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Friday, 18 November 2016

Public Library

When people ask me what I am doing these day, I tell them that I spend most of the time at public libraries, and that is true.  After I finished school, I moved into my wife’s parents’ house temporarily (hopefully).  And they do not have internet home.  That is why I began public library tour.

사람들이 요즘 뭐하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시간을 공립 도서관에서 보낸다고 대답한다.  그게 사실이니까. 졸업하고 나서 처가집으로 임시 (제발!) 이사를 갔다.  그런데 집에 인터넷이 없어서 공립 도서관에 가기 시작했다.

I’ve been to many public libraries around Chicago suburbs including Naperville, Aurora, Darien, Bolingbrook, and couple more.  All public libraries have free wi-fi, free A/C and heater (according to season), free books, free CD, free DVD.  They also rent game consoles such as X-Box and PlayStation, game titles, laptops (both PC and Mac), hoopla, netflix and other devices.  At Naperville libraries, the survey is going on what people want to check-out: Google Chromecast, iPad, Go Pro Cam, and couple more cool gadgets.

시카고 교외지역의 여러 공립 도서관에 다녀봤다.  네이퍼빌, 오로라, 대리언, 볼링브룩을 비롯한 여러 도시들인데, 모든 도서관에는 와이파이가 공짜, 냉난방(계절에 따라)이 공짜, 책이 공짜, 음악 씨디가 공짜, 영화 디비디가 공짜다.  또한 엑박이나 플스와 같은 게임기를 대여해 주고, 게임 타이틀도 수천개 빌릴 수 있고, 랩탑 (피씨와 맥 모두)도 빌려주고, 후플라와 넷플릭스 같은 장비도 대여해 준다.  네이퍼빌 도서관에서는 현재 어떤 장비를 추가로 대여하고 싶은지 설문조사 중인데, 장비에는 구글 크롬캐스트, 아이패드, 고프로 캠 등을 비롯한 최신 장비들이 가득 예시되어 있다.

All these are free.  And I wish they would have free coffee as well.  But as Christine, the head librarian at JKM Library (for both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 and Lutheran School of Theology in Chicago), pointed out, these are not free.  The library is run by the taxes we pay.  And for that reason, I am so proud that I am paying tax.  And I am so happy that my tax is used for the public library.

이 모든 게 공짜다!  커피도 좀 공짜로 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JKM 도서관(맥코믹 신학교와 루터교 신학교의 도서관) 관장인 크리스틴이 지적한 것 처럼 이들은 공짜가 아니다.  도서관은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운영된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내가 세금을 낸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또 그 세금이 이런 공립 도서관에 쓰인다는 게 너무 기쁘다.

When I moved to Canada from Korea, I was so surprised at Toronto Public Libraries.  They are so awesome and great.  I’ve never seen such library in Korea.  I guess Korea also has similar ones but they are not accessible.  I usually went to big book stores to read (for free) such as Kyobo and Chongro.  But these libraries in Toronto and also in Winnipeg are so easily accessible and has a lot of books (even Korean books!) and provide various services to the public.  There are giant libraries in downtown area, but there are also small libraries in residential areas.  If the book you want is not available at your next door library, you can ask for it, then they will bring it so that you can pick it up at your own next door library.

한국에서 캐나다로 처음 왔을 때, 토론토 공립 도서관을 보고 너무 놀랐다.  이렇게 좋고 훌륭할 수가!  이런 건 한국에서 본 적이 없었다.  물론 한국에도 이런게 있겠지만 잘 알려지지도 쉽게 갈 수도 없었다.  한국에서는 주로 교보문고나 종로서적과 같은 대형 책방에 가서 책을 공짜로 읽었다.  토론토와 위니펙의 도서관들은 쉽게 찾아갈 수가 있는데다 책도 많았다.  (한국책도 있었다!)  또한 대중에게 여러 다양한 서비스를 해준다.  다운타운 지역에는 거대한 도서관이 있지만, 주거지역에도 도서관들이 많이 있다.  집 근처 도서관에 원하는 책이 없어서 신청을 하면, 그 책을 다른 도서관에서 운반해 줘서 집 옆 도서관에서 찾아갈 수도 있다.

These library system is so cool and awesome.  This is the ONE thing that I love the most in Canada and in America.  God bless the public libraries!

이런 도서관 시스템은 너무 훌륭하고 좋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바로 이런 도서관 시스템이다.  도서관 만세!

Friday, 2 October 2015

니 자식에게도 똑같이 해라

작년 여름(2014)부터 구약의 특정 단어에 대한 조사 및 연구를 시작했다.  갑자기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고 이를 증명하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맥코믹 신학교의 구약 교수면서 학장인 테드 히버트와, 히브리 언어학 교수인 폴라 히버트에게 내 생각을 처음 얘기했을 때, 둘 다 그런 생각은 처음 들어본다고 얘길 했다.  그러니까, 내 생각이 맞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얘기.  하지만, 둘 다 흥미로운 생각이라면서 조사를 해보라고 격려해 줬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책을 빌려주고, 연구 방식 및 방향에 대한 안내도 해줬다.

그 이후로 책들을 여럿 읽었는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리고 맥코믹에 새로 온 구약 교수인 스티드 데이비슨에게 물어봤을 때도 그런 생각은 전혀 들어본 바가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가능성이 더 낮아진 셈이다.

또 몇달 후에, 맥코믹 총장이면서 (예전) 구약 교수인 프랭크 야마다와도 이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 역시 처음 듣는 생소한 생각이라고 했다.  나는 완전 절망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모든 교수들이 나의 생각을 처음 들어 보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격려하고 도와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내 아카데믹 조언 교수인 밥 캐씨와 이 문제에 대해 얘기했을 때, 김모씨라고 하는 맥코믹 졸업생이면서 현재 다른 학교 교수를 하고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 줬다.  그래서 그 김모씨에게 전자우편을 보내서 내 소개를 하고 밥 캐씨가 당신을 추천했다고 말을 했다.

김모씨가 전자우편으로 답장을 했는데, 완전 무례하고 싸가지가 없으며 그 태도가 맥코믹 교수들(또는 미국인 교수들)과는 180도 달랐다.  그딴 허무맹랑하고 공상적인 헛소리에는 해줄 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앞으로 연락하지 말라는 암시를 강하게 풍기는 말을 마지막에 잊지 않았다.

그런 싸가지 없는 반응을 기대하질 않았기 떄문에 너무 충격을 받았다.  밥 캐씨가 김모씨를 소개시켜 줄 때는 아주 정중하고 좋은 사람이면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뭐 맞는 말일 것이다.  그 김모씨라는 작자는 자기보다 힘쎄고 높은 사람들에게는 매우 정중하고 좋은 사람일 것이다.  그 인간이 왜 그리 오만할까?  한국에서 미국에 와서 교수까지 되었기 (그러니까 높은 사회적 지위를 미국에서 성취했기) 때문일까?  한국인들은 한국 문화가 유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유교 경전을 자세히 읽어보면 한국 문화가 공자가 꿈꾸던 그런 사회가 절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인간이 지 자식들에게도 똑같은 태도로 대하길 빈다.  지 자식들의 상상력과 희망을 깨 부수길.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김모씨가 말한 “허무맹랑하고 공상적인 헛소리”가 사실이었음을 최근에 발견했다.

May God let you do the same to your children

Since the summer of last year (2014), I began a research about Old Testament for a specific words.  I had brand new idea and wanted to prove it.  When I told Ted Hiebert, the OT professor and the dean of the faculty at McCormick Theological Seminary, and Paula Hiebert, the Hebrew language professor, they told me they’ve never heard about that idea.  That means there are super big chance for my idea to be wrong.  But they said it is quite interesting idea and encouraged me to dig deeper by guiding me how to do further research on this.  They even lent me their books.

Since then, I was reading many books related to this, and have not found anything meaningful.  Then I talked to Steed Davison, the new McCormick faculty of OT.  He also said he’s never heard about this idea.  Well, the chance for my idea to be right went down even more.

Then couple months later, I had a chance to talk to Frank Yamada, the president of McCormick and also (used to be) OT professor.  He also said “never heard.”  Now I became kind of hopeless.  But even though all of them said “never heard” in one voice, they did not forget to encourage me.

When I talked about this with my academic advisor, Bob Cathey, he gave me a contact information, YS Kim, McCormick graduate and a professor at another school.  So I emailed him introducing myself and that Bob Cathey recommended him.

Kim replied to my email but it was very extremely rude, and the attitude was 180 degree opposite from other McCormick (or American) professors.  He said he has nothing to say about such unclear and imaginative non-sense.  And he discouraged me for further contact with other words.

I was quite shocked because I did not expect that rude reaction.  Bob told me initially that YS is very kind and polite.  Maybe he is, probably only to those who are higher and/or more powerful than he is.  Why is he so proud?  Because he came to America from Korea and became a professor (in other word, achieved very high social location)?  Koreans say that Korean culture is shaped by Confucianism.  But if you read the Confucianism sacred texts carefully, Korean culture is not what Confucius imagined for.

I wish he does the same thing to his children what he did me — kill the imagination and hope.

Well, if I comment one thing, I finally found a proof about what he said “such imaginative non-sense.”

Monday, 29 June 2015

Queer Festival and MERS in Korea

MERS, or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has been around South Korea for couple of months.  Korean government totally failed to stop it when they could have because of their non-response.  And many people were blaming the government of not doing anything.  Korean church faced trouble because they were always pro-power and against people.  So, the Korean church just simply shut themselves up completely for this matter.

중동 호흡기 증후군이라고 하는 메르스가 몇달 동안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해서 막을 수 있었는데도 막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정부를 비판했다.  한국 교회는 난관에 처했다.  왜냐면 한국 교회는 늘 권력을 사랑하고 백성들에 반대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이 문제데 대해 완전 입다물고 있었다.

And at the same time, some people were planning to have Queer Festival in Seoul.  The homophobic Korean church was extremely against this festival, and they did all they can do to stop it from threatening mayor of Seoul.

동시에, 몇몇 사람들이 서울에서 성소수자 축제를 계획하고 있었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한국 교회는 이 축제를 극단적으로 반대했고, 이 축제를 막기 위해 서울 시장을 협박하는 것부터 해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I am OK with the Korean church when they shut up.  I am OK with the Korea church when they are against something.  Then a genius, pious, and religious Christian had an enlightment – the enlightment which I am not OK with.  They were able to defend their beloved government and to stop the festival (hopefully) at the same time – it is truly catching two birds with one stone.

한국 교회가 입 다물고 있는 것도 괜찮다.  한국 교회가 어떤 것에 반대하는 것도 난 괜찮다.  그런데 어떤 천재적이고 경건하고 종교적인 기독교인이 깨닳음의 순간을 얻었다.  그런데 이런 깨닳음이 나는 안 괜찮다.  이제 한국 교회는 자기들이 사랑하는 정부를 옹호하면서 동시에 축제를 막을 수 있게 (막을 수 있기를) 되었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일석이조다.

They said, “God sent MERS to Korea to stop the Queer Festival.”

그들이 말하기를 “성소수자 축제를 멈추기 위해 하나님께서 메르스를 한국에 보내주셨다”고 한다.

But then, the festival was held actually yesterday.  Now, what they can say?  Will they say that their God fails, their God is powerless and unable?

그런데 실제로 축제가 어제 있었다.  이제 한국 교회는 뭐라고 할텐가?  자신들의 하나님은 실패하는 하나님이라고? 자신들의 하나님은 힘없고, 무능력하고 무기력한 하나님이라고?

Korean church, please shut up forever!  Do never mess up with God.  Don’t say what you think is what God thinks.

한국 교회여 제발 좀 영원히 닥치고 있어라.  절대 하나님 갖고 장난질 치지 말아라!  지들이 원하는 걸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지 말아라!

Saturday, 2 June 2012

Memory of Chajang-myoun

There is a famous and popular Koreanised Chinese dish named Jajangmyeon which is thick noodle with black paste. I bet all Koreansknow it. When I was young, it was one of the very expensive food which we can afford only on special occasions.

Delicous as always. It had been far too long s...

Jajangmyeon. (Photo credit: Wikipedia)

My earliest memory goes back to my youngest sister’s graduation from elementary school. My father allowed my sister to eat it. So my sister and I went to a Chinese Restaurant on the way to school. It was 25 cents for one bowl, and 30 cents for bigger size bowl.

Not only to our family, but to any average families in Korea, this noodle was expensive and special food. So when you move, your friends and neighbours help. Then you have to treat them with good foods. So the movers bought and treated the helpers with Jajangmyeon. And now these days, it is not expensive food but still that custom is alive.

자장면 또는 짜장면이 예전에는 꽤 비싼 음식이어서 우리 집은 내가 어릴 때에 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자장면에 대한 가장 이른 기억은 막내 누나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에 아버지가 자장면을 사먹도록 허락해준 것이다. 누나와 함께 학교 가는 길 중간에 있던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먹었는데 그때 가격으로 250원이었고, 곱배기는 300원이었다.

우리 집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가정들에도 자장면은 비싸고 특별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만일 이사를 할때는, 친구들이 도와주는데, 도움 주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대접해야 하기 때문에 자장면을 사줘서 대접을 했었다. 요즘은 자장면이 비싼 음식이 아니지만 그러한 관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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