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피랍되었던 사람들도 모두 풀려났고 해서 아프간 피랍 사태와 기독교가 총체적으로 욕을 먹는 상황에 대해 나의 생각을 좀 정리해 봐야 겠다. 이 글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훗날에 내가 이 사태에 대해 이러한 생각을 했구나 하는 자료로 남기기 위한 글이다.
제 1막: 사건의 개괄
일단, 사건의 전말부터 정리를 좀 해 보자.
- 분당 샘물교회, 아프간 선교 계획
- 외교부는 자제 권유
- 7월 19일: 23명 고속도로에서 피랍
- 7월 20일: 피랍 발표, 한국 정부 대책본부 설치, 탈레반 살해 협박
- 7월 21일: 노무현 대통령, CNN에 인질 석방 촉구 발표
- 7월 22일: 정부 관료들 아프간의 수도인 카불에 도착, 협상 시작
- 7월 25일: 배형규 목사 피살
- 7월 26일: 청와대 안보실장인 대통령 특사 아프간으로 출발
- 7월 31일: 심성민씨 피살
- 8월 1일: 한국 정부는 아프간을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
- 8월 13일: 아픈 여성 인질 2명 석방
- 8월 21일: 아프간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한 대통령 직속 위원회 설치
- 8월 28일: 탈레반은 한국인 인질 전원 석방 합의
- 8월 29일: 12명 석방
- 8월 30일: 7명 석방, 상황 종료
제 2막: 나의 입장
나는 원래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대학에 입학하면서, 식구들이 옮겨 다니게 된 평강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군에 입대한 후에 휴가 나와서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중생을 하게된 (모태신자가 아닌) 후천성 기독교인이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또 남들이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나 스스로는 신실하고 참된 기독교인이 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어떤 편을 든다기 보다는, 교회나 기독교가 잘못했을 때에는 그에 대한 비판도 꺼리지 않고, 중립적인 위치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왜냐하면, 무조건적인 옹호나 지지는 안티보다 더 나쁜 안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 3막: 샘물교회 및 선교단원에 대해
일단, 샘물교회나 선교단은 꽤 잘못한 부분이 많다. 비판을 받고 매를 맞아야 한다.
먼저, 제 4막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정부를 무시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같이 그런 식으로 극단적으로 정부를 무시하고 고소까지 하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째든 어느정도는 정부의 권유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한 것은 사실로 생각된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교회는 (또는 하나님을 믿는 단체나 개개인은) 정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방침이 성경에 정면으로 대치되지 않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러한 예로는 왜정시대에 신사참배를 강요했던 것을 들 수 있다. (Note 1) 정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 여러 곳에 나와있겠지만, 일단 로마서의 글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로마서 13장 1-2절)
위 말씀에 따르면, 정부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샘물교회는 정부의 권고를 무시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시하는 꼴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 일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만일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데 정부가 방해를 한다면, 정부를 무시할 것이 아니라 그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준비하는 진정한 기독교인다운 자세를 갖춰야 한다.
두 번째로, 왜 하필이면 선교지역으로 아프간을 선택했는가다. 만일 그들이 아프간을 선택한 이유가 순수하게 하나님께 소망을 받고 어려운 지역을 선택했다면 아무런 죄가 없겠지만, 그들이 아프간을 선택한 이유가 국제적 분쟁지역으로 더욱 돋보이기 때문이라면 그들은 또한 큰 죄를 지은 것이다.
성경을 자세히가 아니라 대충만 읽어도 예수님께서 보이기 위한 신앙(비슷한 말로 전시행정이라는 말이 있다
)을 얼마나 싫어하시는 지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구절이 있지만 하나만 예로 들겠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장 1절)
만일 그들이 더욱 돋보고 자랑할 수 있기 위해 위험한 지역을 택했다면, 성공적으로(?) 선교를 수행했어도 하나님께 하나도 칭찬을 듣지 못할 것이다.
세 번째로, 샘물교회가 선교단원들에게 아프간 현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충분하고 적절한 훈련을 제공했는가다. 만일 아래와 같은 대화가 실제 있었다면 샘물교회는 성경적으로도 어긋난 것이고, 도의적으로도 나쁜 교회가 되는 것이다:
선교단원: 목사님, 아프간 잘못 갔다가 죽는 거 아녜요?
목사님: 에이, 안죽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데. 그리고 거기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위험한 곳 아냐.
만에 하나라도 샘물교회가 선교단원들에게 아프간의 현지 실상과 위험정도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면 이 것은 거짓말 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이는 기독교의 근간이 되는 십계명에도 위배가 되는 것이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출애굽기 20장 16절)
기독교의 근간인 십계명조차 지키지 못하는 교회라면 이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 사기꾼 집단일 뿐이다. 그리고 위험한 곳으로 자기 교인들을 보내는데, 충분하고 적절한 훈련을 제공하지 않았다면, 이는 해당 교회가 최소한의 양심과 도덕성마저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선교단원들은 정보의 부재로 가장 위험한 길로 이동을 하다가 봉변을 당하게 된 것이다. 바꿔 말하면, 샘물교회가 그들을 피랍되도록 몰아낸 것과 어떠한 차이도 없다.
네 번째로, 선교단원들은 정말 선교하러 갔는가다. 선교란 모름지기 죽음을 기본에 깔고 시작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신 것과 같이 나 역시 남을 살리기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바로 선교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그리고 그 역사에서 피 없는 선교란 있을 수 없고, 죽음 없는 선교는 엔진 없는 자동차와 같다.
그런데, 그들이 출국 전에 찍은 사진들은 너무나 장난스럽고 어처구니가 없다. 정부가 아프간에 가지 말라는 경고문 앞에서 익살스런 표정과 손짓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 어디에서도 진지한 선교인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고, 오히려 정부를 조롱하는 태도만이 엿보일 뿐이다.
그들이 현지에 가서도 (물론 선교와 봉사도 했겠지만) 좋지 못한 행동을 보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께 장난을 치고 우습게 여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섯 번째로, 샘물교회가 그들을 보냈는지, 아니면 그들이 자발적으로 갔는지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선교는 죽음이고 피흘림이다. 어떤 교회도, 어떤 단체도 선교를 선동하여 보내어서는 안된다. 선교와 신앙은 하나님과 개인의 은밀한 관계기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께 사명을 받고, 지시를 받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죽음을 각오하고 가야한다. 그 누구도 남의 등을 밀어서는 안된다. 만일 샘물교회가 단기 선교단원을 모집하고 그들을 독려하고 장려했다면, 샘물교회는 철저하게 잘못한 것이다.
선교는 죽음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고, 제대로 된 선교사라면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이 어떻게 죽은 것을 생각하여 보라.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사도행전 7장 55절)
그는 죽음을 무서워해서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하지 않았다. 그는 성령이 충만하여 행복하게 죽었다. 많은 순교자들이 이렇게 행복하게 또는 담담하게 죽었다. 만일 죽음 앞에서 무서워하고 목숨을 구걸한다면, 그는 순교자도 될 수 없고, 선교자도 될 수 없고, 더욱 제대로 된 기독교인도 아니다. 그는 자신이 기독교인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생각이 이렇기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이라크에서 돌아가신 김선일씨를 절대 순교로 보지 않는다.
여섯 번째, 그리고 마지막으로 샘물교회와 피랍자 식구들의 고압적인 자세가 문제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문제를 일으켜서 정부를 고생시켰음에도 어서 사태를 해결하라고 정부에 큰 소리를 친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고압적인 자세가 나오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다.
그리고 사태가 해결되고 나서, 샘물교회가 비행기값 정도는 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는 식으로 말한 것과 식구들이 소방관 비유를 한 것은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 및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지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두 가지 속담을 생각나게 한다.
결국 샘물교회와 피랍자 식구들의 이러한 태도가 전국민적인 분노를 일으키게 했고, 수많은 사람들을 반기독교인으로 만들고, 교회에 다니던 많은 사람들도 그만 다니게 만들었다.
제 4막: 기독교를 공격하는 네티즌들에 대해
사태 초기에 가장 널리 퍼지고 읽혀지던 내용은
- 샘물교회는 외교부의 자제 권고를 무시
- 외교부는 샘물교회의 비행기편을 취소
- 샘물교회는 비행기편 취소에 대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려 함
- 정부는 무서워서 그 다음부터는 강력하게 제한하지 못함
- 샘물교회는 그 후로 겁나 안하무인임
정도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이 사실로 확인되지 못한 악성 소문일 뿐인 것도 많은 것 같다. 이에 대한 것은 미역건조장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
이러한 소문이 도는 것은, 기독교에 대한 반감인 것으로 보이고, 또한 이러한 소문이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결국 (내 입장에서는) 나쁜 순환고리인 셈이다.
현재, 일련의 사건들(Note 2)로 인해 한국 전체에 반기독교적인 정서가 굉장히 팽배해 있다. 그리고 이제는 사실 확인보다 기독교에 반하는 루머가 생산되고, 그 것이 또한 확인되지 못하고 퍼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사실인 지는 알 수 없지만, 피랍자들이 들고 온 쇼핑백에 대해서 수많은 욕설과 질타의 글이 생산되는 것이다.
먼저, 99%를 차지하는 피랍자들을 욕하는 글 가운데 하나를 보자. Through the Migojarad
그리고, 어쩌다 발견한 욕 안하는 글을 또 보자. 리디의 생각하는 글
현재로서는 이 것이 사실인지, 저 것이 사실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 오로지 기독교에 대한 반감만으로 흥분하며 욕을 하고, 또한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것은 슬픈 현실이다. 무엇이든, 감정에 치우지는 것은 좋지 못하다. 나찌도 감정에 치우쳐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유태인들을 마구 죽였다. 잘못한 것에 대해서만 꾸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터넷에는, 인질로 잡혀 있을 때부터 차라리 죽으라는 등의 감정에만 치우친 글들이 인터넷을 채우고 있다.
그리고 내가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은, 선교를 하지 말라거나 아프간으로 선교를 하지 말라는 글을 참 많이 본다. 하지만 그런 말은 기독교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기독교를 이해해서 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기독교의 본질은 선교다. 선교가 없다면 기독교는 존재 가치도 이유도 없는 것이다. 기독교에 선교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칼 세이건에게 우주를 연구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또한, 이번 문제가 있어서 기독교에 선교를 하지 말라는 것은, 일부 쌀에서 농약이 검출되었으니 전국민에게 쌀밥을 먹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비유가 적절한가?)
아프간 및 분쟁지역에 가서 선교하지 말라는 것은 50:50이라고 생각한다. 분쟁지역으로 가는 이유가 위에서 쓴 것과 같이 돋보이기 위해서라면 가지 말아야지만, 만일 하나님께서 그 곳에 가서 선교하길 원하신다면 당연히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단체에서 “선교를 계속 하겠다“는 결정은 지극히 기독교적인 것이고, 매우 당연한 것이고, 원래 예측했던, 또한 그래야만 하는 결정인 것이다.
내가 내리고 싶은 결론은, 기독교인을 욕하는 것도 좋고, 기독교 단체를 욕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로 인해 기독교 자체와 예수님을 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고, 기독교에 선교를 그만하라는 말은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말은 사람들에게 숨쉬지 말라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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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1: 안타까운 점은, 신사참배에 대해 극소수의 제대로된 목회자 몇몇을 제외하고는 한국교회가 정부에 동조를 했었다. 이 것은 대다수의 한국 교회가 참된 신앙이 아님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한국 교회가 참되지 않다는 것은 현재도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나는 믿는다.
Note 2: 역시 안타까운 것은, 이런 일련의 사건들 모두 기독교 또는 기독교 관련된 사람이나 단체가 거의 100%에 가깝게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잘못한 것이 기독교 자체에 대한 반감으로 연결되는 것이 안타깝다.
자발적인 참여라면, 그토록 많은 숫자의 선교인력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연간 1만 2천명이라죠? 한국 개신교회들의 한해 해외 선교인력 수가 말이죠.
제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외국에 나간다는 경험을 쌓고 싶어하는 한국 청년들의 심리를 묘하게 파고들어 부추기는 것이 심한 것 같더군요. “1주일만 나갔다 오는 건 일상에 지장이 없다” 는 식으로 말이죠. 나가는 사람들도 해외여행 정도 인식밖에 없는 것 같더군요.
물론 단기봉사나 단기선교 자체도 의미(http://boundary-condition.blogspot.com/2007/07/blog-post_26.html)가 있습니다만, 이들을 내보낸 이들이 그런 의미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을까에 대해 전 부정적입니다.
Comment by 최기영 — Monday, 3 September 2007 @ 0:25 |
그게 문제죠.
Comment by Jemyoung Leigh — Monday, 3 September 2007 @ 0:38 |