼저 갔다. 그리고 카운터에서 체크인 하면서 물어봤다:

나: 어제 이러이러한 이메일을 받았는데요, 자동 체크인 실패라는게 뭔가요?
걔: 자동 체크인 실패는 자동 체크인을 실패했다는 의미입니다.
나: 왜요?
걔: 모르죠.
나: 저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요?
걔: 모르죠.
나: 스위스 항공 전산 시스템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요?
걔: 모르죠.
나: 그럼 돌아오는 비행기 예약도 또 그렇게 되는 건가요?
걔: 모르죠.

아 진짜…. 되게 친절하네, 어? 그리고 대화가 이어졌다:

걔: 손님, 좌석 업그레이드가 가능하십니다.
나: 어, 정말요?
걔: 예, 그럼요. 500불만 추가로 내시면 됩니다.

그 인간이 저 두 문장을 한 문장으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탑승구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할 때, 내가 줄 제일 앞에 섰다. 모든 항공사가 아기 있는 식구들이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먼저 들여보내는 건 알고 있다 (일등석 손님들을 먼저 들여보내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그리고 나서는 내 경험상으로는 줄 선 대로 입장을 한다. 그래서 여권과 표를 들고 앞으로 갔더니, “뒤로가 계세요. 저희가 좌석번호를 부릅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정말로 좌석 열 번호를 ’45에서 49까지’와 같이 묶어서 부르는 것이었다. 이 것들이 내 좌석 번호를 가장 마지막에 불렀다. 스위스 항공은 정말 짜증날 정도로 정돈이 잘 되어 있다, 독일 사람들 보다도 더. 정리가 잘 되어있는 게 나쁜 건 아닌데, 난 정말 기분 더러웠다. 하긴 예수님도, 처음된 자가 나중 된다고 하시긴 했지.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다리 펼 자리가 충분한 좌석은 정말 마음에 들지만 주변 사람들이 별로 정상적이지 못했다. 내 바로 옆에는 거대한 아줌마가 내 공간을 수시로 침범하고 있었고, 다른 쪽에는 한 커플이 (중년 아저씨랑 꽤 젊은 아가씨) 비행 내내 뽀뽀하고 주무르고 있었다. 근데 뽀뽀가 워낙 시끄럽고 후루룩 쩝쩝하고 있어서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소리만 들으면 라면 먹는 줄 착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뒤에는 절친 청년 둘이 앉아서 비행 내내 엄청 큰 소리로 계속 떠들고 웃고 있었다. 그리고 뚱뚱한 아줌마 옆쪽으로는 어떤 아저씨가 앉아서 끊임없이 포도주를 마셔댔다. 그러더니 결국에는 자기 몸도 주체하지 못해서 포도주 잔을 엎지르고 난리났다. 하지만 최악은 따로 있었다. 주변에 갓난아기들 또는 한두살 먹은 아기들이 한 예닐곱 정도 산재해 있으면서 모조리 끊임없이 울고 비명지르고 아수라장이었다. 악을 쓰며 우는 아기들이 불쌍하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아기 울음과 악쓰는 소리를 듣는 것도 굉장히 사람 미치게 만드는 일이다. 특히 이게 내 자식이 아니면 더 그렇다. 이런 것들 때문에 도착 현지 시간에 미리 적응하려던 내 계획이 완전 차질을 빚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말하자면, 스위스 에어 승무원이 루프트한자 승무원보다 더 예뻤는데, 별로 웃지 않고 굳은 얼굴이었다. 난 예쁘면서 안웃는 얼굴보다는 안예쁘면서 잘 웃는 얼굴이 훨씬 좋다.

Donation Globe

지구본 모양의 모금함

고통스러운 비행이 끝나고 쮜리히에 처음으로 내렸다. 공항은 꽤 인상적이었다.

Design!

디자인!

스위스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꽤 유명한데, 공항에서 조차도 그걸 느낄 수 있었다.

Even Payphone is cuter!

공중 전화도 귀여워!

쮜리히 공항은 프랑크푸르트 공항보다 훨씬 작으면서 귀여웠다.

Kids' Playground in the airport

쮜리히 공항 놀이터

놀이터는 꽤 인상적이었다. 사진에는 아침 6시라는 이른 시간이어서 한 아이만 있었지만, 나중에 보니 여러 아이들이 있었다.

Charging Station

충전소

공항 여기 저기서 무료 충전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는 사람들이 핸드폰 충전 때문에 고생하는 걸 많이 봤기 때문에 참 인상 깊었다.

Buy Buy Buy our watch!

사! 사란말이야! 우리 시계를 사란 말이야!

스위스는 시계 산업으로 유명한데 (나도 스위스제 시계 하나 차고 있음), 그래서인지 시계 광고가 굉장히 많았다.

Standing Tram

서서가는 공항열차

다른 터미널이 아니라 다른 게이트로 가기 위해 공항내 열차, 즉 트램을 타야 했는데, 트램에 앉을 의지가 없었다. 사실 열차 칸 양쪽 끝에 쬐매만한 거 하나 있었지만…

Sky? Really?

스카이? 정말?

위 사진 보면 트램의 이름이 나오는데 사실 이해를 잘 못하겠다. 트램이 전 구간에서 지하로 운행되는데 (전 구간이라고 해 봤자 딱 두 정거장 뿐이다) 왜 이름을 스카이-메트로라고 졌을까? 뭔가 내가 이해 못하는 농담인건가?

Carmel Smoking Lounge

낙타 흡연소

이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도 본 건데, 쮜리히 공항에서도 동일한 것을 보게 되었다. 혹시 이 브랜드가 유럽 전역에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국제 여행객들은 해외 또는 다른 대륙에 가면 핸드폰이 안터지기 때문에 와이파이가 절실하다. 시카고 오헤어에서는 20분 무료 와이파이가 있어서 랩탑에서 인테넷을 썼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도 와이파이가 있고 (별다른 제약이 있었던 기억은 없다), 이스라엘의 텔 아빕에 있는 벤 구리온 공항에는 무제한 와이파이가 터진다. 그리고 스위스의 쮜리히 공항에서는 60분 무료 와이파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연결할 수가 없다. 적어도 나는 연결이 불가능했다. 인터넷 접속을 완료하려면 개별 코드가 있어야 되는데, 그 코드를 핸드폰 문자로 보내준단다. 문제는 내가 북미에서 유럽으로 대륙을 옮겼더니 핸드폰이 안터져서 문자를 받을 수가 없다는 것. 주변들 둘러보니 수많은 사람들 얼굴 표정이 야호!에서 당혹으로 그리고 결국에는 분노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이런 지랄 같은 경우가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핸드폰이 터지면 왜 와이파이를 그토록 간절히 찾겠어?

오늘 하루만도 꽤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겪으니 수천명은 족히 이 문제를 겪었을 것이라고 짐작이 되었다. 만일 그런 경우라면 뭔가 해결책이 이미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다. 그래서 안내 데스크에 가서 묻기로 했다. 내가 말하는 도중에 와이파이 관련된 것이라는 걸 알자마자 그 놈이 내 말을 도중에 가로채더니, “도와드릴 게 없습니다.”라고 기분 나쁘게 말을 했다.

충격 먹었다. 와, 이 나라 인간들은 심지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것들까지 겁나 친절하네. 엄청 실망했고, 스위스의 이미지가 한 순간에 붕괴되었다. 스위스 항공, 그리고 쮜리히 시와 이 나라가 앞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 순위에 오를 일은 없을 듯 싶다.

저 와이파이는 정말 병신 같은게, 쟤네들 개념이 60분 무료로 주고, 더 필요하면 구매로 유도하는 건데, 일단 무료 연결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구매도 할 수가 없다. 구매하면 코드를 문자 또는 전자우편으로 보내준다는데, 핸드폰이 안터져서 문자도 못 받고, 인터넷 연결이 안되어서 전자우편도 확인을 못하는데? 진짜 멍청한 놈들 같다. 장로교 창시자격인 요한 칼빈이 스위스에서 있었든지 어쨌든지 상관없다. 난 나만의 경험으로 판단할 뿐이니까. 시카고에서부터 시작된 나쁜 경험, 짜증나는 비행, 그리고 열받는 공항까지 모두 날 부정적인 쪽으로 몰고 간다. 비유 하자면 스위스 에어는 에어 캐나다와 같고, 루프트한자는 웨스트젯과 같다. 캐나다 사람들은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잘 알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는 이스라엘 가는 비행기 전용 탑승구가 지정되어 있어서 별도로 보안 검사를 하는데, 매우 엄격하게 했다. 반면에 쮜리하 공항에서는 특별히 할당된 탑승구가 없었다. 사실, 탑승구 배정 자체가 비행 출발 1시간 전에 되었다. 이게 참 병신 같은 짓인게, 어디서 비행기를 탈지 모르니 어디서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쮜리히 공항은 보안 검사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가는 비행기의 탑승구가 배정되자 기관총을 든 경찰 둘이 나와서 지키고 있었다. 이스라엘 가는데 기관총이 보이니 벌써 이스라엘 도착한 기분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는 독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로 표시가 되어 있다. 독일이니 독일어 써 놓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스위스는 공식 언어가 독어, 불어를 포함해 4가지가 되는데, 왜 여기도 독어와 영어로만 표기하는줄 모르겠다. 다섯가지 언어로 표기해야 맞는 거 아닌가?

Sunday, 2 February 2014

이스라엘 여행 열일곱번째 그리고 마지막 날: 귀국

네타냐에 있는 엄청 좋은 시즌스 호텔에는 하룻밤도 채 머물지 못했다. 12시 반에 일어나서 새벽 1시에 먹고, 1시반에 버스를 타고 텔 아비브에 있는 벤 구리온 공항으로 출발했다.

Beginning of annoying and paranoid Israeli security

짜증나고 엄청 편집증적인 이스라엘 보안의 시작

이스라엘 공항 지역에 진입할 때, 최초의 보안 검문을 지났는데, 위 사진에 있는 사람은 기관총을 들고 있다. 이 것은 엄청 짜증나고 편집증적인 이스라엘 보안의 시작일 뿐이었다. 얘네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지들이 뭔 짓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잘 알기 때문이다.

다른 공항의 보안과는 달리 체크인 화물도 보안통과를 하고 모든 것을 다 스캔해야만 했다. 나를 포함한 여러명이 엑스레이 스캔을 한 뒤에 따로 불려가서 모든 짐을 다 풀고 가방을 열어서 가방에 있던 빤쓰까지 일일이 손으로 다 확인하는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검사관이 머드팩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왜 머드팩을 갖고 있는 거지?” – “샀거든.”

“어디서 머드팩을 산거지?” – “쿰란에 있는 선물매장.”

“도대체 왜 머드팩을 산거지?” – “아내 줄라고.”

“미국은 도대체 왜 가려는 거지?” – “아 쫌 거기 살거든!”

엄청 병신같은 질문들. 도대체 왜 이 지랄이야. 내 여권이 미국게 아니어서 검문할 때마다, 그러니까 세 번 영주권 검사를 받았다. 한 번은 내 영주권을 갖고 어디론가 가더니 10분 후에 돌아온 적도 있었다.

검사관이 우리 그룹에 있는 어떤 여자는 가방을 열고는 모든 책과 전단지 등을 펼쳐서 뭐가 써 있는지 일일이 다 읽어봤다.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한 번 가고는 더 안가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이스라엘 정부가 그냥 관광객들에게 절대 돌아오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

Airport Synagogue

공항 회당

공항에 회당이 있는 것이 재밌다. 종교적으로 엄격한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공항에 나오나? 공항에 왜 회당이 필요한 거지? 세속적인 유대인들은 이런 거 신경 안쓰고, 종교적인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공항에 안나올텐데.

BAYER

바이엘

바이엘 제약회사 사인이 크게 보이니 여긴 반드시 독일임을 알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은 굉장히 크다. 등신같이 크다. 공항버스를 한참 타고 난 뒤에도 한 천킬로미터는 걸은 듯 하다. 걷는 건 상관 안하는데, 비행시간이 문제였다. 나는 꽤 빨리 걸었기 때문에 우리 그룹에서 가장 먼저 탑승 게이트에 도착했는데, 이미 사람들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전의 비행기에 있던 승무원도 비행기 환승을 제대로 하려면 빨리 가는 게 좋겠다는 얘기를 할 정도였으니.

Smoking Zone

흡연구역

이게 나에게는 상당히 재밌어 보였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는 흡연 구역이 여럿 있는데, 늘 사람들이 많아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Lufthansa

루프트한자

내 기억이 맞다면, 프랑크푸르트는 루프트한자의 기본 공항이다. 긴 비행 자체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루프트한자 항공사에는 꽤 만족하는 편이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지난 번에 이스라엘에 갈 때와는 달리 시카고로 올 때에는 보안검색이 아예 없었다. 시카고에서는 입국 심사대가 세 종류가 있었는데, 시민용, 영주권자용, 그리고 나머지였다.

긴 비행 후에,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가 아직 착륙하고 있을 때,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 바닥을 막 치고 있을 때에 울 마님 한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5번 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원래 안 오기로 되어있었는데, 일을 하루 쉬었다고.

시카고는 늘 운전해서 왔지 비행기 타고 온 적은 처음이다. 시카고. 집에 온 느낌이 이거구나. 이번 여행동안,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많은 것을 배웠고, 또 많은 것을 깨닳았지만, 그 중 가장 큰 것은 내가 정말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Saturday, 1 February 2014

이스라엘 여행 열여섯번째 날: 갈멜산과 가이사랴

비록 여행에서 하루가 더 남았지만, 다음 날은 공항에 가기 위해 호텔을 새벽 1시반에 출발하기 때문에 오늘이 실질적으로 마지막 날이라고 볼 수 있다.

St. Gabriel Hotel Church at Nazareth

나사렛에 있는 성 가브리엘 호텔 교회

나사렛의 성 가브리엘 호텔을 떠나기 전에 호텔 교회에 가봤다. 크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교회였는데, 한동안 쓰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Elijah on Mount Carmel

갈멜산에 서 있는 엘리야 석상

그 후에 갈멜산에 갔다. 갈멜산은 하나의 봉오리가 아니라 전체 지역을 이르는 말인데 현재 갈멜사람들(Carmelite)라고 불리는 종교인들이 거주하는 가장 높은 봉오리로 갔다. 이 것은 앞뜰에 서 있는 엘리야의 입상이다.

View from the Mount Carmel

갈멜산에서 본 풍경

위 사진은 갈멜산 꼭대기에서 동쪽을 향해 본 풍경으로, 만일 엘리야가 바알의 다른 선지자들과 이 지점에서 경쟁을 벌였다면 (구약학 교수인 테드 히버트 교수님의 추정에 따르면) 위 사진에 보이는 계곡으로 바알의 선지자들을 끌고갔었을 것이다. 굉장히 아름다운 전망을 지니고 있는 산이다. 맑은 날에는 지중해와 나사렛 등 전역을 볼 수 있다고 한다.

Caesarea

가이사랴

그 후에는 유명한 가이사랴로 내려갔다. 가이사랴는 헤롯대왕이 지은 것으로 가이사 또는 카이사르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헤롯은 유대적이지 않은 로마적인 도시를 원했다고 한다.

Theatre

극장

여기는 극장인데, 복원한 극장에서 좌석이 두 단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원래 헤롯이 지은 극장은 삼단으로 되어 있다고 하며, 총 오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비상용 탈출구가 여럿 있다. 바다 장면이 나올 때는 무대의 아래쪽 부분을 물로 채울 수 있었으며, 조그만 배를 띄워서 연출했다고 한다.

Original Seat

원래 좌석

위 사진을 보면, 어떤 것이 헤롯 시대에 지어진 좌석이고 어떤 것이 현대에 와서 복원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Pontius Pilate

본디오 빌라도

가이사랴는 사도 베드로가 고넬료를 방문한 것을 비롯해서 기독교인들에게는 중요한 장소인데 기독교인에게 중요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잊을 수 없는 이름, 바로 본디오 빌라도다. 위 사진에서는 당시 로마 황제 이름인 ‘티베리우스’가 보이고, ‘…티우스 필라투스’가 보이는데 이는 본디오 빌라도의 라틴어 이름의 일부며, ‘프라이펙투스 유다야이’가 보이는데, 이는 유대장관이라는 라틴어다.

Carsarean Harbour

가이사랴의 항구

이 것은 고대 항구의 유적지다.

Hippodrome of Herod

헤롯이 만든 전차 경주장

가이사랴에는 극장 외에도 즐길거리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고대의 포뮬라 원(자동차 레이싱)이라고 할 수 있는 전차 경주장이다. 영화 벤허가 생각나서 매우 인상적인 장소였다.

View from the restaurant

식당에서 보이는 풍경

그 후에 가이사랴에 있는 포트 카페라는 곳에서 점심을 다같이 먹었는데, 위 사진은 식당에서 바라본 광경이다.

Aquaduct to Carsarea

가이사랴에 물을 공급하던 수로

가이사랴는 헤롯이 지었지만 아우구스투스가 건축기술자들을 빌려줬기 때문에 로마식 문화만이 아니라 로마식 기술력으로 세워진 도시다. 로마식이라는 말을 할 때에는 반드시 두가지를 포함하게 된다. 바로 로마식 포장도로와 로마식 수로다. 결과적으로 가이사랴는 수로가 두 개 있었는데, 이는 그 가운데 하나다.

Depth of the Aquaduct

수로의 깊이

이 수로는 갈멜산에 있는 샘물을 시내까지 연결해 주는 것으로 수로의 깊이가 내 허리까지 닿으며, 물이 상시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양의 물을 도시에 공급하고 있었다.

Beach boy

비치 보이

지중해 바다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는데, 해변을 나올 때 아스팔트에서 유리를 밟아 발가락을 베었다.

Seasons Hotel Lobby

시즌스 호텔 로비

그 후에는 네타냐에 있는 시즌스라는 호텔로 갔는데, 엄청 좋은 호텔이었다. 나사렛에 있는 엄청 후진 호텔에 오래 머물었는데, 이 좋은 호텔에는 하룻밤도 제대로 머물지 못하다니!

View from the room

호텔방에서 바라본 풍경

위 사진은 호텔방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지중해변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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