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Monday, 28 November 2016

A preacher refused to step down

Today a very interesting news came to my facebook feed.  Check it: New York Preacher Pregnant Out of Wedlock Says She Won’t Step Down From Pulpit.

오늘 내 페북 피드에 흥미로운 기사가 올라왔는데, 한번 확인해 보라: 뉴욕 목사가 혼외임신했는데 계속 목사일을하겠다고 함. (영어)

Some of my facebook friends say that the Mother Mary was also pregnant out of wedlock.  Some quote Jesus that whoever without sin stone her.

페북 친구들 중 몇은 성모 마리아도 혼외 임신을 했다고도 하고, 또 몇은 죄 없는 자가 이 여자를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기도 했다.

I cannot require her to do anything, but I guess I can express what I think as a person preparing to be a preacher.  I have three different issues on this.  But this is not about her, because I don’t want to be a back seat driver for her life.  I want to talk in general.

내가 그 목사에게 일해라 절해라 할 수는 없지만 목사 준비생으로 내 느낌을 얘기할 순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적 느낌이다.  세 가지 얘기를 하겠다.  다만 내 글은 해당 목사에 대한 얘기는 아니다.  나는 그분의 인생에 왈가왈부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다만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First, there are many male preachers having sex out of wedlock, and some even have a child(ren) but most of the media is quite silent about them.  It is not right that we talk about this only because the preacher is female.  We must treat both female and male preachers the same way–either issue them both or stay quiet for both.

첫번째, 혼외 정사를 하는 남자 목사들이 많고 심지어 아이(들)을 두기도 하는데, 미디어가 그들에 대해서는 조용하다.  이 목사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문제를 삼는 것은 옳지 않다.  남자와 여자 목사들을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  모두에게 문제를 삼던지 아니면 모두에게서 조용히 해야 한다.

Second, all and any preachers must maintain higher morality.  Many people say that the preachers are also human.  Well, I do not deny that.  I do all the things of basic human needs such as eating, drinking, sleeping, breathing and the likes.  But that does not mean preachers may do anything what others do.  Some people murder out of anger.  But preachers must not.  Some people exercise violence over their wife and children.  But preachers must not.  These two examples are some things that anyone must not commit besides preachers.  But there are some things that are allowed for other people but not for preachers, which I cannot think of right now.

둘째, 모든 목사는 더 엄격한 도덕성을 유지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도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걸 부정하는 게 아니다.  나 또한 모든 인간의 기본적 필요사항들을  수행한다.  나도 먹고 마시고 잠자도 숨쉬고 등등을 똑같이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목사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분노 가운데 살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목사는 그러면 안된다.  어떤 사람은 자기 아내와 아이들을 폭행한다.  하지만 목사는 그러면 안된다.  이 두가지 예는 목사만이 아니라 누구나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허용이 되어도 목사는 해서는 안되는 일도 있는데, 지금 딱히 좋은 예가 생각나질 않는다.

Let me give you some analogy.  When you drive a 18 wheelers on a sharp right turn, you are not allowed to step on the curb.  So if you let the front wheels just make the curb, what happens?  The rest of the wheels will step on the corner for sure.  Like the front wheels of the semi-truck, preachers are leaders of the society and community.  If preachers just make the moral standard, then many of the society and community may not keep even the bottom line of the morality.

비유를 하나 들자.  만일 당신이 바퀴 18개가 달린 대형 세미 트럭을 운전하고 있는데, 급격한 우회전을 하고 있다.  당신의 트럭은 커브를 올라타면 당연히 안된다.  그래서, 만일 당신이 맨 처음의 앞바퀴가 간신히 커브를 돌도록 하면 어떻게 될까?  뒤의 나머지 바퀴들은 모조리 커브에 올라타게 되어 있다.  이건 불보듯 뻔한 일이다.  세미 트럭의 앞바퀴와 같이, 목사들도 사회와 지역의 지도자다.  만일 목사가 도덕적 기준을 가까스로 유지한다면, 사회와 지역의 많은 사람들은 도덕성의 바닥을 유지하지도 못할 수도 있다.

Preachers must maintain by themselves far much higher morality than they are required.  Only when the leaders of society maintain much higher standard, that society might meet the lowest moral line.

목사들은 요구되는 것보다도 훨씬 높은 도덕성을 스스로 유지해야 한다.  사회와 지역의 지도자들이 훨 높은 기준을 지킬 때에만 그 사회가 도덕적 최하의 커트라인을 지킬 수 있을 수도 있다.

Third and last, I just envy her.  I am trying so hard to have a baby for five years of marriage but failed so far.  I just am envious about her that how she is blessed!

세번째,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냥 그 여자 목사가 부럽다.  나는 결혼 5년동안 애를 가지려고 엄청 노력을 하는데도 안생기는데… 그냥 부럽기만 하고 그분은 정말 복받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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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11 June 2015

Chaplaincy became a fetter

From this Monday, I am doing a CPE, Clinical Pastoral Education, which is hospital chaplaincy intern and education.  The orientation is scheduled for two weeks, and I have been only here for four days.  I don’t really know anything about hospital chaplaincy.

이번주 월요일부터 CPE라는 걸 하는데, 병원 원목 인턴 교육 과정이다.  오리엔테이션만 2주로 잡혀 있는데, 이제 겨우 나흘 했기 때문에 사실상 병원 원목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Next to the hospital parking lot, there is Target and I went there after today’s education to get Shopkick point.  While I was trying to get the point on my cellphone, a lady next to me asked help of me for her iPhone.  She looked sick, and kept saying that she could not think right because of her excessive medication. That sounded like she was a patient of my hospital, and she also saw my badge and figured out that I am an chaplain there.

병원 주차장 옆에는 타겟이라는 대형 마트가 있는데, 샵킥의 점수를 받기 위해 오늘 교육이 끝난 후에 잠시 들렸다.  핸드폰 들고 점수를 받으려고 하는데, 옆에 어떤 아줌마가 아이폰 갖고 좀 도와달라고 했다.  아줌마가 좀 아파 보였고, 게다가 약이 과해서 정신이 핑 돌아서 제대로 생각할 수가 없다고 하는 걸 보면 아마 우리 병원 환자인 듯 하다.  그리고 그 아줌마가 내 배지를 보고 내가 병원 원목이라는 걸 알아 버렸다.

She was trying to backup her cellphone to iCloud and she couldn’t.  The error message was saying it needs Wi-Fi for iCloud backup, so I helped her connect to Target Wi-Fi, and the backup worked.  She began a conversation for a few minutes until she figured out that I used to live in Canada.  Then she asked me which country I prefer.  I was being polite and said, “There are many things that America is better than Canada, and there are a few things that Canada is better than America.”

아줌마가 하려던 건 핸드폰을 아이클라우드에 백업하는 것이었는데, 와이파이가 연결되어야 한다는 메세지가 나왔기에 매장 와이파이에 연결을 해 줬더니 제대로 작동했다.  아줌마랑 몇 분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내가 캐나다에서 살았었다는 걸 말했다.  그랬더니 미국하고 캐나다 중에 어디가 더 좋냐고 묻길래 공손하기 위해서 본심을 숨기고 “미국은 캐나다보다 좋은 점이 훨씬 많아요.  그리고 캐나다고 미국보다 좋은 점이 몇기 있긴 하죠” 라고 말을 했다.

She was a bit curious about what can possibly Canada be better than America, and asked me.  I said what I always say – “Well, hospitals are free.”  And she said, “yes, but they die while waiting.”  I replied, “Well, according to my experiences in both countries, the waiting times are not that different.  But the service quality may be different.”

그랬더니 아줌마는 흥미롭다는 듯이 호기심을 보이면서 어떻게 캐나다가 미국보다 좋은 점이 있을 수가 있다는 것인지 내게 물어봤다.  그래서 내가 늘 하던 얘기를 했다. “뭐 일단 병원이 공짜죠.”  그랬더니 아줌마가 하는 얘기가, “공짜긴 한데 기다리다가 다들 죽어버린다면서”라고 하길래, 내가 “글쎄요, 두 나라에 모두 살아본 제 경험으로는 기다리는 시간 자체는 비슷한 거 같아요.  다만 미국이 의료의 질이 훨씬 좋겠죠”라고 대답을 해줬다.

Because she asked me, I said the second thing as well, “the guns are illegal in Canada.”  Then she looked extremely shocked and almost shouted, “What? Are you saying that is better?  YOU DON’T BELIEVE IN THE RIGHT TO CARRY GUNS?

아줌마가 또 뭐가 좋은지 묻길래 캐나다에서는 총이 불법이라고 말을 하자, 굉장히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 거의 소리를 지르듯이 말을 했다. “뭐? 지금 그게 좋다고 말을 하는 거야? 넌 도대체 총기를 소유할 권리를 믿지도 않는다는 거냐?

Since then, I did not say anything for over twenty minutes, but she was quite angry and spitting (religious) political opinions.

그 이후로 난 20분이 넘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 아줌마는 꽤 흥분하고 화가 나서 (종교같은) 정치적 견해를 마구 쏟아냈다.

“This country,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is built upon the republican values NOT democratic values!  Republicans want big individuals and small government.  Democratics want big government and small individuals!  Democrats want to control the people.  Democrats hate blacks and Asians!  Democrats try to control them using food stamps and MediCaid….”

“이 나!라!는, 미!합!중!국!은 공화당의 가치 위에 세워졌지 민주당의 가치위에 세워진게 아니란 말이얏!  공화당은 힘쎈 개개인과 작은 정부를 원하고, 민주당은 큰 정부와 작은 개인을 원한다곳!  민자당 놈들은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햇!  민주당은 껌둥이랑 동양인을 증오한다곳!  민주당이 사람들을 통제하는 방식은 바로 푸드스탬프와 무상의료얏!….”

I was actually able to contradict every single word of hers, but I couldn’t.  First, because she already identified me as the chaplain in the hospital and I did not want to make any trouble.  Second, because she was quite angry.  To be polite, I was just nodding, and saying such as ah, oh, hmm…  I couldn’t even just walk away.  After listening to her preaching for over twenty minutes, finally I pretended that I got a phone text message, and apologised that my time was running out even though your words are very interesting.

그 아줌마 말을 하나 하나 조목 조목 반박할 수도 있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일단은 아줌마가 나를 병원 원목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었고, 나는 병원 시작하자 마자 뭔가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아줌마가 상당히 흥분해 있었기 떄문이다.  공손해 보이기 위해서 그냥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고, 아~ 오~ 흠.. 등과 같은 추임새만 넣었다.  그냥 나와버릴 수가 없었다.  그 아줌마 설교를 20분이 넘게 듣고 나서 핸드폰에 문자 온 것 처럼 속이고는 “아이쿠, 제가 좀 다른 데 늦었네요, 아줌마 말씀이 참 재밌는데 말이죠”라고 사과하고 나왔다.

I need to ask the staff chaplains what to do in those situations.

병원의 경험 많은 진짜 원목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봐야겠다.

Tuesday, 20 January 2015

Sunday after Christmas

This is a story couple or several years ago.

There is a small town of N, in the rural Canada.  The small town has an old church–about or over 150 years–named K Presbyterian Church.  A new pastor was installed and began to serve there.

First year, she noticed that the church does not have a Sunday service on the Sunday after Christmas.

Second year, she asked the session–the elders’ meeting, in other word, the congress of the church–to have the Sunday worship service.  The elders opposed and refused that request.  They said that no Sunday service after Christmas is their century old tradition, and nobody would come to the service.  The pastor said that she would worship God by herself in that case.  The elders allowed the service unwillingly, and they did not forget to warn her that there will be nobody on that day.

The pastor was quite worried.  During the service, she noticed that more people came on that Sunday than usual.  Actually all the members came to the church, even those who don’t come to church regularly.  But none of the elders came.

I don’t know what to say, but I think it is quite funny (in sarcastic way).

여러해 전에 있었던 일이다.

캐나다의 한 시골 지역에 N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 곳에는 아주 오래된, 150년 된 K 장로교회가 있다. 새로운 목사님이 그 곳에 부임을 하셨다.

첫 해에, 목사님은 성탄절 지난 다음 주일에 주일 예배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음 해에, 목사님은 장로회에 주일 예배를 갖자고 제안을 했다.  장로회는 말하자면 교회를 다스리는 국회 같은 것이다.  장로들이 그 제안을 거부했다.  장로들이 말하길, 성탄절 다음 주일에 예배가 없는 것이 100년 넘은 교회의 전통이고, 예배를 해도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목사님은, 그런 경우엔 혼자서라도 예배를 드리겠다고 했고, 장로들은 마지못해 허락을 하면서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고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목사님은 사실 심히 걱정이 되었다.  예배 중에, 목사님이 보니 평소보다 성도들이 더 많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평소 잘 안나오던 성도들도 대거 나와서, 전 성도가 예배에 참여를 했다.  그런데 장로들은 아무도 예배에 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반어법적으로) 참 웃긴 얘기다.

Sunday, 3 March 2013

True Missionary?

This is what I was told.

There was a missionary from South Korea to Vancouver, Canada. I do not understand why the mission organisation sent a missionary to Canada, but anyway he was in Vancouver as a missionary for twenty years. He has two daughters born there.

After twenty years, the mission organisation asked him to go another place of course as a missionary.

And he said NO. He said he already settled there completely and his family is there. At this point, I was so surprised and shocked. And I also heard that he is now living so well in the United States with all his two daughters married and living next to him.

That is good for him. He got what he exactly wanted – in a good country with his daughters together. But I cannot call him a true missionary. If in the first place the mission organisation told him to go to Tibet or Africa, would have he gone? I don’t think so. He went to the mission place only because  the location was Vancouver, Canada – the world’s best place to live. He just used the mission and Jesus Christ to immigrate into nicer country.

In my definition, a missionary is a person who is ready to die for Christ, a person who does the mission in any cost even his life. I call it candidate for martyr.

When I was in Canada, I found many pastors from Korea. They all say that they came to Canada to serve Christ because Canada needs spiritual encouragement. I don’t think immigration into Canada or better country is not a bad thing at all. But did they really came to serve Christ? If so why they do not go to rural area where the community could not find a pastor? Most of them just stayed in big cities like Vancouver, Toronto and the likes even though they could not find any spot at a Church as a pastor. Up there in the rural area, there are lots of Churches without pastors and the people there are in spiritual danger. If the newcomer pastors came to Canada really to serve Christ, why they are not going there? Why are they just looking for a good position in and around big cities?

As I wrote above, I am not against immigration at all. But do not use my beloved Jesus and say honestly that “I came to North America to live because it is good place to live and raise my kids.”

You can also read https://crinje.wordpress.com/2007/08/14/anyone-is-missionary/ which says about missionary.

들은 얘기다.

캐나다 밴쿠버에 한 한국인 선교사님이 계셨단다. 왜 밴쿠버에 선교사가 필요한지 이해는 할 수 없지만 어째든 선교단체에서 파송을 했고 그 분은 20년동안 밴쿠버에서 사역을 하셨다고 한다. 그 분의 두 딸도 거기서 태어났다고.

20년이 지났을 때 선교단체에서 다른 곳으로 파송을 하겠다고 했단다.

그런데 그분의 대답은 ‘싫다’였다고 한다. 그분은 이미 이 곳에 완전히 정착했고 식구들도 여기 있어서 가지 않겠다고 했단다. 여기서 난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또 듣기로 그 분은 현재 미국에서 사는데 두 딸이 결혼해서 바로 옆에 있다고 한다.

아이쿠 좋겠네. 원하는 건 다 얻었네 그려. 좋은 나라에서 두 딸이랑 같이 사니까. 그런데 난 그 분을 진정한 선교사라고 부를 수가 없다. 만일 처음부터 선교단체가 티벳이나 아프리카로 파송하려고 했다면 그분이 갔을까? 글쎄. 그분이 선교지로 간 이유는 그 장소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캐나다의 밴쿠버였기 때문이다. 그분은 단순히 선교와 예수 그리스도를 선진국으로 이민가는데 이용했을 뿐이다.

내 생각에 선교사는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며, 생명을 내어 놓더라도 선교를 하는 사람이다. 나는 선교사를 예비 순교자라고 부른다.

내가 캐나다에 있을 때, 한국에서 온 목사님들을 많이 만났다. 그분들 모두 캐나다는 영적 부흥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섬기러 캐나다에 왔다고 말들을 한다. 개인적으로 캐나다로 이민 오는 게 나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분들이 모두 정말 그리스도를 섬기러 왔을까? 만일 그렇다면 목사들을 찾지 못하는 시골에 가지 않는 것일까? 목사님들 대부분이 목사 자리를 찾지 못하면서도 밴쿠버나 토론토 같은 대도시에 머물러 있다. 시골에 올라가면 담임 목사가 없는 교회가 무지 많고 그 성도들은 영적 위험에 처해 있다. 만일 새로 온 목사님들이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러 캐나다에 왔다면 왜 그런데에 안가냐고? 왜 다들 대도시와 그 주변에서 좋은 자리만 찾냐고?

위에서도 썼지만 나는 이민을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의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용해 먹지는 말고, 그냥 정직하게 여기가 살기도 좋고 애들 키우기도 좋아서 왔다고 해라.

아래 링크는 내가 선교사에 대해 쓴 또 다른 글이다.

https://crinje.wordpress.com/2011/03/05/%ED%95%9C%EA%B5%AD%EC%97%90%EC%84%9C-%ED%8C%8C%EC%86%A1%ED%95%98%EB%8A%94-%EC%84%A0%EA%B5%90%EC%82%AC%EA%B0%80-%EB%A7%8E%EC%9D%80-%EC%9D%B4%EC%9C%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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