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h and Je together

Thursday, 10 November 2016

낙태에 대해

최근에 폴란드와 한국에서 낙태가 큰 이슈가 되었고, 게다가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낙태하는 여자들을 처벌하겠다고 공약을 했기 때문에 낙태에 대한 내 생각을 좀 정리해야 겠다고 생각되었다.  이 것은 내가 나중에 참고하기 위한 것으로, 나도 인간이기 때문에 내 생각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을 분들은 끝까지 읽기 바랍니다.  다만 말이 좀 거칩니다.

나는 생명을 존중하는가(프로라이프)?

나는 프로라이프다 (프로라이프 pro-life는 낙태를 할 권리보다 태아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것이며, 그 반대는 프로초이스 pro-choice가 있다).  나는 할 수 있을 때는 늘 그리고 언제나 생명을 선택할 것이다.  내 생각에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므로 고결하다고 본다.  잉태되는 순간 비록 사람처럼 보이지 않지만 수정란이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모든 생명은 특별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하기 때문에 낙태는 살인의 다른 표현에 다름 아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결혼 5년 동안 아이를 가지려 하는데 성공하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도 인정하는 바다.

낙태를 금지해야 하나?

아니, 그건 아닌 거 같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기 사정이 있는 법이어서 하나님처럼 전지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다른 이들을 판변할 수 었다고 본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가 캐나다 살 때 명예 살인이 있었는데, 이민온 이슬람 가족이었는데, 아버지가 고등학생 딸 아이를 죽였다.  그 딸이 강간을 당해 임신을 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 여학생이 낙태를 쉽게 받을 수 있었다면 (아버지 몰래) 지금도 살아있을테지.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낙태가 필요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이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십대 미혼모들이 날마다 얼마나 큰 고통과 차별을 받는지 모두 알 것이다.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그 모든 차별과 고통을 평생 감내하면서 살라고 강요할 수 있나?

낙태하는 여자를 처벌해야 하나?

무슨 개 좃같은 트럼프같은 소리를 하고 지랄이야.  여자들이 재밌어서, 좋아서 낙태 하는 줄 알아? 얼마나 낙심되고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면 낙태를 다 하려고 하겠어?  그런 여자들은 처벌이 필요한게 아니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온 사회가, 온 나라가, 아니 온 우주가 일어서서 그런 여자들을 도와줘도 모자를 판에.

만일 정 누군가를 처벌해야겠다면, 임신한 여자 뒤에 숨어있는 남자를 찾아서 처벌해라.  내가 알기로, 그리고 믿기로, 동정녀 마리아는 역사상 한 분 뿐이다.  그분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여자도 남자없이 임신하지 못한다. 반복하는데, 정 누군가를 처벌해야겠다면, 자지를 마구 놀리는 그 자식을 찾아서 처벌해라.

여자가 낙태를 생각한다면, 그녀는 바로 피해자다.  그게 강간이던, 연인사이의 일이던, 아니면 심지어는 결혼한 부부가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것이든 관계없다.  어떤 지랄같은 야만적인 사회가 피해자를 처벌하나?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여자가 낙태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뭘 해야 하나?

첫째, 우리는 우리 사회를 개선하고 우리들 스스로를 문명화해서 낙태가 필요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강간이 (부부사이의 강간도 포함) 사라지도록 남자들을 교육시키는 것을 포함하며 또한 미혼모들이 차별을 받지 않고 대신에 미혼모 되는 것이 개이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혜택과 돌봄과 따스한 시선을 줘서 여자들이 낙태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을 포함한다.

둘째, 우리 사회가 이상적인 유토피아가 되기 전까지는 낙태 서비스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낙태 서비스를 정말 받기 쉽도록 하고, 완전 극도로 비밀스럽게 유지해야 한다.  이런 비밀성은 특히 식구들 (남자 식구들에겐 더더욱)에게 확실하게 유지되어서 누가 낙태를 했는지, 누가 상담을 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서비스는 인터넷, 전화, 문자, 소셜 미디어, 본인방문, 우편 등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특수한 그룹을 만들어서 (국가에 한 그룹이나 지역별로 개별 그룹일 수도 있다) 낙태를 생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이미 받은 여성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고심하고 고민해야 한다. 여성들이 백명이면 사연과 사정은 천 가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논의는 매우 진지하고 자세하고 깊이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이자 마지막으로, 우리 문화를 바꿔서 남자에겐 엄격하고 여자에겐 공정하게 대할 수 있어야한다.  우리 사회는 강간범들에겐 너무 관대하다.  미국의 브록 터너뿐만 아니라 한국의 수많은 개별 또는 집간 강간 (소위 돌림빵)을 한 사람들이 너무 말이 안되도록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  이는 강간해도 된다는 메세지를 던지는 것과 같다.  통계에 따르면 모든 범죄 중에 강간이 재발비율이 제일 높다고 한다.  심지어 강간은 마약 및 알콜 중도보다도 더 재발을 높게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법으로 처벌을 강하게 해서 강간범들은 모조리 자지를 잘라 버리도록 해야 한다.  자지가 없으면 강간도 못하겠지.  내 생각엔 이게 재발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런 성차별적이고 남성우월주의적인 나라에서 여자는 한낱 성적인 대상으로밖에 취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는 낙태에 대한 필요는 더욱 늘릴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문화와 일반적인 인식을 바꿔야만 한다. 우리가 강간 피해자들을 비난하는데 너무 익숙한데, 이건 너무 억울하다.  니가 씨발 야하게 입었잖아.  너가 취했잖아.  이 썅 누가 밤늦게 다니래 등등.  사람들은 이게 말도 안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여자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다녀도 안전해야 한다.  여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은 아무리 술에 취해 있어도 안전해야 한다.  여자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은 어떤 시간이던지 안전해야 한다.

한번 당신이 테슬라를 새로 샀다고 생각해 보자.  그 섹시하고 엄청난 전기차인 테슬라 말이다.  그런데 다른 차가 있어서 일단 차고에 넣지 못하고 집앞에 주차를 시켰는데 차를 도둑맞았다.  그래서 경찰에 신고했는데, 경찰이 한다는 소리가 “뭐요? 집앞에 뒀다고요? 뭐 씨발 그냥 훔쳐가 달라고 도둑한데 애원을 했네. 이건 전적으로 아저씨 잘못이에요. 아 일단 백프로 본인 과실이니까 저희 경찰들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네요.  이거 미친놈 아냐? 테슬라를 집앞에 둬? 븅신.”  이게 바로 강간 피해자를 비난 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다.  만일 어떤 여성이 강간을 당한다면, 그건 그 여성의 잘못이 아니다.  그건 일단 강간범의 잘못이고, 우리–이 사회의 개개인 구성원–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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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2 January 2016

성적 공평

몇일 전에 “미국의 성평등“이라는 포스팅에서 성적 공평과 성적 평등에 대해 언급을 했다.  이에 대해 차이점을 좀 더 명확히 하고 왜 내가 평등보다는 공평을 추구하는지 얘기하고 싶다.  시작하기 전에, 신학교의 한 친구가 내가 공평 fairness라는 말을 할 때마다 공정 equity라고 자꾸 정정을 해 주는데, 나도 equity라는 단어를 알지만 피하고 있다.  첫 이유로는 equality하고 철자 및 발음이 너무 비슷하다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fairness가 모든 사람들에게 쉬운 단어라는 점이다.  고등교육의 가장 큰 목적 가운데 하나라면 아마도 똑같은 것을 더욱 어렵고 현학적인 말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도 못하고 혼동되고 괜히 멋있게 보이도록.  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말과 내가 쓰는 글이 심지어는 국민학교 졸업한 사람들조차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성적 평등은 내가 정의하기에는 남자와 여자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똑같은 일을 해서 남자가 100불을 받는다면, 어떤 여자도 같은 금액인 100불을 받아야 한다.  또 어떤 자선단체에서 물품을 노숙자들에게 나눠준다고 할 때, 남자들에게 나눠주는 것과 같은 양 및 가치를 여자 노숙자들도 공급받아야 한다.  이게 바로 성적 평등이다.  그리고 예전에도 썼지만, 제3세계는 말할 것도 없이 미국에서도 아직 성적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성적 공평이란 무엇인가?  아주 멋지고 현학적인 학자처럼 단문으로 정의하기 보다는 예시를 하나 들겠다 — 실제 있었던 일을.  한국에서 여행을 할 때, 한 번은 고속도로 휴게실에 들어갔는데, 작은 식당이 하나 있고, 남녀 화장실이 있었다.  그리고 전세버스가 둘 들어왔고 약 70명 쯤 되는 사람들이 용무가 급해서 마구 쏟아져 나왔다.  내가 기억하기에는 남녀의 비율이 거의 같았고, 화장실도 남녀모두 칸이 다섯개씩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그 휴게실에서는 성적 평등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상황은 좀 달랐다.  한 십 분 정도에 남자는 줄이 사라졌지만 여자들은 여전히 긴 줄을 서 있었고 뒤에 서 있는 많은 여자들이 용무가 너무 급해서 다리를 꼬거나 발을 구르고 있었다.  이 예에서 내가 생각하는 공평은 남녀의 대기시간이 같은 것이다.  만일 남자가 최대 10분을 기다린다면 여자도 딱 그만큼 기다려서 볼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 상황에서는 성적 평등은 있으나 성적 공평은 없다고 하겠다.

위에서 쓴 바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성적 평등조차 존재하질 않는다.  성적 평등이 존재하는 곳에서도 상황이 이런데, 실제로는 얼마나 더 심할까?  우리의 문화, 관습, 그리고 전통 때문에 불평등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만일 남자 칸이 다섯, 여자 칸이 셋 뿐이었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등이 아니라 공평하기 위해서는 여자에게 불당하다고 생각될 만큼 더 큰 이득을 줘야만 한다.  그러면 성적 공평이 이뤄질 수도 있을지도.

위에 든 예는 한국이지만, 시카고에서도 많이 봤다.  어디를 가든 아무데를 가든, 심지어는 그 유명한 관광지인 네이비피어를 가도 마찬가지다.  성적 평등이 없기 때문에 현재는 성적 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그게 우리의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반드시 성적 공평이 되어야 한다.

노숙자에 대한 물품 배분에 대한 얘길 했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여성 노숙자가 더 많이 받아야 한다.  적어도 생리대를 포함한 여성용 청결제등은 더 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미혼모는 … 아 정말 내가 이런 부분까지 설명을 해야 하나?

기독교인들이여 시민들이여, 공평한 사회를 만듭시다!

Gender Fairness

Couple days ago I mentioned gender fairness and equality in my previous posting “Gender Equality in America.”  I want to clarify the difference and why I pursue gender fairness rather than equality.  Before I begin, a good friend of mine at the seminary corrected me almost every time I use fairness that it should be equity.  Well, I do know the word equity but I would like to avoid it.  First because it looks and sounds quite similar to equality.  Second because fairness is easier to everybody.  One of the big goal of higher education is to learn how to say the same thing in difficult terminology so that other people may not understand and confused.  But I want my words and writings easy enough to everybody so that those people even with only elementary education could understand what I am saying.

Gender equality, as I define, is that man and woman get the same thing.  By doing the same job, if a man is paid $100, then any woman must be paid the same amount of $100.  And let me say you are a social worker and distributing goods or money to homeless people.  If you are giving some amount of value to a homeless brother, then you should give the same amount of value to any homeless sister.  This is gender equality.  And as I wrote before, the American society does not have this gender equality not to mention third world countries.

What is, then, gender fairness?  Instead of defining it with one sentence like a shining gorgeous scholar, let me give you an example — the real life example.  When I was travelling in South Korea, once I stopped at a highway rest area.  There was a small restaurant and rest room for both genders.  Then I saw two chartered buses came and almost seventy some people rushed out because their businesses were so urgent.  As far as I remember the number of male and female was almost equal.  And there were five booths each for both genders, so I would say the rest area has the gender equality.  But what actually happened in real life was different.  Within ten minutes the male queue disappeared while the female queue was still long and many women were kind of jumping or twisting their legs because their businesses were too urgent with long queue.  So, in my idea of fairness, the waiting time must be equal for both of them.  If men wait only ten minutes maximum, so should women.  In that situation, I would say that there was gender equality, but not the gender fairness.

As I wrote above, we don’t even have gender equality in our society.  Then how much would it be really worse because the situation is like that even when there was gender equality?  Because of our culture, custom and tradition, we do not even notice the unequal situation.  We may think it would be normal if we have five booths for men and three for women.  But to be fair, not to be just equal, we must benefit women much more even up to the level it might look not equal and not fair to men.  Then we might have real gender fairness.

The example above is in South Korea, but I saw the same thing in Chicago — every and anywhere including the famous Navy Pier.  We must work for the gender equality for now because we do not even have that, but that should not be our goal.  Our goal must be the gender fairness.

I mentioned about goods distribution to homeless people.  Even for that, homeless sisters must get much more.  At least, they must be supplied with enough feminine sanitising goods including pads.  And for single moms … well, do I really have to explain for this, too?

Let all good Christians citizens arise and make the fair society!

Wednesday, 30 December 2015

표창원 교수

Filed under: Lang:한국어,Subj:Corea,Subj:Life — Jemyoung Leigh @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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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표창원 교수가 교수직 때려치고나서 시카고에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시카고 대학에서 학생들 및 한인들과 모임을 한 적이 있어서 거기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오늘 뉴스를 잠시 보니 표창원 전 교수가 무슨 더민주당? (the 민주당?)인가에 가입을 했다고 하는데, 한국 정치에 큰 관심을 갖고있지 않아서 흐름을 챙겨보지 않다보니 무슨 당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째든 정치를 시작했나 보다.  그리고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을 하나 보게 되었다.

이 영상 하나로 괜찮은 사람을 넘어서, 그냥 팬이 되어 버렸다.  아주 시원하고 통쾌하게 아나운서를 날려버리는 게 너무 좋다.  앞으로도 이렇게 시원하게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

업데이트:  원래 올렸던 MBN 영상이 사라져 버렸다.  엠비엔 병신이었는데, 동영상 삭제로 정식 병신 인증을 했다고 본다.

Tuesday, 14 May 2013

강간 왕국

이 글은 쪽팔려서 영어로 쓸 수가 없다.

일단 한겨레 신문의 기사를 보길 바란다. 여고생 한달새 3번 성폭행 당해…

우선 기사 제목이 틀렸다. 3번이 아니라 4번이다. 난 이 기사를 읽고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최초로 강간한 놈은 차치하고라도, 약을 팔아야 할 놈이 강간하고, 상담을 하는 사람도 강간하고, 손님을 목적지까지 모셔야 할 택시 운전사가 강간하고.

한국은 모든 놈들이 다 강간범인가보다. 이 기사를 읽고 너무 분해서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기사보다 나를 더 놀래킨 것은 내 주변의 한국인들이었다. 그들의 반응은….

“이건 여자가 대 준거야.”

“여자가 잘 못했겠지.”

“여자가 꼬리친거야.”

“여자가 스스로 다리 벌려주기 전에는 죽어도 강간 불가능해. 목숨걸고 반항하면 강제로 절대 못해.”

“여자가 옷을 야하게 입으니까 당하지.”

나는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어떻게 하면 저런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강간을 당한 여자를 감싸주기 보다는 몰아 세우고 강간범을 옹호하는 게 내 멘탈로는 이해가 안간다.

만일 자기 딸이 저렇게 당해도 강간범들에게, “이건 내 딸이 대 준거야.”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여자가 옷을 야하게 입었다고 강간을 해도 된다는 건가?

그래, 목숨걸로 반항하면 못할 수도 있겠지. 근데 여자도 죽고 싶진 않거든. 무섭거든. 무슨 일을 당할 지 겁나거든. 당신도 강도 만나서 목숨 걸고 반항하면 지갑 안 빼앗겨. 근데 강도가 정말 죽일지도, 상해를 입힐지도 모르니 순순히 내놓는 거지. 당신은 강도에게 돈 빼앗기면서 쾌감을 느끼나 보지?

그래…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니까 한국이 점점 강간 공화국 또는 강간 왕국이 되어가는 거겠지.

강간에 대한 나의 확고한 생각은 What can we do for Minor Rapist에 잘 나타나 있다. (영어 아래에 한글 있음)

어째든 오늘 한국인들에 대한 정이 또 확 떨어진다.

Monday, 1 April 2013

Google Treasure Map

Is it for April Fool’s Day? Google Map has Treasure mode. Not much thing in Chicago, but I found three in Seoul.

Admiral Lee, Fighting Robot on top of the Legislature building, and Psy at Gangman!

google treasure

 

만우절용인지는 몰라도 구글에 보물지도가 있다. 시카고 근처에서는 별거 없는데, 서울에서 세 개가 보인다.

이순신 장군과, 국회 의사당 위의 태권V! 그리고 강남에는 싸이!

Sunday, 27 January 2013

섭씨와 화씨의 유래

캐나다에 있다가 미국에 와서 바뀐 가장 큰 것들은 단위로, km가 마일로, kg이 파운드로 바뀌었다. 그 중에 마일이나 파운드 못지않게 큰 영향을 주고 익숙해지기 힘든 것이 바로 온도다. 한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섭씨를 쓰는 반면에 미국에서는 화씨를 쓴다.

영어로는 Celsius와 Fahrenheit라고 쓰는 이 것들은 어떻게 한국에서 섭씨와 화씨라고 불리게 되었을까?

화씨는 독일을 과학자 Fahrenheit(파아렌하이트, 영어로는 패런하이트)가 고안해 냈기 때문에 영어에서는  그대로 Fahrenheit라고 쓴다. 약자로는 첫 글자인 F를 따서 °F를 사용한다. 이 이름을 중국이 번역할 때 소리를 그대로 따서 華倫海特(화륜해특 – 빛날 화, 인륜 륜, 바다 해, 특별할 특)이라고 하는데, 한국어로는 파아렌하이트와 화륜해특이 전혀 안비슷하지만  중국어로는 매우 흡사한 소리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늘 화륜해특 온도라고 하자니 너무 길다는 것. 그래서 이름의 첫 자만 따서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첫 글자가 보통 성씨니까) 사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성씨라고 생각하니까 김씨 이씨 박씨 할 때 사용하는 氏(씨)를 붙여서 華氏(화씨)라고 사용하게 된 것이다.

섭씨도 마찬가지다. 스웨덴 천문학자 Celsius(셀시우스, 영어로는 셀시어스)가 고안해 냈기 때문에 영어에서는 그대로 이름을 사용해서 Celsius라고 하며, 약자로는 첫 글자인 C를 따서 °C를 사용한다. 이 이름을 중국이 번역할 때 소리를 그대로 따서 攝爾修斯(섭이수사 – 끌 섭, 너 이, 닦을  수, 이 사)라고 하는데, 한국어로는 셀시우스와 섭이수사가 전혀 안비슷하지만 중국어로는 매우 흡사한 소리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늘 섭이수사 온도라고 하자니 너무 길다는 것. 그래서 이름의 첫 자만 따서 사용하게 된 것이다. 물론 성씨라고 생각하니까 김씨 이씨 박씨 할 때 사용하는 氏(씨)를 붙여서 攝氏(섭씨)라고 사용하게 된 것이다.

복잡한 화씨와 달리 섭씨는 매우 간결하고 직관적이어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표준으로 사용된다. 섭씨는 물의 어는 점과 끓는 점을 100으로 나눈 것으로 영어에서는 Celsius말고 Centigrade(백 단위)라는 말로도 쓰며 약자는 당연히 °C를 사용한다.

링크: 중국어 위키 섭씨

링크: 중국어 위키 화씨

Wednesday, 26 December 2012

Christmas Services in two cultures

For most Korean Churches (in Korea), Christmas eve is not that important. They just have informal children’s service. And they have one formal service on Christmas day usually 10am or 11am.

But the Churches in Canada or America, most of them don’t have Christmas day service. My Canadian Church has Christmas Day service each year but that Church is kind of exceptional. And even though a Church has Christmas day service, it is informal or family style worship service.

For Christmas eve, most Churches have three services. At least two, and four for some of them. Christmas eve service is very formal and traditional many ways.

For my Canadian Church, we had two services for 4th Advent Sunday morning, and healing service for that night. Four services (if I remember right, it could be three) for Christmas eve, and one for Christmas day, totalling eight services. We called it Worship Service Marathon.

For my American Church, we had a service on the Wednesday before Christmas called Longest Night, two services for the last Advent Sunday, four services for Christmas eve, but none on Christmas day.

One more thing to say is there is no Advent season for Korean Churches. This applies even to Korean Churches in Canada and/or America.

In a word, Korean Church = Christmas Day / Western Churches (Canada and America) = Christmas Eve.

대부분의 한국인 교회 (한국에 있는)들은 성탄 전야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아이들 재롱잔치 성격의 모임이 있고, 성탄절 오전 10시나 11시에 정식 예배를 드린다.

그러나 캐나다 또는 미국 교회는 대체로 성탄절 예배가 없다. 내가 다니던 캐나다 교회에서는 성탄절 예배가 있었는데, 그 교회는 상당히 예외적인 곳이었다. 성탄절 예배가 있어도 캐주얼하고 비공식적인 예배로 추리닝 입고 나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을 정도다.

성탄전야에는, 대부분의 (서양) 교회가 세 번의 예배가 있다. 적어도 두번, 일부는 네 번까지 있다. 성탄전야 예배는 많은 면에서 매우 격식이 있고 공식적인 성격을 띈다.

내 캐나다 교회는 성탄전 주일 오전에 두 번의 예배, 밤에 한번, 그리고 내 기억이 맞다면 성탄전야에 네 번, 그리고 성탄절에 한 번 예배가 있어서 총 8번의 예배가 있는데, 이를 우리들은 예배 마라톤이라고 불렀다.

내가 현재 다니는 미국 교회에서는, 성탄전 수요일에 ‘긴 밤’이라는 예배가 있었고, 성탄절 주일 낮에 두 번, 그리고 성탄전야에 네 번 예배가 있었지만 정작 성탄절에는 예배가 없었다.

또 하나 말하자면 한국 교회에는 Advent가 없다는 것이다. 이 것은 성탄절을 준비하는 성탄절 전의 네 주를 말하는 것으로 각 주가 이름 또는 주제가 있는데, 첫 주일은 희망/소망이고, 둘째 주일은 사랑, 셋째 주일은 기쁨, 마지막 넷째 주일은 평화/평강이다.

한마디로 한국 교회 = 성탄절 / 서양 (캐나다, 미국) 교회 = 성탄전야.

Wednesday, 27 June 2012

Memory of Banana

When I was young in Korea, the king of all fruits was of course Banana.

The fruit and Veggie store had only one bundle of banana which was hung in the centre of the display. The yellow strange thing looked so so much delicious. But I could not eat it because it was too expensive.

Just one banana (not a bundle) was 500 KRW (won) which could be 50cents USD. Sounds very cheap, eh? But it was NOT. At that time, one very expensive meal called Jajangmyeon was 250 won a bowl. Banana was exactly double the price!

Let’s just say a good pizza is $15, then one banana costs $30.

I remember I ate the banana ONLY ONCE when I was young. Once I was out to downtown Seoul with my third sister. And she bought me one because I asked her so eagerly and cried for it. It must be very very big money for her. Even though she was a student and she didn’t work so she got money from our parents.

The unforgettable taste of banana.

어렸을 때 과일의 왕은 당연히 바나나였다.

청과물 가게에서는 바나나 한송이밖에 없었는데, 딱 가게 중앙에 매달아 놨다. 노랗고 이상하게 생긴 것이 너무 맛있게 보였다. 하지만 되게 비싸기 때문에 먹을 수 없었다.

바나나 한개 (한송이 전체가 아니라)가 500원이었다. 500원 하면 꽤 싸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당시 꽤 비싼 음식이었던 자장면도 한그릇에 250원이었는데, 딱 두배가 바나나 값이다.

예를 들어 지금 자장면이 5000원이라고 하면, 바나나 하나 값이 만원인 셈이다.

어렸을 때 딱 한 번 바나나를 먹어본 기억이 난다. 한번은 셋째 누나와 함께 서울 시내에 나갔는데, 엄청 졸라대고 울어서 누나가 사준 적이 있다. 누나에게 무지 큰 돈이었을 것이다. 물론 누나도 학생이었고 일을 안했기 때문에 부보님에게 용돈을 받지만 말이다.

잊을 수 없는 바나나의 맛!

Wednesday, 23 March 2011

Sora Lee

Sora Lee is wonderful and my favourite singer. Her voice and singing moves every one emotionally.

In recent accident during the MBC’s survival show, ‘I am a professional singer,’ I fail to behave herself. Her behaviour is not something acceptable at all.

But still I love her voice and she is my favourite singer. Because what I loved was not her personality but her voice and singing. On the stage, she still takes control of the emotion of all the listeners.

Here is one of my favourite song name ‘Wind blows.’

이소라는 정말 대단한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다. 목소리와 노래는 모든 이들을 감동시킨다.

최근 MBC 서바이벌 방송인 나는 가수다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그녀는 물의를 일으켰다. 그녀의 행동은 용납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가 좋고 그녀는 변함없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다. 내가 좋아했던 건 그녀의 인품이 아니라 목소리와 노래였으니까. 무대에서는 여전히 듣는이들의 감정을 좌지우지한다.

위의 유튜브는 내가 좋아하는 노래인 바람이 분다.

근데 나는 가사 중에 ‘사랑은 비극이어라’를 처음에는 ‘사랑은 비둘기여라’로 들었다는 사실. -_-

Sunday, 20 March 2011

Centre of the Church

서구 교회에서 논의하는 것 중 하나가 지금 교회의 중심이 어디인가라는 걸 알고 당황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서, 로마로 등등 이동했던 교회의 중심이 지금은 어디인지 논의가 오가는데, 그 후보지는 둘.

하나는 대한민국 서울이고, 또 하나는 아프리카 어딘데… 잊었다.

아… 정말…. 이 사람들은 한국 교회의 실상을 모르고 선교사 숫자가 많고 등등에 대해 굉장한 환상을 갖는구나.

한국 교회의 추잡한 현실을 알면 그런 논의 하지 않을텐데…

그리고 교회의 중심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을 영접했으면 나 자신이 교회고, 나 자신이 교회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I heard that there is a some kind of discuss about the centre of the Church. The centre of the Church was originally in Jerusalem, then moved to Rome and etc… etc… So they are discussing where is it now. There was two candidates.

One is Seoul, Korea. And the other is some city in Africa which I forgot.

Wow… the western Christians has some kind of false fantasy about us mostly because of the number of missionaries and etc.

If they had any chance to peek the ugly truth of Korean Church, they would never have this kind of fantasy.

Well as for me, I think the centre of the Church discuss is useless.

If you have Jesus Christ in you, then you are a Church yourself. And also you are the centre of the Church. This is what I think.

Wednesday, 16 March 2011

기다렸냐?

어제 신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떤 분과 오랫만에 채팅을 했다. 여러 해를 알아온 친구다. 대화중,

“드디어 하나님이 일본을 치셨네.”

황당했다. 드디어? 참나 기다렸냐? 아니면 어서 쳐 달라고 기도했냐?

내가 보기에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치시는 것은 믿는 사람이나 집단이 제대로 믿지 못할 때 치시는 거지, 전혀 쌩뚱맞게 아무나 들고 패진 않으시거든?

성경에도 소돔과 고모라를 제외하고는 두드려 맞은 게 이스라엘이지 다른 나라가 아닌데. 인구조사를 해도 재앙을 받은 건 이스라엘이지. 그것도 다윗이 재위하고 있는 이스라엘. 다른 나라는 인구조사 아무리 해도 멀쩡했거든.

아무리 일본이 미워도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데?

일본이니 한국이니를 떠나 난 그렇게 사람들이 고통당하는데 가슴이 너무 아프고 눈물이 나는데, 왜들 그렇게 잔인하지?

잘 믿는다며? 성령 충만하다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어디로 쏙 들어가 버렸냐? 다른 선지자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지 않으셨나? 자기한테 잘 하는 사람한테만 잘하고 모질게 대하는 사람에게는 해꼬지 하는 건 이방인, 그러니까 안믿는 사람들도 다 하는 거니까 믿는 우리는 달라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안믿는 사람들과 다르긴 다른데 어떻게 더 악랄하게 다르냐?

이 글은 쪽팔려서 영어로 못 쓰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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