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Monday, 1 September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쉰 일곱번째 날 – 마지막 날

마지막 날엔 수업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늘 마지막 날인 목요일에 수업이 있다고 했는데 어제 언어센터 비서가 와서는 마지막 날엔 수업이 없다고 얘기했다. 대신에 조촐한 종료식이 있었다.

종료식이 11시여서 집을 10시반에 나섰다.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고 해서 타고 갔는데, 집에서 학교까지 20세겔이었다. 여기 베들레헴 온 첫날 택시에서 25세겔 안 준다고 고함지르고 길 한 복판에 떨궈줬던 그 택시를 기억하는가? 그 때는 베들레헴 대학교에서 시라지 센터까지 가는 거였고, 오늘은 집에서 베들레헴 대학교까지 가는 거였는데, 오늘 가는 거리가 그 전보다 4분의 3 더 멀다. 그런데도 20세겔만 받았다.

Classmates.  Lina from Germany, me, Cletos from Ghana, Mateo from Italy.  Anna from Switcherland is not here

우리 반 친구들. 독일에서 온 리나, 나, 가나에서 온 클리토스, 이탈리아에서 온 마테오. 스위스에서 온 안나는 오늘 없다

종료식은 간단했고, 수료증을 받았다. 스위스에서 온 안나는 항공사가 비행편을 마음대로 하루 앞당기는 바람에 공항에 가야 해서 오늘 못 나왔다. 그리고 아랍어 회화 초급과정 선생님도 안나왔다. 안나는 스위스 아가씨지만 독일에서 일하고 있으며, 매우 좋은 사람임에는 분명하지만 본인의 의식과 주장이 매우 강하고 주변 사람들이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 한 번은 이번 전쟁에 대해 다 같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안나가 가자의 사망자 수를 얘기하면서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악마로 묘사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은 부인하지 않지만 하마스도 공격을 했지만 단지 성공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안나가 양측의 사망자 수를 대며 어떻게 이 둘이 똑같냐며 흥분했다. 이스라엘이 좋은 방어 기술이 있고, 그 기술을 써서 자국민을 보호한 것이지 하마스가 선하고 착해서 공격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 내면은 둘이 모두 똑같이 서로를 죽이고자 했다고 말하자 굉장히 화를 냈다. 왜 많은 사람들이 특히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은 좋고 이스라엘은 악마라고 생각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이런 얘기 하지 몇일 전에 우리 반에서 (나와 안나를 포함해서) 항공사와 비행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내가 스위스 항공을 탄다고 하자 안나는 매우 기뻐했는데, 그 후에 루프트한자가 조금 더 낫다고 하자 굉장히 언짢아 했다. 그리고 어제, 다시 다 같이 동일한 얘기를 하게 되었을 때, 내가 스위스 항공이 세계 최고의 항공사 중 하나라고 하자 안나가 약간은 화나고 흥분한 조금 큰 목소리로 “스위스 항공은 최고의 항공사 중 하나가 아니라, 세계 유.일.의. 최.고. 항.공.사.야! 내가 스위스 사람이라서 그러는게 아니고 그건 단지 사실일 뿐이야”라고 말을 했다. 증거를 대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OK라고 말하고는 대화를 피해버렸다.

Gemma from Spain

스페인 아가씨 헴마

종료식이 끝나고 일부 학생은 최후의 점심을 같이 먹으러 갔다. 오늘 공항에 가는 사람이 나까지 셋 있었는데, 영국에서 온 중년 아저씨인 에드워드 폭스는 나랑 같이 갈지 말지 망설였다. 일리노이주 시골에서 온 조이라는 아가씨는 나랑 같이 가길 원해서 나보고 버스 정류장에서 1시간 만 기다려 달라고 얘기를 했다. 이 아가씨는 굉장히 곱게 자라서 대학생인 지금도 아빠가 뭐든지 다 해줘서 혼자서는 비행기 표 끊는 방법도 모르고, 아무 것도 혼자서 할 줄 모른다. 어째든 나는 한시간이 아니라 두 시간을 기다렸다.

버스 정류장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 택시 기사들이 나한테 와서 택시 타라고 호객했는데, 친구를 기다리고 있고 버스 타고 갈 거라고 얘기를 했다. 내가 아랍어를 어설프게라도 하는 게 신기해서 사람들이 내 주변에 몰려들었다. 둘러쌓여서 두 시간을 얘기했다. 기독교인과 무슬림은 같은 아랍어라도 인삿말부터 다르다는 걸 알았다. 나랑 얘기한 사람들 중 일부는 아내가 여럿 있었다(최대 4명까지라고 한다). 나중에 사람들이 반 장난으로, 반 진심으로 내 주변에서 마치 대사관 앞에서 시위 하듯이 “좃같은 미국”을 외쳐댔다. 사람들이 그러길 자기들 (팔레스타인 사람들) 중에는 미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고 이스라엘보다 미국을 더 싫어한다고 했다. 후에 한 아저씨는 충고하듯이 미국에서 왔다고 하지 말고 그냥 한국 사람이라고만 말하라고 하면서, 여기서 미국인이라고 말하는 건 별로 현명한 건 아니라고 얘기해 줬다.

두 시간을 기다리자 드디어 조이가 버스 정류장에 나타났는데, 그 때 에드워드도 나타났다. 그래서 셋이서 같이 공항에 가게 되었다. 버스는 예루살렘에 사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인 베들레헴 대학교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검문소에서 사람들이 모두 내려서 허가증이나 여권을 검사 받았다. 늘 군인들이 버스에 타서 검사를 했지, 승객들이 모조리 버스에서 내리긴 처음이었다. 결국, 내 자리를 뺏겼다.

에드워드의 비행기는 9시, 조이는 11시, 그리고 나는 다음 날 아침 5시였다. 예루살렘에서 공항에 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공요택시라고도 하는 셔룻을 타는 것과 공공교통을 이용하는 것이다. 가장 빠르고 좋은 것은 셔룻이다.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설명해 줬는데, 왠지 모르겠지만 에드워드가 공공교통을 이용하겠다고 고집을 했다. 에드워드의 비행이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본인이 그런다는 걸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마스커스 문에서 경전철을 타고 예루살렘 중앙 버스 정류장까지 갔고, 거기서 약 1시간 조금 넘게 기다려서 하이파 가는 버스를 타서 공항시에서 내렸다. 거기서 원래 무료 셔틀 버스를 타거나 일반 버스를 타고 공항 터미널까지 가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택시를 타고 터미널까지 갔다. 약 8시 경에 터미널에 도착했고 아저씨는 막 뛰어 갔다. 비행 3시간 전부터 보안 심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이는 곧바로 보안 심사대에 갔다. 나중에 에드워드 아저씨를 다시 만났는데, 비행기를 놓쳤단다. 셔룻 탔으면 45분만에 공항에 도착할 수 있는데, 공공교통을 이용해서 3시간 걸려서 공항에 왔기 때문이다.

Ilaria from Italy

이탈리아 아가씨 일라리아

이번 여행의 몇 가지 이야기들.

베들레헴에서 내가 묵은 집은 현대 투싼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온 중고차 같다. 사용자 설명서도 한국어로 되어 있고, 차에서 음성 안내라던가 전부 한국어로 나오고, 네비에서도 한국어로 말하고, 한글로 나온다. 그래서 블루투스, 음악, 비디오, 네비 등 차의 좋은 기능들은 하나도 못 쓰고 그냥 운전만 한다. 한국어로 고통받는다고 말 하더라.

그 집은 딸 하나, 아들 둘 있는데, 나는 딸 방에서 지냈다. 그리고 밤마다 딸은 거실 쇼파에서 잤다 (딸은 대학을 졸업했다). 그걸 보는 게 좀 불편했다. 그거 빼고는 매우 좋았다. 아주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다.

팔레스타인에서는 (그리고 아랍세계도 마찬가지겠지만) 엄마가 뭐든지 다 한다. 남편과 아이들은 절대 가사일을 할 수 없다. 한 번은 내가 빨래를 하기 위해서 딸에게 세탁기가 어딨냐고 물어보자 자기 집에 그런게 있냐고 내게 되물었다. 그리고 5분 후에 딸 방 앞에 세탁기가 있는 걸 봤다. 또한 식구들은 엄마를 위해 빨래를 한 곳에 모아두지도 않는다. 엄마가 온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여기 저기 널부러져 있는 빨래를 모아서 빤다. 다른 아줌마에게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남자가 집안일의 절반 또는 그 이상을 한다고 하자 굉장히 충격 먹는 모습이었다. 그 아줌마가 말하길 여기서는 여자가 가정일에 불평만 해도 사악한 아내, 사악한 여자로 취급받는다고 한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서로 죽이는 다른 중동지역과 달리 사람들이 평화롭게 산다. 베들레헴에서는 심지어는 기독교인과 무슬림들도 큰 마찰 없이 산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게 가능한 이유는 더 큰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스라엘.

위에도 섰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미국을 싫어한다. 그럼 이스라엘은 어떨까? 내가 시카고에서 왔다고 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바마 무지 싫어하는 거 알아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바마 겁나 싫어해요”라는 말을 이스라엘에서 여러번 들었다. 미국은 정말 호구다. 돈과 노력을 양쪽에 엄청 쏟아 부으면서 욕은 욕 대로 먹고 모두에게 미움받고.

헤브론에 같이 갈 때, 자칭 투어 가이드라는 인간이 하마스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 말이 논리가 하나도 없어서 나는 전혀 듣지 않고 있었는데, 독일에서 온 리나는 니 말에 100% 다 동의하는 건 아니라고 얘기를 했다. 그러자 그 인간이 리나에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리나는 무지 놀라서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가짜 투어 가이드의 그런 태도는 친구를 만드는 데 별로 도움이 안될 듯 하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친구가 절실히 필요하고.

어제, 학교 뜰에 앉아 있는데, 베들레헴 대학교 한 교수님이 오더니 내가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다.  한국 사람이지만 시카고에서 왔다고 하자, 해마다 한국에서 교환학생 둘이 오는데, 내가 그 학생인줄 알았다고 했다.  몇가지 얘기를 하다가, 교수님이 팔레스타인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지 않았냐고 해서 아니라고 했더니, 내 옆에 앉아있던 두 아가씨를 가리키며 “팔레스타인 아가씨들 예쁘지 않아요?”라고 묻는다.  그래서 결혼했다고 얘기를 했다.  이 곳에서 세 번째 중매 제의를 받았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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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nesday, 27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쉰 여섯번째 날 – 가짜들

The famous Stars & Bucks in Bethlehem

그 유명한 베들레헴의 스타 & 벅스

위 사진은 베들레헴의 가짜 스타벅스다. 맥코믹 그룹이 지난 1월에 여행할 때, 베들레헴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성탄교회로 걸어갈 때 길에서 봤던 것이다. 간판의 색과 글꼴은 스타벅스와 동일하지만 일단 이름이 살짝 다르고 (스타 & 벅스) 로고가 다르기 때문에 진짜 스타벅스가 아니고 관심끌려고 하는 것인 줄 쉽게 알게 된다.

F.R.I.E.N.D.S in Bethlehem

베들레헴의 F.R.I.E.N.D.S

위 가게는 베들레헴 대학교 옆에 있는 걸로 위 간판이 어디서 따온 것인지 누구나 다 알 것이다. 위 장소는 여러 기능을 가진 곳인데, 인터넷 연결된 컴퓨터가 있고, 인쇄기와 복사기도 구비되어 있다. 그리고 당구대가 여럿 있어서 학생들이 돈 내고 즐길 수 있다.

Toast-R-Us in Bethlehem

베들레헴의 토스트-알-어스

위 사진은 어떤가? 한국에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에는 토이즈-알-어스 (Toys-R-Us) 하고 베이비즈-알-어스 (Babies-R-Us)라는 유명한 체인점들이 있다. R은 좌우가 뒤집혀 쓰여 있고, 영어로는 “장난감은 우리들이에요,” “아가들은 우리들이에요”와 같은 소리로 들린다. 위 사진에서 잘못된 것이라곤 토스트를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썼다는 것 정도. 이 것도 애교 정도로 봐줄 수 있다.

베들레헴에는 이런 패러디가 엄청 많이 있다. 다 관광객들 관심 끌고 웃게 만들려는 목적이지만. 이렇게 하면 관광지에서 마케팅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Starbucks in Bethlehem. Really?

베들레헴의 스타벅스. 진짠가?

성탄교회 옆의 구시장에서 위 사진에 있는 스타벅스를 발견했다. 성탄교회로 가는 길목에 있는 다른 가짜 스타벅스가 “스타 & 벅스”인 것과 달리 여기는 상호명 철자도 완전 똑같고, 로고도 동일하다. 이게 진짜 스타벅스의 체인점인지 궁금해졌다.

Starbucks mug sales in Bethlehem

스타벅스 머그컵도 팔아

여기선 스타벅스 머그컵도 판다. 여기 일하는 사람에게 이게 진짜 시애틀 스타벅스의 프랜차이즈인지 물어봤는데, 이 총각이 프랜차이즈란 말을 못 알아 듣는다. 그래서 좀 더 쉬운 영어로 약 1분 가량을 설명했더니, 미국 스타벅스의 진짜 체인점이 아니란다. 이렇게 동일한 이름과 로고를 사용해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는 저작권을 옆집 개 이름마냥 취급하는 곳이니 괜찮겠지. 여기 사람들에게 내가 음악(CD)을 돈 주고 산다고 했더니 이해를 못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다들 음악과 영화 같은 걸을 돈 주고 구입한다고 했더니 미국 사람들은 전부 멍청한 병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다운로드 받으면 되는데 왜 돈주고 사는 병신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KFC Bethlehem. Hmm...

베들레헴의 KFC 글쎄…

위 KFC 간판은 지난 1월에 버스 세웠던 버스 정류장 건물에 있는 것이다. 위 KFC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근데 위 KFC가 정말인지 아닌지 이젠 나도 모르겠다.

Two licence plates coexist in Palestine

두 나라의 번호판이 공존하는 팔레스타인

테드 히버트 교수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번호판이 있는 차가 팔레스타인 지역에 주차하면 돌을 던지기 때문에 이스라엘 번호판이 있는 차 주인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주차할 때 번호판을 떼어서 갖고 다닌다고 했다. 교수님이 아내와 함께 이스라엘에 살았던 때가 약 2-30년 전인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역이나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번호판이 달린 차를 엄청 많이 본다. 사실 서안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가능하면 이스라엘 번호판을 얻길 원하고 또 노력한다. 왜냐면 이스라엘 번호판이 있으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이제는 이스라엘 번호판이 달렸어도 팔레스타인 지역에 있는 차량은 모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다 자기 친구, 이웃, 식구들인 셈이니 더 이상 돌을 던지지 않는다.

Wednesday, 20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마흔 아홉번째 날 – 선생과 싸움, 그리고 헤브론

우리 반 아랍어 선생님은 마르와 바누라인데 지난 달에 결혼한 젊은 아줌마다. 물론 좋은 사람이라고 확신을 하지만 교육 방법에는 문제가 좀 있다. 날마다 꽤 많은 단어를 우리에게 내 주고는 모든 걸 다 외울 거라고 기대를 한다. 우리 교실에서 아무도 이걸 다 외우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늘 우리에게 화를 낸다. 그리고 우리가 참 바보같다고 스스로 느끼게 늘 한다. 늘 말하길 이렇게 쉬운 걸 왜 못하니라고 한다. 그래, 너한텐 쉽겠지. 하지만 우리한텐 안쉽거든.

우리 교실에는 다섯 학생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온 마테오, 스위스에서 온 안나, 독일에서 온 리나, 아프리카의 가나에서 온 클리토스 (클리토리스라고 부른다), 그리고 나. 다른 학생들도 모두 내게 몇번 말하길 자신이 너무 멍청이 같단다. 그런데 오늘은 선생에게 뭔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기분이 안좋아 보였다. 그리고 우리가 아랍어를 본인 기대만큼 하질 못하자 목소리가 점점 올라가더니 나중에는 우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3주동안 참아왔는데,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선생에게 맞받아 쳤다. 선생이 점점 감정적이 되더니 마치 자신이 여왕이고 내가 하인인 양 내게 명령을 했다. 결국에 나는 교실을 나와버렸다.

팔레스타인의 문화와 교육 방식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단 난 팔레스타인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를 마치 애들처럼 취급해선 안된다.

선생이 먼저 학장에게 얘기를 했고, 나중에 학장이 나한테 찾아와서 얘기를 했다. 선생이 학장에게 나에 대해 불평한 것 중 하나는 내가 질문을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다. 이 얘길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학생은 원래 질문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도대체 여긴 뭐가 어떻게 된거지? 학생이 따라오질 못하면, 특히 모든 학생이 전부 따라오지 못하면 선생은 자신의 교수 방법을 바꾸고 학생이 습득할 때까지 반복해야지, 학생들에게 멍청하다고 소리 지를 게 아니라.

그리고 자기 주차 딱지 끊었기 떄문에 법정에 가야 한다면서 수업을 이틀이나 선생이 빼먹었다. 4주 동안에 이틀이면 굉장히 많은 거다. 선생, 특히 이런 학원 선생은 학생 위에 군림하는 여왕이나 통치자가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일 뿐이다. 이 선생은 전혀 프로페셔널하지 못하고 완전 아마추어같다.

Jewish Settlement

유대인 정착촌

어째든, 학생 여섯이 방과후에 헤브론에 갔다. 이를 주도한 학생이 말하길 자기 친구가 공식 투어 가이드는 아니지만 훨씬 낫고, 헤브론 무덤만이 아니라 시장이니 여기 저기 갈 거고 팔레스타인의 실상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나도 꼈다. 위 사진은 헤브론 구시장 위의 유대인 정착촌이다.

Protecting Net

보호망

구시장의 일부 길은 위에 보호망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설치해 놨는데, 위에 있는 유대인 정착민들이 쓰레기를 엄청나게 쏟아 붓고 심지어는 돌맹이도 던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맥코믹 그룹이 경험했듯이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민들은 대부분 매우 종교적은데, 이런 종교적인 사람들이 비종교적인 사람보다 훨씬 악랄하다. 여학우 마라가 이곳 헤브론에서 크게 당하는 걸 봤지 않는가.

Market Checkpoint

시장 검문소

오늘은 헤브론에서 검문소를 세 군데 지났다. 하나는 구시장에서 나갈 때로 위 사진이다. 그리고 무덤의 유대인 쪽에 입장할 때와 무슬림 쪽에 입장할 때 검문소를 통과했다. 그런데 상당히 이상했던 게, 군인들이 꽤 친절했다. 우리한테 계속 웃어주고, 아주 나긋나긋 대해줬다. 아니,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고 좋았다. 누군가 그러기를 유대인들도 여러 인종이 있고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인종차별이 심하다고 한다. 또 말하기를 유럽계 (백인) 유대인은 이곳 헤브론에 군 배치를 잘 안받는다고 한다. 이곳 헤브론은 꽤 위험한 곳이기 때문이다. 글쎄, 그 말이 100%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오늘 둘러본 바에 의하면 사실인 듯 보였다.

우리는 유대인 회당 쪽에 먼저 들어갔다. 내가 거의 무슨 투어 가이드같이 하게 되었는데, 비공식인 우리 팔레스타인 투어 가이드는 유대인 회당에 입장이 금지되어 있고 또 내가 히브리어를 읽을 줄 알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 무슬림 쪽 검문소를 통과하고 나니 무슬림 기도 시간이 되어서 한시간 동안 입장이 금지되었다. 그래서 무슬림 쪽 입장은 포기했다. 가짜 투어 가이드가 말하길 “유대인 쪽 봤잖아요. 거기랑 똑같이 생겼어요” 라고 했다. 사실 많이 다르게 생겼다. 마음 같아서는 그놈에게 “너 유대인 쪽 한 번도 못 들어가 봤는데 같은지 다른지 어떻게 알아?”라고 묻고 싶었다. 자칭 투어 가이드는 말 그대로 아무 것도 한게 없었고, 사실 내가 했다.

Hirbawi Textile Factory

힐바위 면직 공장

그 후에 힐바위 면직 공장에 갔다. 기계가 완전 낡아서 무슨 산업혁명 보는 줄 알았다. 두 여학우가 목도리 같은 면직을 좀 사려고 했는데, 판매원이 가격을 굉장히 높게 불렀고, 태도가 굉장히 무례한데다 협상할 의지도 없어 보였다. 여학우들은 사지 않았는데, 가격보다는 그놈들 태도 때문이었다.

Another Glass Factory

또다른 유리 공장

그 후에는 유리 공장에 갔는데, 맥코믹 그룹이 방문했던 곳이 아니었다. 훨씬 작은 곳이었지만, 뭐 유리 만드는 건 다 똑같다.

돌아갈 때, 투어 가이드가 공장 두 곳을 들렀으니 돈을 더 내란다. 30세겔 이었는데, 1인당 치면 5세겔이어서 그냥 냈다. 정식 투어 회사는 집에까지 태워다 주는게 이놈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냥 우리를 베들레헴 대학교에 내려다 줬다. 결국 나는 마찬가지로 50분을 걸어야 했다. 그냥 정식 투어 서비스를 이용하는게 훨씬 안전하고 낫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오늘은 완전 시간과 돈 낭비였다. 게다가 오늘은 이번 여행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한 날이 되길 빈다) 아주 지랄같은 날이었다.

Tuesday, 19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마흔 여덟번째 날 – 베들레헴 대학교 학생 계정

내가 시카고에 있을 때 받은 아랍어 코스 안내문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이었다: 1. 수업료는 반드시 첫날 현금으로만 납부할 것. 2. 학생증은 첫날 만들어 줌.

Bethlehem University Student ID Card

베들레헴 대학교 학생증

나는 그래서 첫날 현금으로 수업료를 냈다. 그런데, 학생증은 첫날이 아니라 2주차 마지막 날에 받았다 (총 4주 코스다).

Instruction about Student Account

학생 계정에 대한 안내

학생증을 받으면서 종이 한 장을 받았다. 베들레헴 대학교의 학생 계정에 대한 안내였다. 아랍어로 쓰여 있어서 읽을 수는 없지만 학교 전자우편과 계정에 대한 내용이라고 짐작을 했다. 나중에 주인집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내 추측이 맞았다.

베들레헴 대학교는 모든 학생에게 10메가의 온라인 공간을 준다. 제대로 읽었다. 기가가 아니라 10메가다. 혹시 우리 맥코믹 신학교는 얼마나 온라인 공간을 주는지 확인을 해 봤더니 30기가였다. 1기가가 1024메가니까 30기가면 3만 720메가다. 그러니까 맥코믹은 베들레헴 대학교보다 3천 72배나 더 많은 온라인 공간을 주는 것이다. 학교의 전산실 직원인 제이크에 따르면 맥코믹 학생은 졸업 후에도 계정이 유지되다고 한다. 언제까지? 평생이라고 한다.  맥코믹 짱.

Tuesday, 5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서른 두번째 날 – 첫 수업

선시티 호텔을 새벽 5시 10분에 떠나서 텔 아비브의 중앙 버스 터미널로 갔다. 거기서 예루살렘에 가는 5시 50분발 버스를 탔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는 경전철을 타고 다마스커스 성문에 갔다. 이번에도 어떤 유대인 청년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상당히 친절하고 도움을 많이 주는 청년이었는데, 버스카드를 사면 훨씬 싸게 예루살렘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등의 생활의 팁도 많이 가르쳐주려고 애를 썼다.

이번 여름에 두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히브리 대학교고 다른 하나는 팔레스타인의 베들레헴 대학교다. 두 학교 모두 어떻게 오는지에 대한 안내를 해 줬다. 히브리 대학교에서는 지도를 첨부한 이메일을 보내줬는데, 지도에는 만나는 장소, 버스를 타는 장소 등을 정확히 표시해 줬다. 베들레헴 대학교에서 온 이메을은 그냥 텍스트가 전부였고, 자세하다기 보다는 “예루살렘에서 아랍버스 21번을 타서 베들레헴에 옵니다. 버스에 내려서 학교까지 걸어오거나 원하면 택시를 탑니다”가 전부였다. 문제는 아랍 버스를 예루살렘의 어디서 타는지 내가 모른다는 것이었다. 구글에서 검색해 보아도, 사람들에게 물어도 모르는 것이었다. 이 버스 정류장 찾는데만 3주가 넘게 걸렸다. 그리고 베들레헴에 도착해서도 사람들에게 물어도 심지어 경찰관에게 물어도 배들레헴 대학교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이었다.

어째든, 다마스커스 문에서 21번 아랍 버스를 탔다. 버스에는 나 밖에 없었다.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에 오는 버스는 마치 콩나물 시루처럼 사람들이 빽빽하더만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 가는 버스는 완전 비었다.

Bethlehem University

베들레헴 대학교

택시를 타고 베들레헴 대학교에 직접 갔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아랍어 발음과 기초적인 것 몇 가지를 배웠다. 맥코믹 그룹은 위 사진을 보면 어딘지 기억이 날 것이다.

히브리 대학교와 베들레헴 대학교의 차이점이 하나 더 있는데, 돈에 관한 것이다. 히브리 대학교는 꽤 유연성이 있다. 미국 달러로 내던, 유로로 내던, 이스라엘 세겔로 내던 상관없다고 하고, 현금으로 내도 신용카드로 내도, 개인 수표로 내도 된단다. 그리고 아무때나 내가 내키는 때에 내면 된다고 한다. 반면에 베들레헴 대학교는 이메일을 예닐곱번 보내서 신신당부한 것이 있는데, 반.드.시. 수업 첫날에 전액 납부해야 하고, 무조던 미국 달러여야만 하고, 반드시 현금으로 내야 한다. 신용카드 사절이란다.

My room for one month

한달간 머물 내 방

수업이 끝난 뒤에 영국에서 온 아저씨를 만났는데, 내 홈스테이랑 같은 마을인 벳자훌에 머문다고 했다. 우리 모두 시라지 센터에 가야 해서 함께 택시를 탔다. 학교 선생님이랑 직원이 시라지 센터까지는 15세겔이 적당하고, 20세겔 이상은 절대 주지 말라고 했다. 택시 탈때 말을 했는데, 운전수가 가만히 있더니, 조금 가서는 갑자기 50세겔을 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둘이 탔으니 두배를 내라는 것이었다. 가격에 대해 옥신각신했고, 택시 운전수가 고함치고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20세겔 이상은 줄 수 없다고 버텼다. 그랬더니 길 한복판에 우리를 내리게 했다. 사실 나와 영국 아저씨는 시라지 센터에 온 줄 알았다. 그리고나서 뻔뻔하게도 운전수가 5세겔 더 달라고 또 그러는 것이었다. 물론 주지 않았다. 알고보니 도착한게 아니었다. 시라지 센터까지 약 10분 걸어갔다. 팔레스타인 사람과 겪은 또 다른 나쁜 경험이다. 왜 자꾸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나쁜 경험을 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시라지 센터가 홈스테이 주인에게 전화를 해서 날 데리러 왔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으로 매우 친절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위 사진은 내가 한달간 머물 방이다.

Monday, 27 January 2014

이스라엘 여행 열뻔째 날: 성탄교회와 난민 수용소

오늘은 강의로 점철된 날이었다.

Stars and Bucks

스타 앤 벅스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서 성탄교회로 걸어가다가 스타벅스를 발견했는데, 스타벅스가 아니었다.

Christmas Tree

크리스마스 트리

베들레헴 평화 센터 앞 또는 성탄 교회 사이에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서 있었다. 밤에는 불이 켜지는지 궁금했다. 전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을 다 볼 수 있었다. 내가 인식할 수 있는 언어만 해도 중국어, 한국어, 영어, 불어, 스페인어가 있었고, 인식하지 못하는 언어들도 많이 있었다. 예수님은 여기서 태어나신 것만으로 얼마나 많이 지역경제에 이바지하시는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Church of Nativity

성탄교회

여기가 성탄교회로 콘스탄틴 대제(개인적으로 대제라는 표현을 싫어함)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최초로 지은 교회다. 헬레나가 이 교회를 짓고 나서 한참 후에 페르시아 제국이 쳐들어 왔는데, 교회란 교회는 모조리 때려부쉈다고 한다. 그런데 페르시아 군대가 이 교회에 와서 때려 부수려고 할 때,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님께 예물을 바치는 그림을 봤는데, 동방박사의 옷차림이 완전 페르시아 복장이었기 때문에, “어라, 여기는 우리 조상과 연관이 있는 건물인가 보다’ 생각을 하고 이 교회 하나만 남겨뒀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화적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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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 셋을 비교해 보면, 원래는 거대한 문이 있는 걸 첫번째 사진에서 알 수 있는데, 그 다음인 중간 사진에서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마차가 다닐 정도의 크기며, 마지막 사진에서는 좁고 낮아져서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다닐 수 없게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아기 예수님 앞에서 겸손하라는 의미로 그렇게 했다고 한다.

Church of Nativity Catholic Sanctuary

성탄교회의 천주교쪽 예배당

원래 헬레나에 의해 지어진 교회는 십자군에 의해 수리되었고 현재는 그리스 정교회 소유로, 그 옆에는 천주교회가 붙어 있다.

Jerome translated here the Bible into Latin Vulgate with the help of Paula and her daughter

이 곳에서 제롬이 파울라와 그녀의 딸의 도움을 받아서 성경을 라틴 불가탄으로 번역했다

천주교회도 당연히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지만 목적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제롬이다. 천주교회에서 지하로 내려가면 제롬이 머물고 작업했던 곳을 볼 수 있다. 사진을 보면, 왼쪽의 둘이 파울라와 그녀의 딸로 제롬을 물심양면 도와줬다. 제롬은 천주교 교부중에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기 위해 히브리어를 직접 배운 유일한 사람이다. 그런 제롬을 돕기 위해 파울라와 딸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배웠는데, 결국에서 제롬보다 훨씬 유창해졌다고 한다.

Key to Home

집으로 가는 열쇠

여기는 난민 수용소 가운데 한 곳으로 꼭대기에 있는 열쇠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상징한다.

Graffiti on Separation Wall

분리 장벽에 있는 그라피티

장벽에는 많은 그라피티가 있었고, 거리는 쓰레기가 넘쳐서 더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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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에는 다른 그라피티와 함께 요한복음 3장 16절이 한글로 그려져 있었는데, 나의 머리를 번개가 내리치듯 때렸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그처럼 사랑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여기서 고통받는 난민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이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는데….

Lajee Centre

라지 센터

난민에는 라지 센터라는 곳이 있었다. 정확히 라지 센터가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동 도서관이 있었고 (사진에 우리가 앉아있는 곳), 전산실을 비롯한 몇몇 시설이 있었다.

American History

미국사

놀랍게도, 도서관에는 미국사 전질이 있었다.

Blocking Entanglement

분리 철조망

수용소는 분리장벽으로 둘려쌓여 있었다. 분리장벽 밖에는 예전에 농지로 쓰였던 곳이 있고, 그들의 직장이었던 곳이 있었다. 난민의 대부분은 일자리를 빼앗겼다. 예루살렘까지 예전에는 10분에서 15분 가량 걸렸지만 이제는 이스라엘 검문소 덕분에 2시간 이상이 걸린다.

Bethlehem University

베들레헴 대학교

그 후에 베들레헴 대학교에 갔는데, 건물들이 아름다웠다.

Dr. Mazin Qumsiyeh

마진 쿰시예 박사

마진 쿰시예 박사는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말해줬다. 흥미롭게도 그는 생물학 박사며 교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제대로 움직여준다면 이스라엘의 불법 점거를 2주 안에 끝낼 수 있다고 한다.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왜냐면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에 하루에 2백만불씩 갖다 바치고 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점은 미국 정치인들은 유대인 로비스트가 주는 떡값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만일 오바마가 전화해서 이스라엘을 정지시키려 한다면 그 다음날, 그는 더이상 대통령이 아닐 수도 있다.

Lawyer Raffoul Rofa

라풀 로파 변호사

예전에 양치기 언덕에 갈때 식사를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 베들레헴 대학교로 돌아와서 라풀 로파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변호사는 천주교 인권 센터인 성 아이브에서 일하는데, 변호사 8명을 포함해서 총직원이 20명이라고 한다. 주로 이산가족 재결합과 주택 철거등을 비롯한 문제들을 법률적 차원에서 다룬다고 한다. 건물 철거에 대해서는 15년 동안 수천건을 법원에서 싸웠지만 단 한 건만 허가를 받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한 건도 그들이 잘 싸워서 받아낸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해외 보조를 받아서 지어진 학교 건물이었는데, 학교측에서 미국의 당국에게 연락을 했고 (당신들이 지어준 학교를 이스라엘이 부수려 한다고), 미국에서 이스라엘에 연락을 하자 곧바로 건축허가가 나왔다고 한다.

Rimon Kando Shop

리몬 칸도 기념품 가게

그 다음에는 기념품 가게에서 쇼핑을 할 시간이 있었는데, 매우 유명한 가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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