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Sunday, 24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쉰 세번째 날 – 베들레헴의 바라카 장로교회

여기 온 첫날 내가 머무는 집 앞에 장로교 간판이 있는 것을 봤다. 하지만 주인집에서 말하길 주일에 예배드리는 걸 한 번도 못봤다고 한다.

Church Entrance

교회 입구

주인집에서 말하길 베들레헴에는 더 큰 장로교가 있다고 하는데 위치는 잘 모르겠다고. 내가 부탁을 해서 벳자훌 장로교회에 (교회의 정식 이름은 목동의 들판 장로교회다)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위치를 물어봐 줬다. 교회는 헤브론 길에 있었고, 나를 교회까지 태워다 줬다.

Church Building

교회 건물

교회는 길의 아래쪽 (여기는 어디든 언덕이므로)에 있다. 그래서 내가 사진 찍은 곳인 서쪽에서는 지상 1층이 반대쪽인 동쪽에서는 지하 1층이 된다.

Common Room in the church with pingpong table

탁구대가 있는 친교실

문을 들어서면 바로 예배당의 뒷 부분으로 가게 된다. 거기서 오른쪽에 문이 있는데, 친교실로 가게 되며, 친교실에서 예배후 차를 마시거나 한다. 이 곳에서 청년부 모임이 있을 때에는 탁구도 친다고 한다.

Simultaneous Translator Receiver

동시통역 수신기

친교실에서는 기술실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 곳에서 프로젝터와 컴퓨터 등을 제어 및 사용하며 사운드믹서 등이 있다. 또한 동시통역 설비까지 갖추고 있다. 오늘은 나 하나를 위해서 동시통역이 이루어 졌다.

Christmas Year Round

연중 성탄절

베들레헴에서는 어디든 언제든 성탄절이다.

Childrens' Story Time

어린이 설교 시간

예배는 캐나다나 미국의 장로교 예배와 거의 같다. 아이들 포함해서 약 50명 정도가 참석했다. 어린이 설교 시간이 있고, 그 후에 아이들이 주일학교에 가는 것도 캐나다 미국과 같다. 예배는 캐나다 미국과 비슷하지만, 인구 구성은 좀 다른데, 대부분이 2-30대의 젊은 부모들이었다. 꽤 이상적인 인구 구성인 아닌가. 이곳에서도 그리스 정교회 같은 경우는 대부분 나이 많이 잡수신 분들이 교회에 간다. 예배는 1시간 반 정도였는데, 그리스 정교회 처럼 3시간이 아닌 게 너무 감사하다.

Back to School Gift

개학 선물

모든 아이들은 주일학교에서 학용품 꾸러미를 선물로 받았는데, 내일 개학이라고 한다.

Playground at Church

교회 놀이터

북미에 있는 교회들은 대부분 뜰이 있고 내가 다니는 네이퍼빌의 낙스 장로교회와 같이 부자교회는 자체 놀이터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교회는 놀이터가 있는 걸 본 적이 없다. 이 곳에서도 내가 방문해본 그리스 정교회는 아이들 놀이터가 없었다. 그런데 여기 장로교회에서 아이들 놀이터가 비록 조그마지만 있는 게 너무 좋았다.

Olive Everywhere

감람나무는 어디에나

여기는 무슨 공터만 있으면 감람나무 (올리브)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게 무슨 법이나 되는 듯 하다.

오늘 보니 벳자훌에 있는 장로교회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주일 예배를 이 곳에 합류해서 드린다. 사실 이곳 베들레헴 장로교회의 지부라고 한다. 또한 벳자훌에 보육원과 교육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어째든, 덕분에 집에 돌아올 때 한시간 20분 넘게 걷지 않고 차를 얻어 타고 왔다. 벳자훌 장로교회가 내가 사는 집의 진짜 옆집이라는 게 너무 감사할 뿐.

예배후 친교 시간에 사람들이 내게 여러 질문을 했다. 그 중에는 “외로워?”같은 것도 있었는데, 아마 미혼인지를 묻는 것 같았다. 왜냐면 바로 다음에 예수님 믿는 참한 아가씨 많다고 내게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나 밋-자위즈”라고 말을 했다. 이 말은 자위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결혼했다는 뜻이다. 또 다른 아주머니가 여기에 얼마나 있었냐고 물었는데, 내가 되물으면서 “팔레스타인 말이에요?”라고 하자 “팔레스탄이라고 말해줘서 고마워요”라고 했다. 나중에 서안지구(웨스트 뱅크)를 여행할 사람에게 조언을 하나 하자면, 여기를 “이스라엘”이라고 칭하는 건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다. 또한 여기 사람들은 서안지구(웨스트 뱅크)라고 불리는 것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제일 좋은 것은 “팔레스타인”이라고 불러주는 것이다.

Who knows this?

이거 기억하는 사람?

교회에서는 몇몇 기념품과 교회 음악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 중에 일부는 카세트 테입으로 되어 있었다. 카세트 테입을 들어본 게 몇년 전인지 기억도 안난다. 이걸 틀만한 플레이어도 없기에 CD보다 훨신 쌈에도 불구하고 살 수가 없었다. 근데, 이건 판다는 건 사람들이 아직도 카세트 테입을 듣는다는 거 아닌가?

Arabic Gospel CD

아랍어 찬양 CD

카세트 테입 대신에 아랍어도 된 찬양 CD를 샀다. 내 이웃이 원한다면 빌려줄 수도 있다. 교회에서는 30세겔에 팔고 있었는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아마존에서는 좀 더 싸게 살 수 있었다. 하지만 5세겔 (약 2천원) 정도고 그냥 교회를 도왔다고 생각하련다.

오늘의 주제와 관련있는 건 아니지만, 주인집 아저씨가 이스라엘 정부에서 만든 경보 어플을 깔았다. 이 어플은 가자에서 미사일, 로켓이 발사되면 위치를 경보로 알려주고 사이렌을 울려준다. 그런데 정말 말 그대로 1분에 두 번씩 경보가 울린다. 위치는 대부분 남부 이스라엘이어서 대피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여기 벳자훌이나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대피소 자체가 없어서 대피할 곳도 없다.

Saturday, 23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쉰 두번째 날 – 목동의 들판 두 곳과 마리아의 우물

천주교 (프란시스코 회)의 목동의 들판은 이미 두 번이나 가 봤다. 한 번은 맥코믹에서 지난 일월에, 또 한번은 혼자서 지난 달에. 하지만 벳자훌에는 목동의 들판 이 세 곳이나 있다고 하는데, 하나는 프란시스코 회, 또 하나는 그리스 정교회, 마지막은 내 기억이 맞다면 침례교일 것이다. 하지만 모두들 마지막 것은 가볼 필요조차 없다고 해서 안가기로 했다.

집을 나서기 전에 주인 아주머니에게 그리스 정교회 목동의 들판을 어떻게 가는지 물었다. 설명을 해줬지만 100% 확실하지는 않아서 구글맵을 켜고는 지도에서 좀 찍어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아래와 같은 일이 생겼다:

Map is alien language to women

여성들에게 지도는 외계 언어일뿐

아주머니가 말로 설명해준 것은 정확했지만 지도는 꽝이었다. 여기서 태어나서 이 곳에서 50년 가량 살았는데 이 근방 지도를 못 본다는 게 이해가 안됐다. 이 집에만 벌써 11년째 살고 있고, 그리스 정교회 목동의 들판은 1키로도 안되는 곳인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내 생각에 아내랑 다툼한 것의 한 80%는 지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여자는 지도를 원래 못 읽게 만들어진 걸까? 하지만 여자들은 언어 능력이 우월하니 그걸로 쌤쌤인 셈.

Greek Orthodox Shepherds' Field Gate

그리스 정교회 목동의 들판 정문

그리스 정교회 목동의 들판에 가고 있을 때, 정문이 굳게 닫혀 있었는데 곧 한 무리의 관광객이 오더니 문이 열렸다. 그래서 그 틈에 껴서 같이 들어갔다.

Greek Orthodox Church Building

그리스 정교회 예배당 건물

이게 교회 건물이다.

Ceiling of the Greek Orthodox Church

그리스 정교회의 천장

100%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가본 그리스 정교회 건물에서는 공통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가장 흥미로운 것은 예배당의 돔으로 되어서 위로 올라간 곳에는 반드시 아래를 내려다 보시는 예수님 그림이 그려져 있다.

To the cave of Greek Orthodox Shepherds' Field

그리스 정교회 목동의 들판의 동굴로 가는 입구

교회 건물 밖에는 동굴로 가는 입구가 있었다.

Sanctuary in the cave

동굴 내부의 예배당

계단을 내려가니 거기에도 예배당이 있었다.

Shepherds' skulls

목동의 해골

거기엔 해골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에 목동의 무덤이라는 표지가 있었다. 동굴 바닥의 모자이크는 5세기에 만들어진 거라고 한다.

Barbarian Destruction

야만인의 파괴

동굴 위와 주변에는 보는 바와 같이 고대 교회 건물 셋의 유적지가 있다.

To the Virgin Mary's Well

성모 마리아의 우물 입구

여기를 나와서 프란시스코 회의 목동의 들판에 가려고 했다. 길의 표지를 보고 따라 갔는데, 길을 잃어 버렸다. 그리고는 내가 벳자훌 다운타운에 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걸 다운타운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시내 번화가가 맞긴 한데, 위치상으로는 산위에 있어서 다른 곳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어째든, 성모 마리아의 우물에 가깝다는 걸 알기 때문에 거길 가려고 사람들에게 아랍어와 영어를 섞어서 물어봤다. “브띠아으라프 버진 메리스 웰?” 사람들이 그랬더니 영어 부분을 못 알아 드는 거였다. 그래서 핸드폰의 구글 번역기를 통해서 버진 메리스 웰을 아랍어로 번역해서 보여줬더니 여전히 못 알아 본다. 마지막에는 아까 찍었던 길거리 표지 사진을 보여줬더니 알아 보고는 손가락으로 바로 저기라고 가르쳐 줬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길거리 표지의 아랍어와 구글 번역기에서 번역한 아랍어가 다르다. 아랍어 이름이 단순 번역이 아닐 수 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예루살렘도 아랍어로는 일-쿳즈라고 하는데 이는 “거룩”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다마스커스 문도 아랍어로는 밥 일-우아무드라고 하는데 이는 기둥의 문이라는 뜻이다.

Virgin Mary's Well

성모 마리아의 우물

성모 마리아의 우물에는 아주머니 대여섯분이 있었는데, 아마 교회에서 자원봉사 나오신 분 같았다. 그 분들이 성모 마리아가 이 우물에서 길러 마셨다고 얘기해 줬다. 여기 물은 빗물이 아니라 지하수인데, 원래는 가득 차 있지만 지금은 유지보수 공사 때문에 물을 비운 상태다.

Entrance to the Franciscan Shepherds' Field

프란시스코 회 목동의 들판 입구

그 뒤에는 프란시스코 회 목동의 들판까지 걸어 갔는데, 가는 도중에 대여섯 번 정도 길을 물었다. 이미 두 번이나 가 봤기 때문에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런데도 여길 굳이 걸어온 이유는 위치를 알기 위해서였다. 택시나 버스를 타고 가면 위치를 제대로 알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걸어갔기 때문에 이 위치가 내 머릿속의 지도에 확실에 박혔다.

To the Excavation site

발굴 현장으로

안에 잠시 들어갔다가 바로 나오려는데, 뭔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고고학 발굴 현장!

Ruin of the Ancient Church

고대 교회의 유적

고대 교회의 유적이 좀 있다.

Deep Caves in excavation site

발굴 현장에 있는 깊은 동굴

아래쪽에는 여러 동굴이 있었다.

Ruth Restaurant

룻의 식당

여기는 프란시스코 회 목동의 들판 옆에 있는 식당이다. 맥코믹 그룹은 이 곳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목동의 들판을 방문했을 때 이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프란시스코 회 목동의 들판 주변은 다윗왕의 할아버지인 보아스 소유의 밭이었다고 믿어지고 있다. 그런 연유로 식당 이름이 룻이다.

목동의 들판 두 곳을 다녀본 후에 내가 받은 인상은 프란스시코 회가 그리스 정교회보다 관광객이 뭘 보고 싶어하는지 더 잘 이해하고 있지 싶다.

Sunday, 17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마흔 여섯째 날 – 팔레스타인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에서 주일 예배

오늘은 주인집 아주머니를 따라 벳자훌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에 갔다. 예배는 아침 7시에 시작인데 집에서 7시 5분에 출발했다. 교회 가는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는데 벳자훌이 상당히 조그만 마을이기 때문이다.

Paintings in Narthex

복도의 그림

성전 들어가기 전의 공간에는 그림이 네 개 걸려 있었는데, 그 중 두 개는 알겠고 나머지 두개는 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알아 본 것 두 개는 당연히 예수님 그림과 성모 마리아 그림이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곳에 서서 그림 네개에 모두 절하고 뽀뽀했다.

Candle Light

촛불

성전 앞 공간의 한쪽 구석에는 촛불을 결 수 있는 곳이 있었고, 나도 하나 켰다.

Blessing, blessing

축복, 축복

예배 내내 사람들이 앞쪽의 오른쪽 구석으로 식구별로 나갔다. 그리고 사제 앞에 허리를 굽혀 머리를 숙이는데, 여자는 반드시 스카프로 머리를 가려야 한다. 그러면 사제가 수건 같은 걸로 모든 사람들의 머리를 덮어준다. 그리고 손으로 십자가 모양을 만들고는 뭐라고 한참 축복을 하고, 마지막으로 다시 십자가를 손으로 만들면서 축복을 끝낸다. 그리고 수건을 치우고 나서 포도주와 빵을 각자에게 먹인다. 성찬인 듯 하지만 성찬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또 아니다.

Kissing the Bible

성경에 뽀뽀를

실제 예배는 8시 15분 경에 시작한다.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한 건 뭐? 지금까지는 예배에 대한 준비로 하나님께 예배의 허락을 구하고 축복을 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제가 황금 성경을 들면, 앞자리에 있는 남자들은 위로 올라가 성경에 뽀뽀를 한다. 그 후에는 사제가 성경을 들고 성전 중간쯤으로 나오면 여자들이 똑같이 성경에 뽀뽀를 한다.

Light up the Church!

성전을 밝히라!

그 후에는 성전에 있는 모든 불을 켠다. 심지어는 성탄절 장식까지 불을 켠다. (뒷문에 있다)

Choir seat

성가대석

성가대는 2층에 있다.

First Procession

첫번째 행진

그 뒤에는 행진을 한다. 소년들이 초 두개, 심볼 두 개, 그리고 십자가를 들고 행진을 하면 사제들이 성경책을 들고 뒤따른다. 십자가 앞에 가는 심볼 두 개는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을 의미한다고 한다.

Men and Women should not seat together

남녀칠세부동석

이스라엘에 있는 대부분의 유대인 회당은 남자와 여자 공간이 따로 있다. 하지만 교회는 그런 거 없다. 모든 남자와 여자는 한 공간에서 함께 하나님을 섬긴다. 하지만 위 사진을 잘 보면, 모든 남자들은 앞쪽에 몰려 앉아 있고, 여자들은 모두 남자들 뒤쪽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주인집 아주머니와 함께 갔기 때문에 거의 맨 뒤에 앉았다. 주변의 모든 여자들이 날 쳐다보는 눈빛이 “이자식 뭐야?” 하는 듯 했다.

Second Procession

두번째 행진

예배가 거의 끝날 때 즈음, 두 번째 행진이 있었다. 행진을 할 동안에는 사람들이 물품 (심볼, 십자가, 성경)들에 뽀뽀를 하거나 자기 손가락에 뽀뽀한 후에 손가락을 물품들을 향해 뻗는다.

Offering is Universal

헌금은 세계 공통

헌금 걷는 방식은 전세계 공통인듯 별반 다르지 않다.

Sharing the bread, but not communion

떡은 떼지만 성찬은 아니다

그 후에 어떤 아저씨가 사람들에게 빵 덩어리를 나눠주기 시작했고, 앉아있던 많은 (나이드신) 아주머니들도 집에서 자신이 가져온 빵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게 성찬인가 보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아니었다. 이를 거룩한 빵 (혹시 진설병을 말하는게 아닌지)이라고 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성찬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다 먹고 축복을 받도록 이런 빵을 모두에게 나눠주는 거라고 한다.

This is communion

드디어 성찬

그리고 나서 예배의 맨 마지막에 진짜 성찬이 있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앞으로 나아갔다. 사제는 포도주와 빵을 축복하고는 한사람 한사람 나눠줬다. 몇분 전에 들은 대로 모두가 성찬에 나가는 건 아니었다. 무슨 규칙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규칙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 그냥 나가지 않았다.

예배는 총 3시간동안 진행되었다. 전형적인 장로교 또는 여느 개신교 예배와는 완전 달랐다. 내가 만일 아랍어를 알아 들었다면 더 좋고 신났을텐데. 음악담당(캔터)이 굉장히 노래를 많이 했다. 캔터는 무대 또는 성소의 양옆에 있었는데, 누군가 그러기를 성경 혹은 자신들의 전승에서 어떤 사람이 천국을 봤는데, 천사들이 보좌 양 옆에서 찬양을 하는 것을 봤다고 한다. 그래서 캔터들이 양 옆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

좀 지루했지만 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Thursday, 14 August 2014

두번째 성지 여행 – 마흔 세번째 날 – 베들레헴과 벳자훌

나는 베들레헴에 있는 베들레헴 대학교에서 공부하지만 벳자훌에 있는 집에 머문다. 날마다 등하교를 걸어서 한다. 한번 걷는데 50분이 걸리니까, 하루에 100분을 걷는 셈이다. 베들레헴과 벳자훌 모두 조그만 마을로 한 마을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다. 내가 머무는 집이 벳자훌의 반대편 외각에 있기 때문에 걷는 거리가 훨씬 멀어지는데, 만일 벳자훌 시내에서 베들레헴 시내까지 걸어 간다면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두 마을이 얼마나 조그만지 이해가 될 것이다.

Christians are easily found in Bethlehem and Beit Sahour

베들레헴과 벳자훌에서는 기독교인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굉장히 가깝기 때문에 두 마을에는 비슷한 점이 굉장히 많고, 베들레헴의 반대편에 있는 벳잘라를 포함해서 세 마을이 하나의 경제권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두 마을에는 굉장히 많은 차이점이 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두 마을 모두 기독교인이 굉장히 많다. 이는 위치의 특수성 때문인데, 베들레헴은 기독교에서 구세주로 믿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곳이고, 벳자훌은 목동의 들판이 있는 곳이다. 이 목동의 들판이란 천사들이 양치는 목동들에게 나타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려준 곳이다. 하지만 베들레헴에는 기독교인의 대다수가 천주교고, 벳자훌에는 대부분이 그리스 정교회다.

두 마을 모두 아랍어를 쓰지만 좀 다르다. 발음도 다르고 단어와 표현도 또한 다르다. 여기 사람들은 말하는 걸 들어보면 이 사람이 베들레헴에서 왔는지, 아니면 벳자훌 사람인지 100% 알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베들레헴에서는 깔브가 개고, 깔립이 마음이다. 하지만 벳자훌에서는 그 반대가 된다. 그래서 벳자훌 사람이 “내 마음을 받아주오”라고 하면 그게 베들레헴 사람들 귀에는 “내 개(강아지)를 받아주오”로 들린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또한 동사의 활용하는 모습도 다르다. “바꼴”이라는 동사의 2인칭 단수 남성 현재를 한 곳에서는 “브또낄”이라고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브따꼴”이라고 한다. 또한 모른다는 말을 할 때도 벳자훌에서는 “마 바라프”라고 하지만 베들레헴에서는 “바라피쉬”라고 한다.

이러한 언어의 차이 때문에 걸어서 30분도 안걸린다는 근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언을 구사한다고 표현을 한다. 이는 결국 역사적으로 두 마을 사이에 왕래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짐작했겠지만, 주로 베들레헴 사람이 벳자훌 사람들 놀리지 그 반대는 거의 없다고 한다. 마치 서울 사람이 시골 사람 놀리지 시골 사람이 서울 사람 별로 안 놀리는 것 처럼. 그런데, 이런 언어의 차이를 한 번 생각해 보면 참 어처구니 없는게, 마치 신림동 사람과 봉천동 사람이 꽤 다른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두 마을 사람들 모두 굉장히 강하고 분명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있다. 베들레헴 사람, 그리고 벳자훌 사람이라는 인식이 또렷히 박혀 있다. 물론 그 둘 모두 팔레스타인 사람이라는 강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Monday, 27 January 2014

이스라엘 여행 열뻔째 날: 성탄교회와 난민 수용소

오늘은 강의로 점철된 날이었다.

Stars and Bucks

스타 앤 벅스

버스 터미널에서 내려서 성탄교회로 걸어가다가 스타벅스를 발견했는데, 스타벅스가 아니었다.

Christmas Tree

크리스마스 트리

베들레헴 평화 센터 앞 또는 성탄 교회 사이에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서 있었다. 밤에는 불이 켜지는지 궁금했다. 전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을 다 볼 수 있었다. 내가 인식할 수 있는 언어만 해도 중국어, 한국어, 영어, 불어, 스페인어가 있었고, 인식하지 못하는 언어들도 많이 있었다. 예수님은 여기서 태어나신 것만으로 얼마나 많이 지역경제에 이바지하시는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Church of Nativity

성탄교회

여기가 성탄교회로 콘스탄틴 대제(개인적으로 대제라는 표현을 싫어함)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최초로 지은 교회다. 헬레나가 이 교회를 짓고 나서 한참 후에 페르시아 제국이 쳐들어 왔는데, 교회란 교회는 모조리 때려부쉈다고 한다. 그런데 페르시아 군대가 이 교회에 와서 때려 부수려고 할 때,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님께 예물을 바치는 그림을 봤는데, 동방박사의 옷차림이 완전 페르시아 복장이었기 때문에, “어라, 여기는 우리 조상과 연관이 있는 건물인가 보다’ 생각을 하고 이 교회 하나만 남겨뒀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화적 다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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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 셋을 비교해 보면, 원래는 거대한 문이 있는 걸 첫번째 사진에서 알 수 있는데, 그 다음인 중간 사진에서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마차가 다닐 정도의 크기며, 마지막 사진에서는 좁고 낮아져서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다닐 수 없게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는 아기 예수님 앞에서 겸손하라는 의미로 그렇게 했다고 한다.

Church of Nativity Catholic Sanctuary

성탄교회의 천주교쪽 예배당

원래 헬레나에 의해 지어진 교회는 십자군에 의해 수리되었고 현재는 그리스 정교회 소유로, 그 옆에는 천주교회가 붙어 있다.

Jerome translated here the Bible into Latin Vulgate with the help of Paula and her daughter

이 곳에서 제롬이 파울라와 그녀의 딸의 도움을 받아서 성경을 라틴 불가탄으로 번역했다

천주교회도 당연히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지만 목적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제롬이다. 천주교회에서 지하로 내려가면 제롬이 머물고 작업했던 곳을 볼 수 있다. 사진을 보면, 왼쪽의 둘이 파울라와 그녀의 딸로 제롬을 물심양면 도와줬다. 제롬은 천주교 교부중에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기 위해 히브리어를 직접 배운 유일한 사람이다. 그런 제롬을 돕기 위해 파울라와 딸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배웠는데, 결국에서 제롬보다 훨씬 유창해졌다고 한다.

Key to Home

집으로 가는 열쇠

여기는 난민 수용소 가운데 한 곳으로 꼭대기에 있는 열쇠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상징한다.

Graffiti on Separation Wall

분리 장벽에 있는 그라피티

장벽에는 많은 그라피티가 있었고, 거리는 쓰레기가 넘쳐서 더러웠다.

SANYO DIGITAL CAMERA SANYO DIGITAL CAMERA

장벽에는 다른 그라피티와 함께 요한복음 3장 16절이 한글로 그려져 있었는데, 나의 머리를 번개가 내리치듯 때렸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그처럼 사랑하시는데… 하나님께서 여기서 고통받는 난민들을 너무 사랑하셔서 이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는데….

Lajee Centre

라지 센터

난민에는 라지 센터라는 곳이 있었다. 정확히 라지 센터가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동 도서관이 있었고 (사진에 우리가 앉아있는 곳), 전산실을 비롯한 몇몇 시설이 있었다.

American History

미국사

놀랍게도, 도서관에는 미국사 전질이 있었다.

Blocking Entanglement

분리 철조망

수용소는 분리장벽으로 둘려쌓여 있었다. 분리장벽 밖에는 예전에 농지로 쓰였던 곳이 있고, 그들의 직장이었던 곳이 있었다. 난민의 대부분은 일자리를 빼앗겼다. 예루살렘까지 예전에는 10분에서 15분 가량 걸렸지만 이제는 이스라엘 검문소 덕분에 2시간 이상이 걸린다.

Bethlehem University

베들레헴 대학교

그 후에 베들레헴 대학교에 갔는데, 건물들이 아름다웠다.

Dr. Mazin Qumsiyeh

마진 쿰시예 박사

마진 쿰시예 박사는 팔레스타인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말해줬다. 흥미롭게도 그는 생물학 박사며 교수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제대로 움직여준다면 이스라엘의 불법 점거를 2주 안에 끝낼 수 있다고 한다.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왜냐면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에 하루에 2백만불씩 갖다 바치고 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점은 미국 정치인들은 유대인 로비스트가 주는 떡값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만일 오바마가 전화해서 이스라엘을 정지시키려 한다면 그 다음날, 그는 더이상 대통령이 아닐 수도 있다.

Lawyer Raffoul Rofa

라풀 로파 변호사

예전에 양치기 언덕에 갈때 식사를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 베들레헴 대학교로 돌아와서 라풀 로파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 변호사는 천주교 인권 센터인 성 아이브에서 일하는데, 변호사 8명을 포함해서 총직원이 20명이라고 한다. 주로 이산가족 재결합과 주택 철거등을 비롯한 문제들을 법률적 차원에서 다룬다고 한다. 건물 철거에 대해서는 15년 동안 수천건을 법원에서 싸웠지만 단 한 건만 허가를 받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한 건도 그들이 잘 싸워서 받아낸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해외 보조를 받아서 지어진 학교 건물이었는데, 학교측에서 미국의 당국에게 연락을 했고 (당신들이 지어준 학교를 이스라엘이 부수려 한다고), 미국에서 이스라엘에 연락을 하자 곧바로 건축허가가 나왔다고 한다.

Rimon Kando Shop

리몬 칸도 기념품 가게

그 다음에는 기념품 가게에서 쇼핑을 할 시간이 있었는데, 매우 유명한 가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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