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Saturday, 9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서른 일곱째 날 – 일랏으로

내 홈스테이를 시라지 센터를 통해서 구하게 되었는데, 몇가지 여가활동을 더 신청을 했었다. 그런데 사람이 부족해서 취소한다고 연락이 왔고, 환불을 해줄테니 금요일에 센터로 오라고 했다. 오늘이 금요일이어서 센터에 갔다. 이메일을 받은 게 일주일 전이었는데, 오늘 갔더니 돈이 준비가 안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시간을 허비했다. 센터에서 택시타고 베들레헴 버스 정류장에 갔다. 그 버스는 예루살렘의 다마스커스 문까지 가는 버스다. 거기서 경전철을 타고 예루살렘 중앙 버스 터미널로 갔다.

Jerusalem Central Bus Station

예루살렘 중앙 버스 터미널

버스 터미널의 매표소에 갔더니 어떤 남자가 내게 다가와서 어디 가냐고 묻는다.

걔: 어이 친구, 어디가?
나: 일랏이요.
걔: 거기가는 표 매진됐어.
나: 에? 오늘 버스 모두 다요?
걔: 어. 개인 운수는 어때?
나: 얼만데요?
걔: 200.
나: 세겔로요 아니면 달러로요? 아니 잠시만요. 일단 매표소에 직접 먼저 물어보고요.

낯선 사람이 친근하게 굴면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매표소에 물어보니 이번 버스는 정말 매진되었지만 2시에 출발하는 다음 버스는 널널했다. 2시간 정도 더 기다리는 것이 돈을 무지 내고 가는 것보다 낫기에 당연히 표를 샀다.

그렇게 해서 일랏에 다시 왔고, 같은 호스텔에 묵었다.

지금까지 내 발굴 팀에 대해 쓸 기회가 없었다. 라기스 발굴은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전쟁이 나고 나서 가자와 가깝기 때문에 자원자들이 대거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은 현장이 폐쇄되었고, 라기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남부의 대부분의 현장은 다 폐쇄되었다. 절반 이상은 돌아가고 나같은 사람들은 이스라엘 북부에 있는 다른 발굴 현장에 참여하게 되었다. UCLA는 야포에서 발굴하고 있었는데, 메깃도로 합류했다.

우리 팀은 대부분 UCLA 학생들이었다. 사라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애가 있었는데, 이란계 미국인이고, 18살이었다. 여기 전체 발굴 합류자 중에서 최연소자였다. 조지 워싱턴 대학교에서 고고학을 전공할 거라고 하며, 10살때부터 발굴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또 다른 여자는 꽤 게을렀고 미친듯이 말을 많이 했다. 다른 사람들이 내게 말하길 저 여자는 일주일에 이틀만 일한다더니 사실이었다. 정말 일주일에 이틀만 일하고 나머지 날들은 아프다고 신고하고 쉬었다. 사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건강해 보였는데. 내게 말하길 자신이 최근에 커밍아웃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사귀는 여자는 없다고.

UCLA에서 온 두 여자는 이름이 바네사와 제나인데, 자기 둘이 한 팀을 만들었다고 내게 말을 했다. 그런데 그 팀 이름일 버제이나라고… 이는 여자의 성기를 의미하는 버자이나와 발음이 매우 비슷해서 혹시 그런 의미냐고 했더니 그렇단다. 하지만 이 둘이 우리 팀 전체에서 일을 가장 잘 하는 팀원들이었다.

캐나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스라엘을 떠났거나 아니면 이스라엘로 오는 일정을 모조리 취소해 버렸는데, 미국 학생들은 대부분 남았다. 미국 사람들이 캐나다 사람들보다 더 용감하던가 아니면 이런 총이나 위험에 이미 익숙해 있는 건지도.

Sunday, 27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스물 네번째 날 – 새로운 여행 준비

이번 주가 발굴 마지막 주다. 라기스와 메깃도 두 군데를 경험할 수 있어서 꽤 좋았다. 예루살렘이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라면 라기스와 메깃도는 새의 양 날개 같이 각각 남북의 중심지다.

Not that big centiped here, but it is huge

엄청 큰 지네지만 여기서는 보통 크기임

아침에 메깃도 현장에서 이동할 때 이 지네를 봤는데 (지네를 영어로 centipede라고 하는데, centi는 100, pede는 발이라는 라틴어로 발이 백개라는 뜻. 실제로 발이 백개인지는 안 세봤음), 사실 지네를 이른 아침에 상당히 많이 본다. 해가 뜨면 대부분은 허겁지겁 땅 아래로 들어가는데, 꽤 많은 놈들이 길을 잃는다. 그런 놈들은 예외없이 뜨거운 햇볕에 금방 말라 죽는다.

Excavation Notice

발굴 안내문

위 사진은 공원 입구에 (라기스와 메깃도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고고학적 발굴지는 국립공원이다) 있는 현재 발굴 진행중 안내문이다.

This is how you find an antique

유물은 이렇게 해서 발견하게 됨

위 사진이 오늘의 큰 발견거리로 항아리의 온전한 밑둥이다. 또한 오늘은 처음으로 감람 씨앗과 곡물 알갱이들을 발견했는데, 이런 것들은 탄소 연대 측정하는데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이집트 여행 계획을 좀 바꿨다. 원래 계획은 수요일에 기부츠를 떠나서 목요일 저녁에 카이로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카이로를 이틀 여행하고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길에 시내산을 볼 수 있으니까. 새 계획은 하루 먼저 떠나는 것으로 키부츠를 화요일에 떠나서 카이로에 수요일에 도착하는 것이다. 그러면 원래 계획대로 다 하면서 룩소도 볼 수 있으니까. 이집트까지 갔는데, 룩소를 보지 않으면 정말 미련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일이 발굴 마지막 날이다.

Thursday, 24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스물 한번째 날 – 달콤한 주말

우리는 아침 일찍, 새벽 4시라는 이른 시각에 일어난다. 그 때부터 해가 뜰때까지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때다. 시원한 산들 바람이 불고, 작렬하는 태양도 없다. 아마 이렇게 때문에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과 고대 중동 사람들도 일찍 일어났을 거라고 짐작한다. 왜냐면 한낮에는 너무 덥기 때문이다.

Before Sunrise

비포 선라이즈

그렇기 때문에 성경 히브리어 (고대 히브리어)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다”는 동사가 따로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좀 짜증나는 날이었는데, 우리 구역의 모든 인원이 V와 W의 다른 구역으로 불려가서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 우리 구역에서 해야 할 작업들을 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휴식조차 없었다. 우리들은 서로 서로 나라, 아니 구역 잃은 서러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난 W 구역에서 내 주먹만한 돌팔매 돌을 발견했다.

히브리 대학교 (라기스 발굴)는 버스가 금요일 아침에 출발해서 주일 아침에 돌아오는데, 텔 아비브 대학교 (메깃도 발굴)는 버스가 목요일 오후에 출발해서 토요일 오후에 돌아온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는 오늘 오후부터 주말인 셈이다.

Hand Washing Laundry

손빨래

오후 일과도 강의도 없어서 손빨래를 했다. 케드마 숙소와 달리 이 키부츠에서는 주말에 공짜로 머물 수 있게 해 주지만 식사는 제공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까운 식료품점에 20분 걸어가서 6끼니 음식을 사 왔는데, 120 세겔, 약 4만원 정도 들었다. 1리터 정도 하는 오렌지 주스를 하나 사왔는데, 컵에 따를 때 콸콸 나오지 않고 마치 꿀 처럼 천천히 내려왔고, 맛을 보는데 너무 맛이 진했다. 그래서 라벨을 다시 잘 읽었는데, 히브리어로 써 있어서 하나도 이해를 못했지만, 영어로 표기된 것이 딱 두 개 있었다. 하나는 큰 글자로 “오렌지 주스”라고 써 있었고, 또 하나는 아주 작은 글씨로 영양성분 밑에 “60컵도 더 만들 수 있어요”라고 써 있었다. 농축액을 사왔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제 밤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야기를 했는데, 미국계 유대인 (남자), 이스라엘 유대인 (세속적이며 여자), 이스라엘 유대인 (세속적이며 남자), 벨기에 여자 (천주교), 그리고 물론 나도 거기 있었다. 여러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고 흥미로운 대화가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흥미로운 것중 하나는 현재의 유대인들은 본인이 무슨 지파에 속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열 지파는 행방불명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말하길, 성씨가 코헨 (히브리어로 제사장이라는 뜻)하고 레비 (레위지파라는 뜻으로, 예전에 성전에서 여러가지 일을 했다)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은 재혼 불가나 묘지 접근 불가 등을 포함해서 스스로 엄격하게 자기 규제를 해서 율법적으로 본인들을 정결하게 유지한다고 한다. 또한 그들은 개종한 유대인 여자와는 결혼할 수 없고 소위 말하는 순수 또는 나면서부터 유대인인 여자와만 결혼할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이 율법적으로 정결하게 유지하는 이유는 메시아가 와서 성전이 재건되면 언제라도 즉시 제사장 직분과 레위 지파의 직분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유대인들은 왜 유대교가 안되는 지에 대한 수 많은 농담을 했다. 세속적인 유대인들은 또한 정통 유대인, 특히 극보수주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미워한다고 했다.

성전에 관해서는, 종교적인 유대인에게 물어봤을 때는 성전 재건을 원하지만 공공연히 표현하기를 꺼리는 눈치였고, 세속적인 유대인들이게 어제 밤에 물어봤을 때에는 절대 성전 재건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성전을 짓기 위해 벌어질 수많은 살해와 피흘림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성전을 재건하려 한다면 아마 세계 3차대전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고 했다.

Sunday, 20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열 일곱번째 날 – 메깃도에서의 첫날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레지라고 하는 흑인 미국사람을 만났다. 꽤 친절하고 좋은 사람으로 내게 필요한 것 여러가지를 가르쳐줬다.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미국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먼저 나는 미국에 총기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총이 불법인 나라가 많고 그런 나라들은 더욱 안전한 사회를 갖고 있다. 레지가 갑자기 아냐!라고 말을 했다. 걔 말로는 총은 보호하기 위한 거라고 한다.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재산을 보호하는 수단. 조금 더 얘기를 했는데, 우리 생각의 차이를 좁히는 게 불가능해 보여서 더이상의 대화는 쓸모없다고 생각되었다.

또 다른 얘기는 의료보험과 병원 시스템이었다. 내가 캐나다와 일부 (북)유럽 국가들이 국가 의료보험을 갖고 있고, 미국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을 하자 레지는 국가 의료보험은 멍청한 생각이라고 했다. 차라리 돈을 더 내고 더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겠다고 말을 했다. 가난해서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내가 말을 하자 레지가 정말 충격적인 말을 했는데, 그 사람들은 게을러서 가난하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 받을 자격조차 없다는 것이다. 정말 충격을 받아서 “하지만 사람들도 인간이고, 시민인데, 정부가 돌봐줘야하지 않을까?”라고 내가 말을 했지만 레지의 생각은 아주 확고했고 그 놈들은 자기가 가난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해줘선 안된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내가 다큐멘터리 식코를 언급했는데, 갑자기 흥분하면서 마이클 무어 그 씹새끼는 빨갱이고, 그 영화 백프로 다 구라야!라고 성질을 부렸다. 대학 등록금에 대해서도 레지는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대출 받아서 학교 다니면 되고, 졸업하고 일해서 갚으면 된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빚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 것들이 멍청하고 병신같고 게을러서라고 말을 했다.

레지가 꽤 흥분해 보였고 더이상 대화를 했다가는 위험할 듯 해서 주제를 바꿨다. 하지만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정말 처음 만나서 얘기해 봤다.

Tel Megiddo

메깃도 언덕

위 사진은 메깃도 언덕을 아래서 바라본 것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났는데, 라기스에서보다 30분 먼저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라기스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사람이 많아서 대형 버스를 두 대나 이용했다. 아마 대부분의 발굴 현장이 현 전쟁 상황때문에 문을 닫고 메깃도가 몇개 안 남은 열린 곳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들이 이 곳으로 오는 것 같다.

Area T, Tel Megiddo

메깃도 언덕의 T구역

여기가 오늘 내가 일한 T구역이다. 라기스와 메깃도는 다른 것이 여럿 있는데, 일단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여기가 라기스보다 훨씬 덜 덥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도 별로 안 마셨다. 흙이 마르는 속도도 차이가 꽤 난다. 라기스에서는 새로 퍼낸 흙이 마르는데 한 시간도 채 안걸렸는데, 여기서는 다음날 아침에 보잔다. 작업 속도도 라기스에 비해서 슬슬 하는데, 여기에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발굴에 참여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일 중독에 걸린 듯한 한국 사람들하고 라기스에서 발굴을 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제로 한국 사람들이 아침도 거르고 점심도 거르고 발굴을 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일 중독이다.

Sling Stones

돌팔매

내가 작업하는 구역은 현재 앗시리아 시대라고 하는데, 꽤 좋았던 게, 라기스에서는 바벨론 시대까지 했는데, 여기서는 바로 이전 시대라는 것이다. 위 사진은 오늘 발견한 돌팔매 돌 세 개인데, 이 돌 세 개를 보고는 여기가 돌팔매 돌 만드는 공장이라고 결정해 버렸다.

여기 메깃도의 일정은 라기스와 많이 비슷하지만 휴식이 훨씬 적고, 물을 따로 주지 않고 각자 본인 물을 챙겨야 한다. 라기스에서는 개개인이 옮길 수 없을 만큼 물이 필요했기 때문에 승합차로 물을 실어다 줬다.

대략 일정은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오후 1시까지 발굴하고, 점심 후 잠시 쉬고, 도자기와 뼈를 씼고난 뒤에는 강의가 두 개 있으며 역시 10시에 끝난다. 오늘의 강의 둘 가운데 하나는 유전자와 고고학이라는 꽤 흥미로운 주제였다. 정말 피곤하고 지치는 일정이다. 그런데 이 걸 두 주나 더 해야 한다.

Saturday, 19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열 여섯번째 날 – 야마다 교수

맥코믹 총장인 프랭크 야마다 교수님 역시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있어서 몇 번의 전자우편을 주고 받은 뒤에 만날 약속을 잡았다.

A Park

공원

어제 밤에 교수님이 묵는 호텔에서 1시 45분에 만나기로 약속을 확정지었다. 나는 오늘 호텔을 아침 11시에 체크아웃 해야 했기에 약속시간보다 일찍 호텔에 갔다.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는 동안 공짜 와이파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연결을 했는데, 야마다 교수님에게서 다른 곳에서 만나고 싶다는 전자우편이 왔다. 어제 갔던 포카치아에서 만나자고 했다. 사실 안식일이기 때문에 별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위 사진은 호텔에서 포카치아까지 가는 길에서 통과한 공원이다.

With Dr. Frank Yamada, the president of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

맥코믹 신학교 총장인 프랭크 야마다 교수님과 함께

오후 2시경에 교수님과 만났다. 맛있는 점심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다. 3시가 좀 넘어서 셔룻을 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구글에서 검색했을 때는 2012년에 쓰여진 글을 보여줬는데, 어느 곳에 가면 탈 수 있다고 나왔었다. 오늘 오전에 관광 안내에 갔을 때는 훨씬 더 먼 다른 곳을 알려줬다. 그런데 키카르 찌온에 갔을 때 어떤 아저씨가 “텔 아빕?”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바로 셔룻 운전자였는데, 원래 셔룻을 승객이 꽉 차면 출발하는데, 내가 마지막 승객이어서 곧바로 출발했다.

Payphone does not like coins

공중전화가 동전을 싫어해

텔 아빕의 중앙 버스 정류장에 갔고 우리가 만나기로 한 다른 버스 정류장까지는 특별 택시를 타고 갔다. 이스라엘에서는 두 종류의 택시가 있는데, 셔룻이라고도 하고 합승 택시라고도 하는 것과 한국에서는 그냥 택시라고 부르는 특별 택시가 있다. 버스 정류장에서 4시 55분까지 기다렸는데,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를 해 보려고 공중전화에 갔는데, 동전을 받지 않고 전화 카드로만 쓸 수 있는 것이었다. 곤란해 하는데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핸드폰을 빌려주셨다. 전화 통화를 하고 난 뒤에 모두들 안내 부스 뒤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On the bus

버스 타고 가는 길

라기스 발굴에서와는 달리 큰 버스를 타고 꽤 많이 운전해 갔다.

Givat Haviva

기밧 하비바

이 캠프의 이름은 기밧 하비바다. 여기엔 장단점이 있는데, 일단 와이파이 신호가 좋다는 것과 방마다 테레비가 있다는 것은 좋다. 하지만 세탁기가 없고 음식도 케드마보더 별로라는 것은 좋지 않다.

내일 다시 발굴이 일찍 시작하기 때문에 곧 자야겠다.

Friday, 18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열 다섯번째 날 – 예루살렘 복귀

아침에 케드마 숙소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예루살렘 중앙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Jerusalem Central Bus Station

예루살렘 중앙 버스 정류장

사람들이 구름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요즘과 같은 건기에 저렇게 구름으로 하늘이 뒤덮이는 것이 이상하다고들 했다. 최 박사님과 아로마에서 아점을 했다.

Gloria Hotel's View

글로리아 호텔에서 본 풍경

아침내 예루살렘 구시가지내 자파문 근처에 있는 글로리아 호텔에 돌아왔다. 위 사진은 새로 배정받은 151호실에서 찍은 것으로, 예전에는 178호실에 묵었다. 지난 한 주 동안 테레비도 없고 인터넷도 거의 안되는 곳에 있다가 와서 이스라엘과 가자의 문제에 대한 소식을 좀 듣고자 테레비를 켰는데, 더욱 충격적이고 끔찍한 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에서 비행기가 요격당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가자의 전쟁에 대한 뉴스는 거의 나오질 않는다.

좀 쉬고 나서 안식일인 내일 텔 아비브까지 가는 교통편에 대해 묻고자 여행자 안내소에 갔는데, 이미 1시 반에 문이 닫혔다. 안식일이 오늘 저녁부터 시작이기 때문이다.

Empty Western Wall

텅빈 통곡의 벽

승천교회에 가고자 해서 통곡의 벽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통곡의 벽에 가까이 가는데, 총성이 계속 들리고 사람들이 벽에서 멀리 모두 물러나 있었다. 그리고 경찰차와 경찰 봉고가 굉장히 많이 있었다. 통곡의 벽이 늘, 특히 금요일에는 더 기도하는 사람들로 붐빈다는 걸 감안해 보면 위 사진에는 거의 텅 빈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이슬람 교도들이 모스크에서 공포탄으로 총을 쏘면서 기도하는 거라고 한다. 금요일에 통곡의 벽에 온 게 벌 써 몇 번인데, 한 번도 이런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정통 유대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평상시에는 이러지 않지만, 긴장이 고조될 때에는 그런다고 말해주었다.

전쟁이 진행중이고, 총성이 마구 들리는데도 하늘에서 비행선을 하나 발견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여전히 사람들이 평상시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Pater Noster

주기도문 교회

승천교회에 가기 전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곳인 주기도문 교회에 먼저 들렀다. 벽에는 세계 각국 언어로 주기도문이 쓰여 있었다. 위 사진은 히브리어 처럼 보이지만 갈대아어다. 입장료는 8세겔이었다.

Church of Ascension

승천교회

그 후에 승천교회에 갔는데, 정말 실망했다. 지도에 나온 이름과 달리 교회가 아니라 모스크, 정말 작은 모스크였다. 5세겔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거의 볼 게 없다. 위 사진은 승천하실 때 남긴 예수님의 발자국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Tomb of the Prophets

선지자의 무덤

그 후에 선지자들의 무덤이라는 곳을 갔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이 곳에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가 묻혀 있다고 한다.

Church of Mary Magdalene from Dominus Flevit

눈물교회에서 바라본 막달라 마리아 교회

그 후에는 눈물 교회에 갔는데, 원래 이름은 Dominus Flevit인데, 이는 라틴이러 “주님께서 우시니라”는 의미라고 한다. 여기서 2차 성전시대와 비잔틴 시대의 무덤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위 사진은 눈물교회에서 바라 본 막달라 마리아 교회다.

눈물 교회를 나왔을 때 한 팔레스타인 노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다. “나 가난해. 몇 세겔 만 줘”라고 하기에 갖고 있는 전부인 14세겔을 줬다. 그랬더니 “더 줘! 더 줘!”라고 해서, 더 이상 돈이 없다고 했더니 성질을 내면서 “20불 더 줘! 나 가난해! 20불 더 내놔”라고 하는 것이었다. 완전 말 문이 막혀서 대꾸도 않고 그냥 언덕을 걸어 내려왔다.

Focaccia Salad

포카치아 사라다

좀 더 쉰 다음에, 자파 길과 벤 예후다 길에 있는 키카르 찌온 (시온 광장)에 갔다. 라기스에서 같이 발굴한 사람 몇을 만나기도 되어 있었다. 안식일이 이미 시작되었고 온 도시가 완전 정지하고 문 연 식당이 하나도 안보여서 걱정을 했다. 그런데 나를 포카치아라는 뒷골목 식당에 데려갔다. 와! 온 도시가 회당 아니면 여기에 있는 것 같았다. 거기서 요시 교수님도 우연히 만났다.

Thursday, 17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열 네번째 날 – 표식 달기

오늘은 발굴 현장에 가는 날이 아니다. 요시 교수님을 비롯해서 몇몇 스태프만이 현장에 조감 (항공) 사진을 찍으러 갔다. 항공 사진은 특수한 회사에 맡기는데, 드론을 갖고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문제는 이스라엘 공군이 전쟁인 현 상황때문에 어떤 것도 하늘에 비행하도록 허락을 안해준다는 것이었다. 결국은 항공 사진을 찍는데는 실패하고 사다리 타고 올라가서 조잡한 사진을 찍어왔다고 한다.

Writing ID on pottery

도자기에 표식 적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케드마 숙소에 남아서 뼈와 도자기에 대한 작업을 했다. 오늘 내 일과는 도자기에 표식 번호를 다는 것이었다. 위 사진에는 글자가 크게 보이지만 굉장히 작게 쓴 것이어서 몇몇 사람은 읽지조차 못했다. 첫 줄은 발굴 허가 번호로 현장 위치와 연도를 나타낸다. 두번째와 세번째 줄의 첫 글자 (C)는 구역 번호를 나타낸다. 두번째 줄은 로커스 번호를, 그리고 마지막 줄은 바구니 번호를 나타낸다.

Pattern on Pottery

도자기의 문양

도자기에 표식을 적는 동안에 위와 같이 멋진 문양이 칠해진 도자기 파편을 발견했다.

Tel Lachish Digging Certificate

라기스 발굴 증명서

점심시간에 내가 라기스에서 실제로 발굴했다는 증명서를 받았다.

Professor Yossi

요시 교수님

요시 교수님과 사진 찍는 팀이 오후에 돌아왔고, 모두 도자기 분석조에 합류했다. 요시 교수님은 고고학적 도자기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해 줬다. 위 사진에서 요시 교수님은 중간에 앉아 있고, 오른쪽의 남자는 히브리 대학교에서 요시 교수님 밑에서 고고학 박사 학위를 진행하고 있는 이고라는 학생이다.

Stone Knife

돌칼

위 사진은 고대의 칼로 (전쟁용이 아니라) 가정용으로 아마 요리를 비롯한 여러 목적으로 쓰였을 것이다. 이 것은 아마 청동기 시대의 것인데 왜 청동기 시대에서 석기를 쓸까? 청동기 시대라는 것이 청동기만을 썼다는 게 아니라 청동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디오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신문이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테레비가 나왔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라디오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터넷과 웹이 퍼지기 시작할 때는 테레비가 종말할 것이라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현재 우리는 신문, 라디오, 테레비, 인터넷 모두를 동시에 쓰고 있다. 요시 교수님에 의하면 철기가 보편화 되고 나서야 사람들이 석기를 쓰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케드마 숙소에서 피자 파티를 했다. 공식 뒷풀이는 수요일에 한다고 하는데, 나는 메깃도에서 발굴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참가할 수가 없다. 수요일은 또한 요시 교수님의 생일이라고 한다. 요시 교수님, 생일 축하해요!

Wednesday, 16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열 세번째 날 – 라기스 청소

오늘이 발굴 현장에 가는 마지막 날이라고 들었다. 오늘의 주된 일은 발굴 현장을 청소하는 것이다.

Military Helicopter

군용 헬기

청소하는 동안 군용 헬기 두 대가 머리 위로 지나갔다. 정말 전쟁인 듯 하다. 숙소로 돌아간 뒤에 건물 밖에서 블로그도 하고 페이스 북도 하고 사진도 좀 정리하고 있었는데, 약 오후 3시쯤 되어서 로케트가 날아가고 요격 당하는 걸 봤다. 여러 대 있길래 세어 봤는데 23정도 세다가 포기했다. 그 후로도 계속 로케트가 날아왔다. 3분 정도만에 수십대의 로케트를 이 곳으로 쏘다니 미치겠다.

Tel Lachish Area K (or C) cleaned up

라기스의 구역 K 또는 C 청소 한 뒤

청소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하긴 2500년이 넘게 묵은 먼지를 어떻게 하루 만에 다 청소할까. 청소하는 동안 요시 교수님이 와서 몇 가지 점검하더니, 논리적이지 않아, 이해가 안돼, 말이 안돼라는 말을 하더니 갑자기 더 파기 시작했다. 뭐 청소는 중단되었다. 위 사진은 청소가 끝난 뒤의 현장 사진으로 위쪽의 성벽은 페르시아 때 성벽이고, 바닥은 바벨론에 함락되었을 때의 것이다.

Dusty and Dry Top Soil

먼지나고 메마른

한낮의 열은 정말 사람 죽이는 열이다. 걸음마다 먼지가 일어나는 걸 위 사진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제일 위의 토양은 전혀 비옥하지 않다. 깊이 아래까지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식물은 바로 말라서 죽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늘과 햇볕은 차이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늘에서는 선선한 바람이 불면 그나마 견딜 만 하지만, 햇볕에서는 온 몸이 고통스럽게 타들어 가는 듯 하고 마치 햇살이 얼굴과 피부를 바늘로 찌르는 듯 하다. 하나님이 그늘을 치워버렸을 때 왜 요나가 감히 하나님께 그토록 화를 냈는지 완전 이해가 되었다. 아마 나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Pottery Reading

도자기 분석

오늘은 발굴을 하지 않고 청소만 했기 때문에 씻을 도자기도 뼈도 없었다. 그래서 나 같은 자원봉사자들도 도자기 분석을 참관할 수 있었다. 도자기를 분석하고 알아내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고고학적 도자기에 대한 정확하고도 광범위한 지식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요시 교수님이 와서 나는 다음 주 부터는 메깃도에서 발굴할 거라고 얘기 해줬다.

두번째 성지 여행 – 열 두번째 날 – 세번째 발굴

오늘도 여전히 새벽 4시 반에 일어났다. 어제와 같은 시각에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Babylonian Arrow-head

바벨론 화살촉

이 바벨론 화살촉은 성벽 바로 안쪽에서 발견된 것으로 바로 이 화살촉이 바벨론 군사가 쏜 것으로 어쩌면 (아닐 수도 있고) 라기스 성에 사는 사람의 몸에 꽂혔던 것일 수도 있다.

Digging Je

땅파는 제명

내가 고고학 발굴이라고 하니 어떤 사람들은 인디애나 존스같은 걸 상상하는데 그만큼 위험하지도 않고 그만큼 스릴이 있지도 않다. 길고 지루한 땅파는 작업일 뿐이다.

Dumping Je

흙 버리는 제명

땅을 판 다음에는 뭘 해야 할까? 땅 파면서 나온 흙과 쓰레기들을 모두 갖다 버려야 한다.

Measuring Je

측량하는 제명

땅을 파 내려갈 때마다, 우리는 측량 장비를 이용해서 깊이를 재야만 한다.

Complete Jugglet

완전한 저그

아주 완전한 저그를 발견했는데, 다목적이라고 한다.

하마스의 로케트 공격 때문에 오늘이 실제 발굴하는 마지막 날이다. 내일은 현장 청소를 하고 모든 걸 마무리해야 한다. 사진을 마지막으로 찍고 나면 이 현장은 내년에 다시 발굴이 개시될 때까지 잠겨진다. 우리 팀의 문제는 필요한 작업을 정오가 될 때까지 마치지 못한 것인데, 그래서 우리 팀만 남아서 계속 발굴 작업을 하기로 했다. 이 불타는 듯한 살인적인 땡볕 아래서 말이다.

정말 엄청나게 더웠는데, 요나가 나무잎 그늘을 빼앗겼을 때 왜 그토록 하나님께 성질을 부렸는지 이해가 완전 되었다.

Milk Shake and Cheese Cake

밀크 쉐이크와 치즈 케익

모든 필요한 작업을 마친 뒤에 남은 사람중에 차를 가진 사람이 없어서 요시 교수님께 전화를 했다. 요시 교수님이 숙소까지 태워다 줬는데, 도중에 우리에게 초코렛 밀크 쉐이크와 치크 케익을 사줬다.

지금은, 오늘 저녁의 강의를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아마 오늘도 10시까지 할 듯하다.

Tuesday, 15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열한번째 날 – 두번째 발굴 작업

라기스에서 두 번째 발굴 작업인 날이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현장에 가서 아직 달이 떠 있을 때 바로 일을 시작했다. 정말 덥고 목마르고 지치게 만드는 날이다. 미친 듯이 물을 계속 마셔댔는데 하루에 소변을 단 한 번만 본다. 아마도 땀으로 물이 다 나가서 그러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다.

Ancient River

고대의 강 흔적

이 번은 네 번째 라기스 발굴이라고 한다. 인도자는 히브리 대학교의 요시 가펑클 교수로, 이번에 동쪽의 성문을 발견했다. 고대의 라기스는 주요 도로가 동쪽에 있었는데, 지금도 동쪽에 도로가 있다. 그리고 수자원은 동쪽에 흐르는 강이 있었는데,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지만 성경 시대에 흘렀던 강의 흔적은 볼 수 있다.

Babylonian Destruction Layer

바빌론에 의한 멸망 지층

나는 언덕의 북쪽을 발굴하고 있는데, 페르시아 시대를 파고 있었는데, 바닥에 검은 층을 발견했는데, 재층이라고도 부른다. 이 검은 층은 도시 전체를 망라하는 대규모 파괴와 화재의 흔적이라고 한다. 이 검은 지층은 바벨론에 의한 멸망으로 판명되었다. 나는 현재 느부갓네살의 군대와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 현장에 바로 서 있는 것이다.

Rosetta Seal Impression

로제타 인장

로제타 인장을 두 개 발견했다. 이 것은 항아리 손잡이 부분으로 이 인장은 왕의 것임을 표시하는 것으로 아마도 세금용일 것이다. 이 깨진 항아리가 예전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왕에게 (유배당하기 전의 유대인 항아리였으므로) 세금을 바치는 감람유라던가 다른 것들을 담고 있었을 것이다.

Pottery Reading

도자기 분석

하루 일과는 새벽 다섯 시에 시작했고 현장에서 땅 파는 일은 오후 2시에 끝났다. 하지만 하루 일과가 끝난 것은 아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 세 그룹으로 나뉘어 졌는데, 도자기 분석조, 도자기 세척조, 뼈 세척조였다. 도자기 분석조는 대체로 학자라던기 이미 고고학적 도자기에 대한 지식이 상당한 사람들이 배정되고, 나같은 일반 사람들은 도자기나 뼈 세척조에 배정된다. 분석조는 도자기를 확인하고 여러가지 분석을 하고, 세척조는 현장에서 발견된 도자기나 뼈를 물로 씼는 일을 한다.

저녁 7시까지 세척을 했고, 그 후에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에는 요시 교수님이 밤 10시까지 강의를 하셨다.

밤 11시 직전에야 자러 갈 수가 있었다. 그런데 내일 아침에는 여전히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 정말 빡빡한 일정이 아닐 수 없다.

Monday, 14 July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열째 날 – 첫 발굴작업

오늘은 발굴 첫째 날이다. 글로리아 호텔에서 정리하고 나오는데 저녁이 60 세겔이나 했다는 걸 알았다. 식사 품질에 비한다면 무지 비싼 값이다. 아침과 저녁은 백색 수녀님들 게스트하우스가 훨씬 낫다.

Light Rail in Jerusalem

예루살렘의 경전철

경전철의 시청역까지 걸어가서 표를 샀다. 곧 경전철이 왔고, 처음으로 경전철을 타봤다. 중앙 버스장은 다섯 정거장이었다. 좀 일찍 갔기 때문에 약 한시간 정도를 기다렸다. 관광 버스는 늘 20-30분 늦게 왔기 때문에 이 버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정 시간인 10시보다 20분이나 먼저 왔다. 처음에 탈 때는 나까지 딱 두 명만 탔다. 예정시간도 안된 10시 10분전에 버스기사가 출발하려는 것을 내가 막고는 10시 10분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내 생각이 맞았다. 10시 5분이 되자 사람들이 막 몰려와서 미니버스가 가득차버렸다.

Kedma Yough Village

케드마 젊은이 마을

주중에 머무르게 될 케드마 마을에 왔다. 케드마는 히브리어로 동쪽을 향한다는 뜻으고 이 곳은 단순한 캠핑이나 행사를 하는 곳이 아니고 약간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서 일반적인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학생들이 오는 곳이다. 이 곳에서 실용적인 기술을 배운다고 한다. 말하자면 직업학교 같은 곳이다. 현재는 방학이어서 우리가 이 시설을 빌릴 수 있었는데, 외부 기관에 시설을 빌려주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근데 안좋은 소식을 들었다. 가자가 로케트 공격을 계속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 지역이 가자에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히브리 대학교가 안전상의 이유로 이 현장을 폐쇄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철지붕 (아이언 돔)은 미사일이나 로케트의 목적지를 먼저 계산해서 사람이 없을 들판같은 곳에 떨어지는 걸로 판명이 나면 그냥 떨어지게 냅둔다. 문제는 고고학 발굴 장소같은 곳은 대게 사람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괜찮은 들판으로 분류가 된다는 것이다. 굉장히 많은 발굴 지원자들이 떠났다고 하며, 캐나다 그룹을 포함해서 이번주에 오기로 한 많은 그룹들이 모조리 취소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주가 현장 폐쇄하기 전의 마지막 주간이다. 원래 계획은 3주였는데, 이번주에 닫기 때문에 나머지 2주가 공중에 붕 뜬다. 그래서 요시 교수님께 요청을 했는데, 어쩌면 2주동안 하솔에 넣어줄 수도 있겠다.

Stone brick upon Mud brick

돌 벽돌과 진흙 벽돌

현장에는 땅을 파는 곳이 여럿 있었다. 원래는 초기 철기 시대를 기대했는데, 막상 파보니 대부분은 청동기 시대가 바로 나와버렸다. 그런데 더 위쪽에서 파는 곳은 철기 시대가 나왔다. 위 사진은 진흙 벽돌로 만든 벽 위에 돌로 쌓은 벽이다.

Rocket trace

로케트 흔적

약 3시 또는 4시 경에 휴식 시간이 있었다. 수박, 커피, 멜론 등을 먹었다. 그리고 저녁 8시가 되어서야 하루 일과가 끝났다. 정말 피곤한 날이었다. 케드마 마을에 돌아올 때에는 요시 교수님 차에 있었는데, 밝은 불 네다섯 개가 날아가는 게 보이더니 (로케트였다), 사이렌이 울렸다. 도로의 모든 차들이 멈추고는, 약간 뛰어 가서 땅에 모두 엎드렸다. 로케트들은 모조리 요격당했다. 위 사진을 찍었는데, 사진에는 세 개만 나오지만 나머지 두 개는 사진의 윗 부분에 있었다.

Dirty Kedma

지저분한 케드마

원래 어떤 방을 배정 받았었는데, 저녁에 방에 가 보니 나 까지 넷이 있었다. 그런데 침대가 세개 뿐인 방이었다. 말을 해서 방을 바꿨다. 근데 너무 더러웠다. 이런 방을 갖고 5일에 400불이나 받다니!

너무 피곤하고 또 다음 날 4시 반에 일어나야 해서 도저히 블로그를 할 수가 없었다. 이 블로그는 다음 날 쓴 것이다.

Friday, 17 January 2014

이스라엘 여행 여덟째 날: 라기스와 브엘세바

오늘은 백색 수녀님의 게스트하우스를 체크아웃 하기 때문에 모든 짐을 버스에 담았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한글 성경 (열왕기하 18장)에서는 라기스라고 나오는 라키쉬다.

Ark of the Covenant stayed here for 18 years

언약궤가 18년동안 머물렀던 곳

가는 길에 현지 안내인이 위에 사진 찍은 곳이 하나님의 언약궤가 다윗 시대에 18년 동안 머물렀던 곳이라고 얘기해 줬다. 아마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들어봤을 것이다. 여기에 언약궤가 있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왔을 때 다윗이 좋아서 춤을 추다가 바지가 벗겨졌던 일 말이다.

David and Goliath

다윗과 골리앗

그 다음에는 다윗과 골리앗이 싸웠던 지점에 차를 세웠다. 위의 사진에 나오는 부분은 이스라엘 군대가 진을 쳤던 곳이라고 한다.

Green Green on the west

푸르고 푸른 서부

여지까지는 고산지대의 서쪽을 본 적이 없다. 쿰란이나 여리고 같은 동쪽으로만 다닌 데다가 텔 아비브의 벤 구리온 공항에 내린 첫 날은 공항에서 예루살렘에 갈 때 이미 해가 져서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산지대의 동쪽은 거의 모든 부분이 광야였다. 그런데 오늘 고산지대의 서쪽은 완전 푸른 걸 보고 놀랐다. 정말 이런 대비가 있을까.

Lachish Wall

라기스 성벽

마침내 라기스에 도착했다. 라기스는 남왕국 유다의 국경에 있는 곳으로 히스기야 시대에 앗시리아의 군대에 정복당했다.

Lachish from down under

밑에서 바라 본 라기스

밑에서 바라보면, 그냥 그저 그런 언덕중 하나에 불과하다. 전혀 인상적이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하지만 왜 이 장소가 그토록 중요한지는 위에 올라가 보면 안다.

Altar of the Sun

태양신 제단

라기스 성벽에 올라가는 길목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기 전에 가나안 사람들이 세웠던 태양신 제단이 있었다.

View From Lachish

라기스에서 바라본 풍경

일단 라기스 위로 올라가면 왜 중요한지 이해가 된다. 360도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어서 주변 지역을 장악하고 제어할 수 있다. 이 곳은 유다의 군사기지였으며, 정복 당한 뒤에는 앗시리아의 군사기지가 된다. 그리고 지리학적으로도, 이 곳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연결 중간 지점이 된다. 전략적 목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 된다.

Gate of Lachish

라기스 성문

이 것은 라기스 성문으로 세 개의 문과 몇 개의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에 장로들이 나오면 사람들이 각자 하소연이나 문제점등을 갖고 나온다.

Lachish Ramp by Assyrians

앗시리아 군대가 지은 라기스 경사로

이 것은 앗시리아의 경사로 중 일부가 남은 것이다. 성 안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앗시리아 군대가 경사로를 만드는 걸 보고 있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무엇을 느꼈을지, 무슨 기도를 했을지 궁금하다.

Regular size Espresso

일반 크기의 에스프레소

그 후에는 고속도로 휴게실에 들어 갔는데, 맥도날드랑 몇몇 식당이 있었다. 나는 그냥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 마셨다. 커피 맛은 좋았고, 10세겔이였다. 근데 크기가 너무 작았다. 커피잔이 내 손바닥의 반 만했다.

Military Training

군사훈련

군사 훈련등을 하는 걸 몇 번이나 봤다. 휴게소에서는 아파치 헬리콥터 4대가 주변을 계속 비행하고 다녔다. 탱크가 고속도로에서 운반되는 것을 보기도 했다. 당연한 것일지도, 이 땅은 분쟁 지역이니까.

Well of Beersheva

브엘세바의 우물

이 것은 브엘세바의 우물로 이 곳에서 아브라함이 거주민들과 언약을 했는데, 기본적으로는, ‘내가 너희를 선대했으니, 너희도 나와 내 자손에게 선대하라’는 상호존중 계약이다. 그런데, 그 언약은 어디에 갔을까?

Bench at the Beersheva Gate

브엘세바 문의 벤치

이 것은 성문 사이에 있는 벤치로 보아스 시대의 것이다. 이 벤치에 보아스와 마음을 장로 열 명이 앉아서 룻과 나오미에 대한 문제를 의논했다.

Beersheva Downtown

브엘세바 시내

위 사진은 브엘세바의 절반 또는 1/3을 높은 곳에서 찍은 것이다.

House remain on the wall

성벽위에 지은 집터

이 것은 브엘세바의 성벽 위에 지은 집의 터가 남은 것이다. 여리고의 라합의 집도 이 처럼 성벽 위에 지어졌다. 내 생각엔 가난한 사람들이 성벽 위에 집을 짓고 살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적이 침공해 오면, 가장 노출되어 위험하고 무서웠을 테니까.

Where they store rain water

빗물을 저장하는 곳

이 것은 빗물 저장소로 굉장히 깊게 파여있고 그 속에는 빗물을 저장할 공간이 상당히 넓다.

Hagit Beck, Jewish activist

유대인 활동가 하깃 벡

그 뒤에는 하깃 벡이라는 유대인 활동가 아줌마를 브엘세바 인근 마을인 오머에 있는 아줌마 집에서 만났다. 막솜 감시라는 단체에 자원해서 활동하고 있는 분으로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막솜 감시는 이스라엘 군에 의한 팔레스타인 체크 포인트를 말한다.

Hyundai Bethlehem

베들레헴에 있는 현대

베들레헴에서 현대 매장을 봤다. 타지에서 모국 기업이 잘 나가는 걸 보면 늘 기분이 좋다.

Nazi Dental Lab

나찌 치과

이 것은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치과로 이름을 보고 경악했다. 이게 정말 독일의 그 나찌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사람 이름인 것인지, 그리고 사람 이름이라면 그냥 다른 뜻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독일의 나찌를 본따서 지은 것인지 모르겠다.

Saint Gabriel Hotel

성 가브리엘 호텔

성 가브리엘 호텔로 정말 아름다운 호텔이다. 자녁 식사는 부페였는데, 끝내줬다. 다만 룸메이트가 차를 따로 주문했는데, 2불 청구가 되자 매우 언짢아 했고 (내 생각엔 시켰으면 돈 내는 게 당연하지만…) 본인이 미국에서 사온 국제전화 카드가 이스라엘 지역에서는 됐는데, 웨스트뱅크 지역에서는 안되는 등 문제가 좀 있었는데, 그래서 본인에겐 나쁜 호텔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내게는 정말 좋은 호텔이었다.

Blog at Word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